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단골 ‘대통령의 맛집’… ‘개미’ 있는 호남의 나눔 음식 선봬

호남 음식 주 메뉴로 1986년 문 열어…2000년 딸도 개업, 두 개의 신안촌

김대중 전 대통령과 각별한 인연… 한화갑 ‘나눔 자리’ 만들어

대통령이 되기 전, 재임 때, 퇴임 후에도 찾아야 진짜 대통령의 맛집

‘대통령의 맛집’이라고 함부로 이야기할 것은 아니다.

대통령 지방 행차 때 한두 번 들렀다고 ‘대통령의 맛집’은 아니다. 대통령의 음식은 의미가 있어야 한다. 음식은, 음식을 먹는 이와 음식을 마련하는 이를 묶는 연결고리다. 음식은 마음을 전한다. 음식은 삶을 드러내고 문화가 되어야 한다. ‘신안촌’은 고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맛집이다. 종로구 사직로 ‘신안촌’의 이금심 대표를 만났다.

대통령의 맛집

전설처럼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다. 대통령 퇴임 후 DJ가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했다. 노환으로 위중했다. 중환자실로 들어갔다. DJ는 결국 퇴원을 하지 못했다.

2009년 봄, 여름께의 일이다. ‘신안촌’의 이금심 대표는 꾸준히 홍어를 삭혔다. DJ가 병원에서 퇴원했다는 소리가 들리면 바로 달려갈 판이었다. 유명 정치인, 전직 대통령이기 이전에 ‘신안촌’의 단골이었다. 이금심 대표의 시가가 신안군이었다. 시댁으로 치자면 고향 사람이었다.

준비하라고 하거나 음식을 마련해두라는 사람도 없었다. 그저 이금심 대표 혼자의 생각이었다. 평소 DJ를 모시고 다녔던 한화갑 한반도 평화재단 총재 정도가 그런 이 대표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 그 이전 DJ가 다리가 아파서 동교동을 벗어나지 못할 때도 있었다. 한화갑 총재 등은 DJ가 고향 음식을 편하게 먹지 못하는 것을 가장 가슴 아프게 생각했다.

‘신안촌’은 1986년 문을 열었다. 지금은 신안촌이 두 곳에 있다. 웬만한 식객이라면 ‘엄마네 집’ ‘딸네 집’이라고 구분한다. 이즘에는 ‘딸네 집’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뒤편의 가게가 더 유명하다. 문을 연지 30년 가까이 된다. 오래된 단골들은 ‘딸집’ ‘엄마집’을 죄다 알고 있다. 물론 요즘 다니기 시작한 이들은 알 도리가 없겠다.

‘신안촌’은 모녀지간에 같은 이름의 가게를 하나씩 운영하고 있다. 물론 ‘원조’야 당연히 ‘엄마네 집’이다. 행정구역으로 종로구 사직로인데, 서울지방경찰청 부근이다. 경찰청 옆 좁은 골목 안에 한식집들이 몰려 있다. ‘엄마네 집 신안촌’도 이 골목 안에 있다.

처음에는 지금의 자리가 아니라 ‘딸네 집’ 부근의 옹색한 공간이었다.

필자도 제법 인연이 있다. 문을 연지 오래지 않아 이 집에 다녔다. 1980년대 후반 무렵 겨울철이었다. 미역국도 아니고 무슨 파래국 같은 것을 내놓았다. 머리카락 같이 가는 해초류를 국으로 내놓았다. 이게 뭔가 싶었다. 매생이국이었다. 그때는 “이거 잘 못 먹으면 입천장 다 덴다”는 말이 유행처럼 떠돌았다. 처음 만날 때는 늘 이런 말들을 들었다.

추운 겨울, 바람이 심하면 식당 안에도 겨울바람이 들이쳤다. 엉성한 문틈으로 스며드는 겨울바람을 맞으며 뜨거운 매생이국을 퍼먹었다. 입천장은 델 정도로 뜨겁고, 등은 매서운 칼바람에 시렸다.

DJ는 1990년 무렵부터 이 집의 단골이 되었다. 이금심 대표의 친척이 DJ와 인연이 있었다. 그가 DJ를 ‘신안촌’으로 안내했다. 대단한, 수준급의 가게는 아니었다. 싸구려는 아니지만 호남의 해산물을 직송, 조리하여 내놓는 ‘실비집’ 같은 분위기였다.

DJ에게 이집 음식은 고향의 맛이었다. 그게 최고의 찬사였다. 신안 하의도 출신인 DJ는 바로 이집의 단골이 되었다.

호남의 나눔 음식

호남 음식은 맛있다. 호남 음식에는 ‘개미’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좀 더 과학적으로 이야기해야 한다. 호남 음식의 ‘개미’는 발효음식의 깊은 맛이다. 발효음식의 장점을 덧붙일 필요는 없겠다. 발효음식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한시적’이라는 점이다. 된장, 간장, 고추장 등은 사용기간이 한시적이지 않다. 오래 묵히면 더 좋아지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해산물이다. 제철이 있고 홍어의 경우 삭힌 후 맛이 정점을 찍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을 넘기면 맛은 점차 변하거나 떨어진다.

민어는 크다. 불행히도 민어는 큰놈이 작은 놈보다 맛있다. 큰 것 한 마리면 최소한 20여명이 먹을 정도의 양이 나온다. 농어도 마찬가지다. 큰놈은 여럿이서 먹어야 될 정도의 양이다.

호남음식의 바탕은 ‘나눔’이다. 여럿이서 모여서 떠들며 먹는 게 제 맛이다. 한상차림으로 둘러앉아 나눠 먹어야 제격이다.

이금심 대표는 음식 먹는 자리 만드는 일은 늘 한화갑 총재 몫이었다고 기억한다.

한 총재는 싱싱한 생선이나 큰놈이 생기면 바로 ‘신안촌’으로 보냈다. 날짜를 정해서 이런저런 사람들과 모여들었다. 고 노무현 대통령도 오고 서갑원 전 의원이나 안희정 충남도지사도 왔다.

“한 총재님이 생선이 생기면 늘 보냈습니다. 자리는 주로 한 총재님이 만드셨지요. 그분은 여럿이 모이는 일을 잘 해내셨습니다. 좋은 자리를 많이 만드셨지요. 그 분 차에는 늘 술이 실려 있었어요. 차 트렁크 등에 술을 싣고 다니시면서 자리를 만들고 하셨지요. 지금도 기억에 남는 걸요.”

나눔의 자리였다. 이 방 저 방, 모르는 사람들이 있더라도 음식 쟁반들이 오가기도 했다. 큰 생선을 한 마리 해체하는 날에는 얼굴 모르는 옆방에도 생선 쟁반이 들어갔다.

2000년 두 개의 ‘신안촌’으로

대부분의 자영업자들이 그러하듯, ‘신안촌’ 역시 ‘먹고 살려고 문을 연’ 경우다. 이금심 대표는 간호사였다. 목포 출생. 목포여고를 나왔다. 중매로 1970년 결혼했다. 그녀 나이 스물다섯 살 때였다. 1975년 서울로 올라왔다.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은 일은 성실하게 그리고 열심히 했다. 그러나 돈을 벌고 모으는 재주는 없었다. 이래저래 살림이 기울었다. 결국 가난한 살림살이가 되었다. 아이들을 학교도 보내야 하고, 당장 먹고 살아야 했다. 친척이 가진 건물을 빌려 식당 문을 열었다. ‘신안촌’은 1986년 문을 열었다. 처음에는 ‘신앙촌’이냐는 질문도 많이 받았다. 당시 유명한 종교단체. 이제 ‘신안촌’과 ‘신앙촌’을 혼동하는 이는 없다.

“시댁이나 친정 모두 당시로서는 깨어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멋과 맛을 알았지요. 옷을 입어도 멋스럽게 있고 음식도 갖추어서 먹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그런 음식을 먹고 자랐지요. 시집 와서도 마찬가지였는데, 결국 지금 ‘신안촌’에서 내놓는 음식이 어린 시절 먹었던 음식, 시집 와서 보고 만들고 먹었던 음식들입니다. 자연스럽게 음식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고 또 자주 해봤지요. 시집생활 하면서도 늘 새로운 음식들을 해보려고 했습니다. 언젠가 먹었던 음식들은 늘 만들어보려고 노력하고.”

흔히 ‘신안촌’의 연포탕, 낙지꾸리, 홍어, 민어, 병어, 덕자, 매생이탕, 농어 등을 대표 메뉴로 여긴다. 그렇지는 않다. 간단한 전이 맛있을 때도 있고 김치 하나가 밥상, 술상의 모든 음식, 안주보다 나을 때도 있다. 그저 음식에 정성이 들어가고 ‘개미’가 있다고 말하는 편이 옳다.

“예전과는 다르지요. 경기도 좋지 않고, ‘김영란법’ 때문에 비싼 메뉴를 선보이기도 힘들어졌지요. 하지만 그것보다도 시대가 달라졌다는 생각을 합니다. 예전처럼 많은 사람들이 모여 다니고 또 음식을 나눠먹는 일이 줄어들었지요. 얼굴 모르는 옆방 사람들에게 음식을 권하는 문화는 이젠 거의 사라졌지요. 예전엔 좋은 음식이 있으면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도 권하고 또 그걸 계기로 사귀는 경우도 있었지요.”

한때는 1000포기 이상의 배추김장을 했지만 다 지난 이야기가 되었다. 예전엔 고향 언저리에서 대부분의 식재료를 받아서 사용했다. 이제는 일산의 창고 부근에서 고추나 배추 등을 계약 재배한다. 병어나 매생이 등은 여전히 몇 천만 원어치씩 선주문하여 사용하지만 예전과는 다르다.

2000년, 작은 딸이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뒤에 새로운 ‘신안촌’의 문을 열었다.

필자는 가끔 ‘딸의 신안촌’에 가본다. 어머니의 ‘신안촌’보다 세련된 느낌도 든다. 작지만 분명 차이는 있다.

대통령의 맛집도 필요하다

사견(私見)이다.

제대로 된 대통령의 맛집을 가지고 싶다. 대통령 퇴임 후, 서민들과 뒤섞여 대중적인 식당에서 편하게 밥 먹는 모습도 보고 싶다.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같이 혹은 나눠 먹는 모습도 보고 싶다. 설혹 얼마쯤 비싸고 화려한들 어떠랴.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바라보는 나라다. 부정부패하라는 말이 아니다. 가격에 상관없이 편하게 대통령이 자신이 좋아하는 식당에서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고 싶다. 정치적인 편 가르기가 아니라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을 더불어 즐기는 사람들과 만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말이다.

여기저기 ‘대통령이 다녀간 맛집’이라고 광고하는 식당들이 많다. 진짜 대통령의 맛집인지 아닌지를 판별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대통령이 되기 전, 대통령 재임 시, 자리에서 물러난 후 늘 찾는 집이면 대통령의 맛집이다. 그런 음식이 있다면 대통령의 음식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고 박정희 대통령의 탕반(湯飯)음식, 김영삼 대통령의 칼국수 같은 경우가 바로 그러하다.

‘신안촌’. DJ의 맛집이다. 대통령이 되기 훨씬 전부터 다녔다. 대통령이 되고나서는 경호상의 문제 때문에 바깥 식당 나들이가 쉽지 않다. 하지만 재임 시에도 ‘신안촌’에서 먹었던 음식을 꾸준히 찾았다. 퇴임 후에도 마찬가지다. 다리가 아파서 거동을 못할 때에는 측근들이 이 집 음식을 배달할 궁리까지 했다.

최고 통치자가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과 맛집을 당당하게 내세우는 모습을 보고 싶다. 음식이 문화라면 ‘대통령의 음식 문화’도 있어야 한다. 대통령이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이야기하는 그런 여유를 보고 싶다.

‘신안촌’은 DJ의 맛집이었고, ‘신안촌’의 음식이 DJ의 음식이었다.

글ㆍ사진=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사진 캡션

-‘신안촌’ 이금심 대표. ‘엄마집 신안촌’을 운영하고 있다. 호남의 해산물을 직송, 호남음식을 내놓고 있다. 1986년에 문을 연 ‘신안촌’은 업력이 30년을 넘겼다.

-‘엄마집 신안촌’ 음식들.

-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뒤편 '딸네 신안촌'의 밥상 차림. 엄마집과는 얼마쯤 다르다.

서울의 호남음식 맛집

토담

대중적인 모임을 가지기 좋은 곳이다. 가격대도 저녁 술자리 3만원 안팎. 호남 출신 여주인의 음식 만지는 솜씨가 매섭다. 홍어도 가능하다.

해남천일관

최고의 호남 음식을 만날 수 있다. 가격은 비교적 높다. 각종 장류나 식재료 모두 최상품이다. 정성도 놀랍다. 수제 떡갈비 등도 압권이다.

굴비마을

이름은 ‘굴비마을’이지만 꼬막, 굴비, 홍어, 덕자 등 호남 해산물 전문점이다. 점심은 인근 직장인을 위하여 싼 가격에 낸다. 저녁 술자리는 가격이 높다.

노들강

민어로 유명해졌지만 역시 호남의 해산물 요리 전문점이다. 각종 탕이나 회, 찜 등이 모두 가능하다. 음식 맛은 의심할 필요가 없다.

목포자매집

호남 해산물 전문점 중에도 노포다. 현지 직송 식재료를 사용한다. 낙지탕탕이나 소낙비(쇠고기+낙지) 등을 서울에 전파했다. 밑반찬이 깔끔하다. 콩나물국이 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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