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도 음식 오징어순대, 식해 등 유명…“100년 넘기는 좋은 음식점이 소망”

함경도 실향민, 속초 동명항에 자리잡아…50년 넘게 운영

이정해ㆍ이영숙 모녀 북한음식 이어가…“오징어순대는 늘 연구 중”

맛의 비결은 계절의 가장 좋은 식재료 사용…순대 속 20종류 이상

오징어순대로 유명한 곳이다. 여름철뿐만 아니라 겨울에도 물회를 내놓는 곳이다. ‘진양횟집’. 이름은 횟집이지만 여전히 오징어순대가 더 유명하다. 오징어순대의 고장 속초에서도 돋보이는 식당, ‘진양횟집’이다. 2대 전승한 대표 이영숙씨를 만났다. 그녀가 들려주는 창업주 이정해씨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

50년의 역사, ‘동명상점’에서 ‘진양횟집’으로

50년에 가까운 업력이다. 법적으로 영업신고를 하고 식당을 운영한 기간은 아직 50년이 차지 않았다. 그러나 ‘진양횟집’의 창업주 이정해 대표의 ‘식당 운영 기간’은 50년을 훨씬 넘겼다.

이정해 대표는 딸 이영숙씨에게 가게를 전수하고 현역에서 은퇴했다. 1931년생. 근력도 떨어지고 이제 몸도 아프다. 인터뷰를 할 때도 이정해 전 대표는 병원에 입원 중이었다. 이정해 전 대표의 고향은 함경남도 북청군 신포다. 실향민이다.

명태, 오징어, 도루묵 등은 함경도 일대의 명품이었다. 조선시대 내내 명태는 함경도 일대의 주요 진상품이었다. 명태는 한 마리, 두 마리 식으로 헤아리지 않았다. 20마리를 한축으로 불렀다. 한축, 두축으로 부르기에도 그 숫자가 많았다. 명태를 헤아릴 때 ‘태(駄)’라고 부르는 경우도 많았다. ‘태(駄)’는 ‘말을 타다’ ‘짐’ 등의 뜻이 있다. 말 한 마리에 실을 정도의 양이 ‘한 태’다. 마른 북어를 어느 정도 실어야지 말 한 마리의 양인지 가늠하기는 힘들지만 어쨌든 많은 양이었을 터이다. 명태는 흔했다.

조선말기 고종 시대 영의정을 지냈던 이유원은 <임하필기>에서 원산 일대를 지나가면서 바닷가에 쌓아둔 명태를 본다. 아마도 마른 명태, 북어였을 터이다. 그는 북어 쌓아둔 것이 마치 한강변에 장작을 쌓아둔 것 같다고 했다. 한양은 도성이다. 땔감 용 나무는 전부 외부에서 가져오는 수밖에 없었다. 많은 장작을 쌓아둘 곳은 강변이다. 그중에서도 한강변이다. 명태가 도성에서 사용할 장작더미만큼 흔하고 컸다는 뜻이다. 명태는 흔했고 특히 생산지인 함경도 일대에서는 장작보다 더 흔했을 터이다.

전북대 무형문화연구소의 김양섭 연구원은 “명태는 조선 전기에도 이미 널리 먹었던 생선이었다. 다만 이름 ‘명태(明太)’가 중국 명나라 건국자 ‘명태조(明太朝)’와 같아서 한자로 표기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말한다.

유교 문화권에서는 조상들의 이름은 문장 등에 쓰지 않았다. 이른바 ‘휘자(諱字)’다. 명태가 널리 표기되지 않았던 조선 전기에도 명태는 함경도 등 동해안 북부 지역에서 주로 생산되었을 것이다. 실제 ‘명태’라는 이름은 명나라가 망한 후인 조선후기에 나타난다.

이정해 전 대표는 한국전쟁 때 월남했다. 월남 직후의 고단한 삶은 다른 월남자들과 마찬가지였다. 갓 스물에 월남한 그녀는 포항까지 내려갔다. 전선은 남으로, 남으로 향했고 그녀 역시 험난한 피난길을 포항까지 이었다. 배고픈 시절이다. 남쪽에 있었던 사람들도 배고픈 판에 월남자인 그녀는 더 힘든 시절을 겪어야 했다.

딸 이영숙 씨가 전하는 말이다.

“할 줄 아는 게 북한음식 만드는 일이었으니까, 포항 바닷가에서도 북한음식을 만들어 파셨겠지요. 전쟁이 얼추 정리되면서 포항에서 북쪽으로 다시 올라왔다고 들었습니다.”

월남했던 이들은 어느 순간 고향을 잃은 실향민이 되었다. 실향민들의 꿈은 언젠가 고향에 돌아가는 것이다. 속초에 실향민 마을, ‘아바이마을’이 생긴 것도 같은 이유다. 월남했던 이들은 오래지 않아 고향으로 돌아갈 것을 바랬다. 구체적인 증좌는 없지만 조만간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믿었다. 언젠가 고향 가는 길이 열리면 가장 먼저 가족들이 기다리는 고향으로 가겠다고 북과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았다. 속초다.

이정해 전 대표도 마찬가지. 좀 더 고향 가까운 곳으로 향하다가 주문진에서 남편을 만났다. 그러고도 좀 더 북쪽으로 옮겼다. 속초로 온 것이다.

“처음부터 번듯한 횟집을 한 것은 아닙니다. 어머님은 동명항에서 ‘동명상점’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뱃사람들을 상대로 어묵국물도 주고 간단한 요깃거리도 내놓는 그런 길거리 가게인 셈이었지요.”

동명항은 속초 북쪽에 있는 항구다. 예전에는 당장 먹고살기에 항구만한 곳이 없었다.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으니 길거리 좌판이나 다름없는 작은 가게를 시작한 것이다. 이름도 마찬가지. 동명항이니 당연히 ‘동명수산’이라는 회사가 있었을 터이고 ‘동명수산’ 직원들이 자주오니 가게 이름도 당연히 ‘동명상점’이 된 것이다. ‘동명상점’이 오늘날 ‘진양횟집’이 되었다.

가게를 물려받다

가게를 물려받았다는 건 어폐가 있다. 1990년 무렵 딸 이영숙 대표는 어머니 이정해씨의 ‘진양횟집’에서 일을 시작했다. 어머니는 이 무렵 예순 살을 넘겼다. 가게도 슬슬 이름을 얻었고 장사도 잘 되기 시작했다. 일손이 부족했다. 속초 시내에서 결혼생활을 하던 딸 이영숙씨가 어머니를 도와 가게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몸이 아프기 전에는 어머니 이정해 씨도 딸이 운영하는 가게 ‘진양횟집’에 ‘출근’했다. 그동안 ‘진양횟집’ 옆에 어물전 ‘진양상회’를 열었다. 건어물과 식해, 미역, 오징어젓갈 등을 파는 가게다. ‘진양횟집’에 온 손님들이 건어물이나 식해, 젓갈 등을 찾았다. “이 집 반찬이 맛있는데 살 수 없냐?”고 물었다. 그런 손님들을 대상으로 가게 문을 열었고 어머니 이정해씨는 가게에서 ‘근무’를 했다.

어머니가 창업한 후, 딸이 식당 일에 참가하면서 자연스럽게 2대 전승이 되었다.

이제 이영숙 대표가 온전히 일을 맡은 지도 26년째다.

“오징어순대를 먹고 나서 맛있다고, 레시피를 질문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솔직히 다 말씀드립니다. 순대에 대단한 식재료를 넣는 건 아닙니다. 계절 별로 달라지고 매년 조금씩 달라집니다. 그 계절에 가장 좋은 식재료를 넣으려고 노력하지요. 대단한 재주는 없지만 꾸준히 노력합니다. 늘 더 좋은 것, 더 맛있는 식재료를 사용하려고 나름 공부합니다. 순대에 넣는 속으로 20종류 이상씩 사용하는데 정확한 종류, 양은 매번 달라지니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긴 힘듭니다.”

쉽게 이야기하지만, 간단한 일은 아니다. 버섯, 깻잎 등은 볶아서 사용한다. 물기도 없애고 한편으로는 강한 향을 어느 정도 덜어내기도 한다. 일 년 내내 사용하는 속 재료는 묵은 김치다. 많은 양의 묵은 지를 마련해서 냉동 보관한 후 사용한다. 물론 싱싱한 오징어가 있어야 한다.

‘원칙’은 그 계절의 가장 좋은 재료로 속을 만든다는 것뿐이다. 이영숙 대표는 “오징어순대는 늘 연구 중”이라고 말한다.

인근의 갯배를 타면 바로 건너 아바이마을이 있다. 많은 가게들이 오징어순대를 내놓는다. 대부분의 오징어순대는 썬 다음 계란을 풀어 썬 단면을 막는다. 겉으로 보기엔 노란 계란색깔이 아름답다. 먹으면 오징어, 오징어순대 속과 더불어 계란과 기름 맛이 강하게 난다. 어느 것을 좋아할 지는 소비자의 선택이다. 오징어순대에서 오징어와 속 재료의 맛을 느끼기에는 계란으로 썬 곳을 막지 않는 편이 낫다.

오징어순대, 도루묵식해 ‘100년의 맛’을 바라보다

강원도 말은 투박하다. 북한 말씨가 남아 있으면 서울 말씨에 비하면 더 투박하다. 투박한 말씨 덕분에 상냥하지 않다, 무뚝뚝하다, 서비스가 별로다, 라는 말도 많이 들었다. 마치 북한 말투처럼 북한 음식도 투박하다. 북쪽 음식은 평안도, 황해도, 함경도 음식으로 나뉜다. 실제 황해도 음식은 서울, 중부지방의 음식과 상당히 흡사하다. 평안도 특히 평양은 북쪽 중국과의 통로다. 북쪽 중국의 음식이 일찍부터 전해졌다. 평양을 거치는 조선의 사절단과 중국의 사신들이 평양에서 묵었다. 고급관리도 있었다. 평양에서 평안도 음식이 널리 유명해진 이유다.

함경도 음식은 투박하다. 오징어순대, 명태, 명태식해, 각종 생선조림, 가자미식해, 도루묵식해, 오징어젓갈, 명란젓, 창난젓 등 각종 젓갈류가 북한 특히 함경도음식이다. 맛있지만 투박하다.

각종 식해(食醢)는 ‘진양횟집’의 자랑이다. 손님 식탁에 내놓고 한편 바로 옆의 ‘진양상점’에서 팔고 있다.

‘식해(食醢)’는 ‘식혜(食醯)’와 다르다. 식해는 생선 등을 삭힌 것이고 식혜는 곡물을 삭힌 것이다. 식해는 도루묵식해, 오징어식해, 명태식해 등으로 표기하고 식혜는 감주(甘酒) 즉, 단술이다.

가게는 그동안 꾸준히 넓어졌다. 현재 ‘진양횟집’의 오른쪽이 원래 식당을 시작한 곳이다. 옆으로 조금 조금씩 넓혔다. 현재 가게는 바닷가의 자그마한 집 3개를 합친 것이다. 열일곱 평, 스물세 평을 합쳐서 현재의 가게로 만들었다.

이영숙 대표의 동생이 대학교 연구실을 거치며 오징어순대, 도루묵식해, 명란젓 등을 연구하고, 체계적으로 만들고 있다. 더 맛있는 음식을 내놓는 것도 필요하지만 한편으로는 북쪽에서 만들었던 원래의 북한 음식, 함경도 음식을 전수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믿는다.

“식재료를 속이지 않고 꾸준히 같은 걸음으로 걷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저에게 함경도음식, 북한음식은 어머님 고향 신포의 음식입니다. 그걸 하나씩 잘 정리해두고 싶습니다. 누군가가 ‘진양횟집’을 물려받겠지요. 누가 물려받든 앞으로도 더 좋은 음식을 내놓는 음식점이라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100년을 넘기는 좋은 음식점이 소망입니다.”

글ㆍ사진=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속초의 맛집들

이모네식당

생선모듬찜 전문점이다. 특히 가오리찜이 유명하다. 단맛이 강하다는 것은 단점이지만 여전히 푸짐한 양을 내놓고 있다. 생선찜을 원할 경우 가볼 만하다.

단천식당

아바이마을에 있는 오징어순대 등 북한음식 전문점이다. 방송에 소개되면서 아바이마을에서도 가장 유명한 가게가 되었다. 속초 중앙로에서 갯배를 타고 건너면 된다.

옥미식당

바닷가에 있는 자그마한 곰치국 전문식당이다. 늙은 노부부가 운영하고 있다. 가격이 비싸고(2만원) 현금결제라는 불편한 점도 있다. 겨울에는 도치알탕도 좋다.

원조김영애할머니순두부

속초에서 미시령터널로 나오다가 오른쪽에 있다. 속초-인제를 잇는 구 도로 상이다. 이른 아침 순두부를 권한다. 부드러운 순두부와 반찬이 맛깔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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