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된 ‘호남한정식’…좋은 재료 직접 구하고, 정성으로 차려

무안의 어린 시절 음식, 식당 경험 인연 오늘의 ‘토담’ 기반돼

호남음식 맛은 좋은 식재료가 기본…식재료만은 전국에서 직접 구해

“주방에서 좋은 음식, 손님들이 맛있다고 하는 음식 만드는 게 유일한 소망”

호남식 한식을 내놓는 집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호남한식, 전라도한식이라고 써 붙여서 가보면 ‘무늬만 호남한식’일 때가 많다. 서울 교대 역 부근 ‘토담’. 괜찮은 호남한식을 내놓는 집이다. 가격도 높지 않고 음식이 수수하면서 맛깔스럽다. 맛있으면서 짜지 않은 음식을 만드는 것은 노하우다. 배불리 먹고 나서도 물이 당기지 않는다. ‘토담’의 김계성 대표를 만났다.

‘무안 해제’ 출신입니다

김계성 대표에게 ‘태어난 곳과 자란 곳’을 물었다. 대뜸 ‘무안 해제’라고 대답한다. ‘해제’? 처음 들어보는 곳이다.

‘해제’인지, ‘해재’인지도 구별할 도리가 없다. 인터넷으로 검색했다. ‘무안군 해제면’이다. 검색하면서 ‘인터뷰 하면서 실수했다’고 느꼈다. 가본 적은 있었다. 지도로 보면 섬이다. 차량으로 달리면 어느 지점인지 쉽게 알 수는 없다.

해제면은 섬에 가까운 반도다. 실제 ‘해제반도’라는 표현도 있다.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 같은 섬의 왼쪽 부분이 신안군이고 오른쪽이 무안군 해제면이다. 다리로 육지와 연결되어 있지만 지금도 섬이나 다를 바 없다.

음식 이야기를 하려면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이 필요하다. 어린 시절 먹었던 음식이 평생 음식의 방향을 정한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다. 누구나 어린 시절 먹었던 음식은 잊지 못한다. 음식이 좋았던 지방에서 자란 사람들은 더 심하다. 평생 잊지 못하고 그리워한다. 한번만 더 먹어봤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애당초 “어린 시절 어떤 생선을 먹고 자랐느냐?”고 물어봤어야 했다.

“친가는 무안 해제, 외가는 벌굡니다.”

벌교는 보성과 순천 사이에 있다. 이 지역 음식도 대단하다. 흔히 ‘벌교 꼬막’으로 기억하지만 현지에 가보면 꼬막보다 다른 음식들이 더 낫다는 생각도 든다. “외갓집 분들이 음식 솜씨가 좋았습니다. 외할머니 음식이 대단히 맛있었고, 이모님들 음식도 대단했습니다. 이모님들 중에는 나중에 음식 장사를 하신 분도 계셨고요. 제가 음식 하는 걸 좋아하는 건 아마도 외갓집 피를 물려받아서인가 봅니다.”

자란 곳은 영광, 광주 등이다. 아버님은 공무원이었고 임지에 따라 이사를 다녔다. 지금도 영광에는 친척들이 살고 있다.

음식과 인연을 맺다

김 대표는 네 차례에 걸쳐 음식과 인연을 맺는다.

첫 번째는 어린 시절 고향 무안이나 외갓집에서 먹었던 음식들이었다. 지금까지도 김 대표의 입, 혀, 몸에 남아 있는 최고의 음식이다. 음식을 만들다가 막히면 늘 떠올려보는 음식들이다.

두 번째 음식과의 인연은 서울로 이사 온 다음이었다. 당장 음식장사를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음식점에서 일을 하게 된 계기였다.

“이모님이 신라호텔 부근에서 음식 장사를 하셨습니다. 한식집이었습니다. 제법 규모도 크고, 장사는 잘 되었지요. 유명 정치인들이나 경제인들이 많이 드나들었던 집이었습니다. 그중에는 단골들도 많았고, 오래 하셨지요. 음식 만드는 일은 아니고 회계 관리도 해주고, 홀의 이런 저런 일들을 제가 했지요. 손님들이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또 어떤 음식이 인기가 있는지는 찬찬히 볼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음식점을 열 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모가 운영하던 한식당에서 10년 정도 일을 했다. 결혼하기 전부터, 결혼하고 나서도 제법 오랫동안 다녔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아이들을 키우는 일이 시작될 때 어쩔 수 없이 가게를 그만두었다.

세 번째 인연은 한식당 ‘ㅈ’과의 만남이다. 호남밥상으로 직영점, 체인점을 하던 식당이었다. 이모님 식당에서 일할 때 만났던 이들이 “식당을 열어보라”고 등을 떠밀었다. 주방에서 일하던 ‘찬모 이모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었다. 결국 송파구의 ‘ㅈ’ 식당을 해보는 걸로 결정했다.

“경제적 상황이 심하게 어려운 것은 아니었고, 꼭 식당을 운영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아이들 키우는 일에서 얼마쯤 벗어났고, 결국 하기로 했지요. 당장 돈 벌려고 식당 문을 연 게 아니니까 오히려 제대로 음식 만드는 일을 했겠지요”

23살 때 중매로 금융회사 일을 하는 남편을 만났고, 무난한 결혼생활을 이어왔다. 경제적으로 다급한 상황은 아니었다. 그런데 힘든 식당 운영을 시작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까 제가 음식 만드는 일을 좋아하더라고요. 아마 음식 만들어서 손님들한테 드리고 그분들이 ‘음식 맛있다’고 하면 마음이 기쁘고….”

2003년 무렵의 일이었다. 1980년대에 이모가 운영하던 한식집에서 일을 했고 제법 시간이 지난 후 결국 스스로 운영하는 식당의 문을 연 것이다.

‘토담’의 문을 열다

네 번째 인연은 바로 현재 운영하고 있는 호남한식당 ‘토담’이다. ‘토담’의 문을 연 것은 2010년 무렵. 서울교대 담장 옆이었다. 가정주택을 개조해서 식당으로 사용했다. 이모님이 운영하던 식당, 한식당 ‘ㅈ’ 그리고 ‘토담’에 이르기까지, 가게 이름은 달라졌지만 그동안 꾸준히 지켜온 원칙은 있다.

식재료는 반드시 자신이 직접 구하고 사들인다. 아무리 바빠도 남에게 맡기지 않는다. 제대로 된 음식의 시작은 좋은 식재료, 마음에 드는 식재료를 구하는 일에서 시작된다. 마음에 드는 식재료를 구하기 위해 서울이든 지방이든 가리지 않고 가본다. 주말에는 제법 거리가 먼 호남까지도 간다.

시골장터에서 구한 싱싱한 식재료로 음식을 만들면 당연히 손님들은 좋아한다. 몇 번 가게에 왔던 이들은 귀신같이 알아맞힌다. 손님들이 떠나고 난 후, 그릇에 남아 있는 음식의 양을 본다. 좋은 식재료로 음식을 만들면 남기는 이들이 거의 없다.

“호남음식이 맛있다고 하는데 가장 큰 이유는 좋은 식재료를 구하는 일에서 시작된다고 믿습니다. 음식 맛은 재료가 정하지요.”

조리법도 다르긴 하다.

대파 하나를 썰더라도 써는 각도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사선으로 길게 썰 때와 총총 썰 때 그리고 길쭉하게 마디지게 썰 때는 맛이 다르다. 대파가 나오는 계절에 따라 파의 맛은 다르다. 대파의 결을 보고 써는 방법을 순간적으로 결정해야 한다. 음식 종류에 따라 써는 법도 모두 다르다.

“어린 시절 봤던 음식이 늘 기억에 남고 마치 그 음식들이 교과서 같습니다. 어린 시절의 경험을 떠올려 보면 음식을 만든 방법이 보이지요.”

연잎밥의 경우는 기가막힌다. 여기저기서 연잎밥을 내놓을 때 김 대표도 연잎밥을 만들었다. 음식점에서 주문을 받은 다음, 연잎밥을 만들어 내놓는 일은 불가능하다. 미리 연잎에 쌀을 안쳐서 1차로 밥을 짓는다. 모양을 잡은 다음, 냉동시킨다. 손님이 주문하면 다시 가열처리를 한 다음, 연잎밥을 내놓는다. 문제는 냉동실에 넣었던 연잎밥에서 ‘냉동 냄새’가 난다는 점이었다.

“무안 일로읍이 연꽃으로 유명합니다. 어린 시절에 먹었던 연잎밥은 냄새가 나지 않았습니다.”

무안 일로의 연잎을 구했다. 신기하게도 밥에서, 연잎에서 ‘냉동 냄새’가 나질 않았다.

청태(靑苔)나 감태(甘苔), 김도 마찬가지다. 김은 완도, 진도 일대에서 대량 생산된다. 해남도 김을 대량 생산한다. 무안에서 김이 생산되는 것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청태나 감태는 무안 것이 좋습니다. 고향 것이라서가 아니라 무안 일대에서 구하는 청태, 감태가 역시 맛은 낫습니다.”

문제는 가격이 비싸다는 점. 무안 일대의 김도 좋긴 하지만 역시 가격이 비싸다.

“식재료를 보면서 가격을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좋은 물건이면 구하지요. 그걸 사용하면 음식 맛이 한결 나아지는데 안 쓸 도리가 없습니다. 식당에서는 집에서 먹어보지 못한 음식을 내놓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돈 받고 파는 음식인데 가정 음식보다는 더 나은 부분이 있어야지요.”

임대료를 낮추고, 식재료비는 올리고

그게 한식의 매력이자 호남한식의 매력이라고 이야기한다. 덕분에 ‘토담’은 늘 만석이지만 큰돈을 벌지는 못한다. 따져보지 않았지만 식재료비 비율은 상당히 높을 것이다.

서울교대 담장 옆에 있다가 현재의 위치인 지하로 이사한 이유도 바로 식재료비 때문이다. 번듯한 1층에서 100석 가까이 되는 좌석을 확보하려면 임대료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비쌌을 것이다. 음식점은 음식을 내놓는 곳이다. 임대료를 줄이고 식재료비를 올렸다. 음식이 제대로 맛있으면 지하라도 사람들이 찾으리라 믿었다. 예상은 맞았다. 크고 작은 방들이 늘 꽉꽉 들어찬다.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전(부침개) 색깔을 맞추자고 하지요. 말립니다. 전 색깔을 맞추려고 노력하지 말라고 이야기합니다. 소박하고 수수하게 내자고 말합니다. 노란색, 파란색, 빨간색으로 억지 색깔을 맞추는 것은 손님들을 속이는 거라고 믿습니다. 식재료가 가지고 있는 색깔이 있지요. 색깔을 굳이 예쁘게 맞추지 말고 있는 그대로, 그저 정성을 다 해서 내자고 합니다. 제 고집은 청량고추는 아주 좋은 식재료니 전에도 자주 사용한다는 정도입니다(웃음).”

대신 지금도 된장 등은 반드시 오랫동안 거래했던 시골에서 구해온다. 영광, 무안 등지 여기저기 장을 맛보고 정한다. 아무래도 비좁은 서울의 음식점 공간, 주방은 장 담그고 익힐 곳으로는 마땅치 않다. 어쩔 수 없이 남이 담은 시골 장을 구해온다.

“주방에서 음식만 만들고 싶은데 식당이니 어쩔 수 없이 홀에서도 손님맞이를 해야 합니다. 단골손님들은 늘 주인을 찾습니다. 주방에서 음식 만드는 일을 하다가 홀에 나왔다가 또 주방 들어가고 하는 일을 매일 수십 번 하니까 힘들지요. 주방에서 좋은 음식, 손님들이 맛있다고 하는 음식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게 유일한 소망이지요.”

글ㆍ사진=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사진 캡션

-‘토담’ 김계성 대표._고향은 무안군 해제면이다. 어린 시절 먹었던 음식, 특히 외갓집 벌교에서 먹었던 음식이 음식점 운영으로 이끌었다고 믿고 있다. 잘 차린 호남밥상을 만날 수 있다.

-‘토담’ 의 소박한 상차림

-홍어 삭힌 것을 내고 한편으로 홍어전도 내놓는다.

-전은 특별한 색을 내지 않는다. 수수하고 소박한 전이 오히려 전의 맛을 살린다고 믿는다.

-생굴과 톳이다. 초장과 더불어 먹으면 겨울철 별미.

호남식 한식당

진수성

주인이 나주 출신이다. 진한 호남의 한상차림을 제대로 만날 수 있다. 주력 메뉴는 문어구이다. 문어를 굽고 묵은 지에 싸먹는다. 반찬 하나하나가 모두 맛있다.

목포자매집

가게 간판 그대로 목포 출신의 자매들이 운영하는 집이다. 소낙비는 쇠고기와 낙지를 더한 것. 낙지탕탕이를 처음 내놓은 집으로 알려져 있다. 서대, 민어 등도 아주 좋다.

해남천일관

가격은 높지만 비싼 것은 아니다. 제대로 만든 호남한식을 만날 수 있다. 입식 좌석이 있다. 한식을 좋아하는 외국인을 초대해도 좋다. 해물도 좋고 반찬류도 압권.

신안촌

주인의 시가집이 신안군이다. 호남 해안의 해산물들이 풍성하다. 밑반찬도 좋고, 특히 낙지연포탕이 압권이다. 점심시간에는 비교적 낮은 가격의 식사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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