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서문.

세계유산인 남한산성은 해질녘 풍경이 탐스럽다. 산성 주변에 흩어진 유적 사이를 걸으며 숲과 성곽 둘레길을 음미했다면, 해 질 무렵에는 산성에서 바라보는 야경에 취해본다. 남한산성 서문 위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시대를 넘어서는 아득한 추억을 만들어낸다. 늦은 오후의 산성 산책은 선선한 바람과 고독이 함께한다. 한낮에 성곽을 채우던 산행객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면 산성 안은 오붓함이 동행하는 시간이다. 북문에서 서문으로 이어지는 완만한 탐방 코스 역시 주말 낮이면 사람들로 북적이지만, 해가 내려앉을 때쯤이면 한적한 공간으로 변신한다.

남한산성 북문.

사색을 부추기는 해 질 녘 산책길

남한산성은 국내 11번째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문화와 역사의 현장이다. 남한산성은 백제에서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국방의 보루 역할을 한 요충지였다. 조선 인조 때는 청나라가 침략하자, 왕이 이곳으로 피신해 47일 동안 항전한 곳이기도 하다. 더운 기운이 한 풀 꺾일 때쯤이면 북문을 거슬러 서문으로 오른다. 산성 탐방 코스 중 가장 수월하고 가족 여행객이 접근하기 쉬운 코스는 북문~서문~수어장대~남문을 둘러보는 코스다. 이곳에서는 성곽 안팎을 넘나들며 성곽 둘레길을 걸어보면 좋다. 성문 밖으로 잠시 나서면 솔숲이 상쾌한 휴식을 선물한다. 탐방 코스의 반환점인 수어장대는 지휘와 관측을 위한 군사적 목적으로 만들어진 남한산성 장대 중 유일하게 남은 곳이다. 성안에 남아 있는 건축물 중 가장 화려한 자태를 뽐낸다. 서문 옆 병암에는 정조 때 서문 근처가 파괴된 것을 주민들이 자진해 보수한 것을 찬양하는 글이 새겨졌다. 서문에서 조우하는 풍경의 묘미는 옛 도읍이던 서울의 건물과 한강 변에 불이 하나씩 켜지고 옅은 어둠에서 벗어난 도시가 은은한 조명으로 뒤덮이는 시간을 알현하는 것이다. 다른 산에서 조망하는 야경과 달리 서문까지 큰길이 닦여 가족이 함께 산책하며 오붓하게 야경을 감상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다.

현절사.

산성에 흩어진 200여 문화재

남한산성은 해발 500m 산세 지형을 따라 둘레 11.76km 성곽에 200여 개 문화재가 자연경관과 함께 흩어져 있다. 10여 년 복원 과정을 거쳐 문을 연 행궁은 남한산성의 새로운 상징이다. 행궁은 임금이 도성 밖으로 거둥할 때 임시로 머물던 곳이다. 조선 인조 때 만들어졌으며, 이후에도 숙종과 영조, 정조 등이 능행 길에 머물렀다. 남한산성 행궁은 유일하게 종묘와 사직을 갖춘 행궁으로, 유사시에는 남한산성이 임시 수도 역할을 했음을 보여준다. 행궁 안에는 정문이자 ‘한강 남쪽 제일의 누각’이라는 의미가 있는 한남루 외에 내행전, 외행전, 이위정 등이 복원됐다. 빠르게 수어장대와 서문까지 오르려면 숭렬전, 국청사를 거치는 숲길 코스를 선택한다. 숭렬전은 백제의 시조 온조왕과 산성 축조 당시 책임자인 이서 장군을 모신 사당이다. 이 단축 코스는 야간에 길을 잃을 우려가 있으니 해가 진 뒤에는 산행을 삼간다. 남한산성 산책로중 남문~동문~북문 코스는 인적이 뜸해 호젓한 낮 산책에 좋다. 산성 탐방을 마친 뒤에는 곳곳에 들어선 유적들이 그늘이 된다. 군사를 훈련하기 위해 건립한 연무관이 육중한 규모를 자랑하고, 병자호란 때 항복을 끝까지 반대한 삼학사를 기리는 현절사가 오붓한 자태로 남아 있다. 무기 제작을 관장하던 침괘정과 행궁 초입 종루 인근에는 은은한 조명과 함께 차 한잔 마실 수 있는 공간들이 마련돼 있다.

글^사진=서 진(여행칼럼니스트)

<여행메모>

▲가는 길=남한산성은 광주, 하남, 성남시와 접한 공간에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8호선 산성역에서 9번, 52번 버스를 타고 산성로터리에서 하차한다. ▲음식=산성 남문에 들어서기 전 위치한 닭죽마을은 원기를 보충하기에 좋다. 마을에는 식당이 20여 곳 모여 있는데, 남한산성에 놀러 온 사람들이 계곡에 발 담그고 닭을 먹던 시절부터 30여 년간 운영해온 곳도 있다. ▲기타정보=남한산성 행궁에서는 문화해설사의 해설을 들을 수 있으며, 아이들을 위한 책 만들기와 부채 만들기 등 체험 프로그램도 진행된다. 시인이자 독립운동가 한용운 선생의 흔적이 담긴 만해기념관도 산성 산책때 함께 둘러보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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