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연다는 것은 수확을 의미한다. 섬진강이 바다에 몸을 허락한 하동 일대는 은은한 재첩 향이 묻어 나는 곳이다. 섬진강하류, 마을 아낙네들은 재첩 잡는 갈퀴질로 고요한 하루를 시작한다.

바다와 섬진강이 만나는 하동 신기리 마을은 예로부터 재첩이 많이 잡히는 곳이다. 아침녘 물이 빠질 때면 섬진교와 섬진철교 사이에 재첩 잡는 아낙네들이 몰려 들어 장관을 이룬다. 젊은 아낙네들은 어른 키만한 그랭이(조개 갈퀴)를 들고 강 가운데로 배 타고 나서고, 할머니들은 강가에 앉아 작은 소쿠리를 들고 저녁 찬거리를 준비하며 섬진강에 몸을 기댄다.

강변에 일렬로 늘어선 채 재첩을 쓸어 담는 아낙네들의 모습은 섬진강 뱃길이 이어진 ‘하동 80리’ 중 가장 고요하고 숭고한 장면이다. 아기 손톱처럼 자그마한 재첩들은 오랜 기간 이곳 주민들의 질긴 생계의 수단이기도 했다.

신기리 마을 재첩 잡는 아낙네들

"예전에는 강바닥을 긁어 내면 다음날 또 까맣게 재첩이 올라 왔어예. 요즘은 다른데서는 섬진강 재첩 구경하기 힘들지예. 수온이 올라 가고 물이 짜서 여기도 재첩이 많이 줄었어예."

하동 신기리의 재첩은 섬진강 일대에서도 그나마 살진 조갯살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곳이다. 재첩은 민물과 바닷물이 교차하는 곳에서만 서식하고 물이 조금만 오염돼도 살지 못한다. 물때와 상관없이 한낮을 피해 아침 일찍 재첩 잡이에 나서는 것도 뜨거운 햇빛에 민감한 속성 때문이다. 섬진강 재첩은 여름이 끝날 무렵 맛이 들기 시작해 가을까지 향긋한 맛을 이어간다.

재첩을 잡을 때는 강물 위에 커다란 함지를 띄워 놓고 긴 막대 끝에 부채살 형태의 긁개가 달린 그랭이란 도구를 이용하여 강 바닥을 훑어 채취한다. 이곳에서 채취한 재첩들은 광택이 나고 검은빛이나 황금색을 내는데 색깔이 누렇거나 껍질이 투박하면 중국산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손톱만한 크기의 재첩은 크기는 작아도 영양이 높아 ‘조개중의 보약’으로 불린다. 이곳 사투리로 ‘갱조개’라고도 하는데 강에서 나는 조개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담백한 맛과 추억을 담은 재첩국

예전에는 낙동강에서도 재첩이 많이 잡혔는데 낙동강 하구가 오염되면서 그 명성이 하동으로 넘어 왔다. 과거 부산에서 “재칫국 사이소”하며 새벽 골목길을 누비던 재첩국 장수의 투박한 목소리를 기억하는 부산 토박이들은 담백한 재첩 맛을 못 잊어 하동까지 맛집 나들이를 오는 사람들도 있다.

섬진강 재첩은 국으로 숙회로 먹는다. 섬진강변에 앉아 강바람을 맞으며 맛보는 시원한 재첩국은 별미중의 별미다. 조갯살의 향긋함과 부추의 깔끔함이 어우러진 재첩국은 비린내 없이 칼칼하고 고소한 맛을 낸다. 데친 제첩에 배를 채 썰어 넣은 뒤 야채와 초고추장에 무쳐 먹는 재첩회도 매운맛을 즐기는 애호가들에게 인기가 높다.

하동을 웰빙의 고장으로 부르는 데는 녹차도 한 몫을 한다. 투박한 야생 녹차를 음미하려면 하동 화개면 일대가 좋다. 화개면 쌍계사 주변은 야생차 시배지로 알려졌고 가장 오래된 차나무도 있다. 지리산 자락의 이슬을 먹고 자란 이곳 야생녹차는 진하지 않으나 은은한 향을 뿜어낸다.

글ㆍ사진=서 진(여행칼럼니스트)

여행메모

▲가는길=대전~진주간 고속도로와 남해고속도로를 경유해 하동 IC에서 빠져나온다.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화개, 하동까지 버스가 운행한다. 서울에서 약 3시간 30분 소요.

▲숙소=하동 읍내에 모텔이 다수 있으며 섬진강변에도 펜션 등이 들어서 있다. 섬진강 인근 백운산 자연휴양림은 20여동의 숲속의 집을 운영하고 있다.

▲기타정보=861번 도로는 최고의 섬진강 드라이브 코스다. 차량 운행수가 19번 국도에 비해 적어 섬진강을 여유롭게 감상하기에 좋다. 하동여행 때 짧은 산책을 원한다면 악양들판앞 평사리공원이나 섬진철교 아래 노송이 우거진 송림을 거닐어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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