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도 사람이 전하는 제대로 된 함경도 음식…고유 음식 새롭게 계승

부모 함경도 출신, 어머니 ‘메인 주방장’… 고향 음식 고집

가릿국밥, 농마국수, 삯국수, 섭밥 등 다양한 함경도 음식

정 대표 “함경도식 맛 재현하고 새롭게 선보이는 일 하고 싶어”

‘함경도 음식’이 있다. 함경도, 땅은 넓고 사람은 많지 않다. 사람 사는 곳에는 음식이 있다. 북쪽이다. 남북이 갈린 후 쉽게 가보기 힘든 곳이다. ‘함경도 음식’을 고집하는 이가 있다. 부모님들이 모두 북한, 그중에서도 함경도 출신이다. 정상혁 씨. 1960년 생이다. 서울 태생. 부모님 고향의 음식을 고집하는 ‘반룡산’의 대표 정상혁 씨를 만났다.

'반룡산'의 섭밥정식 스페셜
잊어버린 ‘가릿국밥’을 찾아서

개인적인 체험부터 이야기하겠다.

1980년대 후반으로 기억한다. 사회 초년병 시절, 선배들을 따라서 명동 어느 귀퉁이 허름한 국밥 집에 간 적이 있었다. 정확한 장소는 잊었지만 몇 가지 단편적인 기억들이 남아 있다.

나이든 노부부가 주인이었다. 건물 벽에 잇대어 지은 초라한 공간이었다. 처음 봤을 때 평범한 고기 국밥이었다. 갈비탕이 유행하기 전이다. 그저 갈비탕 같은 음식으로 기억한다. 선배들은 국밥 그릇을 앞에 놓고 소주잔을 기울였다. 술보다는 밥을 좋아하는 후배가 밥을 꾸역꾸역 퍼 먹고 있으니 선배들이 말했다.

“야, 이 미련한 놈아, 이건 ‘가릿국밥’인데 먹는 방법이 따로 있어. 우선 건더기를 먹어. 그리고 국물이 남으면 밥을 더 넣고 양념을 풀어서 다시 먹는 거야”

그게 가난한 시절에 음식을 먹는 지혜로운(?) 방법이라는 사실은 몰랐다.

‘반룡산’의 정상혁 대표 인터뷰를 하면서 문득 ‘명동의 가릿국밥’ 집이 기억나서 물어봤다.

“오장동 함흥냉면 집들이 함경도 음식을 선보였고 가릿국밥은 명동의 그 집이 제일 유명했습니다. 저도 어린 시절 부모님과 함께 여러 번 가본 적이 있습니다.”

역시. 명동 제일백화점 부근의 그 집 장소까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주인 할아버지는 일본에서 공부한 분이셨고요. 할머니가 운영을 했지요. 할아버지가 의자에 기대 앉아 일본 ‘문예춘추’를 읽고 있었던 모습도 기억납니다.”

건더기를 먼저 먹고, 남은 국물에 밥을 말고 양념을 더 풀어서 먹던 방식은 역시 “가난한 시절의 음식 먹는 법이 아니겠냐?”고 되묻는다.

가릿국밥은 갈비국밥이다. 잘게 찢은 고기와 무, 대파 등이 고소하면서도 시원한 맛을 낸다.
‘가리’는 갈비다

‘가리’는 갈비의 옛 말이다. 가릿국밥이 함경도 고유의 음식이라는 말은 틀렸다. 조선시대에는 어디서나 갈비를 가리라고 했다. 전국 어디서나 갈비는 가리였다. 다만 다른 지방에서는 사라졌으나 ‘가리’는 함경도에서만 남았다.

가릿국밥은 가리로 끓인 국밥이다. 갈비 살은 맛있다. 기름기도 적당하다. 고소하고 기름지다. 탕과 국으로 끓이면 맛있다.

조선 초기, 함경도 일대는 이민족의 땅이었다. 여진, 말갈 등 이민족이 살던 땅이다. 함경도 산악지대는 세종대왕의 ‘4군6진 개척’으로 우리 땅이 되었다. 그곳에 살던 이들도 한반도로 들어왔다. 유목, 기마민족이다. 농경보다는 고기 만지는 일이 더 편했다. 함경도 지역에서 고기 문화가 발달한 이유다. 아바이 순대도 마찬가지다. 투박하지만 든든하고 먹음직스럽다. 대창순대가 특이하고 순대 속이 아주 든든하다.

“국밥이나 순대는 어린 시절부터 먹었던 음식입니다. 서울 태생이지만 집에서는 부모님이 드시는 음식을 보고 자랐지요. 가릿국밥은 일상적으로 먹었고 제가 좋아하는 음식이고…. 음식점 문을 열 때 가릿국밥을 메뉴에 넣는 것은 한 번도 망설여 본 적이 없었습니다. 함경도 출신 어른들도 많이 찾으시는데 그분들도 당연히 가릿국밥 주문하고, 자연스럽게 소주를 곁들입니다. 두 번씩 양념을 하고 먹는 건 서울에서 생긴 이야기고요.”

만두와 함경도식 냉면
서울태생이지만 ‘함경도 음식’을 전승하겠다

비교적 부유한 집안 출신이다.

“아버님 덕분에 어린 시절, 학교 다닐 때 비교적 넉넉하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어머님이 음식을 잘 만지셨습니다. 주로 북한 음식 그중에서도 부모님 고향인 함경도 음식이었습니다.”

일찍 세상을 떠난 아버지 정용택 씨는 함경도 이원군 출신이다.

“아버님은 일본에서 전기를 전공했다고 들었습니다. 일본 유학 후 돌아오셨을 때는 다른 일을 하셨다고 하고요. 집안에서 황태덕장을 크게 하고, 정어리를 쪄서 기름 뽑는 공장도 하셨다니까, 당시로서는 제법 규모가 큰 회사를 운영하신 셈이죠. 공장도 있고 배도 여러 척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어머니 임춘재 씨는 함경도 함흥 태생으로 함흥제일여고 출신이다. 어머니의 친정도 넉넉한 집안이었다.

피난민이다. 한국전쟁 때 월남 했다. 아버지는 월남 후, 파고다공원 부근에서 당시 유명했던 ‘태창라사’를 운영했다. 일본 유학 당시 전기를 전공했지만 월남한 후 양복점 경영자가 되었다. 양복점이 대단한 사업이던 시절이다.

가자미식혜
“저도 음식 장사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공부를 할 생각이었지요. 위로 형님이 한 분 계시는데 외국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저는 언젠가 형님하고 교대로 유학 간다고 생각하고 잠깐 아버님 일을 도왔지요. 양복점 운영이 순조로웠으니까 살림살이는 넉넉했습니다. 아버님은 양복점을 세종호텔 안의 매장으로 옮겼고 그곳에서도 순조롭게 운영했습니다. 저는 아버님 곁에서 양복점 운영하는 일을 돕다가 IMF 때 양복점을 접었습니다. 그 뒤에 Y셔츠 회사도 운영하고, 나중에는 인터넷 관련 일도 했습니다. 제법 돈도 벌었는데 잠깐 쉬는 틈에 음식점을 열었고 이제 본업이 된 셈이죠.”

집안에서 일상적으로 해먹는 음식을 내다팔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 음식점 경영의 시작이었다. 어머니는 한식부터, 떡 국수 등 대부분의 음식을 직접 만들었다. 그중 한과는 수준급이었다. 한때는 폐백용 한과를 만들어서 여기저기 선보이기도 했다. 집안에서는 강정을 만들어서 내놓기도 했다. 어머니 연세가 더 드시기 전에 이 음식을 물려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경도식 냉면도 좋지만 온면도 독특한 맛이 있다.
농마국수와 함경도 냉면 그리고 삯국수?

‘삯국수’. 정상혁 대표는 일상생활에서 늘 ‘삯국수’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함흥냉면이라고 부르지만 원래는 함경도 농마국숩니다. ‘농마’는 녹말이지요. 농마국수는 녹말국수라는 뜻입니다. 함경도에는 원래 감자로 만든 녹말국수가 유행했습니다. 어린 시절 기억으로는 함경도 출신들은 모이면 농마국수를 해 먹었습니다. 집안에 국수 만드는 틀을 갖추고 국수를 뽑아먹는 집도 많았고요. 집에서 국수를 많이 해먹었으니까 오히려 ‘삯국수’라는 말이 나왔겠지요. 집에서 국수를 만들지 않고, 국수 뽑는 집에서 국수를 만들면 삯국수지요. ‘삯’ 즉 품삯을 주고 뽑아다 먹는 국수니까 ‘삯국수’라고 했습니다. 국수 얼마치 끊어오라고 하면 오장동의 냉면 가게에 가서 국수를 사왔지요. ”

2007년 6월, 함경도 음식 전문점 ‘반룡산’의 문을 열었다. 반룡산은 함흥의 유명 산 이름이다.

‘메인 주방장’은 어머니 임춘재 씨였다. 시집 오기 전에는 학교를 다니느라 음식 공부를 하지 않았지만 결혼생활을 하면서 음식을 배웠다. 시집이나 친정 모두 함경도 함흥, 이원이니 음식 얼개는 비슷했다.

“가자미식해 같은 경우는 가게 문을 열고나서도 오랫동안 어머님이 관리하셨습니다. 대부분의 음식은 어머님이 시범을 보이고 주방 식구들이 따라 해보는 식으로 진행했습니다. 다행히 주방식구들이 음식 공부에 대해 열의를 가지고 있으니까 비교적 쉽게 함경도 음식을 따라할 수 있었지요.”

'반룡산' 섭밥과 나물 반찬.
섭밥? “우리 어릴 적 해먹던 음식이다”

원래 대치동 ‘반룡산’은 1층만 운영했다. 올해부터 1, 2층을 텄다. 2층은 인테리어도 고급스럽다. 별도의 칸막이 공간을 만들었다.

가족들끼리 이야기를 하다가 ‘섭’ 이야기가 나왔다. ‘섭과 홍합은 다르다’ 혹은 ‘자연산 홍합을 섭이라 부른다’는 등 여러 의견이 있지만 동해안 지역에서는 홍합을 ‘섭’으로 부른다. ‘동해안 사투리’인 셈이다.

바닷가에서 수영하며 놀다가 섭을 잡아서 알맹이를 넣고 밥을 지어 먹었다는 식이다. “섭밥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울릉도에 갔을 때 ‘섭밥’을 먹었던 기억도 났다. 간장 양념으로 비비기도 하지만 명란젓으로 비비면 어떨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집안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그대로 간직한 채, 홍합을 내놓는 몇몇 집을 다녔다.

“부끄럽지만, 처음부터 대단한 신념을 가지고 함경도 음식을 선보이겠다고 시작한 건 아닙니다. 운영하다가 보니 욕심이 난 거지요. 이왕 함경도 음식 전문점이라고 알려졌으니 제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늦게 철이 든 건가요?”

'반룡산' 간판.
아래층에서는 가릿국밥, 만두, 가자미식해, 농마국수 스타일의 함경도식 냉면을 내놓는다. 직원만 20여명이다. 만만치 않은 살림살이다. 먼저 문을 연 1층에서 얼마간의 이익이 생긴다. 2층은 아직도 적자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한번 다녀간 손님들은 꾸준히 2층의 자리를 메운다.

가족들끼리 먹었던 음식, 부모님들이 일상적으로 먹었던 음식이다. 아들인 서울 태생 정상혁 대표는, ‘섭’을 주제로 새로운 함경도식 음식을 만들었다. 2층은 섭 음식과 술 안주 중심으로 꾸몄다. 북어 요리도 내놓고 각종 육류도 함경도식으로 해석해서 선보인다.

“저는 서울 태생이지만 음식은 부모님 따라 함경도 식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먹었던 그 음식을 재현하고 있습니다. 제가 자랄 때 먹었던 음식입니다. 그 음식을 재현하고 새롭게 선보이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글ㆍ사진=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북한음식전문점 4곳]

봉산옥
황해도 음식 전문점. 주인은 서울 태생이다. 황해도에서 피난 내려온 시댁의 음식을 배웠다. 삯국수와 지금은 없어진 호박김치찌개 등이 특이하다.

오장동 흥남집
이른바 함경도 식 ‘농마국수’를 내놓는다. 1953년 문을 열었다. 쫄깃한 면발에 고기 고명 혹은 생선 고명을 얹어서 먹는다. 오래된 노포로 예전의 맛을 꾸준히 유지한다.

장충동 뚱뚱이할머니집
한국전쟁 때 피난민들이 많이 정착한 곳이 장충동 일대. 족발은 흔치 않았던 음식이다. 북한 출신들이 장충동 일대에서 족발을 유행시켰다. 그중 먼저 시작한 집이다.

평안도만두집

평안도 만두집
광화문 언저리 지하상가에 있는 아주 작은 만두 전문점이다. 평안도식으로, 크지만 정갈한 만두는 선보인다. 겨울철 만두전골이 아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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