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베네치아에 머물 요량이면 파스텔톤으로 채색된 부라노(Burano) 섬에 가볼 일이다. 부라노의 길목을 가르는 수로들은 동화같은 색상의 지붕과 담장을 투영해낸다. 좁은 골목 사이로는 어촌마을의 일상이 소담스럽게 담겨 있다.

베네치아가 관광객들로 번잡하다면 부라노는 때묻지 않은 어촌주민들의 삶을 차분하게 그려낸다. 부라노의 운하들은 오히려 일상과 가깝다. 수상택시, 택배선들이 끊임없이 오가는 번잡한 베네치아의 모습과는 다르다. 주민들의 주업이 어업이고 선박들은 그들의 삶을 떠받치는 유일한 수단이다. 담장과, 집 앞의 배들은 가지런하게 색을 맞추고 있다.

예전에는 조업을 끝낸 뒤 각자의 집을 찾기 위해 일부러 색을 달리했다고 하는데, 요즘은 정부와 상의해 담장의 페인트 색을 정하고 지원을 받는다고 한다. 사연이야 어찌됐든 노랑, 하늘, 핑크, 연두의 가옥들은 부라노섬의 선명한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레이스 수공예로 알려진 어촌

부라노 선착장에 내리면 누구든 산 마우로 골목을 따라 사뿐하게 발걸음을 옮긴다. 기념품가게가 늘어선 길에서 수로를 따라 이동하면 부라노의 중심가인 발다사레 갈루피 거리로 이어진다. 거리 이름은 부라노 출신의 작곡가 이름을 따서 지었는데 길 끝 갈루피 광장에는 그의 동상도 들어서 있다. 광장 길에는 노천 레스토랑과 레이스 상점들이 나란히 늘어서 있다.

무라노섬이 유리공예로 유명해졌듯 부라노는 레이스 수공예로 세상에 알려졌다. 어촌마을에 불과했던 섬은 16세기 이후 정교한 레이스 공예품으로 이탈리아 전역에 명성을 떨쳤다. 19세기 후반 레이스 학교가 들어섰던 자리에는 레이스 박물관이 아직 남아 있다. 부라노의 수공예품들은 대량생산된 공산품에 자리를 내줬지만 아직도 자부심 깃든 수공예품들을 골목 어귀에서 만날 수 있다.

집집마다 다양한 색상과 장식들

갈루피 광장의 산 마르티노 성당은 부라노섬의 주요 이정표다. 이탈리아의 다른 종탑처럼 산 마르티노 성당의 종탑도 슬며시 기울어져 있어 묘미를 더한다. 성당을 중심으로 미로처럼 늘어선 부라노의 집들은 서로 색깔만 다른 것이 아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창문, 창틀, 문 손잡이의 조그만 놋쇠 장식은 물론 굴뚝의 모양이며 지붕의 기울기까지 어느 하나 같은 것이 없다.

외딴 어촌마을의 삶이지만 흩날리는 흰 빨래에도 정교함은 깃들어 있다. 관광객 사이에서 주민들은 잠시 일손을 놓고 이웃과 수다를 떨며 화분을 가꾸는 일상의 모습으로 섬 속에 스며든다.

부라노는 하나의 섬으로 통칭돼 불리지만 섬은 여러 섬마을들이 운하와 다리로 연결돼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부라노를 유쾌하게 즐기는 방법은 아기자기한 미로와 집들에 취해 수로와 다리를 건너며 마음껏 길을 잃어보는 것이다. 부라노에서는 걷거나 아치형 계단을 오르내리는 수고를 즐겁게 감수해야 한다. 섬 안에서 자동차는 물론 자전거 등 바퀴 달린 것들은 거의 다니지 않는다. 꼬마들이 뛰어놀기 좋고, 날렵한 스커트에도 운동화가 어울리는 곳이 바로 부라노다.

글ㆍ사진=서 진(여행칼럼니스트)

여행메모

▲가는길=부라노의 관문인 베네치아까지는 항공과 열차편이 다양하게 연결된다. 베네치아의 로마광장이나 산마르코 광장에서 무라노와 리도로 이동한뒤 부라노행 수상버스로 갈아탄다. 베네치아에서는 1시간 가량 소요된다.

▲숙소,음식=베네치아 본 섬 안에 숙소를 정하는게 편리하다. 성수기때 본 섬 안의 호텔들은 숙소 예약이 일찍 마감된다. 부라노에서는 오징어 먹물 파스타나 계란 노란자가 들어간 까르보나라가 먹을 만하다.

▲기타정보=베네치아의 부속섬들은 더불어 들러볼만하다. 리도섬은 매년 8월말~9월초면 베네치아 국제영화제로 들썩거리는 곳이다. 부라노섬 가는 길의 무라노 역시 유리 공예 공방으로 명성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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