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빛 마을 찾아 따사로운 봄드라이브

미역향 실린 바다 내음, 빛 바랜 사진에서나 봤을 어촌마을과 점점이 떠 있는 섬들. 푸른 바다를 가로지른 남해의 다리를 건너면서부터 청정한 봄여행은 시작된다. 차창 너머로 녹색, 감색 지붕들은 바다에 잠겼다 떠오르며 끝없이 자맥질이다.

삼천포 대교가 개통되면서 섬 남해와 뭍은 한결 친숙해졌다. 바다와 섬을 잇는 3.4km 다리 위에 접어들면 남해 봄 드라이브가 훈훈하게 다가선다. 이 도로는 한때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100선’중 대상을 차지하기도 했다.

삼천포대교를 지나 남해도의 동쪽 해안을 달린다. 창선교, 물건리를 거쳐 미조항까지 이어지는 물미 해안도로는 절벽 같은 해안도로에 볼거리가 풍성한 드라이브 코스다. 다리를 건너거나 모퉁이를 돌면 때 묻지 않은 포구 마을이 있다.

멸치잡이 죽방렴과 독일인 마을

창선교 아래로는 멸치잡이 죽방렴이 늘어서 있다. 이런 원시 죽방렴은 전국에서 자취를 감추고 남해에만 남아 있다. 창선교 밑 지족해협은 수심의 차이가 크고 조류가 거세 예전부터 전통 멸치잡이가 성했다. 최근에는 여행자들이 죽방렴 조업을 코앞에서 볼 수 있도록 나무 데크로 된 바다 산책로도 조성했다.

창선 외에도 남해의 포구마다 멸치액젓을 담가놓은 커다란 드럼통들이 골목마다 늘어서 있다. 예전 남해 주민들은 농사지을 때 새참으로 우물에 꽁보리밥을 넣어 뒀다가 조린 멸치를 얹어 먹었다.

물미 해안도로에서 이국적인 풍경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곳은 주황색 기와를 얹은 이국적인 펜션들이 늘어선 독일인 마을이다. 이 마을은 남해군이 독일 교포들의 집단 귀향촌으로 조성했는데 20여 채의 아기자기한 집들이 포구와 조화를 이루고 서 있다.

독일에서 직접 공수해온 자재를 이용해 집을 지은 독일인 마을은 앙증맞은 소품처럼 다닥다닥 붙은 작은 나무 창문에 뾰족 지붕, 주황빛 담장이 작고 소박하게 어우러졌다.

미조항, 다랭이 마을에 깃든 ‘봄’

물미 해안도로 끝자락에는 남해에서 가장 큰 포구인 미조항이 자리했다. 미조항은 ‘미륵이 돕는다’는 뜻을 지니고 있을 정도로 어장이 기름진 곳이다. 멸치잡이배의 집어항으로 멸치회, 갈치회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들이 밀집돼 있다. 새벽이면 횟감을 내놓는 위판장도 들어선다.

남해도의 봄 여행은 남서를 가르는 국도를 지나 가천 다랭이마을에서 무르익는다. 108개의 소담스러운 계단식 밭이 바다로 연결된 가천마을에 들어서면 할머니들이 막걸리를 평상에 내어 놓고 판다. 응봉산에 오른 등산객들이나 이곳을 찾은 외지인들에게 손두부와 함께 내놓는 가천 할머니 막걸리는 별미로 통한다.

암수 미륵바위, 가천 폐교 등 마을에는 사연 넘치는 볼거리들이 많다. 암수 미륵바위는 남자의 성기와 아이를 밴 임산부가 마주보고 있는 형상을 띠고 있다. 미륵바위 앞에는 제삿밥 못 먹고 구천을 떠도는 혼령을 모시는 ‘밥무덤’이라는 제단도 놓여 있다.

수려한 경관의 가천마을에서는 영화도 여럿 촬영됐고 이곳 주민들 역시 한번쯤 엑스트라로 출연하기도 했다. 영화 ‘맨발의 기봉씨’와 ‘인디안 썸머’가 가천폐교에서 촬영됐고 드라마 ‘상두야 학교가자’도 이곳에서 찍었다.

남해 여행의 마무리는 남해대교다. 일몰이 가장 아름답다는 구미숲과 충무공의 사연이 담긴 이락사를 지나면 남해대교가 강건한 모습을 드러낸다. 다리 아래로 잦아드는 낙조는 섬 속의 지난한 삶을 보듬는 듯해 더욱 애착이 간다.

글, 사진=서 진(여행칼럼니스트)

여행메모

▲가는길=서울에서는 대전∼진주간 고속도로를 경유하는게 가장 빠르다. 대진 고속도로에서 남해 고속도로로 갈아탄뒤 사천 IC에서 빠져나온다. 하동을 거쳐 남해대교에서 여행을 시작하려면 남해 고속도로 진교 IC를 이용한다.

▲음식=남해에서는 미조항 등에서 멸치요리를 꼭 맛본다. 이곳 주민들이 추천하는 멸치쌈밥은 상추쌈에 뼈째 조린 멸치를 국물과 함께 넣어 먹어야 옛맛을 재현할 수 있다. 창선, 삼천포 대교 밑 창선포구에는 저렴한 회타운이 조성돼 있다.

▲숙소=깔끔한 모텔들은 삼천포대교 건너 첫 사거리에서 우회전하면 단항 방향에 밀집돼 있다. 객실 대부분이 바다를 향해 테라스가 놓여 있어 전망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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