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서북부 브룸은 경이로운 노을을 간직한 땅이다. 바다위 선홍빛 석양, 낙타의 행렬, 진주잡이의 사연까지 어우러져 닫힌 빗장을 허문다.

호주 여행의 새로운 붐을 주도하는 곳이 서남쪽 퍼스라면 북부 브룸은 서호주의 숨겨진 속살 같은 곳이다. 고스란히 보존된 거친 자연은 붉은 땅, 짙푸른 바다, 살가운 사람들이 뒤섞여 이방인을 맞는다.

원주민의 터전이던 브룸은 1880년대부터 진주잡이의 땅으로 세상에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곳 자연산 진주의 가치가 소문나면서 진주 채취를 위해 아시아 곳곳에서 다이버들이 찾아들었다. 브룸은 한때 세계 진주의 80%를 채취할 정도로 명성 높았다.

세계 최고 수준의 노을 비치

진주의 이름값을 이어받은 주역은 이곳 노을이다. 브룸 감동의 전주곡은 ‘케이블 비치’에서 확연하다. 22km가량 이어진 아득한 해변은 일몰이 탐스럽다.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칭해도 과언은 아니다. 필리핀 보라카이, 미얀마 바간의 노을이 세간에 오르내리지만 드라마틱한 광경에서는 이곳 석양이 결코 뒤지지 않는다.

해질 녘이면 모래 위에 간이 의자를 펼친 채 와인을 즐기는 청춘들이 곳곳에 모습을 드러낸다. 석양 사이로 돛단배가 지나고 침묵이 파도처럼 밀려들면 케이블 비치의 일몰 소나타가 시작된다.

해넘이는 시간이 흐를수록 정점으로 치닫는다. 낙타들의 행렬도 드문드문 해변에 모습을 드러낸다. 둔덕 너머는 사막인데, 바다와 연결된 경계선에서 낙타들은 석양의 케이블 비치를 뚜벅뚜벅 걸으며 마지막 풍경을 장식한다. 바다에 비친 낙타들의 모습은 물 위에 번져 데깔꼬마니가 되고, 일몰과 함께 돌아오는 행렬은 의식을 치르듯 숙연하다.

해변의 경이로움은 케이블비치에 머물지 않는다. 이블비치 반대편 로벅 베이는 보름달 뜰 무렵 개펄이 달로 향하는 계단처럼 보이는 '달로 가는 계단' 현상으로 유명하다.

진주잡이의 흔적이 남은 땅

해변을 뒤로 하고 브룸 시내에 들어서면 생경한 도시 풍경과 맞닥뜨린다. 1916년 문을 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야외 영화관이 브룸에 있다는 사실은 의외다. ‘선 픽처스’라는 노천 영화관에서는 쏟아지는 별과 함께 마당 간이의자에 앉아 영화를 감상한다. 영화관 입구에는 초창기 사용하던 영사기와 다양한 포스터들이 즐비하게 전시돼 있으며 브룸 일대의 자연경관을 배경으로 촬영됐던 영화 ‘오스트레일리아’의 포스터도 중앙에 자랑스럽게 걸려 있다.

초창기 진주잡이 다이버들의 흔적 역시 시내 곳곳에 스며들었다. 도심 한편에는 일본인 다이버들을 기리는 묘지가 있으며 진주잡이의 역사를 엿볼 수 있는 ‘펄 러거’에서는 잠수복도 입어보고 다이버들의 애환을 담은 다큐멘터리도 감상할 수 있다. 채취 현장을 직접 방문하는 투어에 참가하면 진주 양식장을 지키는 악어도 만나게 된다. 악어, 캥거루 고기 등이 함께 접시에 담겨 나오는 독특한 메뉴 역시 브룸 여행의 신비감을 더한다.

글ㆍ사진=서 진(여행칼럼니스트)

여행메모

▲가는길=한국에서 브룸까지 직항편은 없다. 서호주의 주도인 퍼스를 거친 뒤 브룸행 국내선으로 갈아탄다. 브룸 시내의 이동에는 버스가 있으나 택시를 이용하는게 편리하다.

▲숙소=케이블비치에 위치한 케이블클럽리조트는 250여개의 객실을 갖췄으며 가족, 연인이 두루 이용하기에 좋다. 스파도 문을 열었으며 일몰을 감상할 수 있는 전망 포인트가 마련돼 있다.

▲레스토랑=‘올드 주 카페’는 동물원 분위기의 야외가든에서 운치있는 저녁식사가 가능하다. 한 잔 걸치고 싶다면 브룸 시내 마초 브룸 양조장에서 생강 맥주, 칠리 맥주, 망고 맥주 등 독특한 생맥주를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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