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불고기의 원형 유지…‘불고기 기본’에 충실, 맛ㆍ반찬 수준급

한우, 구멍 뚫린 불판 등 본래 불고기 선뵈…‘시금치 불고기’, 인공 조미료 안써

‘착한식당’ 지정에 단골에게 폐 될까 고사…제철 반찬, 정성 깃든 식기 등 인상적

애주가 찾는 ‘갱시기’ 인기 메뉴…“잘하는 것보다 기본을 지키는 일이 중요

'새불고기식당'의 최화영 대표와 아들 성재용 씨. 공무원 생활을 그만두고 '새불고기식당'의 경영에 참여했다.
경북 성주군은 그리 크지 않은 지자체다. 2017년 12월 기준 인구가 4만5000명. 성주군의 중심지도 아니다. 군청 소재지도 아닌 초전면에 제법 규모가 큰 불고기 전문점이 있다. ‘새불고기식당’. 채널A ‘먹거리X파일-착한식당’에 등장했지만 ‘착한식당’으로 지정되지는 않았다. 주인이 출연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주인 최화영 씨를 만났다.
밥상차림
착한식당? 명예롭긴 하지만 단골들에게 폐가 될 것 같아서…

2014년 6월의 일이다. 채널A ‘착한식당’ 팀이 ‘착한 불고기’를 찾고 있었다. 조건이 무척 까다로웠다. 국산 한우를 쓰는 것은 기본. 불판은 구멍이 뚫려 있는, 전통적인 것을 써야 한다. 당면은 사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크고 작은 조건들이 많았다.

그런 집은 없었다. ‘착한식당’ 제작진이나 검증팀 모두 지쳐가고 있었다. 불판 제조업체와 주방도구 전문업체에 문의했다.

“예전 불고기 불판을 사가는 곳이 있습니까?”

“오래 전에 사라졌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예 불구멍이 뚫린 불판을 사가는 곳이 없었다. 주방도구를 전문적으로 파는 업체에도 예전 불판은 없었다.

“구멍 뚫린 불판을 고집하지 않는다면, 성주에 상당한 수준의 가게가 있다”는 이야기도 이 무렵 나왔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제일 큰 이유는 당장 찾아오는 손님들에게도 제대로 못해주는데 혹시 방송 나가서 손님들이라도 몰려들면 실수를 할까봐 못한다고 했지요.”

'새불고기식당'의 불고기. 시금치가 특이하다.
불고기가 수준급이었다. 재래 간장을 사용하고 모든 식재료를 인근에서 구해서 직접 손질했다. 특이한 것은 불고기 판 위에 올라간 시금치. 이른바 ‘시금치 불고기’였다. 인공 조미료는 사용하지 않았다.

최소한 ‘준 착한식당’ 대상이라고 여기고 검증팀은 제작진에게 ‘착한식당’ 검증을 더 진행키로 제안했다.

2∼3일 후 제작진이 엉뚱한(?) 하소연을 했다. “착한식당 후보로 선정되었습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주방에서 검증을 할 텐데, 승낙하시겠습니까?”라고 물어봤더니 “절대 안된다”고 거절한다는 것. 2∼3일 식당에 머물면서 졸랐지만 요지부동. 도무지 설득이 되질 않으니 끝내 포기하고 검증팀에게 그 내용을 전한 것이다.

지금도 최화영 대표의 주장은 여전하다. 그 사이 3년 반의 시간이 흘렀다.

“저야 개인적으로 영광스럽지요. 시골에서 자그마한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입장에서 서울의 방송국이 그런 큰 영예를 준다는데…. 제가 만드는 음식이나 음식점이 큰 인정을 받았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것이지요. 당시는 지금보다 더 외진 곳에서 자그마한 가게를 할 때였지요. 그런 가게를 어떻게 찾았을까, 싶기도 하고. 초전 같이 자그마한 동네에서는 꾸준하게 오시는 단골손님들이 제일 소중한 고객입니다. 혹시라도 방송 나가서 손님들이라도 많아지면 감당이 힘들지요. 그러면 실수를 하게 되고, 기존에 오시던 손님에게 실수하는 게 제일 두려웠습니다.”

제작진은 “성주 초전면에 불고기 식당이 있다. 착한식당, 착한 불고기로 선정하려 했으나 주인의 완강한 반대로 결국 착한 불고기 검증에 실패했다”는 내용을 방송으로 내보냈다.

'새불고기식당'의 버무린 등.
소박한 재료로 만든 참 귀한 밥상

최화영 대표. 1956년생이다. 고향은 성주보다 남쪽인 경북 청도 운문면이다. 농사 짓는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나 자랐다. 1980년 스물다섯에 결혼했다. 슬하에 1남1녀를 두었다.

남편은 자동차 정비공장을 운영하다가 한때 대구 서문시장에서 포목 장사를 하기도 했다. 남편의 고향이 현재 ‘새불고기식당’이 있는 초전면 인근의 창천면이다.

시누이 남편이 남편 고향과 가까운 초전면에서 우체국장을 하고 있었다. 고향과 가깝고 친척이 있는 곳으로 옮겼다. 현재 자리로 이사 오기 전, ‘착한식당’ 검증팀이 찾았던 장소다.

“대구의 큰 식당에서 일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음식점 문을 열기 전에 연습을 제대로 한 셈입니다. 가까운 친척이 식당 운영하는 걸 보고 배웠지요. ‘새불고기식당’ 음식은 제가 일했던 식당과 전혀 다릅니다. ‘집에서 먹는 음식 만드는 대로’ 만들겠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대도시에서 온 손님들’은 ‘새불고기식당’의 밥상을 받아들면 대부분 당황한다. 어느 블로거는 ‘반찬 하나하나 허투루 내놓지 않는다’고 했다. 궁중음식이나 반가음식 등을 전문적으로 배운 사람이 차린 밥상이라고 오해하기도 한다. 기명(器皿)들도 예사롭지 않다. 투박하고 소박한 느낌의 분청자기, 옹기그릇들이다.

청국장
동치미
소박한 떡, 메밀묵, 버무린 등이 가지런히 놓인다. 여름에는 열무 물김치, 겨울에는 를 차린다. 작은 옹기에 담긴 물김치가 소담스럽다. 밥상 한편에 놓인 명이나물도 좋다. 고사리나 겨울 냉이도 예사롭지 않다. 사시사철 고사리를 무쳐내고 겨울철에 냉이 나물을 내는 것은 서툰 솜씨로는 어렵다. 음식은 장맛이다.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사용합니다. 친척이 직접 담근 을 씁니다. 메주 가져다 된장, 간장 직접 담고요.”

손님들이 “성주 ‘새불고기식당’ 여주인이 한 고집한다”고 말하는 이유다. 겉으로는 무심하게 표현하지만 이 정도의 밥상을 차리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메뉴판에,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음식이 등장한다. 돼지찌개, 등이다.

콩나물갱시기
갱시기? 집안 식구들끼리 먹는 음식 그대로

갱시기는 경북 북부, 대구 언저리의 음식이다.

바깥 생활을 하는 남편은 아무래도 술자리가 잦았다. 술을 많이 마시면 반드시 다음날은 ‘갱시기’를 찾았다. 식당을 찾는 손님들도 남편과 같은 심정이리라 생각했다. 남편이 좋아하는 ‘갱시기’를 메뉴에 넣었다. 지금도 ‘갱시기’는 인기 메뉴다.

‘갱시기’는 ‘갱죽(羹粥)’ 혹은 ‘갱식(更食)’에서 시작되었으리라 추정한다. 멸치 육수에 식은 밥과 곰삭은 김치를 넣고 끓인 죽이다. 갱죽이면 국물이 있는 죽 같은 음식을 뜻하고, 갱식은 다시 끓여서 먹는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대단한 음식은 아니다. 시골에서 김치, 식은 밥을 넣고 끓여 먹던 소박한 음식이다. 특별한 레시피도 없다. 콩나물을 넣어도 되고 넣지 않아도 그만이다. 갱시기라 해도 좋고 라 해도 좋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타작을 할 때면 어머님이 꼭 ‘갱시기’를 끓여서 아버님께 드렸던 걸 기억합니다. 힘든 일을 하실 때는 꼭 갱시기를 준비했지요. 소박한 음식이지만 정성이 가득한 음식이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 남편이 과음하면 꼭 ‘갱시기’ 찾는 걸 보고 그걸 식당 메뉴로 내놓았습니다. 저희 집만 아니라 다른 집도 모두 비슷하겠지요.”

최 대표는 “구운 고기를 먹는 손님들은 반드시 ‘갱시기’를 찾더라”고 했다. 국물 없는 밥상은 없다. 고기를 먹더라도 마무리에는 국물, 밥이 필요하다. ‘갱시기’는, 얼큰한 국물과 밥 그리고 곰삭은 김치의 묵은 맛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구이용 쇠고기
불고기는 사라지고 있다

불고기는 사라지고 있다. 1960∼70년대 대도시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이들은 ‘불고기 국물’을 기억한다. 불고기를 먹고 난 후, 불고기 국물에 밥을 말아먹었던 기억이다. 자작하게 끓인, 달싹한 불고기 국물에 밥을 말아먹었다. 정작 불고기보다는 국물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불고기가 사라지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국물 때문이다. 예전 불고기는 국물이 있었고 그 국물을 먹었다. 이젠 달라졌다. ‘직화(直火)식 고기구이’가 등장했다. 양념을 하더라도 석쇠에 고기를 구워 먹는 ‘광양 불고기’가 예전 불고기를 대체했다.

굳이 전통을 따질 일은 아니다. 수육(熟肉)의 시대를 넘어 불고기가 시작되고, 직화구이가 시작되면서 불고기도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육회
오늘날의 불고기들은 전골과 닮았다. 전골은 전립투골(氈笠套滑)에서 시작된 음식이다. ‘전립투’는 조선시대 군인들이 사용하던 벙거지 모자다. 18세기 말, 청나라의 ‘난란회’ 등을 본받아 한반도에도 쇠고기 문화가 시작되었다. 벙거지 모자 같이 생긴 그릇에 장국을 끓이고 고기를 구웠다. 고기를 장국에 찍거나 섞어서 끓였다. 전골은 불고기와도 닮았다.

불고기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전골, 전립투골부터 따져도 200년 남짓이다. 일제강점기에 시작했다는 주장을 믿으면 불과 1백년이다. 그 역사의 끝점에 불고기가 있고 ‘새불고기식당’이 있다.

“대구 살다가 성주로 이사 올 때 밤에 왔습니다. 도로 좌우측에 하얀 물결(?)같은 게 있어서 속으로 ‘길가에 강이 흐르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보니까 참외를 키우는 비닐하우스였습니다.”

쇠고기 구이
성주에 온 지도 30년을 넘겼다. 1988년 5월6일. 성주 ‘새불고기식당’이 문을 연 날이다. 이제 막 30년의 업력을 쌓았다. 다행히 아들 성재웅 씨가 가게를 물려받겠다고 나섰다. 공무원 생활을 하던 아들이 “아무래도 공무원은 적성이 맞지 않고 가게를 물려받겠다”고 나섰을 때 고민을 한 것도 사실이다. 이제 팔을 걷어붙이고 주방 일부터 시작하는 아들이 미덥기도 하다.

“식재료도 평범하고 별난 레시피도 없습니다. 알고 있는 대로 만들고, 집에서 먹는 대로 내놓습니다.”

잘하는 것보다 기본을 지키는 일이 더 힘들다. 고기는 농협에서 덩어리째 구매한다. 고기를 써는 것은 주방의 일이다. 음식에 따라 고기 결을 따라 혹은 결과 엇갈리게 썰어낸다. 그 모든 일을 매일매일 놓치지 않고 직접 다 해낸다.

얼마쯤의 세월이 지나면 든든한 아들이 또 그 일을 해낼 것이다. 그리고 말할 것이다. “새롭게 하는 건 하나도 없고, 예전에 어머니가 했던 그대로 합니다.”라고.

글ㆍ사진= 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불고기 맛집 4곳]

아성식당
‘경북 영덕에 있는 전통적인 불고기 식당’이라고 표현한다. 바닷가 불고기 식당도 특이하지만 일일이 손으로 구멍을 뚫은 ‘수제불판’도 특이하다. 음식도 수준급.

보건옥
서울에서도 역사가 깊은 노포. 설렁탕, , 김치찌개 등도 가능하다. 불고기 전??못지않은 불고기를 선보인다. 예전 구멍 뚫린 불판도 있다.

대구식육식당
경북 안동 풍산읍에 있다. 고기의 양이 푸짐하다. 쇠고기 이외에 돼지고기도 내놓는다. 인근에서 직접 구하는 싱싱한 고기를 싼 가격에 먹을 수 있다.

시내식당
광양식 불고기를 내놓는 집이다. 전골 식으로 끓이는 것이 아니라 양념한 고기를 석쇠에 구워먹는 식이다. 광양에서도 노포다. 3대 운영 중. 쇠고기 외에 내장 구이도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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