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홍문관, 사간원, 사헌부를 삼사라고 했는데 이 기관은 왕권을 견제하는 역할을 했다. 반면 승정원은 왕명을 출납하는 곳으로 지금의 청와대 비서실에 해당되는 곳으로 왕의 최측근들이 근무했으며 왕권을 강화하는 역할을 했다. 인조(仁祖)때부터 승정원에서 일어났던 일을 기록한 것이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다. 2001년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은 1997년에, 일성록(日省錄)은 2011년 등재되었다. 이들 세 가지 기록물 모두 왕이 어떻게 조선을 이끌었는지 잘 보여주는 중요한 문서다.

일성록은 정조(正祖)가 세손시절부터 써온 일기가 바탕이 되어 만들어진 기록물이다. 왕이 된 정조 7년인 1783년부터는 비록 왕이 쓴 일기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개인의 일기가 아닌 엄연한 공식 국정일기로 본다. 정조가 승하하기 6년 전인 1794년 2월의 일성록을 보자. “오래 질병을 앓던 끝에 증세가 더 심해졌지만 내 병을 고치는 약은 의관에게 묻지 않아도 내가 잘 아니 동변(童便)과 소합원(蘇合元)을 들이라.”고 하명한다. 그리고 격기(膈氣) 즉 화병(火病)에 대한 한약을 많이 복용하였다고도 함께 말한다. 또한 왕이 상복하는 가미정기산 처방에 행인(杏仁)과 세신(細辛) 각각 1돈을 더 넣어서 1첩을 다시 달여 들이라고 명한다.

조선왕조실록이나 일성록에 기록된 정조의 면면을 보면 매우 활동적이고, 성격도 불과 같이 급하고, 일을 추진하기 위해 비밀리에 반대파로 여겨졌던 심환지에게 비밀편지인 어찰(御札)까지 보낼 정도로 열성적으로 조선을 이끈 개혁군주의 면모가 보인다. 어찰은 보는 즉시 태워 흔적을 없애야 했지만 심환지는 그걸 남겨두었는데 그게 최근에 발견되어 역사가들의 기존이론을 뒤엎는 결과를 초래했다. 역사에 만약이 없지만 약 100년 후에 태어나서 이 땅에 동의수세보원(東醫壽世保元)이란 걸출한 한의서를 남겼던 이제마가 아마도 정조를 만났더라면 ‘태양인’이나 ‘소양인’으로 분류했을 듯하다.

그리고 정조가 앓고 있던 격기(膈氣) 즉 울화병이 고쳐졌을 거라고 추측된다. 그랬다면 다시 건장해진 정조는 어떻게 조선을 이끌었을까? 초심을 잃지 않고 백성들을 위해 일했을까? 아니면 모든 일을 신하들에게 맡기고 정무에서 손을 땠을까? 오늘 소개할 한약재는 정조가 치료를 위해 달여서 먹었던 처방 속에 있었던 세신(細辛)이다. 양인(陽人)인 정조의 체질에는 맞지 않고 특히 격기(膈氣)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 소음인 한약이다. 세신(細辛)을 뜻풀이하자면 ‘가늘고 미세한 것이 엄청 맵다’란 뜻이다. 세신을 한번 맛본 사람들은 혀를 내두를 정도로 ‘쎄’하다는 걸 알 수 있다. 한약처방에 5푼 정도 소량이 들어가도 역시 ‘쎄’한 느낌을 받는다. 세신은 족도리풀 혹은 북세신, 한성세신의 풀뿌리 전체를 사용한다. 성질은 따뜻하고 독은 없고 맛은 맵다.(溫無毒辛) 약효는 주로 폐경(肺經)으로 들어가고 신경과 심경으로 들어간다. 풍한사(風寒邪)를 없앤다. 향기가 맹렬해서 얼굴의 일곱 구멍(七竅)를 뚫어주고 순환을 잘 시켜 통증을 없애준다. 통즉불통(通則不痛) 즉 통하면 통증이 없어진다는 이론에 준한 것이다. 또한 찬바람이 폐호흡이나 피부호흡으로 인체 내부로 유입되어 한담(寒痰)이 생겼을 때 이를 치료한다.

한담이란 찬 기운이 체내로 유입되어 진액의 이동을 방해해서 생긴 가래로 콧물도 이에 해당된다. 찬 기운을 몰아내는 산한(散寒)기능은 월등하지만 땀을 내는 발한(發汗)기능은 많이 미흡해서 찬바람으로 인해 피부근육이 찌뿌듯하게 되어서 근육통이나 관절통이 생긴 것을 풀어주는 기능이 약하다. 마황부자세신탕이란 처방이 있는데 오한(惡寒), 맥침(脈沈)이 있을 때 쓴다. 감기가 들었는데 양기가 떨어져 밖(表)으로 나가 싸울 기운이 없어 모두 속(裏)으로 가라앉아만 있어 가라앉은 침맥(沈脈)을 띨 때 쓴다. 부자는 양기의 절대량을 증가시키고 세신은 그 양기를 표면으로 실어 나르고 마황은 피부에 찬바람을 땀을 내서 날려 버린다. ‘쎄’할 정도로 방향성이 강해서 오두(烏頭)와 배합해서 치통을 치료하고, 천궁과 함께 두통을, 계지와 함께 쓰면 온 몸이 저린 비증(痺症)을 치료한다.

하늘꽃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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