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그러운 대숲 사이를 거닐다

담양에 간다. 깊은 골짜기에 들어서지 않더라도, 걸출한 산에 오르지 않더라도 녹음을 가까이서 만난다. 대나무의 서걱거림에 귀가 먼저, 싱그러운 바람에 코가 먼저 열리는 땅이 담양이다.

쭉 뻗은 대나무는 담양 산책의 오랜 벗이다. 대숲에 들어서면 사각거리는 소리로 귀를 유혹하고, 골목 어귀에서는 구수한 대통밥 냄새로 입맛을 자극한다. 전국 대나무 서식지의 절반 이상이 담양에 있으며, 매년 여름 대나무축제도 성대하게 열린다.

읍내에는 죽녹원이, 외곽 금성면에는 대나무 테마공원이 대숲 풍경을 자아낸다. 죽녹원의 녹색 잔치는 친근하고 살갑다. 죽림욕을 주제로 내세웠는데 8개의 산책로는 사랑이 변치 않는 길, 죽마고우길, 추억의 샛길 등 다양한 테마를 곁들이고 있다.

서걱거림, 웰빙이 깃든 죽림욕

대숲에 들어서면 성인이 된 대나무들은 몸을 부딪치며 사랑을 나눈다. 바람을 촉매 삼아 잔잔한 오케스트라가 대숲 안에서 펼쳐진다. 대숲사이로 햇빛이 스며들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감미로운 분위기까지 돋운다. 죽녹원 내에는 죽로차, 판소리를 체험을 위한 공간이 마련돼 있다. 관방천 건너 제방에는 이팝나무, 느티나무, 팽나무 등 300년 이상된 아름드리 풍치림이 운치를 더한다.

금성면 대나무골 테마공원은 대숲 안에서 깊은 사색이 가능하다. 한 개인에 의해 50년 가까이 조성된 국내 최대의 죽림이 있는 곳이다. 대나무도 퍼런 것도 있고 까무잡잡한 것도 있는데 사람처럼 나이가 달라서 드러난 세월들이다.

대나무숲은 조용히 음미하며 걸어야 대숲의 참 멋을 느낄 수 있다. 대숲을 거닐다 보면 대나무 피리 소리와 함께 가슴이 아래로 차분하게 가라앉는 느낌이 든다. 걷다가 대숲 한 귀퉁이에 쪼그리고 앉거나 원두막 위에 벌러덩 누운 여행자들과 쉽게 조우한다. 대나무의 음이온은 혈액을 맑게 하고 마음을 편안하게 적시는 숨은 마력을 지녔다.

눈과 입이 즐거운 소쇄원, 죽통밥

더디게 걷고 싶은 푸른 숲은 길을 따라 이어진다. 테마공원을 벗어나면 메타세쿼이어 가로수길이 펼쳐진다. 담양읍내에서 순창을 잇는 24번 국도길은 하늘을 가린 메타세쿼이어의 세상이다. 우회로가 생긴 뒤로 더욱 한적해졌고 걸어서 산책하는 사람들의 포근한 안식처가 됐다. 이 길은 여러 영화와 드라마의 단골 촬영지로 모습을 드러냈다. 메타쉐콰이어 길은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로수길로도 수차례 선정 됐다.

담양 여행은 호젓한 명소를 둘러보는 것으로 더욱 새롭다. 담양은 정자로 유명한 고장. 그중 광주호 지나 위치한 소쇄원은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인간의 손길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낙원같은 정자다. 시냇물쪽 계원 마루에 앉으면 저절로 콧노래가 흥얼거리며 나온다. 조경가, 건축가들이 극찬했던 정자는 대나무숲과도 조화를 이루고 있다.

추월산을 에두르는 담양호에도 초록의 운치는 가득하다. 둘레가 7000m가 넘는 금성산성에 오르면 추월산의 정취와 담양호의 맑은 물이 가슴으로 밀려든다.

담양에서는 눈만 즐거운 것이 아니다. 녹음의 땅이 지닌 매력은 골목길 식당에서도 묻어난다. 우연히 들린 식당에서도 대나무와 어우러진 싱그러운 반찬만은 한 가득이다. 대나무는 미각요리에 단골로 등장한다. 줄기는 대통밥과 대통술의 향긋함을 돋우는데 쓰이고, 새순은 초고추장에 버무려 죽순무침으로 먹는다. 댓잎과 뿌리는 댓잎차나 죽로차로 우려 마신다. 골목길에는 대통밥, 죽순요리 간판이 빼곡한데 허름한 식당에 들어서 백반 1인분만 시켜도 죽순이 정성껏 담겨 나온다.

글ㆍ사진=서진(여행칼럼니스트)

여행팁

▲가는길=경부, 천안~논산, 호남 고속도로를 경유해 전남 장성IC까지 간다. 장성에서 담양까지 새로 뚫린 고속도로를 이용해 담양IC에서 빠져 나온다. 담양읍내에서는 순창으로 향하는 24번 국도를 이용하면 대나무 테마공원, 메타쉐쿼이어 가로수길과 만난다.

▲먹을것=대통밥과 죽순요리는 15년 전통을 지닌 송죽정과 읍사무소앞 민속식당이 유명하다. 담양의 또 다른 별미인 떡갈비는 덕인갈비가 명성이 높다.

▲숙소=담양읍내 대나무 찜질욕이 가능한 대나무 건강랜드 인근에 숙소가 여러 있다. ‘명가혜’는 전통양식의 민박집 구조를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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