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원 근처에 경종(景宗)의 무덤인 의릉(懿陵)이 있어 가끔씩 들리곤 하는데 들를 때마다 참 안타깝고 안쓰러운 생각이 든다. 한참 때인 36살에 훙서(薨逝)한 것도 그렇지만 살아 있었을 때 아군 하나 없는 상태로 독기가 서린 구중궁궐에서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을지 아는 탓에 마음이 편치 않다. 숙종과 장희빈 사이에 태어난 경종은 13살 때 어머님인 장희빈이 죽고 나서 세자지만 장희빈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폐위되어야 한다는 끊임없는 상소를 견뎌야 했다. 원래 심약하고 자주 병치레를 했던 경종으로서는 어찌 보면 36년의 세월을 견딘 것이 더 대단할 정도였다.

경종 다음에 왕위에 오른 영조 또한 어머님이 천한 무수리 출신이라는 이유로 언제 웃음거리가 될지 몰라 자신에게 엄격했던 것 같다. 그 엄격함이 사도세자를 죽게 하고 그런 아버지의 죽음을 곁에서 생생하게 지켜본 조선의 개혁군주인 정조의 가슴은 새까맣게 타들어가 결국 그것이 한 원인이 되어 울화병으로 죽음을 맞이하며 조선의 국운은 저물어 가게 된다. 영조는 이런 엄격함의 기준을 탕평책(蕩平策)이라는 이름으로 신하에게도 적용하게 된다. 경종이 승하하기 두 달 전인 1724년 8월의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보면 ‘임금의 병이 위급해지다.(上有疾彌留)’란 대목이 보인다.

이공윤(李公胤)은 선비로 한의학에 명성이 자자해서 임금의 탕약을 올리는 주치의가 되었는데 그가 쓰는 처방은 주로 설사시키는 사하약(瀉下藥)이나 공하약(攻下藥) 위주였다. 경종은 심성이 여리고 기운이 쉬 없어서 탈진하는 소음인으로 보이는데 신체 건장한 젊은이가 타박상을 입어 어혈이 몸 안에 가득할 때 설사를 시켜 그걸 없애주는 한약인 도핵승기탕(桃核承氣湯)을 썼다는 기록이 보인다. 당연히 효험이 없어 울화병으로 체기가 있어 밥을 잘 못 먹을 때 쓰는 시평탕(柴平湯)에 대황(大黃)과 지실(枳實)같은 약을 함께 섞어서 백 수십 제를 올렸다고도 기록되어 있다. 대황과 지실 같은 한약은 건장한 청년에게도 잠시잠깐 쓸 정도로 약성이 강한 한약인데 그걸 최소 몇 달을 썼으니 아무리 나이가 젊어도 그 기운을 감당하지 못한 걸로 보인다. 그 결과 경종은 입맛이 떨어지고 추웠다 더웠다하는 한열(寒熱)증상이 나타났다고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대황을 잘못 쓰면 나타나는 증상을 재대로 말한 것 같다.

대황(大黃)이 조선왕조실록에 나타나는 때는 주로 온역병(溫疫病) 즉 열성 전염병의 조짐이 보일 때다. 같은 해인 1724년 11월 영조가 즉위하고 나서 우의정 조태억이 명년 봄에 온역병이 발생할 조짐이 있다고 하자 영조가 대황(大黃), 송엽(松葉) 같이 쉽게 구할 수 있는 약으로 미리 구제하라고 명을 내리는 대목이 보인다. 인조 22년(1644)에도 팔도에 유행하는 열성전염병에 대황(大黃)이 효과가 있으니 캐서 구급의 용도로 이용하라는 명을 내린 흔적이 있다. 대황(大黃)은 성질이 많이 차다. 독은 없으나 맛 또한 너무 쓰다.(寒無毒苦) 양약고어구(良藥苦於口)란 말을 한번은 들어봤을 것이다. ‘좋은 약은 입에 쓰다.’란 뜻으로 쓴 한약을 아이들에게 먹이기 위한 노림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불현 듯 든다. 대체로 황(黃)자가 들어가는 대황, 황련, 황백, 황금 같은 한약은 무지 쓰다. 쓴 것은 심장으로 들어가 심장의 열(熱)을 조절하는데 쓸 뿐 아니라 염증반응으로 온 몸에 열이 펄펄 끓을 때 주로 사용한다. 대황은 성질이 치가우면서 쓰다. 큰 불을 잡는 데는 이만한 한약이 없지만 너무 차서 인체의 온기까지 식혀버려 몸을 냉하게 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각종 실험에서 밝혀진 것을 보면 대변이 배설되지 않고 오랫동안 대장에 머물면서 생긴 변독(便毒)을 설사를 시키면서 해소하는 역할이 있고, 항균작용, 항종양작용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대황이란 한약재의 구성성분을 보면 라인(Rhein)성분과 탄닌(Tanin)성분을 모두 다 가지고 있으며 라인성분의 양에 비례해서 설사하는 효능이 증가하는 반면 탄닌성분은 설사를 멈추게 해준다. 서로 상충하는 양면의 성분이 함께 존재하는 셈이다. 그래서 설사시킬 용도로 대황을 쓸 때는 탄닌의 작용을 넘어설 수 있도록 적어도 4g이상은 써야 효험을 볼 수 있다.

하늘꽃한의원 원장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