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바다, ‘커피 1번지’의 유혹

강릉은 그윽한 향기가 유혹하는 도시다. 비릿한 바다내음, 솔향과 함께 최근에는 은은한 커피향이 해변을 채운다. 카페 문턱을 넘어서면 파도 소리가 배경이 되고, 갓 볶은 코스타리카 커피 한잔이 곁들여진다.

예전에는 회 한 접시 먹으러 강릉에 갔다. 요즘은 분위기가 달라졌다. 막 내린 드립커피 한잔을 위해 강릉을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커피 박물관이 생겼고, 카페가 들어선 해변은 분주해졌으며, 매년 가을이면 강릉에서 커피 축제도 열린다. 100여개를 훌쩍 넘어선 커피 전문점들은 아직도 ‘뚝딱뚝딱’ 현재진행형이다.

유명 바리스타들이 10여년전 강릉에 정착한 뒤로 강릉에는 커피 붐이 일었다. 드립커피 1세대의 간판을 내건 ‘보헤미안’과 커피공장 ‘테라로사’ 등은 강릉을 커피의 메카로 이끈 주역들이다. 이들 카페와 커피공장에서 배출한 문하생들이 해변 골목을 넘어 전국 곳곳에 분점을 낼 정도로 강릉 커피는 유명세를 타고 있다.

원두 향기 가득한 안목해변

강릉이 여타 도시를 제치고 커피 애호가들을 이끄는 데는 도시가 지닌 독특한 분위기 덕분이다. 강릉은 바람부는 날, 누구나 한번쯤 차를 몰고 달려가 상념에 빠지고 싶은 로망의 땅이다. 실제로 북적이는 수도권을 떠나 강릉에 터를 잡은 바리스타들의 내세운 이유들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냥 강릉이 좋아서”다.

커피 붐과 함께 덩달아 분주해진 곳은 안목해변이다. 경포대에 비해 한적했던 안목해변은 오히려 그 호젓함 때문에 커피해변의 타이틀을 꿰찼다. 지금은 주말이면 경포해변을 넘어서는 이방인들로 북적거린다. 안목해변 일대에서는 바다를 바라보며 커피 한잔을 음미할 수 있는 카페들이 수십여 곳 도열해 있다. 그리스 산토리니의 건물 모습을 본 딴 카페부터, 여느 유원지에서 볼 수 있는 흔한 노천카페까지 외양은 제각각이다. 안목 커피거리의 태동이 됐다는 커피 자판기가 길 한쪽에 위치해 얘깃거리를 만들어내는 것도 흥미롭다.

이른 아침 안목해변을 찾은 외지인들의 닮은 꼴 행위는 해변을 거닐고, 바람을 맞고, 파도 소리에 취하는 것이다. 한동안의 상념과 산책 뒤에는 단체의식을 치르듯 카페 한곳의 문을 열고 들어가 커피 한잔을 고즈넉하게 들이킨다. 굳이 커피산지인 에디오피아, 콜롬비아, 코스타리카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그 순간만은 모두 바다 향 깃든 ‘강릉 커피’다. 그 쓴 커피가 추억의 맛과 향을 만들어낸다.

커피의 세월을 담은 박물관

강릉을 ‘커피 1번지’의 반열에 올린 데는 커피 박물관이 일조 한다. 왕산면의 커피박물관은 커피를 알고, 만나고, 즐기는 공간이다. 박물관은 원두 분쇄기 등 7000여점의 커피 관련유물을 소장하고 있으며 그중 200여점을 전시중이다. 최초의 커피제국인 오스만튀르크의 커피, 평생 5만잔의 커피를 마셨다는 프랑스의 문학거장 발자크의 커피추출도구, 고종이 인절미와 함께 즐겼다는 ‘양탕국’ 커피 등....커피의 역사와 함께 한 잔의 커피가 탄생하기까지의 제조 과정도 엿볼 수 있다. 박물관 외곽 온실에서는 커피나무가 자라며 커피열매가 빨갛게 익어간다.

강릉의 커피 물결은 최근에는 좀 더 한적한 사천진, 하평 해변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횟집 간판 대신 카페 간판이 내걸리는 경우가 이제는 강릉에서 다반사가 됐다.

글ㆍ사진=서 진(여행칼럼니스트)

여행메모

▲가는길=동서울터미널, 서울고속터미널에서 10~30분 간격으로 강릉까지 고속버스가 오간다. 승용차의 경우 동해고속도로 강릉IC에서 빠져나온다.

▲음식, 숙소=경포와 안목해변 사이에는 초당두부마을이 자리했다. 강릉 곳곳에 초당순두부집이 있지만 제대로 맛보려면 초당두부마을을 찾는다. 숙소는 경포대 일대에 밀집해 있으며 안목해변에도 게스트하우스 등이 마련돼 있다. 최근 오죽헌에는 한옥마을이 문을 열었다.

▲둘러볼 곳=선교장, 경포호 등이 둘러볼 만하다. 주문진 해변은 최근 드라마 <도깨비>의 배경이 된 이후 청춘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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