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민속촌이나 남산골 한옥마을 혹은 북서울 꿈의 숲에 남아 있는 옛 가옥들을 보면 방의 크기가 정말 작아서 그 속에서 어떻게 살았을까? 의문을 갖는 사람들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흔히 초가삼간, 아흔 아홉 칸 같이 조선시대의 집의 크기를 재는 기본 단위는 한 칸이다. 칸은 간(間) 즉 기둥과 기둥 간의 ‘사이’를 말한다. 한 칸은 사각형 형태의 4 기둥으로 둘러 싸여서 생긴 공간이다. 오늘날의 단위로 하면 대략 5㎡정도 된다.

돌이켜보면 60-70년대 까지만 해도 방 한 칸의 넓이 면에서는 그다지 큰 변화가 없었던 것 같다. 그 좁은 방에서 형제나 자매들 끼리 변변한 냉방기구 없이 한여름을 낫다고 생각하니 그 때를 살아 낸 내 자신이 대견스럽게 여겨진다. 하지만 조선의 가난했던 선비들은 여름이 더욱 가혹했던 것으로 보인다. 성리학이 나라의 근간이었던 관계로 예(禮)를 중시하지 않을 수 없었던 터라 한 여름 푹푹 찌는 무더위에도 의관을 정제하느라 갓을 쓰고 도포를 입고서 온전히 그 여름을 견뎌 나가야 했다. 농민이나 노비들처럼 시냇물에 뛰어드는 일은 체면 때문에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조금 부유한 양반네들은 여름이 되면 깊은 산속의 정자로 피서를 갔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말기에는 단오가 되면 공조(工曹)에서 만든 부채를 신하들에게 하사했다는 기록이 있다. 정조실록에 보면 정조 7년 7월의 기록에 ‘태묘의 헌관(獻官)에게 제호탕(醍醐湯)과 계강환(桂薑丸)을 하사하면서 하교하기를 이 약물(藥物)을 내려 더위를 씻게 하려는 것이니, 되도록이면 여러 집사들과 나누어 먹을 것’을 하명했다. 여름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왕실의 처방이 바로 제호탕(醍醐湯)이다. 제호탕이라고 대단한 것은 아니고 그 처방을 보면 오매(烏梅) 즉 껍질을 벗기고 짚불 연기에 거을러 말린 매실과 꿀이 주약이고 백단향과 사인 초과가 조금씩 들어간다. 만드는 과정은 꿀에 다른 한약들을 갈아서 넣은 다음 끓이는 것이 다다. 그걸 단지에 보관했다가 갈증이 날 때 찬물에 타서 한 모금씩 마시면 된다. 요즘으로 말하면 꿀을 넣어서 달달하게 만든 매실차 정도쯤 된다. 여름에 한의원에 없어서는 안 되는 한약재를 들라하면 필자는 향유(香薷)와 백편두(白扁豆)를 말 할 것이다. 이 둘은 단짝친구다. 하나만 쓰기에는 약간 어색하다.

오늘 소개할 한약은 향유다. 발산풍한약이다. 더위를 먹었을 때 쓴다. 서(暑)는 습도가 높으면서 더운 즉 찌는 더운 날을 말한다. 그런데 향유는 발산풍한약 즉 따뜻한 성질을 가진 한약인데 더위를 먹었을 때 쓴다고 하니 앞뒤가 안 맞다. 향유는 정확하게 말하면 음서(陰暑)를 치료하는 한약이다. 밖이 푹푹 찌는데 그걸 피해서 대청마루 같이 서늘한 곳에 오래 있어서 생긴 감기가 음서다. 달리 ‘노야기’로도 불리고 우리나라 각지에서 자생한다. 성질은 약간 따뜻하고 독은 없고 맛은 맵다. 폐경(肺經)과 위경(胃經)으로 들어간다. 다른 발산풍한약과는 달리 방향성이 강한 특징이 있다. 밖으로는 찬 기운에 꽉 막힌 폐경의 피부 부위를 풀어준다. 이를 발한해서(發汗解暑)라고 한다. 안으로는 고여 있는 물인 습탁(濕濁)을 잘 말려서 위경을 편안하게 한다. 이를 온위조중(溫胃調中)이라 한다. 방향성은 습기와 물기를 말려주는 역할을 하는데 이를 행수산습(行水散濕)이라고 한다. 겨울철에 찬바람을 쐬면 마황(麻黃)같은 강력한 약재를 써야 하지만 한 여름 더운 날씨에 맵고 열이 많은 마황을 쓰기에는 마땅하지 않다. 그래서 옛이사들은 겨울 마황, 여름 향유라고 하였다.

또한 요즘 같이 냉장고가 발달해서 여름에 아이스크림 같은 찬 식품을 많이 섭취하면 속이 차게 되서 배탈이나 설사를 하게 된다. 이 때 위장을 덥히고 따뜻하게 해서 토사곽란(吐瀉霍亂)을 멎게 한다. 여름철 무더위로 인해 땀을 바가지로 흘리거나 갈증이 나서 가슴이 답답하거나 몸에서 열이 뜨끈뜨끈할 정도로 대열이 날 때는 진액을 보충하고 열을 꺼는 약을 써야지 향유를 쓰면 안 된다. 절로 땀이 나는 증상에는 금지한다. 진액이 말라서 발열하는 사람 또한 적응증이 아니다. 이향산(二香散), 향유산(香薷散), 육화탕(六和湯), 향유양위탕(香薷養胃湯), 향평탕(香平湯) 등이 대표적인 처방이다.

하늘꽃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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