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국산 메밀 막국수…‘착한식당’선정, 손 반죽 등 전통 방식 고수

노부부, 국산 메밀 손수 반죽해 막국수 제공…‘착한식당’유명세

강원도 외진 식당, 전국적으로 알려져…손님 줄이어, 일본 관광객까지

“깊은 산골까지 오는 손님께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해드리려고 다짐”

100% 메밀로 만드는 막국수는 불가능하다고 믿었다. 그것도 조미료, 감미료 없이 가게 상품으로 막국수를 내놓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강원도 횡성의 ‘삼군리 메밀촌’. 그런 잘못된(?) 이야기를 정면으로 깨트렸다. 100% 국산메밀 막국수의 시작. 일흔 살을 넘긴 이철순(71) 대표 부부를 만났다.

‘착한식당’으로 선정되다

‘채널A_먹거리X파일_착한식당’으로 선정되었다.

지방도에서 한참을 올라가야 할 외진 곳. 인가도 없고 낚시꾼들이 가끔 찾는 저수지도 저 아래 있었다. 2.6Km 아래의 저수지를 지나면 스마트 폰도 끊기고 차량 네비게이션도 더 이상 작동하지 않았던 곳이다.

어느날 방송에서 덜컥 ‘착한식당’으로 선정했다. 야단이 났다. 강원도 횡성의 산골에서 백숙, 막국수를 팔던 나이든 소박한 노부부로서는 도무지 이해 못할 일이었다. 주말뿐만 아니라 평일에도 사람들이 밀어닥쳤다. 좁은 공간도 아닌데 탁자마다 손님이 꽉꽉 찼다. ‘그 까짓’ 메밀 막국수를 먹겠다고 한 시간, 두 시간씩 기다렸다. 2012년 4월의 일이었다.

방송에서나 얼굴을 보던 유명 재벌회사 회장도 다녀갔다. 누군지도 몰랐는데 손님들이 “저 사람이 00그룹 회장님”이라고 알려줬다. 언론사 사장들도 숱하게 다녀갔다. 지금 생각해도 어안이 벙벙한 일이었다. 일본 관광객들까지 들이닥쳤다. 메밀 음식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그들은 한국의 메밀 100% 막국수를 신기하게 대했다. 양념 없이, 동치미 국물도 없이 메밀국수만 조심스럽게 먹었다.

하루에 막국수 700그릇을 빚고, 팔았다. 예전에는 메밀 막국수의 양을 ‘공이’로 따졌다. 8인분이 한 공이쯤 된다. 한 번에 국수 기계에 넣는 양이다. 약 90번 반죽을 해야 한다. 이 반죽을 일일이 손으로 다 해냈다. 물론 기다리다 돌아가는 이들도 많았다. 그 깊은 산속까지 와서 막국수를 먹지도 못하고 돌아가는 분들께는 참 미안한 노릇이었지만 그렇다고 해가 저무는 시간에 더 기다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돌아가신 손님들까지 계산하면 아무리 적게 잡아도 주말에는 하루 800명은 왔다고 믿는다.

서울을 기점으로 고속도로-국도-지방도를 거쳐서 공근면 삼군리로 가는 길은 다시 좁은 시멘트 포장 농로였다. 그나마 저수지 부근까지는 시멘트 포장이라도 되었지만 저수지부터 ‘삼군리 메밀촌’까지는 좁은 비포장 도로였다. 눈비라도 오면 미끄럽고 질척거리는 흙길을 오르내려야 했다.

횡성군에서 비포장도로를 포장했다. 내려오는 차와 올라가는 차가 부딪히면 비키지도 못할 정도로 좁은 길을 조금 넓히고 정비했다. 포장공사를 하고 나니 그나마 차량 통행이 편해졌다.

“갑자기 많은 분들이 오셨으니 당황스러워서 어쩔 줄 몰랐지요. 장사로 치자면 그 이전에도 웬만큼 손님이 있었습니다. 막국수를 했지만 백숙도 했고 예전에도 서울에서 손님들이 꾸준히 왔습니다. 토종닭을 직접 길러서 손님상에 내놓았는데 닭 한 마리가 5Kg씩 되니 서울손님들은 신기하게 생각했지요. 백숙 드시러 오는 손님들이 꽤 있었습니다. 그때도 주말에는 정신없이 바빴지요. 2010년 무렵에는 감당키 힘들 정도로 백숙 손님들이 모였지요. 막국수로 방송에 소개되고 나서는 정신이 없었고요.”

정작 방송에 소개된 후 어느 블로거가 쓴 글이 화제가 되었다.

방송 소개 후, 사람들은 몰려드는데 집안의 경사가 있었다. 아들의 결혼. 가게를 비울 수밖에 없는 사정이었지만 ‘삼군리 메밀촌’의 이철순 대표는 갑자기 걱정이 됐다. 전화 확인이라도 하고 오시면 좋으련만 대부분의 손님들이 확인 전화 없이 올 것이 뻔했다.

결혼식 날, 가게를 비우면 멀리서 오는 손님들은 영문도 모르고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다. 가게 밖에 안내문을 걸어두자. 하지만 그 부분도 마음에 걸렸다. 수백리 길을 힘들게 왔는데 그대로 돌아간다? 마음이 불편했다. 아들의 결혼식 날, 안내문과 더불어 가게 앞에 떡을 쌓아 두었다. 멀리서 와서 막국수도 못 드시고 돌아가게 되어서 죄송하다, 아들의 결혼식이라서 어쩔 수 없이 가게를 비운다. 대신 문 앞에 있는 떡이라도 드시고 돌아가라, 그렇게 써 붙였다.

‘삼군리 메밀촌’, 등 떠밀려서 시작한 음식점

이철순 대표는 1945년 생, 해방둥이다. 강원도 봉평에서 태어나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시골의 농사짓는 집. 누구나 그러하듯이 가난했다. 학력도 대단치 않다. 어린 시절부터 메밀은 숱하게 봤다. 부모님들이 메밀농사를 지었다. 이 대표도 어린 나이부터 메밀 밭 언저리에서 농사일을 거들었다. 메밀밭 일과 메밀농사는 이력이 날 정도로 해봤다.

아버님을 따라서 봉평에서 지금의 횡성 공근면으로 이사를 했다. 대략 헤아려보면 그의 나이 스물일곱 살 무렵, 1970년대 초반의 일이다.

농사짓는 집에서 태어나서 농사를 지었다. 다들 그렇게 사는 줄 알고 살았다. 40년을 훌쩍 넘긴 횡성군 공근면이 고향이라 여기고 있다.

결혼은 서울에서 만난 여자와 치렀다. 30대 중반에 잠깐 서울나들이를 한 적이 있다. 1980년대. 2∼3년 서울 생활을 했다. 청주에서 올라와서 서울 생활을 하던 아내를 만났다. 결혼 후 다시 횡성의 깊은 산속으로 돌아왔다. 두 사람 사이에 1남 3녀를 두었다.

“처음 처음 횡성 공근면으로 왔을 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깊은 산골이었지요. 화전농들이 떠났지만 여전히 군데군데 화전의 흔적이 남아 있었고. 아버님 모시고 산간에서 밭농사 하면서 정 붙이고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벌써 40년을 훌쩍 넘겼습니다.”

음식점을 하게 된 것, 닭백숙을 내놓게 된 것, 그리고 100% 메밀 막국수를 내놓고 어느 날 생각지도 못했던 방송 출연까지, 어느 것 하나 스스로 결정해서 한 것은 없다. 계획하거나 마음먹고 시작한 일은 아니었다.

오래 전 강원도 산간에서 막국수 만들던 사람들은 ‘분창’ ‘분틀’이란 단어를 쓴다. “막국수는 분창으로 뽑는다”는 식이다. 분창과 분틀은 같은 표현이다. 막국수는 뽑아낸다. 좁은 구멍이 촘촘히 뚫린 부분이 있다. 그 위에 막국수 반죽, 공이를 얹고 위에서 힘으로 내려 누른다. ‘수동 막국수 기계’인 셈이다.

1970년대 강원도 산골. 전기가 귀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산간 오지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메밀은 흔해도 제분은 힘들었다. 절구로 빻거나 메밀껍질을 벗기는 일이 모두 힘들었다. 방앗간에서 메밀을 갈아 메밀가루를 가져온다 해도 보관이 힘들었다. 메밀가루는 쉬 변한다. 국수로 만들어 말리기도 불가능하다.

결국 껍질도 벗기지 않고 손으로 메밀을 찧어 껍질이 섞인 메밀가루를 얻었다. 지금도 막국수에 거뭇거뭇한 메밀껍질의 흔적이 남은 이유다. 예전에는 메밀 막국수 한 그릇 먹고 나면 치아에 메밀껍질이 끼는 일이 흔했다.

하필이면 이 대표네 집에 분창이 있었다. 집안 대소사가 있으면 동네사람들이 이 대표네 집에 왔다. 할머니 생신, 집안의 혼사라도 있으면 메밀 막국수를 뽑으러 사람들이 왔다. 분창으로 막국수를 뽑아주면 얼마간의 수고비를 내놨다. 자주 폐를 드나들던 사람들이 “차라리 음식 장사를 하라”고 권했다.

별 맛도 없는 음식, 밀가루도 아닌 메밀국수를 누가 먹으랴, 싶어 선뜻 음식점을 시작하지 못했다. 처음 문을 열었을 때 백숙을 메뉴로 정한 이유다. 집 가까이서 기르던 닭이 있으니 “저거나 삶아서 주자”고 생각했다.

100% 국산 메밀로 만든 막국수?

보기 드물게 100% 국산메밀 막국수를 내놓은 것도 같은 이치다. 원래 강원도 산골에서는 그렇게 먹었다. 밀가루를 섞기 힘든 것은 아니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밀가루는 귀했다. 대도시에는 흔한 밀가루가 곡물이 귀한 강원도 깊은 산골에서는 귀했다. 밀가루가 흔해졌을 때도 마찬가지. 여전히 밀가루를 막국수에 섞는 것은 어색했다. 해보지 않았던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막국수를 만드는 것도 마찬가지. 무슨 비법을 배운 것도 아니었다. 사실, ‘삼군리 메밀촌’ 이전에도 100% 메밀로 만든 막국수는 몇 곳 있었다. 강원도 토박이들은 당연히 막국수는 메밀 100%로 만든다고 여겼다. 원래 하던 대로 했던 것이 바로 100% 국산메밀 막국수였다.

“중국산 메밀도 시험해 봤습니다. 뭔가 맛이 다르지요. 그래서 몇 번 시험만 해보고 여전히 국산 메밀을 쓰고 있습니다. 기계로 반죽하면 편하다고 해서 기계도 사용해봤지요. 예민한 손님들이 먼저 알아차리고…. 게다가 내가 먹어봐도 확실히 맛이 다르고…. 손이 아프고 힘들더라도 근력이 남아 있는 한 손으로 반죽해야지요. 언젠가 손이 말을 듣지 않으면 그때는 기계 힘을 빌리더라도 지금은 손 반죽으로 해냅니다.”

지금도 몇몇 가지는 마음에 새기고 꾸준히 해내려고 한다.

“손님들께 내가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해드리려고 다짐합니다. 이 깊은 산골까지 오는 분들이잖아요. 뭔가 달라도 달라야 되겠지요. 음식도 그렇고 서비스도 그렇고. 돈에 눈이 멀면 음식은 망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장작불로 불을 지핀다. 가스불과는 확실히 다르다. 반드시 참나무 장작만 사용한다. 가마솥에 불을 때 본 사람들은 안다. 화력 차이가 난다. 소나무 장작은 처음에는 불이 세지만 곧 수그러든다. 참나무 장작은 화력이 끝까지 이어진다. 가마솥이 대단히 크다. 큰 솥을 사용하면 물이 쉬 식지 않는다. 막국수를 고르게, 쫄깃하게 삶는다. 과학적인 이유야 설명하기 힘들다. 그동안 해온 방식이다. 스스로의 감각을 믿는다. 그렇게 만들면 막국수가 맛있으니 그렇게 만들 뿐이다.

글ㆍ사진=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사진 캡션

- ‘삼군리 메밀촌’ 이철순씨 부부. 횡성군 공근면 깊은 산속에서 메밀 막국수를 만들고 있다. 2012년 4월 착한 막국수로 선정. 두어 해 전부터 아들이 가게 일을 돕고 있다.

- ‘삼군리 메밀촌’ 외관 전경.

- ‘삼군리 메밀촌’, 국산 메밀 100% 막국수.

- ‘삼군리 메밀촌’의 메밀 국수(막국수), 묵, 부침

- 가게 한 귀퉁이에 있는 소박한 시골 농산물 판매 코너. 하도 찾는 이들이 많아서 직접 농사 지은 것, 주변 농가의 농산물을 쌓아두었다.

100% 메밀 막국수를 내놓는 강원도 맛집들

남북면옥/인제읍내

오랜 역사를 지닌 노포다. 시어머니, 맏며느리, 막내며느리로 전승된 집. 막국수도 좋지만 돼지수육과 갓김치가 매력적인 집이다. 12시 무렵 갓 삶아낸 수육은 압권.

장가네막국수/횡성IC 부근

횡성IC에서 1분 거리. 묵묵히 100% 막국수를 내놓고 있다. 지금 위치에서 좀 더 깊은 산속에서 최근 바깥으로 나왔다. 밑반찬도 깔끔하다.

권오복옛날분틀메밀국수/강릉

막국수를 반죽, 뽑아내는 전 과정을 직접 볼 수 있다. 가게 내부에는 모형 분틀들이 진열되어 있다. 100% 강원도산 메밀 사용. 막국수가 아니라 메밀국수라고 설명한다.

금대리막국수/원주 금대리

직접 제분한 메밀가루를 사용한다. 100% 메밀 막국수. 막국수도 좋지만 고로쇠 물로 직접 담근 고추장도 수준급이다. 입식, 좌식 좌석이 분리되어 있다.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