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담긴 ‘헛제사밥’ 전문점…좋은 재료와 정성 깃든‘소울 푸드’

안동에서 1982년 ‘까치구멍집’ 열어…각색 나물과 생선, 고기, 탕 어우러져

질 좋은 식재료와 직접 담근 장 사용…3대 전승 예정, 전통 가치 지켜가

‘까치구멍집’. 오래된 헛제사밥 전문점이다. 인근의 헛제사밥 전문점과 더불어 헛제사밥을 널리 알렸다. 업력은 30년을 훌쩍 넘겼다. 그동안 ‘안동 헛제사밥’은 고유명사가 되었다. ‘까치구멍집’의 서정애 대표를 만나서 ‘까치구멍집’ 이야기와 안동 헛제사밥, 그리고 안동 음식 이야기를 들었다.

헛제사밥은 안동 음식이다?

누구나 “헛제사밥은 안동 고유의 음식”이라고 믿는다.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안동에 헛제사밥이 있지 않느냐고 되묻는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일부만 맞다. 안동에만 헛제사밥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헛제사밥은 여기저기 있었다. 다만 다른 곳의 헛제사밥은 모두 사라졌지만 안동에만 지금까지 남아 있을 뿐이다.

‘대구 헛제사밥’도 있었고, ‘진주 헛제사밥’도 있었다. 영남의 크고 작은 도시에는 모두 헛제사밥이 있었다. 아직도 일부 가정에서는 헛제사밥을 먹는다. 식당에서 헛제사밥을 ‘음식 상품’으로 내놓는 경우가 없을 뿐이다. 헛제사밥은 예전에는 여기저기 있었던 음식이다.

‘까치구멍집’. 1982년 문을 열었다.

처음 ‘까치구멍집’을 연 사람은 서정애 씨의 시어머니다. 안동시가 ‘민속촌’을 만들었을 때다. 민속촌 옆 산등성이 올라가는 길에 ‘까치구멍집’을 열었다.

까치구멍집은 지붕에 환기 용 구멍을 뚫은 초가집이다. 생긴 모양이 까치집 같아서 붙인 이름이다. 경북 북부 지방에 많다.

“안동시의 행사가 있거나 여러 사람이 모이는 장소에 시어머님을 초청하곤 했습니다. 음식 솜씨가 아주 좋았지요. 행사 때마다 어머님을 초청했으니까 안동시에서도 어머님 음식솜씨를 알고 있었고요. ‘민속촌’을 만들 때 안동시의 관계자가 ‘안동 음식을 보여 달라’고 제안했다고 들었습니다. 헛제사 밥집 ‘까치구멍집’의 시작이었지요.”

안동댐을 만들면서 수몰지역이 생겼다. 수몰지역에는 안동의 고가들이 있었다. 의미가 있는 집들. 안동시는 수몰지역 고가옥을 한 곳에 모았다. 민속촌이다. 그 민속촌 한편에 ‘까치구멍집’을 세웠다.

음식은 봉제사접빈객의 도구다

서정애 대표는 1978년 중매로 결혼을 했다. 고향은, 지금은 안동시에 속하는, 안동의 외곽 무릉이다. 시어머니도 고향은 안동이다.

“시누이들이 시어머님께 음식을 배웠습니다. 나중에 TV를 통해서 보니까 평소 시어머님이 시누이들이나 저에게 보여주었던 음식이 바로 안동 음식, 헛제사밥이더라고요. 시누이들 음식도 조금씩 달라지긴 했지만, 결국 방송에서 봤던 헛제사밥이었고요.”

헛제사밥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흔히 ‘헛제사밥=가짜 제삿밥’이라고 생각한다. 제사 음식 같이 화려하게 만들어 먹지만, 제사 음식은 아니니 가짜 제삿밥이라고 말한다. 안동, 안동 인근의 서원 등에서 공부하거나 시회(詩會)를 하던 유학자들이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하여 제사를 핑계대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었고 그게 헛제사밥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그렇지 않다.

유교사회에서 음식은 ‘봉제사접빈객(奉祭祀接賓客)’의 도구다. 음식은, 조상 제사와 손님맞이의 가장 주요한 수단이다.

유교사회에서 가장 윗자리는 돌아가신 조상이다. 조상을 위한 음식 마련은 정성을 기울여야 하고, 최상의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야 한다.

대구, 진주, 밀양 등에도 나름의 헛제사밥이 있었음은 그 지역 역시 오랫동안 제사를 모셨기 때문이다. 각색(各色) 나물과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고기와 생선을 사용했다. 한두 가지 나물을 사용해도 될 법하지만, 최소 3가지 혹은 5가지 나물을 준비했다. 고사리, 무나물, 도라지, 시금치, 콩나물 등이다. 예나 지금이나 그리 귀한 것들은 아니지만, 정성스럽게 여러 가지 나물을 마련했다.

집안의 대소사나 귀한 손님맞이에도 ‘최상의 밥상’이 필요하다. 헛제사밥이나 손님맞이 밥상이 결국은 비슷한 것이다. 제사 음식만큼 정성스럽게 차린 것이지만 평소 ‘최상의 음식’이라고 생각했던 제사 음식은 아니다. 그래서 헛제사밥, 가짜 제삿밥이다.

평소 먹고 싶었던 화려한 밥상을 제사가 아니라도 먹고 싶어서 차린 밥상이 헛제사밥이라는 설명도 틀렸다. 화려한 음식을 해먹고 싶은데, 이웃의 눈치가 보이니 제사라고 거짓말을 하고 음식을 해먹었다는 표현도 있다. 완벽하게 틀렸다. 제사날짜 정도는 이웃이라면 서로 간에 정확하게 알고 있다. 모른다 하더라도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제사날짜를 속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각색나물과 고등어, 상어 ‘돔베고기’ 그리고 각종 탕

“시어머님은 그리 오래 가게를 운영하지는 않았습니다. 결혼하고 나서 오래 지 않아 제가 가게를 물려받았지요.”

보편적인 음식점의 경우, 주방을 교대하고 주인을 바꾸는 일은 쉽지 않다. 제법 긴 시간 전수가 필요하다. 전통적인 음식이라면 기간과 관계없이 전수 자체가 힘들다. 같은 공간에서 사는 가족이라면 가능하다.

“결혼을 하고 나서 보니까, 제사가 8번이더라고요.”

안동 지방이다. ‘1년에 제사 8번’은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평균적 한국 가정을 가정하면 적은 숫자는 아니다. 1년 8번의 제사에서도 며느리인 서정애 대표는 음식을 만들어야 한다. 이 음식이 곧 오래 전 ‘까치구멍집’의 음식이자 오늘날 ‘까치구멍집’의 음식이다.

“제사뿐만 아니라 손님 오셨을 때 음식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재료, 만드는 방식이 같았습니다. 한두 가지 재료가 없으면 그대로 음식을 만들어도 될 것 같은데 시어머님은 그걸 절대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들어가야 할 재료는 반드시 구해서 썼습니다. 가게 음식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손님이 알든 모르든 써야 할 재료는 반드시 사용하고, 음식 만지는 과정 하나도 결코 빼먹는 법이 없고요.”

서정애 대표가 서른 살 무렵에 가게를 물려받았다.

음식은 정성이다, 좋은 재료를 사용하면 음식의 반은 성공이다, 재료를 제대로 사용하라. 참 평범한 이야기지만, 서정애 대표가 시어머니한테 배운 것은 이게 모두다.

“식당에서 내놓는 음식은 예전 음식과는 다르겠지요. 음식을 내놓는 진설(陳設)도 다릅니다. 현대적으로 바뀌었지요. 얼마 전까지는 비빔용 고추장을 달라고 하면 ‘안동 헛제사밥에는 고추장을 쓰지 않는다’고 하고 드리지 않았습니다. 이젠 하도 많은 분들이 고추장을 찾으니 달라고 하면 드립니다.”

헛제사밥은 예전 음복(飮福)상과 닮았다. 제사가 끝나고 나면 어른들에게는 독상(獨床)을 차렸다. 생선이나 고기 등을 큰 덩어리로 내놓을 수는 없다. 물자가 귀한 시절이다. 음식들을 작은 크기로 잘라 상마다 같은 음식을 내놓았다. 그릇도 귀하니 한 그릇에 여러 개를 담았다. 안동지방에서는 ‘톱반찬’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톱반찬’ 그릇은 조금 높다. 작은 상같이 생긴 그릇에 모두 9가지의 음식을 올린다. 전(煎)이 세 종류, 두부, 생선과 고기가 다섯 종류다. 생선 중에는 자반고등어와 상어 ‘돔베고기’가 반드시 들어간다. 돔베는 도마다. 고기를 썰어놓은 모습이 마치 넓적한 도마같이 생겨서 붙인 이름이다. 계란은 삶아서 올린다.

모든 상에 다섯 가지 정도의 삶은 나물을 올린다. 계절에 따라 가지나 토란대 말린 것 등도 사용한다. 세 가지를 내놓으면 삼색나물이다.

탕도 중요하다. 국과 별도로 탕이 있다. 밥 옆이 아니라 제사상 중간에 놓는다. 어탕(魚湯), 육탕(肉湯), 채탕(菜湯)이 있지만 가게에서 이 세 가지를 모두 내놓을 수는 없다. 세 가지를 모두 섞은 ‘막탕’을 내놓는다. 막탕은 육류, 해물, 채소류를 섞어 넣고 끓인다.

후식으로 나오는 고춧가루 식혜도 재미있다. 끓이지 않고 밥, 엿기름, 생강, 잘게 썬 무, 고춧가루 물로 만든다. 상큼한 맛이 일품이다. “식혜에 고춧가루를 넣었다”고 질겁하는 이들도 있지만, 안동 언저리 출신들에게는 ‘소울 푸드’다.

비빔밥에는 볶은 참깨를 얹은 깨소금간장이 원칙이다. 제사상에는 고추, 마늘 등 맛이 강한 식재료는 사용하지 않는다. 당연히 장도 간장이 원칙이다.

‘까치구멍집’ 3대 전승 중

“저는 셋째 며느립니다. 다들 외지로 나가서 살고, 제가 결혼하면서 시어머님 모시고 살아서 결국 ‘까치구멍집’도 제가 물려받았지요.”

바로 앞 강물 위에 월영교가 있다. 예전 ‘까치구멍집’은 월영교 건너편의 산비탈에 있었다. 2001년 현재의 자리로 이사 왔다. 옮기고 나서 십 수 년을 훌쩍 넘겼다.

“예전에 사용하던 식재료로 음식을 만들어야 하니까, 식재료비용은 감당이 되지 않을 정도로 높습니다. 음식 만지는 과정도 복잡하고 인건비도 많이 들고요.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많은 이들이 헛제사밥 전문점을 냈다가 곧 문을 닫습니다. 재료비나 인건비를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음식 만지는 과정을 하나라도 허투루 하면 당장 음식 맛이 달라집니다. 음식점을 하려면 헛제사밥 집보다는 국밥집이나 고기 집을 해야지요.”

작은 그릇 하나에 9가지 반찬을 올린다. 인건비와 재료비가 많이 들 수밖에 없다. 지금도 메주는 인근 와룡면의 것을 가져다 쓴다. 몇 해째 메주를 공급해주는 곳이다. 된장, 간장 등은 직접 담근다. 가게 위 옥상에 장독대가 있다.

“둘째 아들이 지금 가게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며느리가 영양사이면서 음식 보는 눈썰미도 있는 것 같고…. 둘째 부부한테 가게를 물려줄 생각입니다.

글ㆍ사진=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사진 설명>

-‘까치구멍집’의 서정애 대표. 시집 오고 나서 오래지 않아 시어머니로부터 ‘까치구멍집’을 물려받았다. 1980년대 중반. 헛제사밥은 제사음식의 음복상이나 평소 귀한 손님 접대에 내놓는 것과 비슷하다.

- ‘까치구멍집’의 한상 차림

- 각색나물과 톱반찬, 안동식혜, 막탕 등이 보인다

-오른쪽 흰 부분이 상어 ‘돔베고기’다. 원형은 도마같이 더 두껍지만 산적 형태로 나온 것이다.

- ‘까치구멍집’의 실내.

[안동의 맛집들]

골목안손국수

안동 스타일의 제물국수를 내놓는다. 묵밥도 인기 메뉴. 좁쌀이 들어간 밥도 같이 내놓는다. 안동국시의 맥을 잇고 있는 집이다. 계절 별로 달라지는 밑반찬도 수준급.

왕고집매운탕

민물매운탕 전문점이다. 직접 잡은 민물생선만 사용한다. ‘왕고집’스럽게 현지 조달 민물생선을 고집한다. 짜지 않고 민물고기의 은은한 맛이 살아 있는 매운탕이다.

옥야식당

중앙신시장에 있는 시장 통 국밥집이다. 육개장은 아니다. 가게에서 써 붙인 대로 선지해장국 전문점이다. 단일 메뉴다. 작은 가게지만 노포다. 가게 앞의 가마솥이 인상적.

대구식육식당

안동 외곽인 풍산에 있는 고기 전문점이다. 쇠고기, 돼지고기 모두 근고기 식으로 내놓는다. 불고기가 가격도 싸고 맛있다. 대표적인 메뉴다. 고기 값이 싼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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