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가 먼저 잠을 깨는, 울진 죽변항에서 맞는 새벽은 다르다. “뚜웅”하는 뱃고동 소리, “덜그럭” 거리며 수레 끄는 소리. 드럼통에 장작 타는 소리가 포구에 나직하게 깔린다.

배들이 그물을 걷어 들이고 포구로 돌아올 무렵이면 사람들이 웅크린 몸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어판장 구석 장작불이 제법 타오를 무렵, 수협 경매인의 호루라기 소리에 맞춰 모든게 바쁘게 우왕좌왕한다. 새벽녘 잡어들의 거래로 시작된 경매는 대게 경매가 본격적으로 이뤄지는 오전 9~10시 즈음까지 이어진다.

경매 때면 살 대신 물이 가득한 2~3만원 짜리 물게들은 길거리 좌판으로 실려나가고 10만원이 넘는 ‘명품 대게’들만 애지중지 대접을 받는다. 속이 알찬 대게의 속살은 짠맛이 아닌 단맛을 낸다. ‘고향’은 같아도 양으로만 따지면 울진대게의 어획량이 영덕의 두배쯤 된다고 이곳 주민들은 너스레를 떤다.

새벽 경매로 북적이는 죽변항

항구는 비대해졌지만 추억의 어촌마을 풍경은 골목마다, 전하는 얘기마다 담겨 있다. 사람 하나 간신히 오갈 수 있는 죽변한 뒷골목에서는 아주머니들이 가자미를 말리는 정겨운 모습이다.

죽변항은 드라마 한편으로 운치를 더한다. 드라마 ‘폭풍속으로’의 배경이 된 죽변항 언덕 위로는 죽변 등대와 교회 등 세트장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봉우깨 해변이 내려다 보이는 이곳 절벽에서 바라보는 일출이 아름답다.

포구의 사연은 남쪽으로 내려가면서 주렁주렁 이어진다. 울진의 해변 길이는 82km나 된다. 옷만 벗으면 해수욕장이라고 농담을 건넬 정도로 잘 알려지지 않은 해변들이 많다. 온양해변 앞에는 해녀들이 미역을 따는 모습이 드문드문 보인다. 서울로 향하던 공물이 반출됐던 공석포구는 큰 자갈들을 섞어 마을 돌담을 쌓았다.

죽변, 공석 포구 등 스쳐 지나온 울진의 포구들은 망양정에서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왕피천과 동해가 만나는 곳에 관동팔경의 하나인 망양정이 위치했다. 조선 숙종은 ‘저 바다가 술이라면 하루 300잔만 마시겠냐’는 시 한수를 망양정 현판에 적어 놓았다.

고즈넉한 풍광의 망양정, 불영사

울진여행은 바다와 함께 숲, 온천이 어우러져 더욱 즐겁다. 왕피천을 거슬러 불영계곡에서 통고산으로 이어지는 드라이브 길은 볼 것이 아기자기하게 담겨 있다. 가을 단풍으로 유명한 36번 도로에는 겨울이면 눈이 소복히 내려앉는다. 도로 초입 내앞마을의 대나무길과 돌담길은 연인들이 한번 쯤 들리는 단골 코스가 됐다. 내앞마을 앞에는 한옥구조로 된 100년 세월의 행곡교회도 자리잡았다.

비구니 승려들의 사찰인 불영사를 지나면 36번 국도변 최대의 구경거리인 금강 소나무 군락지가 모습을 드러낸다. 수십m를 올곧게 뻗어 자란 매끈한 금강 소나무들중 나이가 500년 넘은 것들도 있다. 군락지 초입에는 예전 이곳의 나무들이 왕실 전용으로 쓰인 것을 증명하는 황장봉계표석이 세워져 있다.

솔향을 흠뻑 마신 뒤 울진의 자랑거리인 백암온천이나 덕구온천에서 온천욕을 하면 몸은 차분해진다. 바다와 숲이 전하는 울진의 바람은 미역향기보다 진하고 푸르게 다가선다.

글ㆍ사진=서 진(여행칼럼니스트)

여행메모

▲가는길=승용차를 이용해 가는 방법은 두 가지. 영동고속도로, 동해고속도로를 거쳐 7번 국도를 따라 삼척 지나 울진에 진입하거나, 영동고속도로 만종IC 중앙고속도로를 지난 뒤 영주를 거쳐 36번 국도를 넘는다. 해변 경치를 구경하려면 7번 국도를, 숲길 드라이브를 즐기려면 36번 국도를 이용한다. 서울에서 약 4시간 30분 소요.

▲먹을 것=대게는 쭉 뻗은 다리가 대나무를 닮았다고 해서 대게로 불리는데 찜으로, 탕으로, 회로 먹는다. ‘게맛’을 제대로 보려면 쪄 먹어야 하고 15~20분간 찌는게 요령이다. 한번 먹으면 그맛을 잊지 못하는게 원조 대게의 매력이다. 죽변항 안쪽 수협센터에 대게식당들이 늘어서 있다.

▲숙소=새벽 경매를 감상하려면 죽변항 인근에서 묵는게 좋다. 통고산 자연휴양림, 구수곡 자연휴양림등 숲속 숙소도 있다. 금강송 군락지를 구경할 경우에는 산림청 홈페이지(www.forest.go.kr)를 통해 입장가능 여부, 숲해설사의 해설 예약 등을 확인해두면 편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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