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빔밥은 한국 특유의 식문화… 개방ㆍ공유ㆍ참여형 ‘통섭’의 음식

경북 여양 '음식디미방'의 잡채다. 섞어서 비비면 비빔밥 재료가 된다.
백남준의 비빔밥 문화론

비빔밥은 한국 사람들만 먹는 음식이다. 별 것 아닌 것 같은데 외국인들이 환호하는 이유가 있다.

비디오 아티스트 고 백남준 선생은 아주 정확하게 비빔밥을 설명했다. “비빔밥은 2개 이상의 문화가 같은 공간에서 충돌, 융합하여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했다. 밥, 고명, 장(醬)이 한 그릇에 뒤섞여 전혀 새로운 제3의 맛을 창조해내는 것이 바로 비빔밥이라고 정확하게 표현한 것이다. 1994년 백남준 선생의 인터뷰에서 나온 말이다.

“비빔밥 정신을 아는 한국인은 멀티미디어 시대에 잘 적응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백남준 선생은 이때 이미 멀티미디어 시대의 ‘통합’이 비빔밥의 ‘섞임’과 같다고 표현했다. 비빔밥은 음식의 ‘통섭(統攝, consilience)’이다.

한식의 특질은 공간전개형 음식으로 밥상 위에 모든 음식을 동시에 배치하고, 더러는 비비고, 섞는데 있음을 백남준 선생은 이미 비빔밥을 통하여 간파한 것이다. 동, 서양 문화의 충돌, 융합을 나타내는 자신의 예술 세계가 “비빔밥의 원리와 같다”고 설명했다.

실제 평론가들도 “백남준의 예술세계는 비빔밥처럼 충돌, 융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각각 다른 문화들이 뒤섞여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는 힘은 ‘예술적 상상력’이고 그것은 비빔밥의 장(醬)이라는 표현도 나왔다.

비빔밥의 ‘섞임’과 ‘비빔’은 백남준 선생이 이야기한 대로 “전혀 다른 두 종류 이상의 문화가 같은 공간에서 충돌하고 융합하는 과정” 혹은 “두 가지 이상의 식재료가 융합하여 제3의 맛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비디오 아티스트 강익중 씨는 백남준 선생 사후, 과천 현대미술관에서 전시회를 개최하면서 관객들과 함께 비빔밥을 나눠 먹었다.

'음식디미방'의 잡채를 비빈 모습이다.

비빔밥 3.0?

일본인 친구에게 고스톱을 가르치려다 실패한 적이 있다. 한두 시간이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5일 동안 매일 두어 시간씩 가르쳤지만 결국 실패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고스톱이 가진 ‘유연성’과 ‘끊임없는 변화’를 일본인 친구는 끝내 받아들이지 못했다. 일본인은 변하면 죽는 줄 알고, 한국인은 변하지 않으면 죽는 줄 안다는 우스개가 있다.

음식도 그러하다 일본 나가사키 짬뽕은 거의 변하지 않았으나 한국 짬뽕은 완전히 다른 음식으로 변했다. 한식 중 비빔밥은 특히 끊임없이 변화하는 음식이다. 일본인들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음식이다.

일본인 친구는 처음부터 엉뚱한 질문을 쏟아냈다. “왜 오동 피 붉은 것은 두 장으로 셈 하느냐?” “왜 비 껍질은 두 장이냐?” “왜 ‘고도리’에 새가 있는 솔 광은 포함하지 않느냐?” 결정타는 ‘국화 열 끗’이었다. “왜 국화 열 끗을 피와 열 끗으로 혼용하는지?”를 물었다.

듣고 보니 궁금했다. 고스톱을 치면서 한 번도 그런 의문을 가진 적이 없었는데 ‘국화 열 끗’ 질문을 받고 보니 “그러네. 왜 그럴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일본인 친구는 “누가 고스톱을 만들었느냐?”고 물었다. 역시 궁금했다. “누가 만들었지?” 화투(花鬪)는 19세기 일본에서 한국으로 전해진 것이다. 고스톱은 화투를 전해준 일본인들은 배울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놀이가 되었다.

비빔밥은 누가 만들었을까? 여러 엉터리 가설이 있다. 궁중에서 한 해의 마지막 날에 남은 음식으로 비빔밥을 만들었다. 병영에서 병사들에게 내놓던 음식이다. 진주성 공방에서 나온 음식이다. 왕실의 종친에게 대접한 음식이다. 숱한 주장이 있다. 인터넷에 여러 이야기가 떠돌지만 모두 엉터리다.

비빔밥의 시작을 ‘들밥’에서 찾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농경사회에서 제일 중요한 일은 모내기, 김매기, 추수 등이다. 많은 사람들이 두레를 통해 일을 한다. 조선시대 그림에도 들판에서 밥을 나눠먹는 장면은 자주 등장한다. 그릇이 귀하다. 그림에도 그릇은 많이 보이지 않는다. 된장찌개만 얹어서 비비거나 그나마 나물이 흔한 계절에는 나물과 된장을 얹었을 것이다. 한 사람 당 그릇 하나면 충분하다. 한 그릇에 적당히 비벼서 먹으면 비빔밥이다. ‘비빔밥 들밥 기원설’이 오히려 그럴 듯하다.

고스톱을 누가 창안했는가? 모른다. 비빔밥을 누가 만들었을까? 불분명하다는 것이 정답이다. 이게 바로 비빔밥이다. 한때 우리가 ‘전두환고스톱’이니 ‘노태우고스톱’ ‘김영삼고스톱’을 차례대로 즐겼듯이 비빔밥도 끊임없이 진화, 발전한다. 마치 고스톱처럼.

비빔밥은 한국을 대표하는, 한식을 대표하는 음식이다. 별것 아닌 음식으로 여기지만, 비빔밥처럼 곡물과 채소, 고기 등을 뒤섞어 먹는 음식은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비빔밥을 만들어 먹는 민족이다. 점심시간, 회사 인근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입맛이 없으면 불쑥 열무김치와 된장찌개를 얹고 밥을 비벼먹는다. 고추장만 조금 얹으면 메뉴에도 없는 열무된장비빔밥이 된다.

경북 안동 지방의 탕평채다. 잡채와 비슷하고 마찬가지로 비빔밥 재료가 된다.

비빔밥, 음식문화의 3.0 버전

‘WEB 1.0’은 ‘소품종 대량생산’ 시대를 이르는 말이다. 생산자가 일방적으로 대량 생산하여 소비자에게 공급한다. ‘WEB 2.0’은 개방, 공유, 참여를 전제로 한 개념이다. 소비자들도 생산에 참여하고 모든 정보를 공유한다. 비빔밥은 ‘WEB 2.0’의 정신을 완벽하게 구현한 음식이다. 들에서 먹었던 비빔밥은 완벽하게 개방돼 있다. 들판의 일꾼들은 모든 음식을 공유한다. 스스로의 비빔밥을 스스로 만든다. 참여다. 비빔밥은 완벽한 ‘WEB 2.0’의 음식이다. 그러나 비빔밥은 ‘WEB 2.0’을 넘어선다.

삼성은 스마트폰을 만든다. 전 세계의 유저(user)들은 모두 삼성이 만든, 같은 모델의 스마트폰을 구입한다. 하지만 ‘같은’ 스마트폰을 받아든 순간부터 사용자들은 전혀 ‘다른’ 스마트폰을 사용하기 시작한다.

간단한 이야기다. 스마트폰이라는 하드웨어는 같지만 선택하는 앱(APP. APPLICATION)이 다르면 전혀 다른 스마트 폰이 된다. 스마트폰은 모두 같은 모델이지만 사용자의 손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전혀 다른 스마트폰이 된다.

비빔밥 그릇이라는 플랫폼은 같지만 그릇에 담긴 내용물은 전혀 다르다. 주어진 나물과 재료는 어플리케이션이다. 이 어플리케이션을 그릇이라는 플랫폼에 넣고 비비기 시작하면 ‘WEB 3.0의 음식’인 나만의 비빔밥이 된다. 같은 비빔밥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100명이 비비면 100종류의 비빔밥이 나오고 1만 명이 비비면 1만 종류의 비빔밥이 나온다. 완벽한 ‘비빔밥 3.0’이다.

비빔밥을 이야기하면 누구나 <시의전서(是議全書)>”의 ‘부ㅂㅢㅁ밥’을 들고 나온다. 기록상으로 ‘비빔밥’, ‘부ㅂㅢㅁ밥’이 처음 나타나는 것은 “시의전서”가 맞다. 작가는 알려지지 않았고 19세기 말에 쓴 걸로 추정한다. 1900년 무렵에 경북 상주에서 발견되었고 필사본으로 전해졌다. 이 책에 ‘骨董飯(골동반)’이라고 쓰고 옆에 한글로 ‘부ㅂㅢㅁ밥’이라고 달았다. 즉, “골동반=부ㅂㅢㅁ밥=비빔밥”이란 등식이 처음 성립된다.

잘 비빈 간장 비빔밥이다. 고추장은 사용하지 않는다.

비빔밥, 오래 전부터 먹었던 한민족 고유의 음식

비빔밥이 1900년 무렵 생긴 음식은 아니다. 비빔밥은 그 훨씬 이전부터 존재한 음식이다. ‘부ㅂㅢㅁ밥’이 아니라 골동반(骨董飯)이란 이름으로 나타날 뿐이다. 조선후기 선비 낙하생 이학규(1770∼1835년)의 <낙하생집(洛下生集)>에도 ‘호부가 여름철 먹는 비빔밥 값, 육백 전(豪富夏月骨董飯一?之費. 至六百錢)’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이학규는 영조시대 출생, 정조, 순조시대를 산 사람이다. 정조, 순조시대에 비빔밥이 저자거리의 음식점에서 팔리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비빔밥의 가격은 상당히 비쌌다. 비싼 비빔밥을 사먹는 사람은 ‘호부(豪富)’, 힘이 있는 부자다. “낙하생집”에 나오는 ‘호부(豪富)’는 조선후기에 권력을 등에 업고 상업적으로 부를 이룩한 사람들이다.

비빔밥과 관련이 있는 음식은 잡채다. 1670년경의 <음식디미방>에 ‘잡채(雜菜)’가 나온다. 중간에 꿩고기를 얹고 둥글게 약 10가지의 채소들을 배치한 음식이다. 말 그대로 ‘여러 가지 채소=잡채’다. 잡채에 밥을 넣고 비비면 비빔밥이 된다. 비빔밥이라고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한 그릇에 나물 여러 종류를 얹는 비빔밥 재료 같은 ‘잡채’는 이미 있었다. <시의전서>의 ‘부ㅂㅢㅁ밥’은 레시피가 구체적이고 우리가 먹는 비빔밥과도 상당히 닮아 있다.

잘 비빈 비빔밥은 밥알이 풀어지되 깨지지 않고 서로 들러붙지 않는다.

“밥을 정성들여 짓는다. 고기는 재워서 볶고 간납(간전肝煎)을 부쳐서 썬다. 각색(여러 종류)나물을 볶아놓고 좋은 다시마로 튀각을 튀겨서 부숴놓는다. 밥에 만든 모든 재료를 다 섞고 깨소금, 기름을 많이 넣어 비벼서 그릇에 담는다. 위에는 계란지단을 붙여서 골패 짝만큼씩 썰어 얹는다. 고기완자는 곱게 다져 잘 재워 구슬만큼씩 빚은 다음, 밀가루를 약간 묻혀 계란을 씌워 부쳐 얹는다. 비빔밥 상에 장국은 잡탕 국을 쓴다.”

실제 비빔밥을 만들어보면 ‘볶은 나물’은 데쳐서 무친 나물보다 더 맛이 있다. 다만 나물 고유의 향과 맛을 살리기에는 데친 나물이 더 낫다.

[비빔밥 맛집 4곳]

천황식당

지방에서 가장 오래된 음식점이다. 일제강점기에도 진주성내 시장터에서 비빔밥을 내놓았다. 진주비빔밥의 원형에 가깝다. 현재 식당도 일본풍의 건물.

함양집

창업주는 경남 함양 출신. 진주를 거쳐 울산으로 이사 ‘함양집’을 열었다. 진주비빔밥과 흡사하나 특이하게 생전복을 사용한다. 울산 시청 무렵의 ‘함양집’이 원조.

진주부엌 하모

진주비빔밥을 서울에서 재현, 발전시켰다. 원형 잡채도 있고 말린 고구마로 만든 빼대기죽도 있다. 비빔밥이나 육전 등이 수준급이다. 서울 신사동.

까치구멍집

헛제사밥이 이 집의 주력 메뉴다. 헛제사밥 중에 경북 북부 지방의 ‘간장 비빔밥’이 있다. 탕국, 탕평채 등도 이집의 주요메뉴. 업력도 긴 편이다. 40년.



글ㆍ사진= 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dasani8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