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린내가 가장 적은 가을 생선에 소금을 슬쩍 두르면 달콤한 감칠맛!

맛에도 정점이 있다면 가을이야말로 그 맛을 제대로 포착할 수 있는 때다. 붉은 빛을 더해가며 익는 과일과 살이 오르며 맛도 함께 차오르는 생선까지. 여기에 곁들일 수 있는 건 오직 하나, 소금이다.

생선과 가장 궁합이 좋은 재료는 다름 아닌 소금. 표면에 소금을 뿌린 후 굽거나 끓이면 본연의 맛을 가둘 수 있어 더 맛이 좋아진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종교에 관계 없이 성경 속에 종종 등장하는 탁월한 비유에는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짠맛을 잃지 않은 소금이야말로 요리를 이루는 기본적인 재료이니 말이다. 흔해서 소중함을 잊고 살기 쉬운 소금은 지금처럼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이 되면 다시금 그 존재감을 드러낸다.

빼곡하게 잎이 찬 배추에 굵은 소금을 양껏 뿌리면 숨을 죽이고 양념할 채비를 하게 하는가 하면 수온이 살짝 내려가면서 물고기는 속에 품은 흙을 다 토해내고 자연스럽게 해감을 한다. 그래서 비린내가 가장 적은 가을 생선에 소금을 슬쩍 두르면 단맛이 더 올라가며 짙은 감칠맛을 느낄 수 있다. 가을이 되었다 싶으면 불쑥 떠오르는 전어 맛처럼 말이다. 정약전은 귀양 가 있던 흑산도 연해의 수종들을 ‘자산어보’에 남겼다. 기록에서는 전어를 ‘기름이 많고 달콤하다. 흑산도에서도 간혹 나타나지만 그 맛이 육지 가까운데 것만은 못하다’고 하며 납작하고 길쭉한 생김새 탓에 한자로 화살 전 자를 사용해 전어(箭魚)로 적어 두었다. 그런데 전어를 둘러싼 한자 명은 또 있다. 서유구의 ‘임원 경제지’에는 돈, 화폐 전 자를 사용해 전어(錢魚)로 적힌 것. ‘기름이 많고 맛이 좋아 상인들이 염장하여 서울에서 파는데 귀한 사람이나 천한 사람이나 모두 좋아해 사는 자가 돈을 생각하지 않아’ 전어(錢魚)란다. 전어는 지리적으로 동 중국해와 일본 중부 이남, 우리 나라의 서해안과 남해안에 서식한다. 주로 수심 30m 이하의 연안에서 많이 잡힌다. 겨울에는 따뜻한 남쪽에 머물다가 봄이 되면 북상하기 시작한다.

3~8월은 산란기로 7~8월에는 기름기가 적고 11월 이후로는 다시 월동을 하러 가야 해 뼈가 단단해진다. 그러니 딱 이맘때부터인 9~10월에는 나날이 살이 오르기 시작하고 지방이 최대 3배 가량 늘어 맛이 가장 좋은 것. 뼈는 아직 연하고 살은 부드러워서 뼈째 씹어 먹어도 고소하다. 전어를 기록한 또 다른 한자어가 온전할 전 자를 쓴 전어(全魚)인 이유다. 살짝 칼집을 내고 소금을 살살 뿌려 구워 내면 머리부터 꼬리까지 다 먹을 수 있다니 오직 지금 같은 제철에만 전어(全魚)일 것이다. 그런데 전어는 함부로 구워서는 안 된다. 한 마리만 구워도 특유의 달콤한 냄새가 많이 나고 멀리 퍼져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만든다는 말이 절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전어의 맛을 두고는 ‘가을 전어는 깨가 서 말’이라는 표현이면 충분하다. 까만 들기름의 고소한 맛이 가볍다면 입안에 살이 씹히는 전어의 고소함은 실체가 있어 더 감칠맛이 난다고 할까. 전어 요리의 백미가 소금 구이라면 숭덩숭덩 뼈째 잘라 먹는 막회인 세꼬시는 뼈에서 나는 단맛까지 즐길 수 있는 요리다. 전어 세꼬시는 연한 뼈에 붙은 살까지 씹어낼 때 비린내 없이 고소한 풍미만 남긴다. 입 안을 씻어내는 소주보다는 혀에 머무는 맛을 고조시켜 주는 화이트 와인을 함께 즐기면 더 좋을 테다. 효능을 알고 먹으면 더 기분 좋게 먹을 수 있으니 전어에 관련해 기억해두면 좋을 영양 정보는 다름 아닌 칼슘이다. 우유의 2배 이상 함유되어 있고 뼈째 먹는 해산물이 뼈에 유익하듯 골다공증 예방에도 기여할 수 있겠다. 불포화 지방산이 많아 혈액을 맑게 하고 한방에서는 소변 기능을 돕고 위를 보하고, 장을 깨끗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지금 같이 전어가 맛있는 때에 포구를 산책하다보면 저녁 무렵, 전어잡이 배들이 나타난다.

‘세종실록지리지’에서는 충청도, 경상도, 함경도에서 신선한 전어가 많이 잡힌다고 적어두었는데 과연 올해에도 전어가 많이 나는 지역들에서 앞다투어 전어 축제의 막을 올렸다. 마치 봄철에 이동하는 전어처럼 남해안에서 시작해 서해안으로 북상하며 축제가 이어진다. 가장 오래된 전어 축제는 전라남도 광양시 진월면 망덕포구에서 8월 말에서 9월 초까지 열리는 ‘광양전어축제’다. 섬진강 민물과 남해 바닷물이 만나는 망덕포구에서는 섬진강변의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전어구이를 먹는 낭만이 있다.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57호 ‘전어잡이 소리’를 보존하고 있는 곳답게 소리 시연과 광양 전어가요제까지 열려 전어 사랑의 진면목을 보고 들을 수 있겠다. 9월 중순부터는 서해로 가야 한다. 꽃게로 유명한 충청남도 서천군에서는 제철 꽃게와 전어 요리를 맛볼 수 있는 ‘서천 홍원항 자연산 전어·꽃게 축제’가 열린다. 수조에 풀어놓은 전어를 맨손으로 직접 잡아보는 체험부터 가장 저렴한 가격에 전어를 떼 갈 수 있는 경매 이벤트까지 준비했다고. 같은 시기 근처의 충청남도 태안으로 가면 ‘안면도 백사장 대하축제’가 한창이다. 가을 전어를 잡느라 바쁜 이들이 있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23cm의 자연산 특 대하도 맛볼 수 있을 정도로 전국에서 대하가 가장 많이 잡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대하는 우리나라 연안에서 자생하는 80여종의 새우 중 가장 크고 먹음직스럽다. 불꽃놀이, 갯벌체험도 있지만 해안가 근처의 식당에서 대하구이, 전어구이, 게국지를 맛볼 것을 권한다. 살이 통통하게 오른 대하가 게국지에 들어간 달콤한 맛은 먼 길을 달려온 고생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만족스러울 테다.

‘무창포 신비의 바닷길 대하·전어 축제’는 충청남도 보령시에서 준비한 행사다. 독살어업 체험, 맨손 고기 잡기 체험, 후릿그물 체험, 해루질 체험 등을 즐기고 난 뒤에는 제철 해산물로 배를 채우면 된다. 밤에는 횃불을 쥐고 바닷길을 걸어보는 체험도 기다린다. 해변가 무창포 수산물 시장에서 늦은 밤까지 술잔을 기울여도 좋겠다. 가까이에는 수도권에서 유일하게 재래어시장이 있는 인천 남동구의 소래포구가 있다. ‘인천소래포구축제’에 가면 고깃배가 실어 나르는 신선한 해산물이 가득하다. 전어, 대하, 꽃게가 빠지지 않는 것은 물론이다. 가까이에 갯벌, 갈대밭이 흐드러진 소래습지생태공원도 들르자. 천일염으로 유명한 염전의 모습을 직접 볼 수 있어 소금은 왜 짠가, 하는 물음에 대한 답도 구할 수 있다. 멀리 찾아가 전어를 맛볼 수 없는 분주한 가을을 보내고 있다면 서울에서의 선택지도 여럿 있다. 우리가 가을에 전어의 맛을 말하듯 서양에도 가을철의 생선, 향을 더해가는 버섯, 잘 익은 호박 등을 즐겨 먹는다. 캠핑이나 바비큐에서 빼놓을 수 없는 원초적인 요리, 직화구이도 이제부터다. 제철 식재료의 겉은 바삭하게 속은 촉촉하게 잘 구워내는 두 곳의 가게에서는 요리에 갖은 양념보다는 맛 좋은 소금을 함께 준비해준다.

신사동 / SOOT(숯)

식재료가 익으며 갈색으로 변하는 ‘마이야르 반응’은 음식의 맛과 향을 고조시켜준다. ‘SOOT’은 숯과 장작을 이용한 화덕, 스모킹 건 등을 이용해 불맛 가득한 구이요리를 전문으로 내는 곳. 일명 우드파이어 그릴 요리라고 하는데 좋은 나무를 사용해 숯을 만들고 거기서 나오는 연기와 숯불로 재료를 굽는 것이 특징이다. 단순해 보이지만 장작의 양, 불과의 거리 등을 섬세하게 따져 일명 ‘겉바속촉’의 요리로 완성해내야 해 숙련된 기술자가 제대로 된 맛을 낼 수 있다.


이곳을 운영하는 주인장은 호주의 숯 전문 레스토랑에서 배웠던 경험을 살려 스테이크, 생선, 통삼겹, 닭고기 같은 메인 요리부터 양배추, 알감자 같은 채소 등 맛있는 제철 재료를 구워 낸다. 불 향이 밴 요리에 어울리는 가니시와 소스도 이곳만의 비법으로 직접 만들어 특별함을 더한다. 우드파이어의 토속적인 느낌을 살린 독특한 인테리어도 여행지에서의 식사처럼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요소. 주류로는 미국식 하이볼이 여러 종류 준비되어 있다. 버번, 라이같이 저마다 다른 위스키 베이스로 만든 것, 피트 향이 강한 스카치 위스키를 넣어 훈연 향을 느낄 수 있는 하이볼 등이다. 주소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23길 7 1층

한남동/ 엘초코데떼레노

스페인 바스크 지역의 도시 산세바스티안은 미쉐린 별을 받은 레스토랑이 단위 면적 대비 전 세계에서 가장 많다는 곳이다. 토지는 비옥하고 산과 바다가 두루 펼쳐져 있어 해산물과 육류, 채소를 가릴 것 없이 늘 신선한 식재료가 풍족한 것이 특징. 오후 6시부터 문을 여는 한남동의 ‘엘초코데떼레노’는 이곳에서 요리를 공부한 신승환 셰프가 제철 식재료로 바스크 요리를 선보이는 곳. 대부분의 재료를 숯에 익히는 바스크식 구이 요리가 다양하게 준비된다.


늘 메뉴에서 빠지지 않는 제철 생선구이 요리는 시장에서 그날 가장 신선한 광어, 가자미 등의 흰살 생선으로 골라와 바스크식 생선 그릴을 이용해 숯에 굽는다. 맛이 고소해지는 정도를 보아가며 직접 숙성하는 갈비 등심이나 한우1+채끝 등심 등은 숯에 살짝 말린 다음 굽고 다시 오븐에 익히면 풍미가 아주 짙다고. 여기에 삐끼요라는 붉은 파프리카도 곁들이는데 매운 것을 전혀 못 먹는 바스크 사람들이 즐겨 먹는 쌉싸래한 맛의 고추다. 그밖에 문어, 치즈 등 대부분의 재료는 스페인산을 써서 본래의 맛을 느낄 수 있게 했다. 바스크 사람들이 즐겨 먹지만 국내에서 구하기 힘든 셰리 종류가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는데 모든 바스크 요리와 잘 어울린다고 하니 주문해 볼 것. 침전한 막걸리처럼 살짝 탁하지만 달지 않고 적당히 드라이한 바스크의 사과주 씨드라도 주문 가능하다. 주소 서울 용산구 독서당로 73 성아맨숀 1층 2호

김주혜 음식칼럼니스트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