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역사에 담긴 정성과 노력, 콩음식 전문점으로 전국적 명성

국산 콩으로 다양한 음식 내놔…손수 시래기 만들고 된장 담가

고추부각 등 별미, 착한가격 유지…가평 직영점 오가며 손님 맞이

쉬운 일이 아니다. 1980년대 초반, 외진 공릉동에 순두부전문점을 열었다. 법원 북부지원이 있었다. 황량한 곳이었다. 4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여전히 우리 콩을 구하여 두부를 만들고 청국장을 내놓는다. 서울 공릉동 ‘제일콩집’ 유병규, 류유순 씨 부부 이야기다.

마치 물 흐르듯 하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 마치 물 흐르듯 했다. 점심시간이 지난 후 조금 한가할 때 만나자는 제안에 유 대표는 “그럴 필요 없이 점심시간에 와도 된다”고 했다. 결국 약속을 오후 12시30분 무렵으로 정했다.

유 대표는 현재 한국외식업중앙회 노원구지회장을 맡고 있다. ‘음식장사’를 제법 잘 했다는 뜻이다. 겉으로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 1980년대 초반 문을 열었고 별다른 문제없이 오늘날의 ‘제일콩집’을 이루었다는 투다. 인터뷰가 2시간을 넘겼다. 여전히 유병규 대표는 나지막한 톤으로 자분자분 이야기한다. 역시 별 어려움은 없었다는 투다.

개인적으로 ‘제일콩집’의 고추부각을 좋아한다. 어린 시절 먹었던 그 맛을 그대로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화려한 반찬은 아니다. 속내를 알고 보면 대중적인 음식점에서는 내놓을 수 없는 반찬이다. 손이 너무 많이 간다. 사서 쓰면 몰라도 직접 만들어 내놓기란 불가능하다. 이야기는 고추부각에서 풀려나가기 시작했다.

알아주지 않지만 고추부각을 내는 이유

참 번거로운 음식이다.

고추를 찐다. 찐 고추에 밀가루를 곱게 묻힌다. 햇볕에 잘 말린다. 손님상에 내기 전 기름에 튀기듯이 달달 볶는다.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다. 손도 많이 간다. 고추부각을 손님상에 내기 힘든 점은 따로 있다. 이 반찬을 ‘알아주는’ 이가 드물다. 화려하지 않다. 더러는 왜 이런 걸 내놓지, 라고 생각한다. 그대로 물려내는 경우도 있다.

“경기도 가평에 농장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직접 재배하지요. 그 고추를 따서 부각을 만들고 된장절임고추를 만듭니다. 모두 우리가 농사지은 거예요.”

청국장과 두부를 만드는 콩도 마찬가지다. 오랫동안 충청도 콩을 구매해서 사용했다. 어느 순간 북쪽 연천, 포천 일대의 콩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쉽게 표현하지만 여러 번, 여러 가지 콩을 두고 견주어봤을 터이다.

유병규 대표의 고향은 충청도 제천이다. 팔이 안으로 굽기 마련이다. 고향 가까운 곳의 농작물을 사용하고 싶었다. 몇 해 전부터 서울 북부 지역에서 생산되는 콩으로 바꿨다. 매년 일정량의 콩을 산다. 현지에 보관해두고 그중 일부분을 매월 ‘제일콩집’으로 옮긴다. 수입 콩을 사용하면서 국산 콩을 쓴다고 내세우는 이들도 많다. ‘제일콩집’의 콩 자루에는 생산지와 생산자 표시도 되어 있다. 물론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다.

옆 가게에 놀러온 처자를 만나다

쉽게, 쉽게 이야기하지만 내력을 듣고 보면 쉬운 일들이 아니었다. 결혼도 마찬가지.

결혼 전, 유 대표가 철강제품 가게를 운영하고 있던 시절. 옆 가게는 자그마한 ‘구멍가게’였다. 유 대표보다 나이가 세 살 많은 여주인이 있었다. 유 대표는 음료수를 먹으러 혹은 간단한 라면, 김밥 등을 먹으러 그 가게에 드나들었다. 여주인을 ‘누님’이라고 불렀다. 청량리 시장에 장을 보러 가면 짐도 들어주고 동행해서 도왔다.

어느 날 그 가게에 낯선 처자가 왔다. 가게 여주인의 동생이었다. 평범한 이야기다. 유 대표는 그 낯선 처자와 결혼하게 된다. 이면에는 아기자기한 이야기도 숨어 있다.

“그때 결혼을 결심했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 장면도 있다. 유 대표의 오토바이를 타고 두 젊은 청춘남녀는 춘천에 놀러간다. 돌아오는 길에 소나기를 만났다. 오토바이를 탄 젊은 청춘남녀와 급작스런 소나기.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소나기를 피하는 일이 급했다. 무작정 비를 피하며 시간을 보낼 수는 없다. 가까운 지물포를 찾았다. 비닐을 구해서 간단하게 몇 곳 손을 본 다음 옷 같이 생긴 우비를 만들었다. 팔을 내밀 구멍이 있고 머리부터 뒤집어쓰면 마치 우비같이 보였다. 유 대표는 “아마 그때 아내가 ‘이 남자 손재주도 있고 괜찮은 사람같다’고 느꼈을 수 있다”고 웃는다.

처형이 된 가게 여주인과 장모님이 동생과 딸에게 ‘그 남자 괜찮다’고 결혼을 권유했다.

두부집을 열다

역시 쉽게 이야기한다. 법원 북부지원 앞에 작은 가게를 냈다. 순두부전문점이다. 주방을 빼고 나면 열너댓 평 되는 자그마한 가게였다. 젊은 신혼부부가 상권분석이나 유동인구 등을 셈했을 리 없다. 예전 북부지원 직원들이 손님으로 오리라고 생각하고 문을 열었다. 엉뚱하게 자전거 동호회 사람들도 많았다. 주말이면 북부지원은 조용한데, 외부로 나가는 자전거 동회회 사람들이 들렀다.

1987년,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현재 자리에서 30년이 되었다. ‘제일콩집’의 역사는 40년에 가깝다. 역시 쉽게 넘어간다. 쉽게 ‘제일콩집’ 40년의 역사와 지금 같이 전국적으로 소문난 콩, 두부, 청국장 맛집이 되었다고 느끼기 십상이다. 그렇지 않다.

처음 가게를 열고나서도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가게가 자그마하고 직원도 없으니 직접 콩을 갈 수가 없었다. 버스를 타고 제법 먼 곳에 가서 콩을 갈아왔다. 참 번거로웠다.

아찔한 일도 겪었다. 콩을 갈아서 큰 그릇에 담아서 돌아올 때, 버스가 갑자기 서면서 콩물이 다 쏟아졌다. 다행히 종점 가까운 곳이어서 종점에 버스를 세우고 바닥에 쏟은 콩물을 다 닦았다. 버스노선 중간쯤에서 그런 일을 겪었다면 참 난감했을 것이다.

장사가 제법 잘 되니, 좀 더 넓은 곳으로 이사를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 북부지원 담벼락을 끼고 오른쪽으로 돌면 제법 번듯한 건물의 1층이 눈에 띄었다. 지금의 자리다.

이사를 가려고 하니 별별 소문이 다 돌았다. 지금의 자리에서 4명이 망가지고 나갔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원래 자리는 대로변인데 지금의 자리는 골목 안으로 제법 들어와야 한다. 보이지 않는다. 불리한 자리다.

회사 생활을 하고 있었으니 가게 인테리어를 하는 것은 퇴근 후에나 가능했다. 1987년 계약을 하고 문은 이듬해 열었다. 3개월 동안 틈틈이 공사를 직접 했다. 꼼꼼히 한 가지, 한 가지 직접 다 해냈다. 지금도 30년 전의 인테리어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그때 제대로, 꼼꼼하게, 직접 다 해냈기 때문이다.

회사를 그만두고 가게로 합류

다행히 가게를 옮기고 나서도 손님들은 꽉꽉 들이닥쳤다. 처음 가게 문을 열었을 때보다는 오히려 나았다. 예전 가게에 자주 오던 손님들이 꾸준히 새로 문을 연 가게를 찾았다. 단골을 확보하고 문을 연 셈이었다.

가게 문을 열고 한 달이 지났다. 아내 류유순 씨가 드디어 ‘혼자서는 못한다’고 했다. 손님들은 많고 일손은 부족했다. 주방뿐만 아니라 홀도 문제였다. “남자가 무슨 식당 일을 하느냐?”고 애써 무시했다.

두 달이 지났다. 아내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한다고 최후통보(?)를 했다. “퇴직하라”는 말도 했다. 결국 남편 유병규 씨가 가게에 합류한다.

유 대표는 1945년 생, 일흔 둘이다. 슬슬 가게 운영을 물려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한때는 둘째 아들에게 일을 가르쳤다. 둘째 아들은 꾸준히 가게에 나오다가 어느 날 독립선언을 했다. 제주도에 가서 팬션을 운영하면서 사진도 찍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했다. 결국 제주로 떠났다.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나 자기 일을 해보고 싶다는 둘째도 든든하다.

이번엔 제약회사 다니는 맏아들에게 직장 그만두고 아버지 일을 물려받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었다. 고심 끝에 맏아들은 회사를 그만두었다. 업무를 인수인계하고, 퇴직절차를 마쳤다. 퇴직금도 받았다. 어느 날 회사에서 임직원이 찾아왔다. 퇴직절차를 무르고 재입사하기를 원했다. 결국 맏아들은 퇴직금 반환 후 다시 회사로 돌아갔다.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하고 다시 아버지 일을 배우러 돌아오겠다”고 했다. 아버지 유병규 씨는 두 아들이 든든하다. 아직은 가게 운영할 힘이 있으니 아들들이 돌아올 때까지 힘껏 버텨볼 참이다.

음식은 시간이 만든다

사람의 재주는 한정이 있다. 음식은, 자연이 준 맛을 그대로 손님상에 전하는 것이 최고라고 믿는다. 좋은 식재료를 사용하면 맛있는 음식이 가능하다. 좋은 식재료에 시간을 더하고 정성과 노력을 더하면 좋은 음식이 가능하다. 좋은 식재료는 많은 양념을 요구하지 않는다.

가평의 농장에서 시래기를 만들고 가게 옥상에서 된장을 직접 담고 보관한다. 콩은 적정량을 가져다 창고에 보관하고 일 년에 6천 포기의 김장을 담는다. 김치는 늘 냉장창고에 보관한다.

오랜 세월, 가게의 매출, 매입을 점검하지 않는다. 오히려 식재료 비용을 계산하지 말자는 생각을 하고 있다. 월 매출의 몇 퍼센트가 재료비고, 얼마가 인건비라고 셈하는 것이 가게를 망친다고 믿는다. 가격을 후하게 쳐주고 좋은 식재료를 구한다.

힘든 순간도 있었다. 현재의 자리로 왔을 때 어렵게, 어렵게 보증금 2천만 원을 모았다. 건물이 경매로 넘어가면서 보증금도 고스란히 날렸다. 그래도 콩으로 두부를 만들고 청국장을 내놓으면서 두 아들 공부시키고, 먹고 살았다. 건물도 얻고 이제 마음먹은 대로 음식 만들어서 손님상에 내놓는다. 6, 7천 원짜리 음식이지만 소중한 사람들에게 소중하게 전하고 싶다.

얼마 전, 경기도 가평 설악에 ‘제일콩집’ 직영점을 냈다. 쉬고, 아이들이 노는 공간, 맛있는 음식을 먹는 공간이 더불어 있다. 아내 류유순 씨는 새롭게 마련한 가평 ‘제일콩집’과 공릉동 본점을 오간다. 가족, 친구끼리 와서 좋은 음식, 좋은 놀이, 편한 휴식을 취했으면 하는 바램으로 문을 열었다.

글ㆍ사진=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사진 캡션

-‘제일콩집’ 유병규, 류유순씨 부부. 아내가 순두부전문점을 열었고 몇 해가 흐른 뒤 남편이 합세했다

- 제일콩집' 음식들

- ‘제일콩집’에서 사용하는 콩은 생산자, 생산지가 모두 정확하게 표기돼 있다. 유병규 대표가 콩을 보여주고 있다.

- 가평에서 시래기를 준비하고 말리고 있다. 좋은 음식은 시간, 정성이 필요하다. 지금도 시래기 등 대부분의 식재료를 직접 장만하고 있다.

두부 맛집 4곳

양구재래식두부

전골 식으로 담백하게 내놓는 모두부 먹기를 권한다. 전골 식이라고 하지만 별다른 양념없이 육수에 내놓는 두부가 담백하고 맛있다. 순두부, 모두부 등 여러 두부 요리가 가능.

전주식당

‘채널A_착한식당’에서 착한 두부로 선정한 집이다. 양구에 있다. 인근 군부대 군인들과 지역주민들이 자주 찾는다. 두부음식이 가능한지 전화를 하고 가는 것이 좋다.

황금콩밭

서울 시내에서는 보기 드물게 매일 11시30분 두부를 만들어 내놓는 집. 두부전골이나 순두부, 모두부 등이 모두 가능. 자가 제조한 막걸리도 아주 좋다. 저녁 술자리도 가능.

원조김영애순두부

속초에서 미시령 터널로 진행 하다가 오른쪽에 ‘콩꽃마을’이 있다. 콩꽃마을의 원조인 셈. 이른 아침 순두부 탕을 먹으면 아주 좋다. 반찬이나 내부 인테리어도 정결한 편.

글ㆍ사진=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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