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소ㆍ나물류 말린, 한반도 특유의 발효 음식…시래기는 계속 진화

무청 말리는 모습
시래기와 우거지의 같은 점, 다른 점?

참 혼란스러운 것은 ‘시래기’와 ‘우거지’의 차이다. 자주 듣는 질문이 “시래기와 우거지는 같은 것입니까 아니면 다른 것입니까?”라는 것이다. 열심히 설명을 해도 고개를 갸웃거리는 경우가 잦다. 우거지는 ‘웃+걷이’에서 시작된 말이다. ‘웃걷이’가 소리 나는 대로 우거지가 된 것이다. 배추 등의 겉 부분 이파리나 웃자란 부분의 잎, 줄기 등을 이른다. 채소의 위, 겉이 우거지다.

시래기는 채소를 말린 것이다. 마른 채소가 시래기다. ‘씨래기’라고 읽으면서, 시래기가 ‘쓰레기’에서 비롯된 말이 아니냐는 주장(?)도 있지만 근거는 없다. 지금보다 시래기를 더 많이 먹고 소중하게 여겼던 오래 전에 설마 시래기를 ‘쓰레기’라고 불렀을까?

무의 윗부분은 무청이다. 늦가을부터 무청을 말린다. 시래기 혹은 무청 시래기가 맞는 표현이다. 배추의 겉 이파리를 말리면? 배추 시래기다. 찢어진 배추의 겉 이파리는 배추 우거지다. 이걸 말리면 배추 우거지 시래기다. 줄여서 배추 시래기라고도 한다.

무청시래기 삶은 것.
“언제부터 시래기를 먹었을까?”라고 묻는다. “알 수 없다”가 정답이다. 일상적으로 먹었을 터이니 언제부터 먹었다는 기록은 없다.

우거지 시래기 혹은 무청 시래기는 한반도 고유의 문화라 해도 부족함이 없다. 배추를 먹는 나라는 많지만 배추 우거지를 말려서 우거지 시래기 혹은 배추 우거지 시래기를 먹는 나라는 드물다. 우리는 오래 전부터 시래기를 먹었고 또 지금도 꾸준히 먹고 있다. 시래기는 가난한 시절의 음식이라고 치부하거나 낭만적인, 예전의 추억을 되새기는 음식이라고 생각한다. 일부는 맞지만 정확치는 않다.

시래기는 추억을 부르는 낭만 소재?

낭만적인 표현은 지금도 남아 있다. 시인의 시에 등장하는 시래기 이야기는 대부분 오래 전의 추억을 불러오는 낭만 소재다. 공광규 시인의 ‘시래기 한움큼’이 대표적이다.

빌딩 숲에서 일하는 회사원이/파출소에서 경찰서로 넘겨졌다/점심 먹고 식당 골목을 빠져 나올 때/담벼락에 걸린 시래기 한 움큼 빼서 코에 부비다가 식당 주인에게 들킨 것이다/“이봐, 왜 남의 재산에 손을 대!”/반말로 호통치는 식당 주인에게 회사원은/미안하다 사과했지만/막무가내 식당 주인과 시비를 벌이고 멱살잡이를 하다가 파출소까지 갔다(후략)

시골 어디서나 시래기를 볼 수 있었다. 귀하지만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농가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시의 끝은 슬프다. ‘회사원’ 지인들까지 회사원을 위해서 변명을 하고 사과를 하지만 끝내 ‘주인’은 용서하지 않는다. 결국 용서받지 못한 ‘회사원’은 유치장에 들어간다. 이튿날 새벽, 유치장에서 ‘회사원’은 얼핏 고향집에 걸어둔 시래기와 그 시래기 같이 마른 어머니의 손을 떠올린다. 시래기는 마치 어머니의 손 같이 모양새 없이 말라 있다. 각박한 도시에서 불쑥 만나는 시래기는 마치 어머니의 손 같이 말라 있지만 ‘회사원’에게는 여전히 아름다운 추억이다. 시래기는 어머니, 고향, 어린 시절과 더불어 추억, 낭만의 소재다.

도종환 문화부체육관광부 장관이 시인 시절 남긴 시 “시래기”는 시래기, 우거지를 정확하게 보여준다. 낭만보다는 현실이다.

저것은 맨 처음 어둔 땅을 뚫고 나온 잎들이다/(중략)가장 오래 세찬 바람맞으며 하루하루 낡아간 것도/저들이고 마침내 사람들이 고갱이만을 택하고 난 뒤/제일 먼저 버림받은 것도 저들이다/그나마 오래오래 푸르른 날들을 지켜온 저들을/기억하는 손에 의해 거두어져 겨울을 나다가/(중략) 서리에 맞고 눈 맞아가며 견디고 있는 마지막 저 헌신(후략)

맨 처음 나왔고, 가장 오래 낡아갔으며, 마침내 사람들이 고갱이만을 택하고 버림받은 것은 우거지다. 가난한 시절, 트럭에 가득 실은 배추가 도착하면 마지막에는 우거지만 땅바닥에 남는다. 가난한 이들은 이 우거지라도 주워서 챙겼다. 더러는 날 것으로 먹고 더러는 말렸다. 말리면 우거지 시래기가 된다. 귀하게 거둬져서 ‘겨울을 나다가 서리 맞고 눈 맞으며’ 말리면 우거지 시래기가 된다.

무청 시래기 조림
시래기는 그저 시에서 나타나듯이 추억의 소재, 한국인의 ‘소울 푸드(SOUL FOOD)’에 머무는 식재료일까? 그렇지는 않다. ‘도종환 시인’의 시래기는 가장 먼저 났으나 오랫동안 천대받았고 한겨울의 서리, 눈을 맞으며 몸을 만들고 마침내 마지막 헌신을 하는 아름다운 존재다. 더불어 시래기는 발효과정을 거치며 한반도 특유의 발효음식으로 거듭난다.

시래기, 말리는 과정에서 발효한다

한반도의 발효 문화는 오래 전부터 꾸준히 발전했다. 발효는 고기, 콩, 생선을 비롯하여 나물 문화에서도 깊이 나타난다. 시래기를 비롯한 각종 나물을 말렸던 것도 결국은 발효과정이다.

우리는 오늘날 산나물 말린 것은 시래기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과연 그럴까? 산나물을 말리든 들나물을 말리든 결국 겨울철 서리, 눈, 비 맞으며 말린 것은 모두 시래기다. 들나물의 일종인 배추, 무청 말린 것이 시래기이듯이 산나물도 마찬가지다. 시래기다. 각종 채소, 나물류 말린 것은 모두 시래기의 일종이다. 시래기는 단순히 ‘나물 말린 것’이 아니다. 말리는 과정에서 생기는 발효 과정을 같이 겪었다.

시래기 무침
성종 18년(1487년) 9월11일의 <조선왕조실록> 기록에는 강원도 일대의 ‘강무’를 앞두고 여러 논의가 일어난다. ‘강무(講武)’는 임금이 참여하는 군사훈련이다. 군사훈련을 겸하여 사냥을 하기도 한다. 준비할 것도 많다. 인근의 주민들이 참여한다. 강원도 사람들이 흉년으로 먹고 살기가 힘드니 내년 봄으로 강무를 미루자는 주장도 있고 봄에는 어차피 농사일이 바쁘니 지금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이미 지방 병력까지 불러 모았다. 논의는 양양도호부사 유자한의 ‘강무 연기 상서(上書)’에서 비롯되었다. 내용 중에 이런 표현이 있다.

“(전략) 강원도(江原道)는 다른 도와 달라서 (중략) 풍년이라 하더라도 백성들이 오히려 지축(旨蓄)과 토란이나 밤으로 이어가고서야 겨우 한 해를 넘길 수 있으므로, 민간에서 상수리 수십 석(碩)을 저장한 자를 부잣집이라 합니다. 농부를 먹이는 것은 이것이 아니면 충족할 길이 없고, 백성이 이것을 줍는 것은 다만 9월, 10월 사이일 뿐인데, 이제 순행(巡幸)이 마침 그때를 당하였으므로(후략)”

음력 ‘9, 10월’은 늦가을이다. 토란을 캐거나 도토리, 상수리를 주울 계절이다. 혼란스러운 것은 ‘지축’이다. ‘지축’을 시래기라고 번역하는 경우도 있다. 정확치는 않다. ‘지축’은 흔히 사용하는 단어가 아니다. ‘지(旨)’는 ‘맛있는 음식’, ‘축(蓄)’은 저장한다, 모아서 보관한다는 뜻이 있다. ‘지축’은 ‘맛있는 저장음식’이다. ‘지축’은 별도의 식재료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도토리, 토란, 밤 등을 모아서 부르는 이름일 수 있다.

우거지 시래기국
지축이 시래기라면 어떤 시래기일까? 배추 시래기 즉 우거지 시래기일까, 아니면 무청 시래기일까? 모두 아니다. 배추, 무는 성종 재위 시절인 15세기 후반에도 한반도에서 재배되었던 식물이다. 문제는 흔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배추, 무는 밭작물이다. 강원도 산골, 배추 씨앗은 귀했다. 18-19세기 중국을 오가던 사신들이 배추, 배추 씨앗에 대해서 남긴 기록도 있다. “중국 배추가 좋다. 중국에서 배추 씨앗을 사오고 싶었는데 가격이 비싸고 마침 수중에 돈이 부족해서 미처 씨앗을 사오지 못했다”고 아쉬워하는 이도 있었다. 배추나 배추 씨앗은 상상 이상으로 귀했다. 무도 마찬가지. 문제는 가난한 강원도 산골에서 배추를 재배할 씨앗이 있었을까, 하는 점이다.

‘지축’은 토란, 밤, 상수리 등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주식은 메밀이었을 것이다. 여기에 야생의 토란, 밤, 상수리 등 ‘지축’을 더하는 형태였을 것이다. 만약 지축이 시래기를 뜻한다면 그 시래기는 ‘산나물 시래기’였을 것이다. 배추, 무의 재배도 어렵던 시절 깊은 산골에서는 산나물을 말려서 겨우 내내 사용했을 법하다.

시래기밥
시래기는 변화, 발전한다

우거지 시래기 혹은 무청 시래기도 진화한다. 예전의 시래기는 누런 색깔이었다. 요즘은 푸른색의 시래기도 쉽게 볼 수 있다. 말리고, 발효시키는 방법이 달라졌다.

뜨거운 물에 튀기듯이 건져내서 말리면 시래기 색깔은 푸르다. 예전 시래기가 누랬던 것은 발효를 온전하게 거쳤기 때문이다. 녹색의 채소는 마르고 발효하는 과정에서 색깔이 누렇게 변색된다. 물에 튀기면 색깔이 변하지 않고 푸른색을 유지한다. 싱싱하지만 온전히 발효를 거친 것은 아니다.

달라졌다. 좋은 것인지 아닌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시래기는 한반도에서 오랫동안 발전했다. 시래기는 지금도 우리 곁에 있다. 우리는 오랫동안 시래기를 먹었고 또 먹고 있으며 앞으로도 먹을 것이다.

시래기 맛집

시래기국밥: 서울 종로5가

시래기국밥 3천5백 원, 삶은 달걀 5백 원. 강원도 막장을 넣은 정갈한 국밥. 강원도 영월 출신 주인이 운영한다. 06:30-14;00까지. 일요일은 쉰다.

욕쟁이할머니집: 경기도 포천 소흘읍

창업주 할머니가 욕쟁이라서 붙인 이름이다. 욕쟁이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시래기 국, 찌개가 푸근한 집. 밑반찬 종류, 양도 넉넉하다. 된장 등 장이 맛있다.

더하루_국물이야기: 서울 광화문 트윈트리타워 지하 1F

강원도 인제 백담마을 ‘백담갓기래기국밥’과 같은 국밥이다. 식재료, 국밥 끓이는 방법을 공유한다. 전국의 맛집 음식을 한 자리에 모았다.

미수식당: 서울 이태원 해방촌

식당이라기보다는 요리 전문 술집이다. 한우와 시래기를 가득 넣은 음식이 인기 있다. 해방촌에서 이름을 얻은 후 청담동으로 진출했다.



글ㆍ사진=서진(여행칼럼니스트) tour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