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약재로 쓰이는 식물을 자라는 서식지와 약효의 관점에서 분류해보면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자신이 잘 자라는 서식지의 환경을 닮은 효능을 가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와 정반대의 효능을 가지는 것이다. 마치 구한말 일본이 침입했을 때 거기에 동화되어 일본인이 되어간 사람과 거기에 저항해서 독립투쟁을 한 사람과 같이 말이다.

한약재 중에 가장 건조한 약으로 꼽히는 반하(半夏)는 건조한 모래땅에서 잘 자라는 반면, 습기가 많은 진흙땅에서 키우면 죽는다. 지황(地黃)이나 맥문동(麥門冬), 천문동(天門冬)은 축축하고 햇빛이 들지 않고 축축한 곳에서 잘 자라지만 건조한 사막지역에는 자랄 수 없다. 이들 한약재는 모두 서식환경과 같은 효능을 가진다. 반면 햇빛이 강하게 비치면서 배수가 잘되는 건조한 사막에서 자라는 노회(蘆薈,알로에)나 선인장은 사막의 건조한 성질을 가지기보다 그와는 정반대의 끈적거리는 찬 성분을 가진다. 쇄양이나 육종용 같은 한약재도 이와 유사하다.

특히 중요 한약재로 여겨지는 사슴뿔인 녹용(鹿茸)도 반대의 기운을 갖는다. 시베리아 같은 곳에서 영하 40-50℃를 오르내리는 혹한을 이겨내고 뜨거운 기운을 끝부분까지 보내서 하루에 2-3Cm씩 뿔이 자라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녹용은 기운이 달리거나 양기가 부족한 사람, 소아와 노년층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한약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아쉽게도 우리나라는 시베리아만큼 춥지 않아 사슴뿔 역시 녹용이란 한약재로 유통되지 못하고 식품으로 유통되고 있다. 서식지와 같은 효능을 가지는 한약재 중에 난초과의 석곡(石斛)이 있다. 그 꽃이 아름다워 난초와 함께 인기가 많아 관상용으로도 많이 기른다. 주로 중국의 여러 지역에서 많이 자라며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나 서해 도서의 높은 암벽이나 깊은 산속의 죽은 나무 줄기에 붙어서 자란다.

그래서 석곡은 멸종위기 야생식물 Ⅱ종이다. 금생, 임란, 두란, 금차화(金釵花), 천년윤(千年潤), 황초라는 이명이 있다. 줄기의 마디가 대나무와 비슷하다 하여 죽란(竹蘭), 바위틈에 뿌리를 잘 내린다 하여 석란(石蘭)이라는 이름도 있다. 오래 된 줄기에는 잎이 없고 속새처럼 마디만 있으며 마디마디가 소철처럼 생겼다. 한약으로 사용되는 식물은 석곡(石斛), 금차석곡, 장조석곡, 철피석곡, 중진석곡, 광동석곡, 세엽석곡 뿐 아니라 무수히 많고 다양하다. 또한 품종과 가공방법에 따라 다섯 가지로 분류되는데 책마다 그 기준이 달라 여기서는 대학에서 가르치는 본초학 교재를 기준으로 한다. 환초석곡, 마편석곡, 황초석곡, 철피석곡, 금차석곡이 그것이다. 석곡은 성질이 약간 차고, 독은 없고 맛은 달다.(微寒,無毒,甘) 위장과 폐장과 신경으로 효능이 나타난다. 효능은 익위생진(益胃生津)과 자음청열(滋陰淸熱)이다. 주치증 중에 제일 중요한 것은 열병상진(熱病傷津)을 치료하는 것이다. 외부로부터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침투하면 인체가 간혹 고온을 열을 발생시켜 갑자기 한 번에 체온이 38-40℃까지 치솟게 되는데 이를 열병(熱病)이라고 한다.

또한 열병이 할퀴고 지나간 상태에서 오랜 기간 동안 체온이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고 미열이 계속 진행되는 경우가 있는 데 이를 온병(溫病)이라 한다. 이렇게 오랫동안 열이 발생하면 당연히 우리 몸에 있는 진액을 졸여져서 마르게 한다. 그 결과 입이 마르고 가슴이 답답하고 갈증이 심하게 나며, 밤에 열이 치솟고 아침에 체온이 떨어지는 야열조량(夜熱早凉)의 증상이 나타나며 혀가 열로 인해서 새빨갛고 진액이 없는 형태를 띤다. 아무런 수치도 하지 않은 날 것의 석곡은 진액이 많고 찬 성분이 강해서 열을 떨어뜨려서 진액이 소모되는 것을 막아주는 청열생진(淸熱生津)의 효과가 있다.

곽석곡(霍石斛)은 음분을 보태줘서 진액을 잘 생기도록 하는 효능이 있어서 오랜 온열병으로 진액이 마르고 미열이 오랫동안 안 떨어질 때 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입이 마를 때는 건석곡(乾石斛)을 쓴다. 좋은 석곡은 색깔이 노랗고 진액이 많다. 다른 보음약과 청열약 들과 함께 무리를 이뤄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며 단독임무를 수행하기에는 약성이 치우치지 않고 무난하지만 효과는 떨어질 수 있다.

하늘꽃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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