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안방마님께서 길을 가다가 싱싱하고 좋은 음식재료가 나오면 아이들에게 이렇게 저렇게 해 먹였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는 것을 듣는다. 혹시 아이들 없이 단둘이 외식하면 아이들 몫으로 꼭 음식을 싸서 챙겨가는 습관도 생긴 것 같다. 어느 집이나 매 한가지로 아이들이 한참 클 때는 냉장고에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하나 가득 채워 놓아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금방 텅텅 비게 만들어 사흘이 멀다 하고 냉장고를 채워 넣곤 한다. 육개장이나 곰국 그리고 카레 같은 음식은 한 번에 대량으로 조리해서 냉동보관 했다가 음식하기 귀찮거나 배고파서 빨리 먹기를 원할 때 한 개 씩 꺼내서 데워서 먹곤 했다.

이젠 조금 컸다고 냉장고의 음식이 줄어드는 속도가 옛날 같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별로 우러러 볼 점이 없는데도 필자가 항상 우러러보면서 말해야 할 정도로 키가 컸으니 냉장고의 음식들은 자신의 소임을 다한 것으로 보인다. 육개장이나 황태해장국 같은 것을 조리할 때 국물을 시원하게 할 요량으로 함께 넣어 끓이는 대파나 무가 국그릇에 함께 담기는 순간 애들은 하나같이 그것만 골라 덜어내고 먹는다. 돌이켜보면 어릴 적에 우리 또한 그랬었던 것 같다. 고등어 조림할 때 같이 넣은 무와 삼계탕 안에 있던 대추와 인삼, 육개장 안의 대파와 무를 왜 어른들은 맛있다고 하는지 그리고 뜨거운 욕탕에 들어가면서 왜 시원하다고 했는지 또한 뜨거운 음식을 먹으면서 왜 시원하다고 했는지 그 이유를 몰랐다. 이제는 그런 것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아이들이 그렇게 하는 모습을 보니 문득 지구별에 온지 꽤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어느 시대나 주부들의 고민은 하루 새끼에 머물러 있다. 마찬가지로 세상의 모든 한의사들도 그들의 환자에게 어떤 ‘자연의 음식’을 먹일까를 고민한다. 그들은 ‘세프’다. 그들은 환자에게 잘 맞는 자연의 온갖 재료를 가지고 그들이 질병을 이길 수 있도록 한 상 잘 차려서 대접한다. 때론 주부들이 사용하는 음식재료인 대파, 양파, 마늘 같은 갖은 양념과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같은 육류와 각종 생선도 함께 사용한다. 이 때는 이들도 어엿한 한약으로 탈바꿈한다. 대파의 끝부분은 총백(葱白), 양파는 양총(洋葱), 마늘은 대산(大蒜)으로 부른다. 멋들어지게 한자어로 휘 갈겨놓은 한약 처방을 보면 하늘에서 떨어진 한약재라고 생각하기 쉽겠지만 우리가 익히 먹는 음식으로 한 상 거하게 받는다고 생각하면 한약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질 것이다.

총백(葱白)은 대파의 인경(鱗莖) 즉 비늘줄기다. 총백은 대파의 잔뿌리 부분을 잘라내고 거기서부터 4-5Cm정도 되는 부위까지 한약재로 사용된다. 총백 자체는 발산풍한약 중에 가장 약한 한약재라 누구라도 손쉽게 사용할 수 있다. 당연히 강력한 발산풍한약이 가지는 강한 성질을 띠지 않아서 부작용이나 주의해야 할 점이 없다. 그래서 감기가 살짝 들어서 컨디션이 안 좋을 때 누구나 음식으로 섭취할 수 있다. 총백은 성질이 따뜻하고 맛은 맵고 독은 없다. 폐경(肺經)과 위경(胃經)으로 간다. 모든 발산풍한약의 약효가 그러하듯이 땀을 내서 찬바람 때문에 꽉 막힌 피부 길을 열어준다. 이를 발한해표(發汗解表)라고 한다. 따뜻한 기운은 양기를 북돋아 잘 돌게 해서 찬 기운을 흩어준다. 이를 통양산한(通陽散寒)이라 한다. 상하표리를 다 돌아다니면서 기운을 잘 돌게 해서 통증을 멎게 한다.

응급의료의 혜택을 볼 수 없는 오지를 여행할 때 추위로 인해서 갑자기 이질(痢疾)이 들어 설사를 하면 잘 못하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이럴 때 응급처치로 총백을 달여 복용하면 차가운 걸로 발생한 복통 즉 음한복통(陰寒腹痛)이 조금이나마 가라앉을 수 있다. 총백보다 더 강력한 건강(乾薑)이나 부자(附子)등이 있으면 훨씬 빨리 환자의 안정을 도모할 수 있다. 방약합편에 반총산(蟠葱散)이란 처방이 있다. 비위가 허(虛)하고 냉(冷)해서 윗배와 아랫배 할 것 없이 복부 전체가 살살 아프면서 칼로 베는 것 같이 아플 때 쓰는 처방으로 창출(蒼朮)과 감초(甘草)가 군약(君藥)이고 총백 또한 한자리를 얻어서 자신의 역할을 다 한다. 그래서 처방명에 총(葱)이란 글자가 들어간 것이다.

하늘꽃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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