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매실농원
보해 매실농원은 큰 길가에 확연하게 들어서 있지 않다. 초입 간판만 없었다면 그냥 스쳐 지나기 쉽다. 도로에서 논과 밭을 가로질러 1.8km 걸어야 농원은 모습을 드러낸다. 걸어 가는 길에는 작은 암자도 있고, 백구가 “컹컹” 짖어대는 시골집도 지나쳐야 한다. 그 집 마당에 매화가 핀 풍경과 마주칠 때쯤이면 농원이 멀지 않았음을 짐작하게 된다.
매화꽃밭은 중앙 주차장이나 관리사무동까지 들어서기 전부터 온통 꽃잔치다. 굳이 목적지를 정하고 찾아갈 필요가 없다. 길에서 벗어나 나무 아래 걸터 앉으면 된다.
매화꽃 아래로는 양탄자를 깔아놓은 듯 녹색 풀밭이다. 그 풀밭에 야생화들도 자욱하게 피어난다. 돗자리 하나 깔고 앉으면 주변 전체가 매화, 동백, 야생화 천지다. 평일 오전쯤이라면 그 꽃세상을 온통 독차지할 수 있다. 인공이 크게 가미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꽃밭이다.
이곳에서 피는 매화는 백가화, 앙숙, 남고 등인데, 듣기에는 생소한 매화들이 터널을 이룬다. 매화 터널은 동서남북으로 한없이 이어진다. 걷다 보면 한 귀퉁이에서 가족들의 웃음이 쏟아지고, 또 먼 구석에서 연인들이 팔베개를 하고 누워 있다. 꽃밭을 에워싼 붉은 동백과 마주쳐야 그때쯤이 매화 터널의 끝이다.
1978년 문을 연 보해매실농원은 일반인들에게 3월 한달간 무료로 꽃밭을 개방하고 있다. 3월 중순경 열리는 축제때는 이곳도 시끌벅적하다. 올해 개화시기는 예년보다는 일주일 정도 빨라졌다.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한 매화는 3월 하순까지 만개할 전망이다.
꽃축제도 좋지만 축제를 피해 찾는 꽃밭이 한결 넉넉하고 운치 있다. 분위기 가득한 매화동산은 영화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너는 내운명’, ‘연애 소설’의 꽃향기 흐드러진 봄날 장면을 이곳에서 촬영했다.
농원에서 수확하는 매실은 가공방법에 따라 이름이 제각각이다. 껍질이 파란 청매는 신맛이 강하며, 노랗게 익은 황매는 향이 좋다. 청매 껍질을 벗겨 훈연한 오매는 한약재로 이용하며 청매를 소금물에 절인 후 말린 것은 또 백매로 따로 부른다. 매실주 외에 매실 장아찌, 매실 된장 등은 매실 농원 일대에서 인기 품목이다.
꽃구경을 좀 더 한적하게 즐기려면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면 좋다. 주차공간도 넉넉지 않고, 굳이 꽃이 차와 뒤엉키는 안타까운 장면이 싫다면 더더욱 버스를 이용한다. 목포터미널에서 산이면을 경유해 해남읍내까지는 완행버스가 운행된다. 그 버스를 매실농원 초입에 세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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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서 진(여행칼럼니스트)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