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콩 가치 실천해 온 ‘콩의 여왕’… 제대로 된 음식, 질 좋은 장류 ‘호평’

GMO 수입콩 심각한 문제 알고 국산콩 외길…비싼 식재료에도 ‘양심 음식’ 고집

청국장 특허, ‘청국장 마늘 환’ 등 제조해 ‘신지식농업인’으로 선정되기도

콩 연구 등 위해 대학원서 공부…우리 콩 다양하게 활용, 소비 확산에도 앞장

유쾌하다. 재미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두어 시간은 훌쩍 간다. 호남 사투리로 “참 재미지다”는 생각이 든다. 쉽지 않은 길이다. 우리 콩 하나만 바로 보고 살아온 삶이다. ‘콩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함정희씨. 1953년 생, 올해 예순다섯 살이다. 상당히 젊어 보인다. 목소리는 더 젊다. 50대로 들린다. 함정희 대표(함씨네토종콩식품)를 만났다.

‘함씨네밥상’, “누구나 제대로 된 음식을 먹을 권리가 있다”

필자와는 구면이다. 몇 번 본 정도가 아니다. 전주에 가면 늘 들렀다. 사람도 보고 싶지만 음식을 보고 싶었다. ‘함씨네밥상’. 전주 한옥마을 오목대 언저리로 이사 오기 전 호남고속도로 전주IC 부근에 있었다.

한식 뷔페라고 부르기엔 고급스러웠다. 음식은 하나같이 정갈했고 된장, 청국장, 고추장, 간장 등 각종 장류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처음 만난 것도 “전주에 장 제대로 담아서 음식점 하는 이가 있다”는 말을 들어서였다.

여러 차례 밥도 먹고 이야기도 들었다. 갈 때마다 과식하고, 식후에는 “다음에는 미련하게 많이 먹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다음에 가면 또 과식을 하는 악순환(?)을 겪었다. 다행이 음식이 참 좋으니 뒤탈은 없었다.

함정희 대표. 능청스럽다. 같은 이야기를 해도 조금씩 버전이 바뀐다. 내용은 같은데 순서가 다르거나 표현이 조금씩 달라지기도 한다. 천생 이야기꾼이다. 이야기꾼들의 특징이 있다. 잘 눙친다. 슬픈 일, 힘든 일도 슬쩍 눙친다. 귀 기울여 듣지 않으면 재미있는 대목만 기억에 남고 아픈 내용들은 흘려보내기 십상이다.

‘우리 콩’을 화두로 함정희 대표가 살아온 길은 결코 쉽지 않았다. 슬쩍 눙치면 흘려듣기 십상이다. 모든 일이 술술 잘 풀렸겠구나 싶은 생각도 든다. 나중에 곱씹어 보면 대목대목 “참 힘들었겠다” 싶다.

함 대표의 고향은 지금은 전주로 편입된 완주. 집안은 대지주였다. 200마지기의 농사. 8남매의 둘째다. 경제적으로는 평탄했지만 농사짓는 집안이니 일은 많았다. 함 대표는 친정이 ‘일 구덩이’였다고 표현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27살, 중매로 남편을 만났다. 5년 정도의 공무원 생활을 접었다. 여자가 시집을 가면 직장을 그만두는 것이 상례였다. 남자는 두부 공장 집 아들이고 두부 공장을 직접 운영한다고 했다. ‘두부 공장’에 홀려서 결혼을 결심했다. 세 살 위의 박수겸씨였다.

함 대표는 어린 시절부터 콩을 좋아했다. 밥에 콩을 넣어주지 않으면 ‘콩밥’을 줄 때까지 울었다. 콩자반이 없으면 밥을 먹지 않았다. 왠지 어린 시절부터 콩이 그렇게 좋았다. 집 부근에는 너른 콩밭이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콩과 더불어 살았다. ‘콩 마니아’인 그녀로서는 콩으로 두부 만드는 두부공장의 아들이 싫지 않았다.

“GMO 수입 콩은 독립군 탄압하는 왜놈 순사만큼 나쁜 것이여”

함 대표의 말은 판소리 한마당 같다. 해학과 적당한 눙침으로 고비 고비를 이어간다. 어려운 시절의 이야기도 마치 재미있는 옛날이야기 한 토막 같다.

남편의 두부공장은 잘 굴러갔다. 돈을 부대 자루에 담아서 옮겨야 할 정도로 공장은 호황이었다. 결혼생활도 평탄했다. 40대 중반에 늦둥이를 얻었다. 4남매의 막내였다. ‘일’은 막내가 서너 살을 지나갈 무렵 시작되었다.

“전주시청 강당에서 강의가 있다고 해서 갔지요. 거기에서 안학수 박사님을 처음 만났습니다. 안 박사님의 강의를 들은 게 지금까지 걸어온 길의 시작이에요.”

안학수 박사는 전 고려대 교수. 2001년이었다. 그 자리에서 수입 콩의 문제점과 GMO(유전자 변형 생물체)작물, 특히 콩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끔찍하고 참혹했다.

수입 콩은 3년 정도 묵은 것이며 숱하게 농약처리를 한 것이다. 수입 콩은 대부분 GMO종자로 키운 것이다. 수입 콩, GMO 종자는 아직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았다. 식품 안전은 적어도 2대 정도 임상실험을 거쳐야 하는데 그런 과정 없이 무분별하게 수입되고 있다. GMO 식품을 지속적으로 먹으면 불치병을 얻을 수도 있다. GMO 콩 종자를 심으면 벌레도 가까이 오지 않는다.

당장 늦둥이에게 부모가 만든 두부를 먹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안 박사님 강의를 들으면서 내가 전사가 되기로 마음먹은겨. 우리 콩을 살리고 GMO를 반대하는 전사가 되기로 한겨”

마치 판소리의 한 대목을 듣는 듯하다.

“그러니까 예전에 독립군들이 우리 영토를 지키듯, 나도 우리 콩을 지켜야겠다. 유관순 누나가 열여섯 살 때 독립을 외치다 죽었잖여. 그러니까 나도 그렇게 독립운동 하듯이 해야겠다. 수입콩은 영화에 나오는 허장강이나 이예춘같이 나쁘다. 독립군 고문하는 일본 앞잡이 형사 같은 사람들이잖여.”

고 허장강씨나 이예춘씨 모두 악역전문배우로 널리 유명했던 이들이다.

문제는 남편의 두부공장이었다. 그 두부공장은 ‘일제 형사 같은’ 수입콩으로 두부를 만들고 있었다. 남편에게 “앞으로 콩을 전부 국산으로 바꾸자”고 제안(?)했다.

나중에 국산콩 사용, 마늘과 국산콩으로 만든 청국장 환 등으로 아내와 더불어 ‘신지식농업인’으로 선정되기도 했지만 아내가 처음 ‘국산콩’ 사용을 제안했을 때는 당연히 펄쩍뛰었다. 게다가 남편은 그 무렵 수입콩 관련 협회의 전북지역 회장을 맡고 있었다. 선선히 동의할 리가 만무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과감하게 두부를 납품하고 있던 100여개 거래처에 통고를 했다. 앞으로 국산콩으로 두부를 만들 것이며 가격이 10배 정도 오를 것이라고. 두어 해 사이 매출은 10분의1로 줄어들었다. 부도의 위기가 왔다.

부도를 막으려면 은행대출이 필요했다. 모든 재산은 남편 명의로 있었다. 남편의 동의와 인감증명이 필요했다. “돈 조!” 부도 막을 돈을 달라는 소리였다. 남편으로서는 억장이 무너질 노릇이었다. 멀쩡하던 회사, 아무 문제없던 회사가 아내가 국산콩을 쓴다고 하더니 무너지게 생겼다. 부부 싸움이 시작되었다.

“숱하게 싸웠어. 아이들이 다 크고 나서 그러더라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싸울 때 무서웠다고. 지금은 아이들 넷이 모두 내편이여. 일대 오로 싸우는 거야. 내가 질 리가 없지.”

1:5, 아이 넷과 함 대표. 그리고 남편은 혼자. 무엇보다 든든한 이는 막내였다.

“애는 내가 낳았는데 남편이 더 귀여워 해”

참 능청스럽다. 남편으로서는 오십 줄에 얻은 귀한 막내둥이다. 귀엽지 않을리 없다.

“돈 달라고 하는데 안 주면 싸우고, 그 길로 가출을 하는겨. 막내만 데리고 가면 남편이 꼼짝도 못해. 막내를 그렇게 귀여워 해. 막내 데리고 가출해서 열흘이고 보름 정도 버티면 남편이 내 말을 다 들어줘.”

그렇게 17년의 세월이 흘렀다. 오직 우리 콩만 생각했다.

‘함씨네밥상’을 열다

2009년 6월, 전주시 반월동에 ‘함씨네밥상’을 열었다. 장사는 쉽지 않았다. 손님은 꾸준했지만 식재료비가 만만치 않았다. 국산, 유기농, 인근의 농산물을 사용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어떡혀? 빤하게 알면서 내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 농산물을 쓸 수는 없잖여.”

필자는, 반월동에 ‘함씨네밥상’이 있을 무렵, 여러 번 찾아갔다. 밥도 먹고 이야기도 나누었다. 갈 때마다 “미치지 않으면 미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떠올렸다. 미친 듯이 하지 않으면 결코 다다를 수 없다는 표현이다. 함정희 대표와 ‘함씨네밥상’의 음식이 그러했다.

‘콩 두(豆)’는 여러 가지 글자에 쓰인다. ‘몸 체(體)’나 ‘머리 두(頭)’에도 있고 ‘풍년 풍(豊)’에도 ‘콩 두’가 숨어 있다. 함 대표는 ‘두만강(豆滿江)은 이름 자체가 콩을 실은 배나 콩이 가득해서 불인 이름 아니냐’고 되묻는다.

GMO 작물에 대해서는 단호하다. “GMO의 영향은 원자핵보다 무섭고, 회복이 영원히 불가능한 상태로 만들며, 치료 불가능한 병을 불러온다”고 말한다.

“콩이 해독제여. 콩은 참 고마운 것이제. 내가 어릴 적에 콩을 좋아했으니 아마 콩이 나한테 은혜를 갚는 것인지 몰러. 아님 내가 지금이라도 콩한테 은혜를 갖는 것인지도 모르제. 오랫동안 콩으로 청국장을 만들고 있제. 물론 된장, 간장, 고추장, 모두모두 그동안 국산콩으로 직접 맹글었은게.”

한 달에 콩 6톤을 소비한다. 전주 인근의 콩 재배 농가와 계약재배를 통하여 콩을 구한다. 국산콩은 수입콩에 비해서 5배 이상 비싸다.

“그랴도 단돈 100원씩이라도 더 줄려고 혀. 그래야 그이들도 신이 나서 나한테 좋은 콩을 주제. 수입산보다 비싸다는 거지, 그이들 일하는 거에 비하면 아직 콩이 싼겨. 그이들도 먹고 살아야 하고, 나는 그 좋은 콩으로 두부 만들고 장 만들고, ‘함씨네밥상’ 오시는 손님들에게 좋은 음식 내놓고.”

맏아들은 부모님의 ‘국산콩, 수입콩 분쟁’을 다 겪으며 자랐다. 대학교 졸업도 늦어졌다. 이제 맏아들이 두부공장 일 등을 돕는다. 딸과 막내아들은 ‘함씨네밥상’ 일을 돕는다.

함정희 대표는 늦은 나이에 고려대 대학원을 거쳐 원광대 대학원까지 등록을 했다. 콩의 꽃말은 ‘언젠가는 찾아올 행복’이다. 그 행복을 위해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고 있다.

지금 국산콩 점유율은 채 10%가 되지 않는다. 함 대표는 국산콩 소비가 늘어나면 우리의 행복지수도 늘어난다고 믿는다. 언젠가 우리 콩을 외국으로 수출한다면 그보다 더 행복할 수 없다고 믿는다.

국산콩으로 만든 청국장과 우리 마늘을 섞어서 환을 만들었다. 우리의 발효식품은 몸의 불순물을 없애는 효과도 있다고 확신한다. ‘청국장 마늘 환’을 만든 것은 이런 스스로의 확신 때문이다.

글ㆍ사진=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사진 설명

-‘함씨네밥상’황정희 대표. ‘콩의 여왕’으로 불리며 콩으로 만드는 청국장 관련 특허와 신지식 농업인 상도 받았다. 평생 콩, 두부, 청국장, 된장, 간장과 더불어 살았다. 직접 담근 장류로 음식을 만들고 국산 재료, 유기농재료를 사용하는 ‘함씨네밥상’의 음식은 깊이가 있다.

- 한식 뷔페 식당이다. 식단 중의 일부, 국산, 인근 생산 농산물로 식단을 만든다.

-여러 가지 음식들을 한상에 차렸다.

-식전 혹은 식후 디저트로 내놓는 고구마, 옥수수, 콩죽, 팥죽 등이다. 조청도 직접 만든다.

-청국장과 마늘을 섞어서 만든 환이다. 청국장 환의 경우 특허도 받았다. 쥐눈이콩으로 만든 환도 있다.

[두부 맛집 4곳]

황금콩밭-서울 마포

매일 새벽 두부를 만들기 시작하여 오전 11시 경이면 그날의 두부를 내놓는다. 모두부와 두부전골, 새우젓국만 넣은 두부젓국 등이 좋다. 간단한 안주도 가능.

전주식당-강원도 양구

두부 전골을 끓일 때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고 두부와 내용물로만 맛을 낸다. 접근성이 좋지 않은 양구에 있다. 미리 전화해보고 예약 후 방문하는 것이 좋다.

산골손두부해물칼국수-강원도 원주

원주 우산동에 있는 두부, 감자 부침개, 해물탕 등이 좋은 맛집. 우리 콩으로 매일 만드는 두부가 수준급이다. ‘뜬비지찌개’이나 감자전도 나물랄 데 없다.

원조김영애할머니순두부-강원도 속초

속초-미시령터널을 잇는 선상의 콩꽃마을에 있다. 50년을 넘긴 노포다. 순두부와 전문적으로 내놓는다. 여러 종류의 밑반찬들이 하나같이 정갈하고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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