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골목, 성곽 품은 해변 도시

스리랑카에서의 감동은 구식 슬라이드를 넘기다 몇 개의 숨 막히는 광경과 맞닥뜨리는 기분이다. 눈에 익은 풍경이 반복되다가도 우연히 조우한 장면에 넋을 빼앗기곤 한다. 14세기 아라비아 상인들의 교역항이었던 갈레는 바닷가 성채도시의 면모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갈레 성채와 바다

스리랑카의 남쪽 해안으로 향하면 2차선 덜컹거리는 도로는 인도양의 포말과 나란히 달린다. 이곳 바다는 파도가 성을 낼 때 오히려 매력적이다. 스리랑카를 대변하는 불교유적들과는 다른 새로운 삶의 단상들이 해변을 채운다.

유럽향 깃든 세계문화유산 구시가

바닷가 성채도시 갈레로 이어지는 해변은 배낭족들이 즐겨 찾는 낮은 담장의 숙소들이 이어진다. 서구열강의 지배 기간 요새역할을 했던 갈레는 수도 콜롬보에 교역항의 타이틀을 내준 뒤로는 오롯한 관광지로 변신했다. 성채 내부에는 네덜란드 식민지 시절 지었던 유럽풍 가옥들이 옹기종기 남았다. 신구도시를 잇는 갈레 게이트의 좁은 골목사이로는 세바퀴 달린 모터사이클인 오토 릭샤가 달린다.

장대 낚시하는 어부들

해질무렵에 현지 주민들과 뒤섞여 등대, 깃발바위, 시계탑 등으로 이어지는 성채 위를 걷는 것은 가슴 탁 트이는 동질감을 일으킨다. 스리랑카에서 맨 처음 지어졌다는 등대아래는 꼬마들이 크리켓을 즐기는 정겨운 풍경이다. 성곽으로 둘러싸인 갈레의 구시가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갈레에서 벤토타 등 제법 큰 휴양지를 지나쳐 남쪽으로 향할수록 어촌 향취는 더욱 강렬하다. 파도가 가로막은 듯 차량들은 한 고즈넉한 마을에서 불현듯 멈춘다.

갈레 등대

장대 위에서 펼쳐지는 이색 낚시

스리랑카 아항가마 해변에서 맞이한 장면은 아득하다. 포구 옆에는 고깃배 대신 기다란 장대 10여개가 줄지어 늘어서 있다. 덤벼드는 검푸른 파도보다 검은 근육의 장정들은 장대 위에 ‘룽기’(스리랑카 남자들의 치마같은 하의)를 입고 허수아비처럼 매달려 있다. ‘스틸트 피싱’으로 알려진 스리랑카 남부의 독특한 낚시는 거친 이곳 바다가 길러낸 삶의 방식이다. 파도가 험한 날에 배를 띄울수 없었던 어부들은 장대에 올라 낚시를 했다. 대부분 장딴지 근육들이 예사롭지 않다. 어망에는 두서너 마리의 생선이 쓸쓸하게 담겨 있다. 외다리 낚시는 최근에는 관광객들을 위한 보여주기 이벤트로 변질됐지만 노을에 비낀 이색 낚시질은 스리랑카의 풍광을 대변하는 단골 장면으로 등장한다.

장대 낚시터 옆으로는 마을 꼬마들이 뒤엉켜 파도에 몸을 내던진다. 선뜻 나서기 힘든 포말이 스리랑카에서 조우한 가장 천진난만한 미소들을 쓰다듬는다. 짧은 시간, 평화롭고 달콤한 전율이 온몸에 흐른다. 스리랑카는 ‘인도양의 진주’로 불리는 인도 남쪽의 외딴 섬나라다. 편견을 털어내면, 상상 밖 낯선 단면들이 가슴을 울컥이게 만든다.

글^사진=서 진(여행칼럼니스트)

● 여행메모

▲가는 길=대한한공이 인천~콜롬보 직항노선을 운항중이다. 콜롬보를 경유한 항공기는 몰디브까지 운항된다. 스리랑카 입국에는 비자가 필요하다. 현지 공항에서도 도착비자를 받을 수 있다. ▲숙소=갈레 구시가 일대에 게스트하우스 등 배낭족들의 숙소가 밀집돼 있다. 남서부 해변가에는 벤토타 외에 아홍갈라, 히카두와 등에 해변을 낀 고급리조트들이 들어서 있다. ▲기타 정보=서구열강들의 침탈을 받았던 스리랑카는 18세기말에는 영국의 식민지로 귀속됐다 1948년 독립했다. 언어는 싱할리어, 타밀어, 영어 등 3개 언어가 공용어다. 종교는 불교 외에도 힌두교, 이슬람교를 두루 믿는다. 연평균 기온은 27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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