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대지의 에너지를 스스로의 감성으로 전달하는 게 음식”

‘음식의 본질’은 궁극적으로 생명을 살리는 것… ‘대지의 축복’에 감사

“맛있는 음식, 보기 좋은 음식을 내놓겠다는 건 욕심…흉내 내기에 불과”

강화도 정착, 음식점 ‘호정’ 열어…자신만의 자연스러운 음식 선보여

“음식은 모든 것을 두루 모아서 진화하는 것”…“음식ㆍ그림은 나를 드러내는 매체”

산당 임지호씨를 만났다. ‘산당’이나 ‘임지호’라는 이름을 기억 못하는 이들도 ‘방랑 식객’이라고 하면 “아! 그 사람”한다.

산당 임지호씨는 방송에서 ‘방랑 식객’으로 자리매김했다. 우리 산과 들에 있는 모든 풀들을 식재료로 만들었고 근사한 음식으로 보여주었다. 한 곳에 머물지 않고 마치 구름같이 온 동네를 헤매고 다녔다.

외국에서 음식을 공부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음식에 대한 신념이 있다. 시청자들이 열광하는 이유다.

“이제 강화도에 머물려고 합니다.”

산당 임지호, 올해 예순둘이다. 인터뷰 중간중간 그는 ‘강화도 정착’을 이야기했다. 석모도와 음식, 그리고 많은 시간, 그림을 이야기했다.

강화도 내가면. 산당은 지난해 연말 ‘호정’이라는 음식점을 열었다. ‘호정’ 건너편에 석모도가 보인다. 바다가 강 같고, 개울은 바다로 연이어 있다. 산당은 이곳이 좋다고 했다. 봄날, 바람이 불었다. 강화도에서 산당 임지호씨를 만났다.

산당, 강화도로 가다

산당의 음식은 이미 양평 시절, 널리 알려졌다. 양평에서 서울 청담동으로도 진출했다. 방송에 등장하고 외국에서 한식을 보여주는 행사에 숱하게 참석했다. 한동안 양평과 청담동에서 ‘산당 임지호’의 이름을 걸고 음식을 보여주었다. 사람들은 환호했다. 방송 프로그램에서 봤던 ‘산당의 자연식’ 식단을 실제로 만날 수 있었다.

오래지 않아 청담동의 가게는 문을 닫았다.

“경영은 음식 내놓는 것과 다르다. 높은 임대료를 견디기 힘들었던 부분도 있고, 이런저런 문제들로 청담동의 음식 연구소는 문을 닫았다.”

그 후, 양평에서 꾸준히 자신의 음식을 보여주었다. 그 음식점도 이미 세 해 전부터 서서히 산당의 손을 떠났다. 역시 공간 임대, 소유, 사용의 문제였다. 한동안 쉬면서 이런저런 정리과정을 거치고 지난해 연말, 지금의 ‘호정’을 세웠다. 이제 겨우 6개월의 기간을 거쳤다. 양평, 청담동 그리고 지금까지, 산당 임지호씨의 음식에는 ‘자연주의’라는 표현이 따라다닌다.

산당은, 우리 산과 들에서 나는 식재료들로 ‘자연주의’에 맞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매인 곳이 없는 음식이었다. 양식의 방식을 차용했는가 하면 어느 새 한식의 장(醬)을 이야기하고, 한식인가 싶어 잘 쳐다보면 마치 양식의 플레이팅 같았다.

산당은 자신의 음식을 세세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방송에서도 마찬가지. 그저 자신이 생각하는 음식을 그릇에 담긴 음식으로 보여주었다. 세세한 설명은 없었다. 산당 스스로도 자신의 음식을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았다.

‘자연식’ ‘자연주의’라는 표현도 외부 매체들이 만든 이름이다. 산당이 만드는 음식은 산당의 음식일 뿐이다.

“우리가 길에서, 산에서, 들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은 대지의 축복이다. 단순한 표현이지만 음식을 만드는 사람으로 ‘대지의 축복’이라는 말을 늘 가슴 속에 담는다. ‘맛있게 만든다’는 말은 틀렸다. 맛있게 만드는 게 조리사의 일은 아니다. 음식을 만들면서 맛을 보는 것도 어색하다. 맛을 보거나 맛있는 음식을 만들겠다는 것 자체가 ‘대지의 축복’을 거부하는 행위다. 음식을 만드는 사람은, 어떻게 보면 좀 바보 같은 과정을 잘 해내야 한다. 단순작업들. 그릇 씻고, 닦고, 청소하는 일, 그런 단순한 일들을 잘 해내는 게 중요하다.”

선문답 같은 표현들이 이어진다. 많은 조리사들이 ‘맛있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한다. 보기에 아름답고, 먹으면 맛있다고 느끼는 음식들. 산당은 그런 부분을 부정한다.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것은 흉내 내기라고 말한다.

“맛있는 음식은 본질이 아니다. 음식을 만들면서 맛있는 음식, 보기 좋은 음식을 내놓겠다는 것은 욕심이다. 자연, 대지가 주는 축복, 자연과 대지의 에너지를 스스로의 감성으로 전달하는 게 음식이다. 다른 사람들의 음식이나 시중에 나도는 레시피로 음식을 만들고 그걸 뽐내는 것은 흉내 내기다. 그건 기계도 잘 할 수 있다. 본질이 아니다. 음식의 본질은 심장의 울림을 손의 에너지로 표현하는 과정일 뿐이다. 궁극적으로는 생명을 살리는 게 음식의 본질 아니겠는가?”

음식이나 그림이나 나를 드러내는 매체일 뿐이다

산당과 인터뷰를 진행한 날은 토요일이었다. 인터뷰는 오후 3시부터 시작되었다. 세 시간 동안 산당과 가까운 바닷가와 자그마한 들판, 산당이 관리하는 양식장, 그리고 산당의 화실(畵室)을 둘러보았다.

오후 6시 무렵. 산당이 불쑥 말했다. “서울 가기 전 식사나 하고 가지요? 황태보탕 어때요?”. 황태보탕을 한 그릇 받아들었다. 황태보탕의 정확한 메뉴 이름은 황태보탕정식. ‘통북어탕’이란 이름이 어울리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상차림으로 나타났다. 밑반찬 10 종류 정도가 나왔다. 밥과 탕, 밑반찬 10종류가 있는 간결한 밥상. 일상적인 황태탕과는 달랐다. 밑반찬 열 가지의 무쳐내는 방식과 간이 모두 달랐다. 고사리 무침 같은 경우엔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특이한 맛을 느꼈다. 엉뚱하게도 곰삭은 조청의 단맛이 느껴졌다. 물론 조청이 들어간 것은 아니었다. 흔하게 볼 수 있는 고사리 무침인데 다른 고사리 무침과는 다른 맛이었다.

지난해 문을 연 ‘호정’은 1, 2층이 모두 ‘호정’의 홀이다. 들어서면 왼쪽에 주방이 있고 오른쪽에는 홀이 자리한다. 1층은 장어요리, 황태보탕정식 등을 먹을 수 있는 공간이다. 장어요리는 1kg 단위로 음식을 낸다. 황태보탕정식은 1인분도 가능하다. 편하게 와서 편하게 식사할 수 있는 대중적인 분위기다. 강화도로 옮기면서 산당이 새롭게 꾸민 공간이다. 대중적이고 간편한 공간은 ‘달라진 부분’이다.

그러나 ‘달라진 부분’은 또 있었다. 2층 공간과 그곳의 음식이었다. 2층은 이른바 ‘코스요리’를 위한 공간이다. 예전의 양평 ‘산당’에서 볼 수 있었던 음식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달라지지 않았다. 5만 원대부터 11만 원대까지 코스요리가 가능하다.

예전의 음식들은 얼마쯤 ‘뾰족한’ 음식이었다. “이런 음식이 산당의 음식이야”라고 주장했다. 강화도 ‘호정’의 2층 공간 음식은 상당히 부드러워졌다. “아름답다”는 느낌이 드는 음식 담음새도 많이 사라졌다. 뭔가를 주장하는 뾰족함보다는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부분이 깊게 드러났다.

음식이 달라진 이유는 간단하다. 주방에서 음식 만지는 이가 바뀌었다. 산당은 예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주방에서 보내고 있다.

“이제 강화도에 정착하려고 한다. 여기에 정을 붙이고 살려고 한다.”

그림 그리는 일도 더 열심히 하려고 한다. ‘호정’이 문을 열고 얼마 되지 않았으니 음식에 집중하고 있다. 그림 그리는 일도 지금은 뜸하다. 한때는 음식보다 그림에 더 많은 시간을 쏟았다.

“음식 속에 음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생명, 그림, 조각, 디자인, 심지어는 공학적인 것들, 기계공학 같은 것도 음식에 있다. 음식은 모든 것을 두루 모아서 진화하는 것이 아닐까?”

이야기의 상당 부분은 그림에 관한 것이었다. “왜 그림에 몰두하는가?”라는 우문에 대한 산당의 대답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아직도 멈추지 않는다. 음식은 나를 표현하는 주요한 매체다. 그림도 마찬가지다. 세상의 모든 것은 스승이다. 스쳐지나가는 바람도 스승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호기심을 세상의 스승들을 통하여 풀어낸다. ‘느낌’으로 그림을 그리고 음식을 만든다. 장르는 중요치 않다. 나의 음식을 만드는데 한식, 양식, 일식, 이런 것은 중요치 않다. 자신의 느낌대로 만들면 바로 자신의 음식이다. 음식이 나를 드러낸다면 그림도 마찬가지다. 한밤중에 100점 이상의 그림을 매만질 때도 있다. 물감에 중독되어 머리카락이 빠지는 일도 겪었다.”

새가 하늘을 난다, 스스로의 ‘범위’를 정하다

석모도가 보이는 둔덕에 서서, 산당은 ‘새의 자유’를 이야기했다.

“새가 하늘을 자유롭게 난다?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새는 자유롭다. 하지만 새들도 자신들이 정한 ‘범위’가 있다. 무질서하게 아무 곳이나 가지 않는다. 한계를 정해두고 다닌다. 정신은 무한대이지만, 육신은 한정적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이제 강화도에 정착하려고 한다. 저 앞의 석모도가 재미있다. 여기서 일출과 일몰을 모두 볼 수 있다. 하루의 시작과 끝을 같은 공간에서 본다. 요즘은 음식 만드는 일에 빠져서 그림을 제대로 못 그린다. 그래도 좋다. 언젠가 음식보다 그림이 더 다가올 때가 있을 것이다. 그때는 그림 그리느라 음식을 못 만들겠지. 나도 마찬가지다. 전국을 방랑하지만 늘 스스로 정한 범위가 있었다. 나의 음식을 만들고 그림 그리고, 그게 내 삶이다. 이제 강화도에 정착하려고 한다.”

음식에 대한 이야기는 오히려 간단했다.

“보이는 것들, 보이지 않는 것들이 늘 궁금하니까 한 곳에 정착하기 힘들었다. 떠돌아다니면서 고생을 많이 했다. 고생이 중요하다. 고생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깨달을 수 없다. 스스로 깨닫는 것은 고생이 있어야 가능하다. 고생하지 않을 것이면 왜 사는가?”

음식 입문에 대한 질문도 참 싱거운 설명으로 대신했다.

“처음 음식을 만지기 시작한 것은 순전히 굶주림을 면하려고…. 음식점에서 일하는 게 굶주림을 피할 가장 좋은 방법이었으니까.”

글ㆍ사진=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강화도 맛집들

비빔국수

시인 성석제씨가 ‘수정국수’를 내놓는 집이라고 소개했다. 수필집에서 이 식당에서 ‘대인배’로 국수 먹은 이야기를 능청스럽게 풀어놓았다. 가게 이름이 ‘비빔국수’다.

우리옥

50년을 넘긴 노포다. 가마솥에 지은 밥이 아주 맛있었던 집. 새로 지은 건물로 이사하면서 가마솥 밥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수준급의 백반을 내놓는다. 푸근한 백반 집.

화덕식당

강화 풍물시장 2층에 있다. 젊은 주인, 종업원이 강화 특산 노랑고구마를 재료로 피자, 깔조네 등을 만든다. 가격도 싼 편이다. 음식은 소박하면서 진정성이 있다.

토가

자하젓갈은 곤쟁이젓갈이다. 색깔이 보랏빛이다. 두부 전문점이다. 두부에 새우젓갈 등을 넣으면 곧 ‘연포탕’이다. 제대로 된 시골 손두부, 순두부의 맛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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