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 두절콩나물, 으로 끓인 ‘묵해장국’ 유명 … 이젠 역사 속으로

30여년 해장국 집 운영… 경주 팔우정해장국 골목의 원조

소박한 식재료, 평범하나 정겨운 음식… ‘원형’ 사라져가

이귀록 대표. 경북 의성 출신. 올해 일흔 일곱살이다.
경주 팔우정거리. ‘골목’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4차선 큰길이다. 10여개의 크고 작은 가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해장국 집들이다. 그중에 작은 가게 하나. ‘팔우정해장국’ 집. 주인은 이귀록 씨. 1942년생, 올해 일흔일곱 살이다. 30여년 해장국 집을 운영하고 있는 이귀록 대표를 ‘만났다’.
콩나물 대가리를 떼어 낸 두절콩나물이다
‘만났다’, 그러나 인터뷰는 불가능했다

‘만났다’라고 표기한 이유가 있다. 인터뷰를 위한 두 번째 발걸음이다. 만나기는 했지만 정작 인터뷰는 하지 못했다. 20년쯤 띄엄띄엄 드나들던 집이다. 나름 단골인 셈이다.

미리 밝힌다. 이 글은 ‘실패한 인터뷰’를 정리한 것이다.

결국 인터뷰는 ‘실패’했다. 거창하게 ‘실패’라고 이야기할 것은 없다. 그저 ‘이루어지지 않는 인터뷰’라고 여긴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귀록 씨의 귀가 많이 어둡다.

2016년 여름 쯤 인터뷰를 하기로 예정했다. 이때 벌써 귀가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오후 늦은 시간 ‘팔우정해장국’을 찾았다. 이야기를 나누려고 좁은 식당에 앉았다. 전화로 미리 인터뷰 약속을 잡았다.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자꾸 이귀록 씨가 말을 놓쳤다. “귀가 어두운 것 같다”는 이야기는 이미 들었다. 귀, 코, 목구멍, 입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 음식 맛은 코와 입으로 느낀다. 냄새를 맡고 맛을 느낀다. 귀가 어두워지면 음식 맛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팔우정해장국’의 해장국 맛이 짜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였다. 어두운 귀 때문이라 생각했다.

인터뷰를 하기로 마음먹고 멀리 경주까지 찾아갔지만 더 이상 진행이 어려웠다. 인터뷰는 무리다. “나중에 하자”고 생각했다. 이귀록 씨의 어두운 귀는 일시적인 현상이리라, 지레짐작했다. 이게 실수였다. 그때 무리를 해서라도 인터뷰를 진행했어야 옳았다.

얼마 전 다시 들렀다. 아뿔싸. 상황은 더 나빠졌다. 이귀록 씨는 상대방 이야기를 거의 알아듣지 못했다. 2016년에는 한두 마디씩 놓치는 정도였는데 이젠 거의 알아듣지 못했다.

모자반
왜 ‘팔우정해장국’인가?

경주는 서울 기준 먼 곳이다. 먼 거리를 일부러 찾아가서 인터뷰하고자 하는 이유가 있다. 2012년 12월 19일, <주간한국>의 기사를 옮긴다.

팔우정해장국 골목의 원조는 바로 ‘팔우정해장국집’이다. 예순을 훨씬 넘긴 주인 할머니가 제대로 만든 콩나물국밥을 내놓는다. 이집의 메뉴는 참 ‘건조’하다. ‘해장국’ ‘선짓국’ ‘추어탕’ 딱 3종류고 이름도 하필이면 꼭 3자씩이다. 메뉴판을 보고 언젠가 일행이 “강호무림 고수의 초식 전개는 참 간결하다”고 해서 웃었던 적이 있다.

재미있는 것은 ‘해장국’이라고 써 붙인 콩나물국밥이다. 해장국 재료를 보면 그야말로 ‘반전’이다. 재료가 메밀묵과 두절(頭切)콩나물 뿐이다. 국밥 위에 말린 해조류를 얹었다. ‘두절’ 콩나물은 ‘대가리를 떼어낸 콩나물’이다. 콩나물 대가리는 단맛을 내지만 한편으로는 시원한 국물을 내는 데는 방해물이 된다. 두절 콩나물을 소복이 넣는다. 위에는 메밀묵을 길쭉하게 얹었다. 정갈하지만 한편으로는 무언지 섭섭하다 싶은데 막상 국물을 한 숟가락 입에 넣으면 콩나물의 시원함이 목구멍을 타고 흐른다.

농 삼아 “할머니 조미료 썼지요?”라고 눙치면 돌아오는 대답도 몇 년째 한결 같다. “쟈가 미쳤나?”. 일체의 인공화학조미료를 사용하지 않는다. 여전히 토렴으로 한 그릇씩 밥을 말아 내놓는다.

이 기사에 등장하는 ‘메밀묵’ ‘두절(頭切)콩나물’ 그리고 토렴이 늘 궁금했다. 조미료 없이 자그마한 가게가 버티는 이유도 궁금했다.

밑반찬. 2010년 10월
경북 지방에는 국물에 묵, 김, 묵은 김치 등을 얹은 음식이 있다. 참 멋없는 이름이지만 묵사발이다. 묵에 밥을 얹은 음식도 있다. 묵밥이다. 묵밥, 묵사발은 더러 볼 수 있다. 묵해장국은 이 집이 가장 오랫동안 지켜온 독특한 메뉴다. 묵이 들어간 해장국이다. 간판에도 해장국, 묵 해장국이라고 써 붙였다. 묵을 뜨거운 해장국에 넣다니, 신기했다.

묵은, 우리도 잊고 있지만, 한반도에만 남은 음식이다. 일본의 양갱 같이 묵을 이용한 음식은 더러 있지만 우리처럼 도토리, 메밀, 녹두를 비롯해 각종 곡물로 묵을 만들어 일상의 음식으로 상식하는 민족은 없다. 우리가 가난해서 묵을 먹었다고 말할 것은 아니다. 소빙하기(little ice age)에는 전 세계가 곡물부족으로 고생했다. 우리가 어려웠던 시기, 일본, 중국 등 인근 국가들도 곡물부족으로 어려웠다. 유럽도 중세 대기근의 시대, 수백만이 곡물부족과 전염병으로 죽었다. 모두 어려웠지만 유독 한반도에만 묵 문화가 유행했고 또 남았다.

2010년 10월 촬영한 묵 해장국
두절 콩나물과 토렴

콩나물 대가리를 떼어낸 두절콩나물도 묘하다. 이귀록 씨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왜 콩나물 대가리를 떼어내느냐?”고. 대답은 짐작했던 대로였다. “콩나물 대가리는 음식 맛을 해친다”였다. 콩나물대가리를 넣으면 단맛이 강해진다. 국물의 맛은 들척지근해진다. 씹을 때의 식감도 그리 좋지 않다. 참 번거로운 작업이지만 이 집은 일일이 콩나물 대가리를 떼고 사용했다.

토렴하는 모습
토렴은 퇴염(退染)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퇴염은 색깔을 빼는 것을 말한다. 음식에서 토렴은 밥의 차가운 기운을 빼내는 것이다. 뚝배기에 언 밥을 넣는다. 국솥의 뜨거운 국물을 뚝배기에 넣고 빼내는 과정을 되풀이 한다. 밥은 녹고 뜨듯해진다. 국물에 밥 알갱이의 양분이 들어가고 또 빠져나간다.

입에 밥과 국을 넣으면 뜨듯하다. 뜨겁진 않으니 먹기 좋을 정도다. 오래된 방식인데 이제는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평소 이귀록 씨는 농담도 잘 했다. “조미료 썼지요?”라고 물으면 쓴다, 안 쓴다가 아니라 “쟈가 미쳤나?”라고 되물었다. 미치지 않고는 그런 헛소리 하지 않는다는 뜻. 1년에 한두 차례 들르면 이런 저런 농담도 주고받고 편하게 해장국 한 그릇 먹고 오곤 했다.

조미료 대신 말린 을 사용했다. 은 다시마 보다 더 강한 감칠맛을 낸다. 제주도 몸국은 ‘몸’과 돼지고기를 섞은 것이다. 몸이 이다. 말린 후 작은 소쿠리에 넣고 국물에 조금씩 넣곤 했다. 조미료 대신이었다.

올해 촬영한 해장국. 콩나물의 대가리가 그대로 있다.
이제 ‘묵 해장국’은 사라질 것이다

‘팔우정해장국’에서 일하는 친구 황계순 씨에게 몇 마디 물어보았다.

“오래 전에 잠깐 가게에서 일한 적이 있습니다. 그만뒀는데 일할 사람이 없다고 연락이 와서 또 같이 일하고 있습니다. 이귀록 씨는 보청기를 써도 귀가 들리질 않으니 인터뷰는 힘듭니다.”

바로 곁에서는 이귀록 씨가 그저 사람 좋은 얼굴로 웃고 있다.

이귀록 씨의 고향은 경북 의성.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면서 전 국민의 주목을 받은 여자 컬링 팀 선수들의 고향이다. 마늘이 유명한 경북의 외진 곳이다.

딸 둘을 두었다. 2017년 여름 유명 TV 프로그램에서 ‘팔우정해장국’을 보여주었다. 방송 후 ‘난리’가 났다. ‘팔우정해장국’은 테이블 대여섯 개의 작은 가게다. 빼곡하게 앉아도 20명자리가 되질 않는다. 그나마 봉놋방이다. 손님들은 신발을 벗고 앉아야 한다. 불편하기 이를 데 없다. 작은 가게 앞에 손님들이 줄을 서서 기다렸다. 추측컨대 이 무렵 건강은 더 나빠졌을 터이다.

지금도 가게 벽에는 작은 쪽지가 붙어 있다. 아마 딸들이 써 붙였을 것이다. 방송 후 손님이 밀어닥쳤고 어머니가 힘들어하신다, 건강이 좋질 않아 손님들에게 소홀할 수도, 짜증을 낼 수도 있다고, 양해 바란다는 내용이다.

황계순 씨의 말에 따르면 자식들도 가게 운영을 반대한다. 꾸역꾸역 가게를 운영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습관’이다. 그동안 가게를 운영했으니 오늘도, 내일도, 몸을 움직일 수 있는 한 가게 문을 여는 것이다. 손님들이 찾으니 ‘습관적으로’ 문을 여는 것이다.

‘팔우정해장국’의 업력은 30년 남짓이다. 이귀록 씨의 나이 서른다섯 무렵에 문을 열었다. 1970년대 중반이다. 평범한 해장국 집. 다른 이가 운영하던 가게를 물려받았다. 그 집 역시 해장국 집이었고 이귀록 씨가 인수 받은 후 문을 다시 열고나서도 여전히 해장국 집으로 운영했다. 묵 해장국이 이 지역 혹은 이 씨의 고향 의성에서도 일상적이었다는 뜻이다. 평범하게 시작한 메뉴가 묵 해장국이었으니.

‘생계형 가게’다. ‘팔우정해장국’을 시작으로 인근에 여러 해장국 집들이 문을 열었다. 경주시는 이 일대를 ‘팔우정해장국거리’로 지정했다. 한때 20여 집이 성행했지만 이제 열두어 집 정도가 남았다. 그나마 서너 집은 개점휴업, 폐점 상태이니 실제 운영을 하는 집은 열 집도 채 되지 않는다.

이제 두절콩나물, 조미료를 고집하고, 묵으로 끓여내는 해장국은 사라질 것이다. 누군가가 귀가 어둡기 전의 이귀록 씨 음식을 재현하지 않으면 ‘묵해장국’은 사라질 것이다. 비슷한 내용의 더 맛있는 해장국은 가능하겠지만 소박하고 정겨운 음식은 사라질 터이다.

‘팔우정해장국’의 묵해장국에도 이제 두절 콩나물은 사라졌다. 토렴도 변했고 을 사용하면서도 조미료도 사용하는 음식이 되었다. 인공조미료가 좋다, 나쁘다고 논쟁할 필요는 없다. ‘팔우정해장국’에서는 인공조미료를 사용하지 않았다. 이귀록 씨가 몇 해 전 주방 일을 떠나면서 음식은 달라졌다.

대단한 음식은 아니다. 소박하다. 평범한 식재료인 묵, 콩나물, 으로 국을 끓여냈다. 평범하지만 정겨운 음식이었다. 정겨운 음식이 사라지는 것은 아리다.

글ㆍ사진= 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경주 맛집 4곳]

서면식육식당

경주 외곽 아화에 있다. 식육식당이다. 가격이 저렴하다. 200g 기준 쇠고기 등심이 2만 원 대다. 가격이 싼 식육식당이지만 고기 질이 그리 나쁘지 않다. 푸짐한 고깃집.

황남빵

3대째 전승된 ‘경주 황남빵’. 엷은 피 속에서 단팥이 가득하다. 경주에 가면 본점에 들러 갓 나온 황남빵을 맛보는 것을 권한다. 뜨거운 황남빵은 독특한 맛이 있다.

삼릉고향칼국수

밀가루를 비롯해 찹쌀, 들깨, 땅콩 등 여러 종류의 곡물을 넣어서 만든 독특한 칼국수다. 경주 남산 지역을 다녀온 등산객들이 많이 찾는 집. 국물이 부드럽고 고소하다.

요석궁

경주 지역에서 보기 드문 한식당이다. 가격이 높지만 음식은 깔끔하다. 실내외 분위기가 일품이다. 식사와 더불어 고즈넉한 분위기도 즐길 만하다.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