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부리(다슬기) 해장국 전문… 매일 골부리 잡아 깊은 정성 들여 음식 차려

골부리 고유의 맛 살리는 방식으로 요리… 단정하고 담백한 맛

30여년 다슬기 잡아, 식당 운영은 3년 남짓…국과 반찬 수준급

'장터분식'의 이영란 대표. 30년 이상 '골부리'를 잡았다.

30여 년 동안 다슬기를 잡았다. 경북 안동, 영주, 영양 일대에서는 다슬기를 ‘골부리’ 혹은 ‘꼴부리’로 부른다. 안동 시내에는 ‘골부리 해장국’을 파는 곳이 많다. 안동에서도 퍽 외진 길안면. 자그마한 길안면 면 소재지의 ‘장터분식’. ‘골부리 해장국’을 판다고 써 붙였다. 30여 년간 ‘골부리’를 잡고 있는 주인 이영란 대표를 만났다.
'장터분식' 바깥 모습.

‘골부리 해장국’ 집 이름은 ‘장터분식’?

‘장터분식’. 이름 그대로 아주 작다. 작은 분식집만 하다. 길안은 안동 시내에서 제법 멀리 떨어져 있다. 좁은 2차선 도로가 길안면 소재지의 제일 큰 길이다. 길옆에 자그마한 가게가 있다. ‘장터분식’. 오래 전에는 이 일대가 면에서 제일 큰 ‘장터’였을 터이다. 그래서 ‘장터분식’일 것이다.

주인 이영란 씨는 이 가게를 운영한 지 겨우 3년 남짓이다. 재미있는 ‘뒷 이야기’를 듣고 인터뷰를 결정했다. 30년. 이영란 씨가 ‘골부리’를 잡은 세월이다. 이영란 씨는 ‘장터분식’에 ‘골부리’를 대주던 ‘공급업자’였다.

'골부리' 해장국.

“서너 해 전에 원래 주인이 나이도 들고 몸도 아프다고 가게를 접었습니다. 안동 시내에 가게를 낸다고도 하고 여러 가지 이야기가 들리더니 결국 가게를 접고 다른 이에게 넘겼습니다. 제가 바로 인수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인수했지요. 저는 인수할 생각도 없었고 그저 누가 하든 제 입장에서는 ‘골부리’만 공급하면 되니까.”

작은 시골 면 소재지의 자그마한, 10평 정도의 작은 가게다. 인수고 뭐고 따질 일도 아니었다. 원 주인이 가게를 접으면서 외지에서 온 이가 가게를 인수했다. 무심결에 넘겼다.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발생했다. 새로 가게를 맡은 사람이 이 씨가 잡아오는 ‘골부리’를 사용하지 않고 수입산 ‘골부리’를 사용했다. 가게 인수 후 잠깐 이 씨가 잡아오는 ‘국산 골부리’를 사용하는가 싶더니 곧 수입산으로 바꿨다.

속은 상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국산과 수입산의 가격 차이는 심하다. 대부분의 가게들이 수입산을 사용한다. 수입산의 경우, 운반, 유통 과정이 문제다. 먼 곳에서 오는 것들이다. 훈제 처리를 하거나 각종 약품으로 처리를 한 다음 들여올 수밖에 없다. 맛은 달라진다. 우리가 여행지, 관광지에서 만나는 다슬기 국에 양념이 과한 이유다. 맛이 이상하면 주방에서는 양념을 과하게 하기 마련이다. 과한 양념은 ‘골부리’ 국의 맛을 감춘다.

그렇다고 안면도 트지 않은 외지 사람에게 “웬만하면 국산을 사용하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 지켜볼 수밖에. 가슴앓이는 채 몇 달이 지나지 않아 자연스럽게 끝났다.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은 오래지 않아 가게 문을 닫았다.

“가게 문을 닫고도 한참동안 비어 있었지요. 기억에는 약 6개월 정도 가게가 비어 있었습니다. 그때 원래 주인을 만나서 ‘제가 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지요.”

'골부리' 크기가 다르다. 쓰임새도 다르다.

왜 다슬기는 이름이 많을까?

다슬기가 표준어다. 강원도, 충청도 일대의 ‘올갱이’, 전라도 지역의 ‘데사리’, 경상도 지역의 ‘고디’ 그리고 경상도 중에서도 북부지역에서는 꼬박꼬박 ‘골부리’ ‘꼴부리’라고 부른다. 다슬기는 왜 이렇게 이름이 많을까? 그리고 왜 다슬기로 통일하지 않고 꾸준히 자신들이 부르는 이름을 고집할까?

전문적인 연구가 없으니 확언하기는 힘들다. 다만 추론할 수는 있다. 자주, 많이 긴요하게 먹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역 주민들이 꾸준히 이름을 사용한다. 한번 사투리로 이름이 정해지면 좀체 바꾸기 힘들다. 지역 사회 구성원들이 모두 새로운 이름에 적응하기는 힘들다. 바꿀 필요도 없다.

‘장터분식’의 이영란 대표는 경북 영양 청기 출신이다. 마치 드라마 같은 과정을 거쳐 남편 권기창 씨와 결혼했다.

경북 영양에서 여고를 졸업 후, 안동의 보험 관련 회사에서 교육 팀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처녀 적 몸무게가 39kg에 불과했다. 친정아버님은 성균관 관장을 지냈을 정도로 한학(漢學)에 조예가 깊었다. 시집(詩集)을 낸 시인이자 한의사였다.

이영란 씨는 몸이 약한 맏딸이었다. 몸이 너무 약하니 시집도 보내지 않고 친정에서 잘 ‘관리’하고 있었다. 벙어리 냉가슴. 총각 권기창 씨는 속만 태웠다. 결국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일을 일으켰다.

‘커피 한 잔 마시게 5분만 시간을 내달라’고 한 다음 승용차에 태웠고 그 길로 경남 마산으로 달렸다. 30여 년 전의 일이다. 혼인신고부터 먼저 해놓고 매달렸지만 처가에서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몇 해 동안 장인, 장모 얼굴도 보지 못했다. 남편 권기창 씨는 현재 길안면 소재지에서 작은 사무실을 내고 보험 업무를 하고 있다.

“결혼하고 나서 고생도 많이 시켰지만 이젠 아내의 몸무게가 50Kg가 되었습니다. 몸무게 늘어난 것으로 큰 소리를 치지요.(웃음)”

‘골부리’를 계속 잡았던 것도 이영란 씨의 건강 때문이었다.

남편 권기창 씨는 안동 시내 출신이다. 길안으로 온 것은 과수원을 하기 위해서였다. 농사라고는 처음이었다. 대실패. 상세히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과수원 사업 실패 후’, 경제적 어려움이 있었을 터. ‘골부리’ 잡이. 동화 같은 이야기가 시작된다.

'골부리' 해장국을 끓이기 위해서는 일일이 속을 빼내야 한다.

“거의 매일 골부리를 잡아서 국을 끓이니까 아이들이 싫었겠지요. 어느 날 아이들이 가까운 식당에 ‘골부리’를 가져다주었던가 봅니다. ‘골부리 값’도 제법 받아 왔고요.”

매일 먹는 ‘골부리’가 지겹기도 했을 것이다. 어린 아들이 “엄마, 앞으로 ‘골부리’ 팔아서 맛있는 고기 사먹자”는 말이 ‘골부리 잡이’의 시작이 되었다.

“강바닥에 돌들이 많습니다. 자갈도 많고요. 그걸 밟고 다니니까 몸의 통증도 없어지고 건강에도 좋아서 건강도 회복할 겸 꾸준히 ‘골부리’를 잡았지요.”

이영란 씨가 잡는 ‘골부리’는 1일 대략 2kg 정도다. ‘골부리’는 야행성이다. 낮에는 바닥의 돌 밑바닥에 숨어 있다. 해가 지고 어둑어둑해지면 ‘골부리’는 활동을 시작한다. 강이나 개천의 돌 위로 올라온다.

'골부리'를 잡는 이영란 대표.
'골부리' 잡이에 사용하는 도구.

‘골부리’ 잡다가 사고도…욕심 내지 않고 하루 2kg쯤 잡아

깊은 개울에서 ‘골부리’를 잡다가 사고가 나기도 한다. 사망사고가 생기기도 한다.

“어두운 밤에 랜턴을 켜고 수경 같이 생긴 것으로 강바닥을 보고 ‘골부리’를 잡습니다. 허리까지 물이 차는 물속에서 움직이면 체력 소모가 생각보다 심합니다. 물을 오랫동안 바라보면 어지럼증도 생기고요. 체력이 심하게 떨어지고 어지러우면 자기도 모르게 물에 빠지지요.”

매미채 같이 생긴 것은 ‘골부리’를 잡아서 넣는 도구다. 긴 장화를 신고 넓적한 수경과 매미채 같이 생긴 것을 챙겨서 강으로 들어간다.

아직 채 자라지 않은 ‘골부리’를 잡는 것은 불법이다. 몸길이가 1.5cm가 되지 않는 ‘골부리’를 잡는 것은 골부리의 씨를 말리는 행위다. 그물로 강바닥을 쓸어 작은 다슬기까지 잡는 것도 불법이다.

“예전에는 하루 5kg 정도 잡았습니다. 하천에 자꾸 손을 대니까 ‘골부리’도 예전 같지 않습니다.”

가게 영업시간도 특이하다. 이른 아침이면 문을 연다. 오후 2∼3시 문을 닫는다. 오후 3시가 미리 정해둔 문 닫는 시간이지만 ‘골부리’가 부족할 경우 일찍 문을 닫는다. ‘골부리’ 잡이는 오후 6시30분 정도에 시작한다.

장성한 자식들은 외지에 나가 산다. 남편과 단 둘이다. 꾸준히 ‘골부리’를 잡는 것은 첫째는 건강, 두 번째는 지금도 여전히 이영란 씨가 잡아온 ‘골부리’를 사용하는 식당 때문이다. 길안천까지 멀지 않은 길이지만 꼭 남편이 아내를 데려다 준다. 고급승용차에 ‘골부리’ 잡는 도구를 싣고, 부부는 짧은 거리지만 매일 ‘데이트’를 한다.

“원래 두 집에 ‘골부리’를 공급했습니다. 잠깐 ‘장터분식’에서 ‘골부리’를 쓰지 않을 때 한 집을 더 더해서 ‘골부리’를 공급했지요. 제가 ‘장터분식’을 운영하면서 새로 추가했던 집에는 양해를 구했습니다. 더 공급하기 힘들다고.”

‘골부리’는 1kg 당 대략 1∼2만 원선이다. 하루 2kg을 잡는다면 ‘수입’은 2∼4만 원 정도다. 저녁나절 두어 시간의 노동으로 이 정도 돈을 쥘 수 있다면 적은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대단한 돈벌이가 되는 것도 아니다.

'장터분식'의 골부리 해장국. 직접 만드는 반찬이 수준급이다.

‘골부리’ 해장국 값이 싸다는 자랑과 더불어 “우리 식당 ‘골부리’ 해장국이 맛있는 것은 조선간장을 사용하기 때문”이라는 자랑이 덧붙는다. 6000 원짜리 대중적인 해장국을 내놓으면서 조미료, 감미료도 사용하지 않는다. 골부리 특유의 쌉쌀한 맛이 살아 있다.

충청도 ‘올갱이 국’은 대부분 된장을 주 양념으로 사용한다. 아욱 등을 넣는다. 더러 관광지의 ‘올갱이 국’은 매운 맛이 강할 때도 있다. ‘올갱이’의 맛은 느끼기 힘들다.

‘장터분식’의 ‘골부리 국’은 간장 베이스에 부추가 들어간다. 같은 식재료를 사용하지만 국물 맛은 전혀 다르다. ‘골부리 국’이 단정하고 담백하다. ‘골부리’의 맛도 강하다.

‘장터분식’의 ‘골부리 국’. 허술해 보인다. 그러나 허술해 보이는 ‘골부리’ 국 한 그릇에 담아내는 정성은 놀랍다. 부추 외에 말린 토란 대와 파를 넣는다. 파는 한번 슬쩍 삶아서 누린내를 빼고 사용한다. 역시 골부리의 고유한 맛을 가리기 때문이다. 누린내를 뺀 대파는 달싹하다. 반찬이 네댓 가지 나온다. 모두 단정한 맛을 지니고 있다.

“외할머니 손에서 자랐습니다. 외할머니 음식 솜씨가 아주 좋았습니다. 외할머니가 어린 시절 해주신 음식들을 떠올려 봅니다. 그대로 따라하지요.”

오전 시간에 인터뷰를 하고, 오후 6시30분 길안천에서 ‘골부리’를 잡으러 가는 이영란 씨를 다시 만났다. 아직은 길안천에 골부리가 비교적 흔하다. 물도 그 정도쯤 맑았다.

글ㆍ사진= 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안동 인근 민물생선 맛집 4곳]

물고기식당

은어 찜과 매운탕, 잡어 튀김 등을 먹을 수 있는 곳이다. 안동 시내에 있다. 민물 생선을 주문하면 청국장을 같이 내놓는다. 반찬, 청국장이 압권이다.

왕고집매운탕

주인이 직접 잡아오는 민물생선만 사용한다. ‘안동산 민물장어’부터 쏘가리, 메기, 꺾지, 잡어 등이 가능하다. 어탕국수도 먹을 수 있다. 실내와 음식 모두 정갈하다.

평화식당

안동시 길안면에 있다. ‘장터분식’ 바로 앞집. ‘장터분식’의 주인이 ‘길안천 골부리’를 직접 공급한다. 오후 시간, ‘장터분식’이 문을 닫고 나서도 ‘평화식당’은 영업을 한다.

유정식당

안동 옆, 경북 예천에 있는 미꾸라지 전골 전문점이다. 주인이 매일 인근 논, 개울 등에서 미꾸라지를 잡는다. 미꾸라지를 통째로 넣고 끓이는 전골냄비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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