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식재료 고집, ‘착한떡집’ 이상의 떡…떡ㆍ음식 박물관 빚어

떡에 쓸 찹쌀 종자 찾아 재배하기도…최고의 재료로 떡 빚어, 손해 불구 원칙 고수

“음식 만들 때 좋은 식재료 사용해야 죽을 때 다리 뻗을 수 있겠다 생각”

떡이나 음식 만드는 오래된 가구들로 박물관 조성 중…떡 빚듯 정성으로 만들어

떡은 귀한 음식이다. 예전에는 더 귀했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떡을 만드는 것은 죽을 만큼 고통스러운 작업이다. 손톱은 수도 없이 빠지고 새로 돋았다. 음식 만든 지 40년, 떡 만든 지 10년이 가까운 ‘떡의미학’ 김명순 대표를 만났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 ‘착한 떡집’_ 2012년 8월

미리 밝혀둔다. 이미 4년 훨씬 전에 ‘떡의미학’에 들렀다. 채널A ‘착한식당’ 검증이었다. ‘착한떡집’을 찾고 있었다. ‘풍문’으로 연희동에 서울 토박이들, 음식 ‘쫌 아는’ 사람들이 자주 가는 떡집이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가보지는 않았다.

가게 앞이 제법 널찍하지만 차량이나 사람들의 출입이 잦은 길은 아니다. 별 특징이 없는, 얼마쯤 빛바랜 간판들이 가게 앞에 있었다. 겉으로는 평범한 집이었다.

주인에게 알리지 않은 방문이었다. 손님인 양, 모른 체하고 검증을 하면서 놀라웠다. 떡 만드는 과정은 두 번째이고 우선 식재료를 고르는 일이 놀라웠다. 주인은 전국 여기저기 식재료를 일일이 다 꿰고 있었다. 숱한 식재료들을 하나하나 찾아내서 사용하고 있었다. 시침을 떼고 떡 재료 찾는 일을 물어봤다. 어느 지역의 어떤 식재료가 어떤 맛을 가지고 있는지, 다른 지역의 식재료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꿰고 있었다. 주인은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검증단 앞에서 술술 풀어놓았다. 가게 안쪽에 작은 마당이 있었다. 그 마당에는 떡이나 음식을 만드는 도구들이 있었다. 민속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을 듯한, 오래된 느낌이 드는 낡은 것들이었다.

김명순 대표는 마당 여기저기 자연스럽게 배치한 도구들을 상세히 설명해주었다. 자신이 만드는 음식들과 더불어 그 도구들에 대해서도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찹쌀을 찾아서

일차 검증을 끝내고 바깥으로 나왔다. 가게에서 제법 먼 곳에서 제작진과 검증단은 막 다녀온 ‘떡의미학’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착한떡집’일까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착한떡집’의 기준에 대해서는 며칠 전 이야기를 나누었다. 인공 감미료나 색소 등을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 식재료를 찾는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 특히 주재료인 쌀이나 찹쌀, 각종 잡곡 등은 국산을 사용해야 한다.

‘떡의미학’의 경우, 떡에 사용하는 찹쌀 이야기가 퍽 놀라웠다.

김명순 대표는 떡을 만들면서 자신이 원하는 찹쌀을 찾았다. 힘들었다. 아무리 뒤져도 언젠가 자신이 먹어본 ‘그 찹쌀’은 없었다. 이런 경우 대부분은 포기한다. 시중에 나오지 않는 찹쌀을 구할 방법은 없다. 김명순 대표는 엉뚱한 길을 찾았다. 우선 찹쌀 품종을 찾았다. 여러 종류 종자들을 보관하고 있는 농업진흥청이나 지자체 관련 기관을 뒤졌다. 오래 전 생산을 멈춘 품종을 찾아냈다. 어렵게 그 씨앗을 일정량 구했다. 막상 품종을 찾아도 생산을 하는 것은 힘들다. 떡에는 약 70 종류 정도의 식재료가 필요하다. 모든 식재료를 다 직접 재배할 수는 없다. 떡을 만들다가 느닷없이 농사를 지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김명순 대표의 고향은 경기도 양평이다. 친분이 있는 이가 양평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다. 어렵게 찾은 종자를 들고 양평에 갔다. 대리 농사를 부탁한 것이다. 불행히도 농사짓기에 편한 품종은 아니었다. 바람이 불면 쉽게 쓰러지고 소출량도 많지 않았다. 재배하기에 까다로운 품종이었다. 농민들이 피하는 이유가 있었다. 모두들 농사짓기에 편한 품종을 찾는다. 당연한 일이다.

어렵고, 소출량이 적은 대신 농사지어주는 대가로 ‘전량 수매’를 약속했다. 지금도 여전히 그 찹쌀을 사용하고 있다. 농사를 짓고 나면 가을부터 일정량씩 가져온다. 미리 도정한 쌀은 맛이 떨어진다. 필요한 양을 매주 운반한다. 미리 연락을 하고 도정 작업을 끝낸 찹쌀. 그 찹쌀을 구해서 떡을 만든다.

지금은 시기가 좋지 않다

검증단의 이야기를 듣고 제작진이 다시 ‘떡의미학’ 김명순 대표를 찾았다. 이른바 공개 검증을 시작한다. 동의를 구하고 보충 촬영을 한다. 실제 인공감미료, 색소 등을 사용하지 않는지, 재료를 구하는 방법은 말한 그대로인지 살펴본다.

공개 검증을 시작할 때 제작진은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김명순 대표가 “지금은 촬영이 불가능하다. 추석 지나고 촬영을 진행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무더운 여름이었다. 식재료의 상당 부분은 가을철, 서리를 맞고 나서 맛이 든다. 쌀, 찹쌀뿐만 아니라 각종 잡곡들도 마찬가지다. 서리가 내리고 수확한 것은 대부분 상태가 좋다. 맛도 좋고 색깔도 좋다. 여름철에는 지난해 가을 수확한 후 대략 10개월 이상 지난 곡물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오래 묵은 곡물은 맛이 떨어진다.

여름철에는 제대로 떡을 만들기 힘들다. 그러므로 시기를 늦춰 늦가을 무렵, 혹은 최소한 추석을 지나고 촬영을 진행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하지만 무턱대고 촬영을 늦출 수는 없었다. 긴 설득 시간을 가진 후, 제작진은 겨우 촬영을 진행할 수 있었다.

문학소녀에서 박물관 주인으로

김명순 대표의 고향은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광탄이다. 부모님은 냉면집을 운영했다. 어린 시절, 냉면집에서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음식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식재료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깨달았다. 부모님이 운영하는 냉면집은 동해안과 서울을 있는 국도의 검문소 앞에 있었다. 차량이 검문소 앞에 긴 줄을 섰다. 해물 운반차량에서 해산물이 가게 안으로 옮겨졌다. 검문소 앞에 가게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문학소녀의 꿈을 키우다가 엉뚱하게 음식 만드는 일에 빠져들었다. 문학 역시 도제 시스템이 있던 시절이다. 선생님 댁에 자주 들락거리면서 문학소녀의 꿈을 키웠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김명순 대표가 택한 길은 문학이 아니라 음식 길이었다. “선생님 밥만 해주는 찬모가 따로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드시는 음식을 보면서 음식의 세계에 대해서 눈을 뜬 셈이지요. 늘 1인 식사를 하셨는데 선생님은 재료 하나부터 조리법까지 다 알고 있었습니다.”

곧이어 고 강인희 교수가 후학들을 가르치던 이천에 다녔다. 서울에서 이천까지는 먼 길이다. 수업은 10시에 시작, 6시에 끝났다. 김명순 대표는 아침 7시에 집을 나서 밤 11시에 돌아왔다. 수업이 끝난 후 뒷정리까지 도맡아 했다. 강인희 교수에게 하나라도 더 배울 수 있는 기회였다.

“1980년대 중후반 음식 관련 일을 시작하면서 손에 반지를 껴본 적이 없습니다. 일하는데 불편하기도 하고, 반지 사서 낄 돈도 없었고요. 얼마간이라도 돈이 생기면 늘 오래 묵은 도구들, 자료들이 눈에 밟혀서 그걸 사 모았습니다. 그동안 모은 물건들이 제법 되니 박물관을 세우려고 합니다.”

그리 큰 평수도 아니고 대단한 것도 아니다. 떡이나 음식 만드는 오래된 기구들을 한자리에 모아둘 생각이다. 이미 모아둔 골동품 수준의 도구들이 600여점 정도 된다. 장소는 역시 양평이다.

“떡 만드는 일은 아직 10년이 되지 않았지만 그 이전에 음식점을 운영했습니다. 좀 특이한 집이었습니다. 연희동에서 하루 한, 두 팀만 받고 예약제로 운영했습니다. 너비아니가 들어간 김밥도 만들었고, 고사리, 쇠고기를 제대로 쓴 육개장도 정성을 들여서 만들어 봤습니다.”

음식의 가격은? ‘김영란 법’이 금하는 액수의 열배쯤 된다며 웃었다.

인터뷰의 상당 부분이 식재료에 관한 이야기였다. 약 20년 전에 ‘100만원이라는 거금’을 들여서 강원도 양구의 고사리와 곰취를 사들인 이야기와 돈이 있다고 늘 살 수 없는 송홧가루를 구한 이야기 등이다.

김명순 대표가 만든 떡을 씹으면 절구질을 한 곡물의 느낌이 확연하다. 단맛도 은은하다.

여전히 친정 조카 3명이 김 대표의 일을 거들고 있다. 일이 힘든데다 늘 혼을 내니 그중에는 떡집을 뛰쳐나갔다가 돌아온 이도 있다. 고맙다. 어렵고 힘든 일이다. 그걸 묵묵히 해내는 조카들이 안쓰럽고, 고맙고 한편으로 대견하다.

떡을 만드는 모습은 여전했다. 경제적인 면만 생각하자면 떡집 운영은 여전히 어렵다. 모든 작업을 손으로 해내야 한다. 방송에 소개된 후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지만 떡에 넣은 잣이 1등급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잣이나 호두 등을 일일이 고르고 손으로 속껍질을 까낸다는 걸 눈치 채는 이도 드물다. 큰 떡집에서 만드는 떡과 무엇이 다른지도 모른다. 급료도 제대로 주지 못할 정도로 어려울 때도 있지만, 여전히 최고의 식재료를 고집한다. ‘떡의미학’이 존재하는 이유다.

김명순 대표의 투박하며 나지막한 이야기가 고맙다. “음식을 만들 때 좋은 식재료를 사용해야 죽을 때 두 다리를 뻗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달라진 것은 4년 전에는 희미했던, 양평의 박물관 세우는 일이 좀 더 또렷해지고 가까워졌다는 점이었다. 양평에서 지내는 시간들이 길어지고 있다.

떡은 빚는 것이다. 박물관도 마찬가지. 정성을 들이면, 박물관 역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빚는 것이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떡과 음식을 제대로 빚었던 이가 빚어낸, 작지만 알찬 박물관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글ㆍ사진=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떡의미학’ 김명순 대표. 떡은 만드는 것이아니라 빚는 것이다. 음식 만드는 일을 40년간 해왔다. 최근 7년간 떡을 만들었다. 지금은 양평에 박물관을 ‘빚고’ 있다.

-2012년에 ‘떡의미학’은 ‘착한떡집’으로 선정됐다.

-떡을 만드는 과정들을 적어놓은 모습. 떡을 만드는 기구들도 보인다.

-케이크 모양의 백설기 돌떡. 그밖의 떡들.

연희동 인근의 맛집들

스시쇼부

점심 3만원, 저녁 4만원의 ‘오마카세 코스’를 권한다. 음식을 내놓는 정성이 놀랍다. 식사 전의 차왕무시도 눈여겨 볼만하다. 초밥코스도 수준급.

매화

오래된 화상 노포다. 주인의 할아버지 시대, 명동 부근에서 ‘금락원’을 운영했고, 아버지 역시 지방에서 중식당을 운영했다. 3대 80년의 노포다. 굴짬뽕이 수준급.

성산왕갈비

돼지 왕갈비가 수준급. 아파트 입구 작은 상가 2층에 자리한 식당이지만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주인이 갈비를 손질해줄 때까지 기다릴 것. 4인분을 주문하는 것이 좋다.

마마수교

원형 첨면장을 맛볼 수 있는 곳. 가게 간판 그대로 수제 물만두가 주력 메뉴지만 첨면장으로 만든 ‘산동짜장’도 특이하고 좋다. 소박한 중식 요리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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