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지런하고 우직하게 ‘기본’에 충실…요즘 드문 ‘제대로 된 음식’내놔

가마솥, 장작불로 만든 ‘진짜 조청’…메주, 한우곰탕도 직접 만들어

공무원 생활, 컴퓨터 회사도 다녀…고향으로 와‘어머니 음식’에 전력

“잘 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속이지 않는다”…딸에게 속 깊은 맛 전수

정유년(丁酉年)이다. 닭의 해다. 1957년도 정유년이었다. 이들이 올해 환갑이다. 한 갑자(甲子)가 돌았다. 닭은 바지런하다. 쉴 새 없이 모이를 쪼아댄다. 경남 의령 ‘연호전통식품’ 성삼섭 대표도 1957년생 닭띠다. 올해 환갑이 된다. 그는 바지런하다. ‘바지런한 사고뭉치’ 성삼섭 대표를 만났다.

무쇠 가마솥, 참나무 장작 그리고 조청

성삼섭 대표는 끊임없이 움직인다. 제대로 만든 조청 때문에 그를 처음 만났다. 몇 달 후 그가 만든 메주도 보고 이 집의 음식도 여러 차례 얻어먹었다. 시골의 푸근한 밥상이었다. 곰탕 한 그릇과 집에서 담근 김치, 그리고 소소한 밑반찬 몇 가지. 장이 맛있었다. 소박하지만 최고의 밥상이었다.

성삼섭 대표, 끊임없이 움직인다.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이야기하고 상대를 설득한다.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숨기지 않는다. 이야기하고, 주장하고, 동의를 구하고, 자신 없는 부분은 묻는다.

집안과 밖을 끊임없이 드나든다. 잠시도 쉬지 않고 일한다.

간단한 일들 같지만 결코 쉽지 않다. 가마솥에 장작불을 지피는 것만 해도 그렇다. 쉬운 일은 아니다. 육체적으로 고되고 정신적으로도 만만한 일은 아니다. 실내 아늑한 공간도 아니다. 산 아래 집이 있고 집 한편에 가마솥 여러 개가 걸려 있다. 때로는 가마솥 두어 개에 동시에 장작불을 지필 때도 있다. 불을 지피고, 살펴보고, 관리하는 일은 쉽지 않다. 가마솥에 관한 한 절대 남에게 맡기지 않는다. 늘 혼자서 해낸다.

어느 방송에서 제대로 만든 한과(韓菓)를 찾았다. 제대로 만든 한과는 당연히 제대로 만든 조청을 사용해야 한다. 한과는 곡물 볶은 것을 조청으로 뭉친 것이다. 주전부리나 간단한 과자로 생각하지만 그렇지는 않다. 예전에는 제사나 손님맞이에 반드시 한과를 썼다. 귀한 음식이다.

한과를 만드는 일은 의외로 까다롭다. 곡물이 국산이어야 하고 조청도 제대로 만든 조청이어야 한다. 조청은 엿기름을 고아서 만들어야 한다. 당연한 이야기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 않다. 제대로, 잘 만든 조청은 드물다.

‘짝퉁 조청’에는 액상과당이 섞여 있다. 액상과당으로만 만든 물엿, 짝퉁 조청도 흔하다. 액상과당은 옥수수 등의 전분에서 뽑아낸 것이다. 먹어도 당장 무슨 탈이 나지 않으니 식약청에서도 허가한 것이다. 물엿, 짝퉁 조청은 널리 쓰인다. 가정에서 음식을 만들 때도 사용한다. 물엿, 요리 당, 올리고당이란 이름으로 불린다.

액상과당은 가격이 싸다. 공장에서 대량 생산한 것들이니 가격이 싸고 포장 등도 예쁘다. 문제는 액상과당 혹은 액상과당이 섞인 물엿을 사용하면 음식의 맛이 지나치게 달다는 점이다. 대량생산 물엿은 은은한 한과의 맛과는 거리가 멀다. 화려한 맛이지만 쉬 질린다.

결국 방송 제작과정에서 제대로 된 조청, 한과를 못 찾았다. 방송은 불발되었지만 언젠가 조청을 찾고 싶었다. 무쇠 가마솥에 엿기름을 넣고, 참나무 장작으로 불을 땐 조청. 어린 시절 먹었던 그 은은한 맛의 조청을 찾고 싶었다.

지인이 ‘제대로 조청 만드는 이가 있다’고 제보했고, 순전히 조청을 보기 위해 서울에서 5시간 걸리는 경남 의령까지 갔다. ‘연호전통식품’. 야산이 제법 깊은 곳에서 ‘연호전통식품’과 대표 성삼섭씨를 만났다.

닭은 결코 길에서 쉬지 않는다

‘참 부지런한 사람’이었다. 보면 볼수록 ‘진짜 부지런하게, 바쁘게 사는 사람’이었다. 가내수공업 공장을 겸하고 있는 시골 주택을 건사하는 것만도 쉬운 일은 아니다. 시골 단독 주택에 살아본 사람은 안다. 잠시만 한눈을 팔면 잡초는 어느덧 사람 키를 넘긴다. 길에서 자란 잡초는 길을 없애고 산 아래 자란 풀 더미는 집 안팎의 경계를 허물어뜨린다.

장작불을 보고 집 안팎을 정리하고, 틈틈이 크고 작은 일을 매 순간 해내야 한다. 그 와중에 탁주를 빚고, 십여 가지의 제품들을 직접 만든다. 가마솥 정리, 식재료 구하는 일, 졸이고, 달이고, 포장지 관리, 마케팅, 장부 정리까지 부부가 온전히 해내야 한다. 지자체 관련 업무도 간단치는 않다. 각종 서류, 인허가 문제까지 다 해내야 한다.

메주도 직접 만들고 친환경 매장에 납품도 한다. 간장, 된장 등도 직접 만들고 있다. 또 있다. 한우곰탕도 직접 끓인다. 인근 농협에서 소뼈와 고기를 구하고 가마솥에서 장작불로 끓인다. 우직하다. “잘 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속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대로 해낸다.

한우곰탕은 진공포장으로 서울 등 대도시에 납품하고 있다. 더 바빠질 일도 있다. 직접 끓인 한우곰탕에 만족하지 않고 올해쯤에는 서울에 곰탕 전문점을 낼 준비도 하고 있다.

아내 손윤교씨의 하루 생활도 녹록치 않다. 부엌살림은 손윤교씨의 몫이다. 그이 역시 하루 종일 앉아 있을 틈이 없다.

이제 마당 여기저기에서 모이를 쪼아 먹던 예전의 닭들은 다 사라졌다. 바쁜 세상이 되니 닭을 기를 정도로 한가한 집은 없다. 시골에서도 수퍼마켓에서 포장된 닭고기를 살 수 있다. 닭은 사라지고 닭고기만 남았다. 하루 종일 집안 구석구석 쏘다니며 벌레, 풀씨, 곡물을 주워 먹던 닭들은 다 사라졌다. 닭은 몸을 뒤척이지도 못하는 작은 케이지에 들어가서 사육되고 있다. 바쁘게 움직이는 닭은 이제 더 이상 없다.

닭은 늘 하나, 하나씩 모이를 쪼아 먹는다. 당연히 바쁘다. 닭은 모래주머니를 따로 가지고 있다. 모래주머니에는 모래가 가득 들어 있다. 닭의 소화기관이다. 모래주머니는 포장마차에서 한때 ‘닭똥집’으로 선택받던 바로 그것이다.

닭띠 성삼섭 대표는 바쁘다. 끊임없이 움직인다. 닭들이 모이 주워 먹는 모습을 보면 ‘논리적’이지 않다. 왜 그렇게 바쁘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도 마땅치 않다. 본능적으로 모이를 쪼고 다닌다.

닭들은 바쁘다, 닭띠도 바쁘다

성삼섭 씨의 삶도 그러하다. 매순간 바빴다. 끊임없이 바뀌었다. 쉬지 않았다.

부산 경성대 무역학과를 다녔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공무원 시험을 치르고 공무원 신분이 되었다. 20대 후반이다. 무난한 삶이다. 부산 영도구청에서 총무과, 산업과, 동사무소 등에서 근무했다. 안정적이고 별로 나쁘지 않은 삶이다. 바쁘게 살 필요도, 직업을 바꿀 필요도 없었을 터이다. 그런데 바쁘게 움직이고 바꾼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막연히 “공무원 생활은 10년 정도 하겠다”고 생각했다. 마침내 1989년 공무원 생활을 접었다. 스스로의 생각대로, 군대생활까지 합쳐서 약 10년쯤의 세월이 흘렀다.

별다른 계획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 사이 1985년 아내 손윤교씨를 만나서 결혼했다. 두 사람은 경성대 무역학과 동문이었다. 아내는 1960년 생, 학교 후배다.

1989년 공무원 생활을 접고 나니 막상 할 일이 없었다. 뭔가를 준비하고 공무원 생활을 접은 것도 아니었다. 공무원이 한순간 백수건달이 된 셈이다.

아내 손윤교 씨의 말이다.

“공무원 생활을 접더니 서울에 있는 컴퓨터 회사에 취직한다고 서울로 가시더라고요.”

당시 유명했던 컴퓨터 회사 ‘Aproman’이었다. 컴퓨터 산업은 급속하게 발전하고 있었다. 비트 bit로 셈하던 컴퓨터가 끊임없이 변화, 발전하고 있었다. 386, 486, 586, 팬티엄 같은 단어가 매일 신문에 등장했다.

“그 회사에서도 당황스러웠겠지요. 공무원 생활하던 사람이 별다른 이유 없이 직장을 그만두고 컴퓨터 회사에서 일하겠다고 입사원서를 냈으니까. 면접 보러 컴퓨터 회사에 갔을 때도 회사 임직원들이 얼마간 당황스러운 기색이 있었습니다.”

결국 입사, 부품 등을 구매하는 부서에서 일을 시작했다. 오래지 않아 대리점 영업관리 하는 일도 하고 부산지사의 일도 맡았다.

2003년 무렵까지 컴퓨터, 게임 관련 일을 했다. 대화를 하다 보면 마치 긁힌 음반에서 잡음이 나듯이 그의 삶 군데군데에서 앞뒤가 맞지 않는, 뭔가 ‘튀는 듯한’ 단어들이 나온다. 닌텐도, 현대 컴보이…. 현재 그가 하고 있는 일과는 관련이 없는 단어들이다. 하지만 모두 그가 겪은 일들이다.

고향으로 돌아오다, 어머니의 음식을 만들다

“제가 창녕 성(成) 가입니다. 의령이나 창녕은 가깝고 분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본관은 창녕 대지면이고 어린 시절 의령 신반에서 학교를 다녔지요. 신반고등학교 출신입니다. 듣기로는 저희 조상님들이 이 지역에서 300년을 살아오셨다고 합니다. 토박이인 셈이지요.”

컴퓨터 관련 회사를 다니다 퇴직하고 2003년 무렵 친환경 유기농식품회사를 운영했다. 이 부분도 ‘긁힌 음반의 튀는 부분’이다. 컴퓨터와 유기농식품회사는 거리가 있다. 물론 별다른 이유는 없다. 무료해서일까? 어쨌든 2007년 온전히 고향으로 돌아왔다.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에서도 그리 멀지 않다. 그 사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을 한 번 더 겪었다. 고향으로 오긴 전인 2006년, 부산에서 무소속으로 시의원에 출마한 일이다. 떨어졌다.

“2007년 고향으로 돌아왔는데, 개인적으로 어머니에게 돌아온 기분이었습니다. 식품에 대해서 연구를 한 것도 아니고, 대단한 재주를 가진 것도 아니지요. 생각은 간단했습니다. 어머니가 해주신 음식을 내가 만들고 싶었습니다. 어린 시절 먹었던 그 음식을 만들어 보고 싶었고 지금 만들고 있습니다.”

곰탕도 어머니가 끓여주던 음식 그대로, 조청, 메주도 물론 어머니의 맛 그대로 따라 만들고 있다. 고집스럽게 가마솥과 장작불을 고집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어머니가 그렇게 했으니 자신도 그대로 따라하고 있을 뿐이다.

고구마 조청도 만들고 쌀 조청도 만든다. 지역에서 생산되는 곡물과 엿기름을 더하여 가마솥, 참나무 장작에 얹으면 어린 시절 먹었던 그 조청의 맛이 돌아온다. 옛 맛을 지닌 조청을 사용하여 고추장을 만들면 그 고추장에서도 옛 맛이 난다.

2016년 8월,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93세.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어머니가 알려주신 그 옛 맛만 남았다.

바쁘게 살아가지만, 느긋하게 기다리며 바라보는 일도 있다. 딸 나겸의 일이다. 동국대 중어중문학과에 들어갔다가 식품산업관리학과로 전과했다. 이제 졸업하고 바쁜 아버지 곁에서 일을 돕는다. 스물여섯 살. 곁에 두고 하나하나 보여주고 가르친다. 그에게는 그만의 삶이 있을 테지만, 아버지는 딸이 언젠가는 할머니의 맛을 잇기를 기대한다.

글ㆍ사진=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사진 캡션

- ‘연호전통식품’ 성삼섭 대표 부부와 딸 나겸이 간만에 직접 빚은 탁주를 사이에 두고 앉았다. 딸은 자기의 길을 걷되 언젠가는 할머니의 음식 맛을 재현하는 일을 하기를 기대한다.

-연호전통식품 전경. 친환경 제품 생산과 민박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가마솥을 관리한는 것과 더불어 참나무 장작으로 불을 지피는 것은 번거롭고 힘들다. 하지만 엿맛을 찾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다.

-소박한 가정식. 채소는 직접 재배한 것들이고 장류도 직접 만든 것들이다.

-곰탕은 가마솥, 장작으로 직접 만들고 있다. 현재 서울과 대도시 친환경 매장에 납품하고 있다.

-성삼섭 대표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고구마조청, 무도라지청, 인진쑥청, 생강청, 쌀조청 등을 만들고 있다.

-장의 깊은 맛은 메주에서 시작된다. 참나무 장작, 가마솥에서 콩을 삶고 햇볕과바람에서 제대로 말리고 발효, 숙성시킨 메주다.

글ㆍ사진=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사진 캡션

-‘연호전통식품’ 성삼섭 대표 부부와 딸 나겸이 간만에 직접 빚은 탁주를 사이에 두고 앉았다. 딸은 자기의 길을 걷되 언젠가는 할머니의 음식 맛을 재현하는 일을 하기를 기대한다.

-소박한 가정식. 채소는 직접 재배한 것들이고 장류도 직접 만든 것들이다.

- 연호전통식품 전경. 친환경 제품 생산과 민박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성삼섭 대표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고구마조청, 무도라지청, 인진쑥청, 생강청, 쌀조청 등을 만들고 있다.

-곰탕은 가마솥, 장작으로 직접 만들고 있다. 현재 서울과 대도시 친환경 매장에 납품하고 있다.

의령 인근의 맛집

대성식당

인근 함양에 있는 국밥, 수육 전문점이다. 간장 향이 짙은 수육이 수준급이다. 가정집을 개조, 식당으로 사용한다. 허름한 외관이지만 음식의 내공은 깊다.

삼일식당

전국적으로 유명한 안의갈비는 함양 안의면에서 시작된 것이다. 시골에 있는 작은 식당이지만 흰 도자기에 내오는 갈비찜은 수준급의 음식이다. 맛이나 담음새 모두 좋다.

주암식당

경남 산청 금서면에 있는 어탕국수 전문점이다. 산초가루를 잘 사용한다. 손두부와 김치찌개도 수준급. 시골에서 만날 수 있는 툽툽하고 토속적인 식단.

종로곰탕

작은 시골 마을, 의령읍내에 있는 50년 전통의 국밥 전문점이다. 큰 기대 없이 가면 만족할 수 있다. 2대 전승의 맛을 느끼도록. 소박한 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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