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마니아가 꼽은 최고 막걸리…우리쌀ㆍ누룩 사용, 무첨가 막걸리

2대 전승 막걸리, 술 만든 지 40년… 직접 재배한 쌀, 밀(누룩)로 빚어

수입쌀 막걸리 문제 있어…높은 가격에도 ‘프리미엄급 막걸리’로 인기

‘막걸리 마니아’들이, 흔쾌히 국내 최고의 막걸리라고 손꼽는 ‘송명섭막걸리’의 대표 송명섭 명인. 흔히 ‘송막’이라고 부르는 막걸리다. 직접 재배한 밀로 누룩을 만들고, 직접 재배한 쌀로 술을 빚는다. 무첨가 막걸리. 텁텁하고 시큼한 맛이 나는 막걸리, 단맛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막걸리다. 전북 정읍시 태인면. 작은 시골 마을 태인의 ‘태인양조장’에서 최고의 막걸리를 만드는 송명섭 명인을 만났다.

바쁘게 살아도 여유롭지 않다

전화 연결이 쉽지 않았다. 몇 차례 인터뷰를 요청해도 “바쁘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들일이 한창인 여름철에는 “들에 나갔다”고 하고 한여름이 끝날 무렵엔 또 다른 일로 바쁘다고 했다.

섭외 없이, 전북 정읍시 태인면의 ‘태인양조장’으로 갔다. ‘핸드폰’으로 전화를 하니 마침 연결이 되었다. “지금 양조장에 있는데 어디 계시냐?”고 물었다. “양조장에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조금 전 송명섭 명인의 부인으로부터 “어디 갔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들은 후였다.

조금 뒤, 양조장 마당에서 송 명인을 만났다.

“진짜 바쁩니다. 양조장 일도 바쁘고 농사일도 바쁘고, 게다가 외부 행사들도 많고 틈이 나질 않습니다.” 뒤이어 “바쁘게 살아도 여유롭지 않으니 힘들다”는 말이 뒤를 이었다.

‘송명섭막걸리’는 750ml 한 병이 2천원이다. 일반적인 막걸리보다 두 배 비싸다. 500ml 생수가 소매점 기준, 싼 것은 500원, 비싼 것은 850원 정도. 실제 비싼 생수는 막걸리보다 더 가격이 높다. 세금 때문에 막걸리 가격이 낮은 것은 사실이다. 세율이 낮으니 공장 출고가격은 막걸리가 높지만 소비자 가격은 생수가 오히려 높은 일이 벌어진다.

“기본 재료인 물이나 쌀, 누룩이나 기타 재료들 들어가는 것 생각하면 막걸리 가격이 너무 낮은 거지요.”

“그래도 ‘송명섭막걸리’를 생산하는 ‘태인양조장’은 막걸리 이외에 죽력고(竹瀝膏)까지 생산하니 형편이 낫지 않느냐?”고 물었다. 죽력고는 알코올 도수 32도. ‘푸른 대나무를 숯불에 얹어 뽑아낸 죽력을 섞어 만든 명주’라고 소개한다. 전통 소주를 빚는 증류식 소주의 일종이다.

“죽력고는 세금이 반이에요. 거기다 병 값이나 포장비용을 생각하면 오히려 남는 게 없습니다. 열심히 일하는데 전혀 여유가 생기질 않아요.”

술을 만든 지 40년이 지났다

송명섭 명인. 호적으로는 1959년생, 실제로는 1957년생이다. 환갑의 나이. 어린 시절부터 양조장 일을 거들었다. 1974년에 ‘태인양조장’을 자신의 이름으로 등록했다. 법적으로는 열여섯 살, 실제로는 열여덟 살 때다. 미성년자가 양조장 대표가 된 것이다.

“위로 형님 두 분이 계시는데 두 분 다 공부를 잘 하셨어요. 저는 공부가 별로고. 두 분 모두 공부를 잘했으니 큰 형님은 그 당시 최고직장이었던 은행에 취직했고, 작은 형님은 자영업을 선택하셨지요.”

아버지가 태인에서 양조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나마 양조장 경기가 좋아서 송 명인은 어린 시절 서울 유학생활을 시작했다. 막둥이였다. 위로 형들은 공부를 곧잘 했는데 막내는 공부가 시원치 않았다.

국민학교(초등학교)를 거쳐 실업계 학교를 갔다. 요업과. 실업계 학교를 다니면서 우연히 목장 관련 이야기를 들었다. 목장 일이 하고 싶었다. ‘산 1평이 두부 한모 값 정도’ 되던 시절. 다니던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정읍으로 내려왔다. 목장 일을 하게 목장 땅을 사달라고 졸랐다.

“그 전에도 방학 때 태인의 집에 내려오면 양조장 일을 거들었습니다. 하필이면 학교를 그만두고 시골 집에 내려왔더니 아버님 몸이 불편한 겁니다.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양조장 일을 시작하게 된 거죠.”

쌀 문제, 쌀로 풀어야 한다

“시절마다 상황이 다른 거죠. 아버님이나 저나 막걸리를 만드는 마음가짐은 같습니다. 제가 빚는 술과 아버님이 빚었던 술이 다른 것은 아버님 시대 때는 그 시절 나름의 상황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1960∼70년대 무렵의 국가 화두는 식량 증산, 자급자족이었다. 쌀 증산을 위하여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쌀을 귀하게 여겼다. 분식과 혼식을 장려했다. 일주일에 한 끼는 밀가루 음식을 먹도록 했고 각급 학교에서는 도시락 잡곡, 혼식 검사를 했다. 당연히 막걸리 양조에는 밀가루를 사용하도록 했다.

‘팽화미(膨化米)’. 튀긴 쌀이다. 뻥튀기 기계를 거친 튀밥이다. 1970년대에도 술을 빚는데 팽화미를 사용했다. 지금도 팽화미로 술을 만드는 곳이 있다. 술맛이 달다. 호불호의 문제가 아니다. 식량 사정이 어려웠으니 ‘팽화미만 쓰도록’ 한 규정이 술 만드는 이들을 힘들게 했다.

송 명인이 양조장을 물려받았던 시기에도 팽화미를 사용토록 했다. ‘아버지 시대’에는 ‘합동양조장(주조장)’이 많았다. 두 사람이 양조장을 합치면 술 만드는 재료를 두 배로 받을 수 있었다. 송 명인의 아버지도 마찬가지. ‘태인합동주조장’을 운영했다.

쌀 값이 너무 싸서 술을 빚는다?

현재 송명섭 명인은 직접 벼를 재배하고 그 쌀로 술을 빚는다.

“정부 정책이 달라지니 막걸리나 막걸리 양조장이 요동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팽화미를 피하고 나니 YS 정부를 지나면서 술 만들 때 정부가 지원하는 쌀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재고미가 문제지만, 북한에 쌀을 지원할 때는 정부 재고미가 부족했습니다. 정부로서는 대북 지원을 중단할 수도 없고 국내에 술을 만들 쌀은 부족하고…. 이때는 또 수입쌀을 들여왔습니다. 대규모로 쌀을 수입하니, 쌀의 잔류농약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아무리 오래 두어도 곰팡이가 슬지 않는 쌀. 반품도 되지 않았다. 정부는 일단 수입쌀을 나눠주고 난 다음, 손을 털었다. 어떻게든 각 양조장에서 알아서 하라는 식.

“물에 담가서 농약 성분을 빼고 술을 만들어도 술이 안 됩니다. 쌀에 곰팡이가 슬지 않는데 발효든 숙성이든 될 리가 없지요. 두 번 세 번, 침지해도 조금 나아지는 것 같더니 결국 술이 되질 않고. 가루로 갈아서 만들어도 막걸리가 시원찮고, 나중에는 정부에서 막걸리에 대한 기준 자체를 바꿨지요. 쌀이 30%만 들어가면 쌀 막걸리로 인정하는 걸로.”

당시 쌀값이 80kg 기준 17만원이었다. 지금보다는 오히려 쌀값이 높았던 편이지만 당시에도 쌀값은 싸게 느껴졌다.

“직접 재배한 쌀로 술을 빚으면 좋은 술을 만들겠다고, 제가 재배한 쌀을 쓴 게 아닙니다. 쌀값이 너무 싸서 수지 타산이 맞지 않으니 이걸 가공해서 술로 만들면 낫겠다는 생각에 직접 재배한 쌀로 술을 빚기 시작한 겁니다.”

외국산 쌀은 더 싸다. 문제는 수입쌀의 문제점이다. 수입쌀은 벌레가 먹지 않았다. 확인할 수는 없지만 운반, 유통 과정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벌레도, 쥐도 먹지 않는 쌀로 술을 빚기는 힘들었다.

내가 재배한 밀과 쌀로 누룩을 만들고 술을 빚는다. 원해서 찾았던 방식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길이었던 셈이다.

사카린, 아스파탐? 몸에 좋다는 말은 없다

‘송명섭막걸리’는 일체의 첨가물이 없는 막걸리로 유명하다. 맛이 덤덤하다. 잘 익으면 시큼털털한 맛이 강하다. 마니아들은 냉장고에 한 달 정도 두면 제대로 된 막걸리 맛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감미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지금 너무 단맛을 좋아합니다. 달지 않으면 먹질 않습니다.”

어눌하지만 단호하게 ‘단맛’에 대해서 말한다.

“집에서 김치 담글 때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배추김치를 내놓는데 도무지 달질 않고 오히려 쓴맛이 나는 겁니다. ‘김치 맛이 왜 이러냐?’ 고 물었더니 이게 원래 김치 맛이라는 거죠.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으면 오히려 쓴맛이 납니다. 우리는 지금 너무 달게 먹습니다. 단맛이 일상적이니까 제대로 만든 김치에서 쓴 맛을 느끼는 겁니다. 조미료가 유해하다, 아니다 말들이 많은데, 조미료가 몸에 좋다는 이야기는 없잖아요.”

막걸리에 조미료, 감미료를 넣지 않는다. 말은 쉽지만 무첨가 막걸리를 만들면서 그는 참혹한 과정을 겪었다.

술은 음식이다. 막걸리에서 감미료, 조미료를 빼자. 몸에 해로운지 아닌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백번 양보해도 몸에 이롭다는 증거는 없다. 게다가 막걸리 고유의 맛을 내는데 치명적인 방해물이다. 조미료, 감미료를 모두 뺐다. 양조장 매출은 급격히 떨어졌다.

부모님이 물려주신 양조장. 양조장으로 밥벌이가 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양조장을 접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스스로의 원칙을 깨면서 술을 만들 수는 없었다. 진퇴양난이었다.

엉뚱한 투잡(TOW JOB)족이 되었다. 환경미화원. 태인면의 쓰레기만 수거하고 나면 양조장에서 대기하도록 허락했다. 양조장에서 일하다가 면사무소에서 부르면 달려가는 생활. 몸에서 쓰레기 냄새가 나니 담당 공무원도 아예 “집에 가서 기다리다 부르면 바로 오라”고 했다. 양조장 일과 환경미화원.

‘햅쌀로 빚는 누보(Nouveau)막걸리’ ‘프리미엄급 막걸리’라는 소문이 나면서 위기를 벗어났다. 우연히 기회가 닥친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묵묵히 ‘송명섭만의 술’을 빚어왔다. 2대 전승된 막걸리. 송 명인은 아버지와 같은 마음가짐으로, 다른 술을 빚었다. 이제 ‘누보, 프리미엄 급 막걸리’는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아들이 올해 중으로 양조장으로 오겠다고 합니다. 저는 저의 술을 만들었고, 아들은 또 아들 자신의 술을 빚겠지요. 술은 음식이다, 이 말만 전해줄 생각입니다.”

글ㆍ사진=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사진 설명>

-송명섭 명인. 전통술 담그기 무형문화재다. 다행히 올해부터 아들이 양조장에 합류하기로 했다. 이제 막걸리 만들기 3대가 시작된다.

-송명섭막걸리를 빚는 태인양조장, 전북 정읍시 태인면의 소박한 건물이다.

-막걸리 전문점에 진열된 송명섭막걸리.

-태인양조장의 사랑방. 사진에 보이는 것은 ‘죽력고’를 만드는 기구.

- 송명섭 명인은 “술 이야기를 해야 하니까 역시 술 한잔 하고 해야지”라고 했다. 송명섭 막걸리 한잔. 안주는 소금이다.

[좋은 우리 술 4종류]

봇뜰막걸리

경기도 남양주의 양조장에서 빚는 내공 깊은 술이다. 드라이한 술이지만 무게감이 상당하다. 10도, 17도 등 서너 종류의 술을 내놓는다. ‘봇뜰십칠주’도 강추.

자희향

전남 함평에서 빚는 좋은 우리 술이다. 국화 향이 나는 청주도 있다. 오래 전부터 마니아들은 프리미엄급 술로 인정. 청주와 탁주 두 종류가 인기. 무 첨가 술이다.

문희

경북 문경 ‘문경주조’에서 빚는 술. 찹쌀, 누룩으로 빚는다. 청주, 탁주 등을 내놓고 있다. 지역 특산물인 오미자를 이용, 대중적인 오미자탁주도 선보이고 있다.

복순도가 손막걸리

경남 울주에서 빚는 술. 천연탄산이 주는 청량감이 뛰어나다. 술병을 딸 때 ‘2회’ 뚜껑을 개봉한다. 홈페이지에서 개봉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알코올 도수 6.5도.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