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천의 여름은 고요하고 신비로운 녹음의 세상이다. 세인의 발길이 닿지 않은 미지의 공간에 숲과 물이 뒤엉키며 깊은 생태계의 향연을 만들어낸다.

화천 북한강을 따라 민통선 지역을 거슬러 오르면 상류에는 드넓은 습지가 모습을 드러낸다. 화천 양의대 습지는 일반인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DMZ 생태계의 숨은 보고다. 양의대 습지는 군사용 철교인 안동철교에서 오작교까지 이르는 12km의 습지대를 일컫는 말이다.

반세기 넘게 사람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습지의 풍경은 몽환적인 장면들을 연출한다. 이른 아침이면 아득한 물안개로, 한가로운 오후에는 물을 마시러 강변에 나서는 노루, 고라니의 발걸음으로 낯선 세계에 들어선 듯한 감동을 전한다.

DMZ 생태계의 보고, 양의대습지

양의대 습지로 가는 길부터가 가슴 설렌다. 수달, 사향노루, 삵, 담비, 노루 등 천연기념물 등이 양의대 습지 일대에서 서식한다. 이 길을 왕래하는 군인이나, 안내원들이 전하는 동물과 맞닥뜨린 생생한 목격담은 이제는 흔한 화젯거리가 됐다. 양의대습지 주변으로는 금강초롱, 각시붓꽃, 노루귀 등의 희귀식물들도 자생한다. 양의대 습지 일대는 DMZ 습지보전지역중 가장 우수한 핵심 야생생물 서식지로 평가받고 있다.

안동철교가 놓이기 전 이곳 ‘안똥마을’ 주민들은 나룻배로 강을 건너 소달구지를 타고 화천장터를 오갔다고 한다. 해발 1194m인 해산 기슭을 에돌아 넘는데만 반나절은 걸렸다고 한다.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비련의 생태계지만 한때는 촌부들의 평화로운 삶이 함께 녹아 있었음을 되새기게 만든다.

양의대 습지로 향한 발길은 자연스럽게 평화의 댐으로 연결된다. 세계평화의 종, 비목공원 등이 들어선 평화의 댐 일대는 해산터널을 경유하면 민통선 구간을 거치지 않고도 들어설 수 있는 개방된 공간으로 변신했다. 평화의 댐 언덕 위로는 거대한 규모의 세계 평화의 종이 눈길을 끈다. 29개국의 분쟁지역과 한국전쟁 당시 사용했던 탄피 등을 모아 만든 세계 평화의 종은 높이 4.7m, 무게 37,5톤의 외관을 뽐낸다.

세계평화의 종 너머로는 비목공원이 자리잡았다. 화천의 비무장지대에 배속된 한 청년장교가 잡초가 우거진 곳에서 무명용사의 돌무덤을 발견하고 노래로 만는 것이 비목이다. 비목공원에서는 비목의 탄생과 무명용사의 넋을 기리는 비목문화제도 열린다.

비수구미와 ‘숲으로 다리’ 트레킹

댐 아래로 내려서면 화천 생태 트레킹의 대명사인 비수구미다. 숲을 가로지르는 비수구미길에서는 야생화와 새소리가 어우러진 청정 숲길을 오붓하게 거닐 수 있다.

청정 화천땅은 다양한 생태체험으로 몸과 눈을 즐겁게 한다. 화천 생태투어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곳이 화천 산소길과 이어지는 ‘숲으로 다리’ 위를 거니는 것이다. 숲으로 다리는 소설가 김훈이 명명한 나무데크길로 북한강과 나란히 이어지는 숲지대를 코앞에서 감상하는 행운이 주어진다. 해뜰 무렵에는 발 밑에서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해 질 무렵이면 고요한 물과 숲의 정취로 묘한 감동을 전해준다. 나무데크길은 원시숲을 가로지르는 흙길과 연결되며 기분좋은 생태 산책을 만들어낸다.

산천어와 함께 화천을 상징하는 동물이 수달이다. 간동면 파로호변에는 국내 최초의 수달생태공원인 한국수달연구센터가 문을 열어 수달이 헤엄치고, 물고기를 잡아먹는 모습도 생생하게 구경할 수 있다.

글ㆍ사진=서 진(여행칼럼니스트)

여행메모

▲가는길=동서울 터미널에서 화천행 버스가 30분 간격으로 오간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춘천을 거쳐 소양2교를 경유한다.

▲음식=끝자리 3,8일 들어서는 화천 오일장에서는 인근 청정지역에서 난 향긋한 나물과 올챙이국수, 메밀전병 등 추억의 맛을 즐길 수 있다.

▲기타정보=안동철교와 평화의 댐을 잇는 민통선 구간은 최근에는 신분증이 있으면 누구나 출입이 가능해졌다. 단 양의대습지 전망 포인트까지 차량으로 오르려면 사전에 승인을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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