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부터 식용한 서민 음식…지역 따라 레시피ㆍ용어 달라

‘고려도경’에 처음 등장, ‘오주연문장전산고’에 ‘추두부탕’ 소개
서울 ‘추탕, 영ㆍ호남 ‘추어탕’…민물고기 더해 어탕, 털레기탕으로

미꾸라지는 미꾸라지 같다. 잡았는가 싶으면 손가락 사이로 쏙쏙 빠져나간다. 실체를 알기 힘들다. 추어탕도 마찬가지. 곡절이 많은 음식이다. 추어탕도 마치 미꾸라지 같다. 정체를 알기 힘들다. “추어탕이 뭐지”라고 생각한다. 정확하게 실체를 잡은 것 같지만 쉽게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간다.

우선 제철이 여름인지 가을인지부터 헛갈린다. 여름철 땀 많이 흘릴 때 추어탕 한 그릇 하면서 시원하다고 이야기한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더운 여름철 미꾸라지 탕, 추어탕을 먹는다. 추어탕은 여름 보양식이라는 뜻이다.

간단치 않다. 추어의 ‘추(鰍)’는 물고기 ‘어(魚)’와 가을 ‘추(秋)’의 합성어다. 뜻이 ‘가을 물고기’니 추어탕은 가을 음식이다. 예전 기록에 추어탕은 가을 음식이라는 내용도 있다. 가을걷이가 끝난 논배미에서 미꾸라지를 건져서 끓여먹는다고 했으니 완벽하게 가을음식이다. 농사가 바쁜 농촌에서는 가을걷이 전에 미꾸라지 탕을 먹기도 힘들다.

과학자들은 봄철 미꾸라지가 영양이 제일 많다고 한다. 자연산이라는 전제 하의 이야기다. 이 부분에 함정이 있다. 지금은 대부분의 미꾸라지가 양식이거나 중국 수입 산이다. 미꾸라지를 두고 봄, 여름, 가을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리석다.

옛 문헌에 등장하는 미꾸라지, 관련 음식

<고려도경>(1123년, 高麗圖經)에 “가난한 백성은 해산물을 많이 먹는다”며 해산물 중의 하나로 미꾸라지를 든다. 고려도경은 원래 이름이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이다. 송나라 사신 서긍이 중기의 고려에 대해서 상세하게 기록했다. 오래 전부터 먹었지만 ‘미꾸라지’라고 콕 집어 이야기한 기록은 ‘고려도경’이 처음이다. 어떻게 먹는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에 언급된 미꾸라지
조선시대 기록에는 미꾸라지가 자주 등장하지만 식용이 아니라 ‘나쁜 존재’다. 좁은 세상에서 살면서 흙탕물을 일으키는 하찮은 미물로 나타난다.

서유구의 '난호어목지(蘭湖漁牧志)'에는 미꾸라지가 '밋구리'로 표현돼 있다.
1820년 발간된 서유구의 <난호어목지(蘭湖漁牧志)>에 드디어 미꾸라지는 제 모습을 보인다. 이름도 버젓이 한글로 ‘밋구리’라 하고, “기름이 많고 살찌고 맛이 있으며 시골 사람은 이를 잡아 맑은 물에 넣어두고 진흙을 다 토하기를 기다려 죽을 끓이는데 별미”라고 이야기한다. 미꾸라지가 음식의 모습을 갖추고 나타난다.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서 미꾸라지는 ‘추두부탕(鰍豆腐湯)'으로 등장한다.(서울대 규장각)
19세기 중엽에 출간된 오주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서 미꾸라지는 ‘추두부탕(鰍豆腐湯)’이란 이름으로 ‘정식’ 데뷔한다. “죽을 끓인다”는 부정확한 내용이 아니라 정식 이름을 가진다. 내용도 ‘두부가 있는 추어탕’으로 오늘날의 추어탕과 거의 흡사하다.

미꾸라지를 잡아서 진흙을 토하게 하는 것은 오늘날과 동일하다. 미꾸라지 숙회(熟?)를 만드는 것은 다르다. 해금한 미꾸라지를 두부와 더불어 솥에 넣는다. 불을 지피면 미꾸라지가 두부로 피신(?)하여 숙회가 된다. 그걸 잘라서 두부 전을 붙인다. 이 두부전과 메밀가루(蕎麥粉, 교맥분)를 넣고 끓인다는 내용은 오늘날의 추어탕과는 차이가 있다.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는 “특히 한양 도성의 반인(泮人)들이 즐겨 먹는다”고 상세히 부연하고, <난호어목지>에서는 “시골사람들이 죽을 끓여 먹는다”고 한 것을 보면 비슷한 시기에 한양 등 중부지방에서는 천민들이 먹었고 지방에서는 상민(常民)인 농민들이 먹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반인’은 성균관에 노역하던 천민집단으로 성균관 부근의 반촌(泮村)에 살았다. 일제강점기의 <해동죽지(海東竹枝)>에는 “서리가 내릴 무렵 두부를 만들어 이것이 미처 응고되기 전에 추어를 넣고 다시 눌러서 굳게 하여 얇게 썰고 생강, 천초를 넣고 가루를 섞어 삶는다”고 했으니 명확하게 추어탕은 가을철 음식임을 보여준다. 가을걷이가 끝난 논배미의 미꾸라지는 통통하게 살이 올라 겉으로 보기에도 맛있게 생겼다.

<해동죽지>에서는 추어탕에 ‘천초(川椒)’를 사용했다고 명기했다. 천초는 우리가 산초(山椒)라고 부르는 초피나무의 열매다. 영남지역 등에서 산초를 ‘초피’ ‘조피’ ‘전피’ ‘젠피’라고 부르는 것은 이것이 초피나무 열매이기 때문이다. 산초나무의 열매는 ‘야초(野椒)’라 하여 식용보다는 약용으로 사용한다. 비슷하지만 다른 것이다. 이 무렵 천초와 생강은 매운 맛을 얻고 비린내를 없애기 위하여 사용하였을 것이다.

추탕, 추어탕, 추두부탕…어탕, 털레기탕

서울 추어탕들이 고춧가루 혹은 고추장을 넣어서 맵게 만드는 것은 <해동죽지>의 산초를 넣어서 매운 추어탕에서 유래되었을 것이라는 추정도 가능하다. 기록을 보면 일제강점기의 서울(경성) 추탕들은 대부분 ‘불에 입을 덴 듯이’ 매웠다고 한다. 아마 <해동죽지>의 천초 대신 20세기 초반부터 서서히 고춧가루를 널리 사용하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즉, 이 무렵 ‘서울 추탕’은 고추 때문에 심하게 맵지 않았을까, 추측할 수 있다.

이제는 사라진 '곰보추탕'의 통추탕이다. 미꾸라지가 통째로 있는 서울식 추탕이다. 추어탕이 아니다.
서울 추탕은 원래 미꾸리를 사용했다. 미꾸리는 미꾸라지와 비슷하고 혼용되지만 엄연히 다른 개체다. 미꾸리의 별명은 ‘동글이’고 미꾸라지의 별명은 ‘납작이’다. 미꾸리는 미꾸라지보다 조금 작다. 지금은 미꾸리든 미꾸라지든 모두 귀해져서 거의 대부분을 중국 등에서 수입하지만 20세기 초, 중반의 서울 추탕은 반드시 통 미꾸리로, 지방은 미꾸라지를 갈아서 사용했다. 서울식 추탕은 고춧가루를 사용해 그 맛이 칼칼하여 해장국으로도 참 좋다. 서울의 이름난 노포들은 여전히 국산 미꾸라지를 고집하고 예전 방식대로 매운 맛의 서울 추탕을 만들어낸다.

영남의 추어탕은 미꾸라지를 갈아서 사용하고 된장 국물을 육수로, 배추 우거지나 속대를 사용한다. 몇몇 집은 부드러운 얼갈이배추를 고집하기도 한다. 노란 색의 배추속대도 얼갈이배추와 비슷한 맛, 질감이다. 영남의 남도식 추어탕은 맛도 간결하다. 산초로 비린내를 제거하고 매운 맛이 강하지 않다. 호남의 추어탕은 내용물이 화려하다. 마치 대구 육개장 같이 토란대나 고사리 등을 넣는 집들도 있다.

'용금옥'의 추탕 재료들. '곰보추탕'과 비슷하다.
미꾸라지로 만든 추어탕은, 좋아서 혹은 먹고 싶어서 찾았던 음식은 아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먹었던 가난한 자들의 음식이다. 어쩔 수 없이 먹는 판에 이것저것 재고 말고 할 것도 없다. ‘털레기탕’도 비슷하다. 내용물도 추어탕과 흡사하다.

텔레기탕은 농가에서 먹었던 음식이다. 털레기탕이나 추어탕이나 이름이나 정확한 레시피가 없었을 뿐, 농촌 지역 등 상민들이나 천민들 사이에서는 이미 유행했을 것이다.

경기도 북부, 충청도 내륙지방에서 유행했던 털레기탕은 농촌 지역에서 손쉽게 끓여먹었던 미꾸라지, 잡어 탕이다. 여름이나 가을 무렵 비가 꾸물꾸물 오는 날이면 들일을 쉬게 된다. 일손을 놓은 농부들은 동네 어귀에 모인다. 이럴 때 누가 하품을 길게 하면서 “술이나 한잔”이라고 하면 바로 털레기탕을 준비한다. 간단한 도구로 논배미에서 구할 수 있는 고기는 기껏 미꾸라지나 작은 붕어 등이다. 금방 잡은 잡어를 넣고 고추장 풀고 후추나 산초 등 향신료도 있는대로 넣는다. 밭둑에 있는 들깻잎, 쑥갓, 아욱, 근대, 대파 등의 야채도 넣는다. 큰 솥을 걸고 적당하게 간을 보고 끓이면 된다. 여기에 수제비나 국수 등을 넣어도 되고 더러는 밥반찬으로 먹어도 된다. 날 궂은 날 딱 어울린다.

충청도 금강 유역의 어죽이나 경남 지리산 지역의 어탕국수도 마찬가지다. 어죽이나 어탕국수 모두 민물 잡고기를 이용하여 편하게 끓인 것들이다. 정해진 레시피도 방법도 따로 없다. 그저 잡히는 대로 민물고기를 넣고 끓인 것이다. 더러 센 뼈라도 있으면 곱게 갈아서 거친 것은 건져내고 잘고 고운 분만들만 모아서 끓였다.

어탕, 어죽, 털레기탕은 모두 바다가 먼 지역, 가난한 내륙 지방의 음식들이다. 인간은 밥만 먹고 살지는 못한다. 어떤 방식이든 단백질 섭취는 필요하다. 고기는 귀하고 식물성 단백질만으로도 부족하다. 결국 생선을 찾게 되는데 바다에서 먼 지방은 구하기 힘들다. 이때 손쉽게 구하는 것이 미꾸라지나 작은 붕어 등 잡고기들이다.

물고기를 구하면 다음에는 탄수화물이 필요하다. 국수나 손쉬운 수제비 등을 이용하면 된다. <오주연문장전산고>에 나오는 추두부탕의 ‘메밀가루’, 지리산 어탕국수, 금강의 어죽, 경기도 고양에 남아 있는 털레기탕 등의 곡물도 결국 탄수화물 섭취를 위한 것이다. 다른 부분도 있다. 지리산 지역의 어탕국수와 대구, 경북 북부, 서부경남 지방의 추어탕에는 얼갈이배추나 슬쩍 말린 우거지 등을 사용한다. 하지만 털레기탕에는 날 채소를 사용하는 것이 원칙이다. 비린내를 잡아주기 위하여 향신료도 사용하지만 들깻잎이나 대파, 쑥갓 등도 비린내를 없애는 작용을 한다. 시래기는 아무래도 강한 단맛이 느껴진다.

날 채소, 말린 채소, 고운 얼갈이배추를 고집하는 것도 의미가 없어졌다. 잡어를 구하는 일부터 힘들다. 우리는 지금 비린내가 나지 않는 묘한 민물고기 음식을 먹고 있다. 달고 감칠맛이 강하다. 미꾸라지, 붕어, 잡어, 고등어 냄새를 구별하기 힘든 시대다. 어떤 음식이든 조미료의 감칠맛으로 통일한다. 얼마쯤 비린내가 나는, 제대로 된 어죽, 털레기탕, 추어탕을 먹고 싶다.

[추어탕 맛집 4곳]

용금옥/서울 중구 다동

한반도 추탕, 추어탕의 대명사와 같은 집이다. 서울식 추탕은 육수를 따로 준비한다. 소 내장 등을 이용하여 육수를 내고 추어탕을 끓인다. 추어튀김도 아주 좋다.

상주식당/대구광역시 중구 동성로 2가

얼갈이배추가 좋지 않은 겨울철에는 장사를 하지 않는 집으로 유명하다. 얼갈이배추와 장류로 맛을 낸다. 소박하지만 깔끔한 경상도식 추어탕이다.

초가집추어탕/경기 광주 남한산성면 엄미리

허름한 초가집이지만 벽면 군데군데 정치인, 재벌들의 흔적이 남아 있다. 마당 한가운데 우물이 있고 미꾸라지들이 자라고(?)있다. 수제비 대용으로 모시 떡을 준다.

유정식당/예천군 예천읍 서본리

메뉴에는 ‘미꾸라지 매운탕’이다. 미꾸라지 전골. 인근 논, 개천 등에서 직접 잡은 미꾸라지로 ‘통미꾸라지 전골’을 내놓는다. 무, 콩나물을 넣은 밥도 맛있다.



글ㆍ사진= 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dasani8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