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따라 묻지마 범죄와 일순간의 화(火)를 참지 못하고 발생하는 각종 강력범죄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것 같다. 사회 전체가 바스락거리고 있다는 증거다. 한 사회의 스트레스 지수는 건강, 취업, 결혼, 경제, 노후 삶의 질, 워라벨 같이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어 다면평가 되어야 마땅하지만 필자는 계층 간 이동할 수 있는 사다리가 제거되었다는 걸 제일 먼저 꼽고 싶다.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걷어치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열심히 노력하면 보다 나은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 희망이 있으면 현실에서 발생하는 웬만한 고통은 감수하기 때문이다. 그 사회를 알려면 그 나라 국민들의 질병의 추이를 보면 된다. 최근 한의원에 내원하는 환자군 중에 유독 눈에 띄게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는 질환이 있다. 구설생창(口舌生瘡)이 그것이다. 입과 혀에 헌데가 생긴 것을 말한다. 매운 음식이나 뜨거운 음식이나 짠 음식을 먹으면 너무 쓰라려서 못 먹는 경우가 많다. 입과 혀를 자세하게 보면 살이 헐어서 회색을 띤 부위를 볼 수 있다. 또한 혀끝이 새빨갛게 되거나 혀 전체에 가시가 돋고 조그마한 이물질이라도 혀에 닿으면 따가워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경우도 있다. 둘 다 상열(上熱) 때문에 생긴 것이고 상열이 발생한 원인이 대개 과로(過勞)와 스트레스로 인한 것이다.

여러 번 칼럼에서 강조하지만 인체는 음양이고 음양은 수화(水火)로 대변되는데 여기서 화(火)는 곧 열(熱)이고 열(熱)은 우리가 살아있다는 증거다. 주변의 모든 대상들과 온도가 같아지는 순간 우린 죽은 목숨이다. 열이 인체에 골고루 일정하게 배달되려면 혈(血)을 타고 돌아야 하는데 혈(血)은 수(水)가 바탕이 되어서 생성된 것이다. 즉 화(火)가 신장의 수(水)를 데워서 수증기처럼 만들면 그 에너지가 인체 곳곳에 전해지는 데 이게 곧 열(熱)이다. 체열진단기로 찍었을 때 심장만 조금 온도가 높고 다른 곳의 온도분포가 일정하게 나타난다면 정상으로 여긴다. 이렇게 인체에 골고루 열이 분포하다가 열 받는 일을 만나거나 과로를 하면 물과 불이 분리되고 이 때 발생한 열은 병리적인 열로 위로 솟구쳐서 얼굴 부위를 데우게 된다. 인체는 단백질로 된 고기인지라 열을 받으면 물러터지게 되고 그런 일이 입이나 혀에서 일어나면 구설생창이 된다.

과거 드라마를 보면 특수부대 요원들이 적군에게 잡혔을 때 중요 정보가 새 나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독극물로 자살한다거나 칼로 손목을 긋는다거나 혀를 깨물어 자살하는 장면이 종종 있었다. 하지만 혀를 깨문다고 생을 마감하지는 않는다. 입이나 혀는 혈액이 풍부하지만 대동맥이나 큰 혈관들이 없어 혀가 잘린다고 과다출혈로 사망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입이나 혀가 다른 곳 보다는 혈액이 많고 그런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음식물의 소화에 있어 치아와 혀와 입은 위장에서 소화가 빠르게 진행되기 좋도록 음식물을 사전에 잘게 부수고 혀로 효소와 음식물이 잘 섞는다. 효소의 활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온도다. 아무리 잘게 음식물을 부숴도 효소가 없다면 소화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찬 음식이 들어왔을 때 소화효소의 기능이 위축되지 않도록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려면 뜨거운 혈액이 풍부해야 한다. 찬물을 머금고 조금 있다가 손으로 뱉어 보면 금방 따뜻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과로나 스트레스로 열이 입이나 혀로 몰리면 당연히 금방 익어서 헌데가 생긴다.

신해용(申海容)이 1913년 발간한 ‘단방비요 경험신편(單方祕要 經驗新編)’은 어떤 증상에 대해 한 두 개의 한약재를 써서 비교적 간단하게 치료하는 처방을 편집해서 소개하고 있다. 종두법을 개발한 한의사 지석영이 교열했다. 그 책의 구설부(口舌部. 입과 혀의 질병)에 보면 혓바늘이 돋을 때에 박하즙과 꿀을 같은 양으로 섞어 바르면 낫는다고 되어 있다. 광제비급(廣濟秘笈)에도 같은 내용이 써 있다. 현대 한의학에서는 혀나 입에 짓무른 부위에 란셋으로 따 주어서 자락(刺絡)하면 열이 혈(血)을 따라 빠져 나오면서 하루 밤 사이에 많이 증상이 완화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때 사용하는 한약재들이 열을 흩어주는 발산풍열약(發散風熱藥)이다.

하늘꽃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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