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는 요리·고구마는 간식용으로 주로 사용…

두 식재료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다. 겉모양도 다르고 맛도 다르다. 쓰임새 역시 다르다. 고구마는 달다. 맛이 다니, 날것으로도 먹는다. 날고구마와 달리 날감자는 먹기 힘들다. 약용(?)으로 날감자를 갈아서 먹는 이들은 있지만, 말 그대로 ‘약용’이다. 날감자즙을 일상적으로 먹기는 힘들다.
감자와 고구마.
감자와 고구마의 이름은 혼란스러웠다. 지금은 누구나 감자와 고구마를 구별하고, 다르게 부르지만 처음 감자, 고구마가 전해졌을 때는 이름이 혼란스러웠다. 감자는 ‘甘藷(감저)’에서 시작되었다. ‘甘(감)’은 달다는 뜻이다. ‘藷(저)’는 감자라는 뜻이다. 감저는 단 감자, 즉 고구마다. 사전에서 ‘감저’를 찾아보면 “감자의 본딧말이고, 고구마를 이른다”라고 적혀 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힘들다. 감자는 ‘감저’에서 시작되었고 곧 고구마다? 감자는 고구마? 참 알아듣기 힘든 이야기다. 감자의 본고장은 남미대륙이다. 페루, 안데스산맥이다. 감자나 고구마 모두 한반도 전래 역사는 200년 정도다. 남미에서 유럽으로 건너간 다음, 중국, 일본을 통하여 한반도로 들어왔다.

고구마가 먼저 들어오고, 감자는 나중에 들어왔다. 둘 다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음식 재료지만 지위(?)는 다르다. 감자는 각종 요리에 사용하지만, 고구마는 간식 혹은 군것질로 많이 사용한다. 고구마가 들어간 음식은 감자만큼 다양하지 않다. 한반도에 감자가 처음 전해진 것은 1820년대였고 당시의 청나라에서 들여온 것이다. 흔히 감자는 “관북(關北)에서 들여왔다”라고 한다. 관북은 중국 접경 지역이었던 의주를 비롯하여 함경도 북쪽 지역을 이른다. ‘관’은 철령 지역이다. 철령 북쪽이 바로 관북이다.

감자는 원래 북저(北藷) 또는 북감저(北甘藷)라고 불렸다. 모두 북방감저(北方甘藷)라는 이름에서 비롯된 것이다. ‘북방 감저’는 ‘북쪽에서 들여온 감저(고구마)’라는 뜻이다. 북방에서 들어온 고구마가 곧 감자다.

감자가 한반도에 전해진 것은 19세기 초^중엽이기 때문에 조선 초^중기 기록에는 당연히 감자가 나타나지 않는다. 오주 이규경이 쓴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가 정확하게 감자를 기록했다. ‘오주연문장전산고’에 기록된 내용(북저변증설北藷辨證說)은 “북저는 일명 토감저(土甘藷)라 하는데 순조 24~25년에 관북에서 처음 들어온 것이다”라고 하였다. 순조 24년은 1824년이다. 이 기록을 바탕으로 감자의 전래시기를 1824~1825년으로 특정한다.

감자의 한반도 전래에 대해서는 구구한 이론이 많다. 백두산 지역으로 산삼을 캐러 다니던 청나라 채삼자(採蔘者)가 우리 국경에 몰래 들어와서 산삼을 캤다. 이들이 장기적으로 머물면서 산골짜기에 감자를 심어 먹었다. 이들이 떠난 후 우리나라 사람들이 밭에 남아 있던 감자를 발견, 옮겨 심었다. 이게 감자의 한반도 전래 시작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여러 가지 상황을 볼 때 신빙성은 있다. 잎은 순무 같고 뿌리는 토란 같다는 평도 남아 있다. 이보다 몇 년 후인 임진년(1832년) 충청도 홍주 지역으로 감자가 전해진다. 김창한의 원저보(圓藷譜, 1862년 발간)에 기록된 상세한 내용이다.

“‘북방으로부터 감자가 이 땅에 들어온 지 7~8년 지난 순조 32년(1832년)에 영국의 상선 로드 암허스트(Lord Amherst)호가 전북 해안에 약 1개월간 머물고 있었는데, 이 배에 타고 있었던 네덜란드 선교사 귀즐라프(Charles Gutzlaff)가 김창한의 아버지에게 씨감자를 주면서 그 재배법을 가르쳐 주었기에 감자를 재배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김창한은 아버지가 감자 재배법을 습득하여 전파한 내력과 재배법을 편집하여 30년 후인 1862년 ‘원저보’를 출간했다. 영국 상선과 선교사의 이름, 시기, 장소 등이 정확하게 적혀 있다. 북방에서 감자가 먼저 들어왔다는 사실도 또렷하게 기록했다. “감자가 가장 먼저 전해진 것은 언제, 어디서인가?”를 따지는 것은 오히려 의미가 없다. 비슷한 시기, 여러 차례 전해졌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1824년 북관으로, 1832년 전북 해안으로, 8년의 간격을 두고 감자는 한반도에 전해졌다. 그 외에도 알려진, 알려지지 않은 감자 전래 사실은 많다. 당시 전북 해안과 북관을 통해 전해진 감자 품종이 어떤 것인지는 알 도리가 없다. 두 감자는 달랐을 것이다. 북관과 전북 해안은 멀다. 기후, 토양도 다르다. 북관의 감자는 북관의 방식으로 재배하고, 전북 해안의 감자는 전북 해안에 맞게 길렀을 것이다. 이 두 곳 이외에도 감자는 여러 경로로 전래한다. 각각 다른 방식으로 길렀고 세월이 지나면서 여러 종류의 감자는 서서히 한반도에 정착한다.

이름이 혼란스러운 이유가 있다. 감자 전래 전에 고구마가 한반도에 먼저 들어왔다. 고구마는, 감자가 전해지기 수십 년 전에 일본 쓰시마를 통해 한반도에 들어왔다.조엄(1719~1777년)은 영조 40년(1764년) 6월 18일의 일기에 고구마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한다.(해사일기)

“이 섬(쓰시마)에 먹을 수 있는 뿌리가 있는데 ‘감저(甘藷)’ 또는 ‘효자마(孝子麻)’라 부른다. (효자마는) 일본 발음으로 ‘고귀마(古貴麻)’라 한다. 생김새는 산약(山藥, 마)과 같고 무 뿌리[菁根, 청근]와도 같으며 오이나 토란과도 같아 그 모양이 일정하지 않다. 진득진득하고 반쯤 구운 밤 맛과도 같다. 날로 혹은 굽고, 삶아서 먹어도 된다. 곡식과 섞어 죽을 쑤어도 되고 썰어서 정과(正果)로 써도 된다. 떡을 만들거나 밥에 섞거나 되지 않는 것이 없으니 흉년을 지낼 밑천으로 좋을 듯하였다. 남경(南京)에서 일본으로 들어와 일본의 육지와 여러 섬들에 많이 있다는데, 그중에서도 대마도가 더욱 많다.”

조엄은 조선통신사 정사로 일본에 가서 고구마를 보았다. 식량으로 혹은 구황작물로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했다. 두 차례 고구마 종자를 동래 일대로 보낸다. 1763년 일본에 도착한 후 바로 보낸 것은 재배에 실패했다. 다행히 이듬해 귀국 길에 보낸 종자는 재배에 성공한다.

숨은 이야기가 있다. 조엄 이전에 고구마를 한반도에서 기르기 위한 노력이 있었다. 영조 때의 문인 칠탄 이광려(1720~1783년)는 중국을 통하여 구황식물로서의 고구마 존재를 알았다. 종자를 구해서 여러 차례 고구마 재배를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고구마의 한반도 정착은 드라마틱하다. 칠탄 이광려가 여러 차례 실패하고 고구마 재배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을 때 동래의 고구마 이야기를 듣는다. 마침(?) 조엄의 고구마 기르기도 한 차례 실패로 끝난다. 칠탄은 동래로 직접 가서 자신의 ‘실패담’을 전한다. 조엄이 고구마 모종을 다시 구해오고, 칠탄이 실패담을 더하면서 고구마는 어렵게 한반도에 정착한다.

고구마의 원래 이름은 ‘감저(甘藷)’였으나 북방에서 건너온 감자에게 그 이름을 주었다. ‘북방 감저’ ‘북감저’는 감자가 되고, 원래 ‘감저’로 불렸던 고구마는 고구마로 이름을 굳혔다. “강진 고금도에서 잘 자라고, 고금도를 시작으로 널리 퍼졌기 때문에 ‘고금이’가 되고, ‘고구마’가 되었다”는 주장도 있으나 틀렸다. 믿을 만한 주장은, ‘효자마(孝子麻)’의 일본 발음이 ‘고귀마(古貴麻 혹은 古貴爲麻)’이고 고귀마, 고귀이마에서 고구마가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감자 이름에 대해서는 유럽인들도 혼란스럽게 받아들였다. 감자와 고구마 이름을 뒤섞어 버렸다. 감자의 원산지인 페루에서 감자의 이름은 ‘파파papa’였다. 유럽인들이 캐러 비어 해변에서 발견한 고구마 비슷한 작물은 ‘바타타batata’였다. 오늘날의 감자, 포테이토potato는 결국 ‘파파papa+바타타batata’를 섞고, 이게 파타타patata를 거치며 정해진 것이다.

감자에 대한 아름다운 이름은 프랑스인들이 가지고 있다. 바로 ‘땅속의 사과pomme de terre’라는 이름이다. ‘폼므 데 테레’를 줄여서 폼므[사과]라고 부르기도 한다. 프랑스인들은 감자로 여러 가지 요리를 만드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우리는 여러 가지 국물 음식에 감자를 넣거나 반찬을 만들 때 감자를 널리 사용한다. 감자가 탄수화물이 많지만, 감자를 주식으로 사용하지는 않는다. 가난한 시절, 감자를 더해서 지은 감자밥을 먹었지만 이제 감자밥은 거의 사라졌다. 감자로 유명한 강원도의 감자요리도 상당히 단순하다. 감자전, 감자옹심이 등이 유명하다. 감자옹심이의 경우 가난한 시절, 주식으로 먹었던 음식이다. 이제는 “강원도에 여행 가면 먹어보는 별미” 정도다.

감자를 가장 잘 이용한 이들은 아일랜드, 스웨덴 등 북유럽이다. 밀 생산이 힘든 북유럽에서는 감자가 주식이었다. 유럽인들은 감자를 스튜, 수프, 캐서롤, 샐러드, 팬케이크 재료로 사용한다. 햄버거 가게나 프라이드치킨 전문점에서 내놓는 칩(chip)이나 튀김도 감자로 만든 것이다. 이탈리아 파스타의 일종인 뇨키(gnocchi)의 재료로도 사용한다.

감자 맛집 4곳
1.진부집 /강릉 중앙시장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감자전을 만들었다. 중앙시장 재정비 후 새로 문을 열었다. 이젠 강판에 갈지 않고 감자를 믹서기로 갈아낸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진부집 감자전/강릉 중앙시장


2.속초관광수산시장 & 강릉중앙시장
공장에서 대량 생산한 것들이 많다. 얼추 비슷한 맛이다. 관광지인 속초, 강릉에 가면 비슷비슷한 맛이지만 한 번쯤 시도해볼 만하다. 시장 군데군데서 감자떡을 만날 수 있다.
속초관광수산시장 & 강릉중앙시장 _ 감자떡


3.감나무집 /속초중앙시장
속초 중앙시장에 있다. 감자옹심이를 먹기 좋은 곳. 가장 오래된 감자옹심이 전문점 중 하나다. 방송에도 여러 번 소개되었다. 항아리에 담아 내놓는 옹심이다.
감나무집_속초중앙시장/감자옹심이


4.헴라갓 /서울 남산
스웨덴 가정 요리 전문점이다. 메뉴가 간단하지만, 감자요리 종류는 다양하다. 으깬 감자요리, 칩 형태, 채 썰어 만든 감자요리 등 다양한 감자 음식을 만날 수 있다.
헴라갓_서울 남산/각종 감자요리


글·사진=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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