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바다가 선물한 ‘알찬 진미’

영덕의 포구는 겨울만 되면 술렁거린다. 새벽 경매장에서 들려오는 똑딱선 엔진 소리도 흥겹고, 쏟아지는 대게 구경에도 신바람이 난다. 박달게, 청게, 물게.... 대게에도 분명 ‘우등생’이 있고, 포구마다 옹골진 사연도 넘쳐난다.

아침녘 도착한 영덕 강구항은 완전 ‘게판’이다. 대게집은 100여곳이 빼곡히 들어서 있고 다리 번쩍 쳐든 으리으리한 왕게 간판이 길손을 유혹한다. 강구항의 포장마차 앞에는 배를 타고 온 뱃사람과 차를 타고 달려온 횟집 주인들이 불을 쬐며 질펀한 포구 사투리를 늘어놓기에 바쁘다.

속이 오동통한 원조 대게의 매력

위판장 앞에는 먼 바다까지 나갔던 20t급 배에서 게가 쏟아져 나온다. 배를 드러내고 기선을 제압당한 게들이 쭉 도열을 마치는데 크기순도, 무게순도 분명 아니다. 대게는 몸통 옆구리의 줄이 두줄이다 ‘너도 대게’라는 별칭을 지닌 청게는 줄이 두개에서 하나로 줄어든다. 홍게는 배가 뻘걸 뿐 아니라 줄도 하나밖에 없다. 몸통 길이가 9㎝ 미만인 ‘꼬마게’들은 자격 미달이고, 알을 품은 암컷들도 바다로 돌려보내야 한다.

영덕게 중 최상품으로 치는 박달게는 수심 500m가 넘는 곳에서만 잡히며 7,8년 된 것들이다. 속살이 90% 이상 실하게 찬 이놈들에게는 집게에 녹색 라벨이 채워지며 한 마리에 10만원을 웃도는 가격에 거래된다.

속이 알찬 박달게의 속살은 짠맛이 아닌 단맛을 낸다. 대게는 11월부터 4월까지 잡을수 있는데 설을 전후로 해서 가장 맛이 좋을 때다. 대게는 쭉 뻗은 다리가 대나무를 닮았다고 해서 대게로 불리는데 찜으로, 탕으로, 회로 먹는다. 한번 먹으면 그맛을 잊지 못하는게 원조 대게의 매력이다.

포구 따라 이어지는 해변 드라이브

강구항을 빠져나와 북쪽으로 달리면 짙푸른 918번 해안도로가 고래불해수욕장까지 수십km 뻗어있다. 그 길자락의 강구항, 대진항은 영덕을 유명하게 만들었던 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의 주요 촬영지였다. 박선장(최불암)의 덥수룩한 수염과 깊은 주름을 이곳 해안도로 주민들 얼굴에서 발견할수 있다.

해안도로를 달리면 창포, 노물, 경정, 축산, 대진 등 영덕의 포구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해변가에 들어선 창포리의 풍력발전단지는 80m가 넘는 거대한 바람개비가 풍차마을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해뜰 때나 해질녘 들리면 더욱 운치 넘친다. 풍력발전기 아래가 바로 해맞이 공원이다. 새해 첫날만 되면 사람들이 빼곡히 모여드는 곳으로 탁트인 바다를 향해 나무데크로 된 해변산책로가 조성됐다.

해안도로옆은 끝없는 낚시 포인트가 이어진다. 겨울이면 축산항 일대에서 학꽁치가 쏟아져 나온다. 학꽁치 덕분에 해안도로 곳곳이 주차장으로 변한다.

임금님께 대게를 진상했다는 대게원조마을의 죽도섬을 지나 대진항으로 향할수록 해안도로는 ‘피데기’(덜 말린 오징어)로 터널을 이룬다. 영덕대게로 대신 피데기로라고 이름을 붙이는게 낫겠다는 말이 설득력있게 다가올 정도로 정말 피데기가 많다. 한때 고래가 뛰어놀았다는 고래불 해수욕장에서 바다와 함께 한 영덕 해안도로는 끝을 맺는다.

70년대 영덕은 노가리 트롤선만 있으면 딸을 시집을 보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노가리가 많이 잡혔다. 80년대에는 청어가 그 바통을 이었다. 이후로는 대게가 정겹고도 북적거리는 포구 풍경 속에 명맥을 유지해 오고 있다.

글ㆍ사진=서 진(여행칼럼니스트)

여행메모

▲가는길=중앙고속도로를 거쳐 서안동 나들목~34번 국도~영덕읍을 경유한뒤 7번 국도를 따라 남쪽으로 향하면 강구항이다. 중부내륙고속도로,김천을 경유해 대구-포항고속도로를 이용한뒤 7번 국도를 타고 영덕으로 향할 수도 있다.

▲먹을 곳=강구항보다 축산, 대진항 일대의 식당들이 대게값이 저렴한 편이다. 창포리 해맞이 공원옆 횟집들은 대게뿐 아니라 학꽁치 물회가 별미다.

▲기타정보=포항~영덕간 철도가 지난 1월 개통돼 푸른 동해바다를 바라보며 기차여행을 즐길 수 있다. 영덕 포항간 무궁화호 의 소요시간은 34분이다. 강구항 일대와 해안도로에는 일출을 볼 수 있는 숙소를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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