인도 남서부, 깊고 외딴 곳에 뭐 이런 항구가 있나 싶다. 도심을 채우는 명물들은 죄다 이국적인 것들이다. 중국식 어망이 남아 있는 것도, 인도에서 유일하게 유대인 마을이 보존돼 있는 것도 낯설게 다가선다.

인도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항구로 알려진 께랄라주 코치는 BC 3세기부터 향신료 무역의 중개지였다. 중국과 아라비아 상인들이 끊임없이 드나들며 흔적을 남겼고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등 열강의 각축지이기도 했다.

독특한 역사적 배경 때문에 코치항에서 맞는 하루는 이질적이다. 중국식 어망의 자맥질에는 눈을 뗄 수가 없다. 고깃배가 드나드는 포구에 집채만한 어망 20여개가 줄지어 늘어서 있고 검은 근육의 장정들이 줄을 당겨 고기를 낚는다.

해변을 채우는 중국식 어망

중국식 어망은 중국 광동성에서 행해지던 낚시 방식으로 1400년대에 이곳까지 전해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국식 어망의 자맥질은 해질녘까지 계속된다. 노을에 비낀 어망과 나무틀에 걸터 앉아 휴식을 취하는 어부들의 모습은 평화롭고 달콤하다.

구시대적인 중국식 어망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이곳이 분명 관광지임에 틀림없다. 두건을 둘러맨 채 로티(인도남자들의 치마같은 하의)를 입고 생선을 나르는 뱃사람들은 대부분 드라비다계 형색이다. 인도 북부는 희고 훤칠한 아리안계, 남부는 짤막하고 검은 피부의 드라비다계라던데 토종 인도인들의 살가운 표정에 더욱 정감이 간다.

중국식 어망이 있는 해변의 뒷골목은 유럽풍 거리다. 포르투갈의 항해왕 바스코 다 가마가 묻혔었다는 성 프란시스 성당 뒤로는 바스코 책방과 바스코 호텔도 있다. 그 길따라 여행자를 위한 숙소와 카페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꽃으로 단장된 흰색 담장 앞에는 앰배세더라 불리는 60년대식 클래식 차가 오간다. 석양이 지면 100년 역사의 레스토랑에도 하나 둘 불이 켜진다. 모든 게 더디게 흘러가는 코치항에서는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은 없다. 뱃사람들의 웅성거림과 찻잔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전부일 뿐이다.

유대인 마을과 전통 마임 공연

코치 항에서 남쪽으로 향하면 유대인 마을과 마탄체리 궁전이다. 향신료 무역을 하던 유대인이 정착한 것으로 추정되는 마을 모퉁이에는 유대인 회당이 있다. 한때 500여 가구였던 유대인 마을은 현재 10여명의 유대인들이 살고 있을 뿐이다. 골목에는 향신료 가게와 페르시아 골동품 상점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포르투갈인과 네덜란드인의 손길이 닿은 마탄체리 궁전은 17세기 제작된 벽화로 그 멋을 뽐낸다.

코치가 이국적인 것으로만 채워진 것은 아니다. 코치에 가서 꼭 봐야할 공연이 전통 마임극인 까따깔리다. 힌두신화를 소재로 배우는 표정과 손짓, 몸짓을 이용해 내용을 전달한다. 재미있는 것은 공연 시작 1시간 전부터 배우들의 분장과정을 적나라하게 지켜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일단 분장에 들어가면 배우들은 가끔 미소만 지을 뿐 무표정한 표정으로 입을 다문다. 희로애락을 과격한 표정과 손짓으로 표현하는 까따깔리는 흡사 중국의 경극을 닮았다.

코치 여행 때는 우연히 발견한 이채로운 광경에 넋을 빼앗기곤 한다. 늘 상상했던 인도의 모습 외에 또 다른 낯선 단면들이 감동곡선을 자극한다.

글ㆍ사진=서 진(여행칼럼니스트)

여행메모

▲가는길=인도 코치까지 직항편은 없다. 델리나 뭄바이 등을 경유해 코치로 이동하는 게 일반적이다. 델리나 뭄바이까지는 한국 국적기들이 운항중이다.

▲음식=인도의 북쪽 사람들이 밀이 주식인 것과 달리 남부 사람들에게는 쌀이 주식이다. 빵인 로띠도 쌀로 만들어 먹는다. 쌀 부침개 위에 향이 약한 커리를 올려 놓은 ‘아팜’은 남쪽 지방의 대표 음식으로 한국인들 입맛에도 맞다. 야채인 썹지와 시큼한 인도 조미료인 쩌뜨니와 곁들여 먹으면 맛있다.

▲기타 정보=코치의 여행자 숙소는 코치항 뒷골목에 밀집돼 있다. 부띠끄 호텔부터 게스트하우스까지 다양하다. 현지호텔이나 거리 환전상에게 달러를 루피로 환전할 수 있다. 물은 반드시 생수를 사 마셔야 한다.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