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에 깃든 고대도시의 흔적

안탈야는 터키가 간직한 지중해의 보물이다. 도심에는 이슬람의 미나르(첨탑)가 치솟은 옛 포구와 성벽이 어우러지고, 짙푸른 해변에서 구시가로 이어지는 골목은 터키인의 일상이 녹아들며 신비감을 더한다.

고대도시들의 흔적이 깃든 안탈야 여행은 구도심인 칼레이치가 전주곡이다. 안탈야를 찾는 이방인들이 가장 서둘러 닿는 곳도 작은 포구가 매달린 칼레이치다. 칼레이치의 골목 구석구석을 엿보는 것은 묘한 흥분을 자아낸다. 포구는 낚싯대를 기울이는 청춘들의 세상이다. 도심 한 편에서 그려지는 한가로운 포구풍경은 지중해의 단상을 더욱 여유롭게 채색한다.

터키식 빵인 에크멕을 머리에 이고 다니거나, 염소젖이 들어간 돈주르마 아이스크림을 군것질거리로 먹는 모습은 칼레이치에서 만나는 흔한 일상이다. 비좁은 골목길에서는 작은 야외음악회가 열리고 젊은 연인들은 결혼사진을 찍기 위해 이곳 칼레이치를 찾는다. 모퉁이를 돌아서면 물담배인 시샤를 피우며 담소를 나누는 노인들이 모습이 파도처럼 흐른다. 관광객들과 현지 주민들의 삶은 칼레이치의 골목에 잔잔하게 녹아 있다.

성곽도시의 옛 골목, 칼레이치

안탈야의 과거는 칼레이치의 미로만큼이나 복잡다단하다. 안탈야는 본래 ‘여러 종족의 땅’의 의미를 지닌 ‘팜필리아’의 도시였다. 기원전 리디아에 점령됐던 팜필리아는 페르시아에 복속됐고, 알렉산더 대왕의 영토였으며, 로마의 의해 페르가몬 왕국에 넘겨지기도 했다. 페르가몬 왕국의 아탈로스 2세는 지중해를 대표하는 항구도시로 안탈야를 선택했고 포구 주변에 성벽을 쌓았다. 안탈야라는 이름도 아탈로스의 도시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오스만제국과 몽고 지배의 과거를 지녔던 지중해 최대 포구는 이슬람과 로마의 혼재된 유적들을 간직한채 성벽안에 웅크리고 있다. 칼레이치의 이정표인 이블리 미나르와 케식 미나르는 홈이 파이고 상단부가 잘려나간 이채로운 모습들이다. 이 첨탑의 사원들은 비잔틴 시대때는 교회로 이용됐다. 소담스런 정원이 있는 집을 기웃거리는 칼레이치의 고요한 산책은 4,5km 성벽 길을 거쳐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문을 나서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하드리아누스의 문은 130년에 로마 황제인 하드리아누스의 방문을 기념해 시민들이 건립했는데 아치형 입구와 장식들이 도드라진다.

바다로 쏟아지는 듀덴 폭포

칼레이치의 좁은 골목을 내려서면 흰 돛단배들이 정박해 있는 포구로 연결된다. 해상 돌무쉬나 요트를 타고 지중해의 바다로 나서는 것은 안탈야 여행의 백미다. 해상 돌무쉬의 최종 목적지는 듀덴 폭포다. 바다로 40m 떨어지는 폭포는 폭음으로 지중해의 정적을 깬다.

안탈야 여행은 타임머신을 탄 듯 인근 고대도시들의 흔적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사실 안탈야는 아름다운 휴양도시 이전에 고대유적 투어의 기점으로서의 의미가 깊다. 동쪽으로 향하면 로마유적을 간직한 시데, 아스펜도스로 이어지고 서쪽 리키아 땅으로 발길을 옮기면 뮈라, 물의 도시 케코바 등이 모습을 드러낸다. 땅의 주인들은 숱하게 바뀌었지만 옛 유적들은 생채기를 남긴 채 고스란히 간직돼 아득함을 더한다.

글ㆍ사진=서 진(여행칼럼니스트)

여행메모

▲가는길=인천에서 이스탄불을 경유해 안탈야 공항까지 이동한다. 인천에서 이스탄불까지는 12시간 소요. 이스탄불에서 안탈야 까지는 1시간 15분 소요된다. 시차는 7시간.

▲음식=터키식 빵인 에크멕이나 터키식 피자인 피데가 터키에서는 일반적인 음식이다. 디저트류인 '카다이프'나 '귀네페'도 달달하고 매혹적인 맛을 자랑한다.

▲숙소=안탈야 일대에 500여개의 5성급 호텔 및 리조트들이 있으며 대부분 객실 숙박료에 레스토랑, 음료, 부대시설 비용 등이 포함돼 있다. 리조트 중에서는 ‘칼리스타 럭셔리리조트’와 ‘IC호텔’ 등이 묵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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