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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한의학265] 추석-고향-아이들

해마다 추석이 다가오면 대개 남자들은 모두 다 이발사가 된다. 이산 저산 예초기 소리를 울리면서 조상님의 덥수룩한 수염들을 정리하고 말끔한 얼굴을 되찾아준다. 필자도 그 동안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해마다 미꾸라지처럼 벌초에 참여하지 못했는데, 사촌동생이 이번에 안 나오면 앞으로 형님 얼굴을 안 본다는 반 협박에 참석하게 되었다. 선영이 해인사 근처라 하루에는 다녀올 수 없는 상황이란 점이 좋은 핑계거리가 되었지만 이번만큼은 꼭 가보고 싶었다. 구태여 수구초심(首丘初心)이 아니라도 오랫동안 못 본 고향을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전날에 대구로 내려가서 어머님을 뵙고 그 다음날 아침 일찍 고향으로 향했다. 꼬맹이 때 방학이 되면 설레임을 가득안고 어김없이 고향을 향한 버스에 오른 것 같이 일가친척이 고향에 없어도 고향 가는 길은 항상 설레는 것 같다. 누님도 같은 마음인지 자형을 운전수로 내세워 길을 재촉했다. 약속보다 너무 이른 시간에 도착해서 근처 합천호를 구경하러가는 동안 창밖에서 펼쳐지는 고즈넉하고 정겨운 시골풍경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여기저기 벌초하는 차량이 있었지만 편도 일차선의 시골 도로 중간까지 진출한 밤나무에는 밤이 그대로 있고 간혹 떨어져서 도로 위를 나뒹굴고 있었다. 시골에는 이미 아이의 울음이 끈긴 듯 보였다.

최장 10일의 황금연휴지만 동네 한의원인지라 진료를 하기위해 띄엄띄엄 문을 열었다. 고객은 의외로 꼬맹이들이 많았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다니거나 초등학교 저학년에 취학중인 아이들이다. 아이들을 제일 많이 괴롭히는 것이 떨어질 줄 모르는 감기였고, 그 다음은 밥을 잘 안 먹거나 편식을 하는 것이었고 키가 작아서 고민인 것이었다. 이런 제반 문제들 모두 기운이 가라앉거나, 면역력이 약화되어 나타나는 증상들이다.

아이들은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하루 종일 움직여도 끄떡없을 정도의 체력을 가졌는데 기운이나 면역력이 약화되었다는 것이 일면 이해가 안 될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어른들이 모르는 아이들만의 비밀이 숨어있다. 언 듯 보기에 꼬맹이들이 무슨 대단한 사회생활을 할까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건 어른들의 착각이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선생님이나 자신이 좋아하는 친구가 자신보다 다른 아이를 더 좋아하거나 예뻐한다거나, 자신이 싫어하는 선생님을 만나거나, 자신을 잘 이해해줘서 좋아했던 짝꿍이 멀리 이사 가서 유치원이 텅 빈 것 같은 공허함을 느끼거나, 심하면 왕 따 당해서 유치원에 가기 싫을 때 스트레스를 엄청 받는다. 아이들은 이런 고민이 있어도 부모에게는 잘 말하지 않고 스스로 해결하려고 한다. 아이가 밥을 거부하거나, 시름시름 앓으면 강제로 보내려고 윽박지르지 말고, 아이와 함께 며칠 같이 있으면서 아이가 무슨 이유로 거기에 가기 싫은지에 대해 말할 때를 기다려주는 것이 필요하다. 꼬맹이들도 자신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애쓰고 있음을 한시라도 잊어버리면 안 된다. 실은 이 때의 친구나 선생들에 대한 기억과 추억들은 잠재의식 속으로 들어가 향후 생애에 영향을 미친다. 어떤 사람을 만났을 때 1초도 안되어 그 사람에 대한 모든 것을 판단하게 되는 것 또한 이 때의 기억이 무의식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빨리 털고 일어나는 경향이 강해서 약간의 도움으로도 금방 방긋 웃게 된다. 감기를 달고 사는 아이에게 기운을 돋우면서 감기를 낫게 하는 처방을 하였더니 잃었던 입맛까지 돌아왔다고 엄마가 기뻐한다. 같은 감기약을 썼는데 1년간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고 신기해 한 엄마도 있었다. 필자에게 제일 많이 혼나는 엄마는 많은 육아 정보와 지식을 가지고 아이를 키우려는 엄마다.

가만히 있으면 잘 자라는 나무를 외부의 불확실한 정보와 지식을 통해 이리 비틀고 저리 휘 감기도록 해서 분재(盆栽)로 키우려는 엄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제일 중요한 부모의 마음은 아이의 뒤를 든든히 지원해주고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가 너를 지켜주고 사랑한다는 신호를 보내는 일이다. 그러면 아이는 쓰러지고 ?M여도 다시 하늘을 향해 치솟는다.

하늘꽃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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