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의 도시, 싱가포르 맛 서울 상륙… 카야 토스트, 락사, 칠리크랩 그맛이네!

이곳의 메뉴들은 모두 양이 많다. 속이 꽉 찬 로스트 치킨 샌드위치.

동남아에서 가장 먼저 미쉐린 가이드가 발행된 미식의 도시, 싱가포르의 맛이 서울에 상륙했다. 싱가포르에서 북미정상회담이 열린 작년 6월, 뉴스는 온통 싱가포르의 화려한 야경으로 채워졌다. 높이 세운 커다란 인공 나무 ‘슈퍼 트리’는 마치 영화 ‘아바타’ 세트장처럼 신비로운 분위기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밤새 산책했다는 보타닉 가든도 연일 검색 순위에 올랐다.

싱가포르는 최초의 북미정상회담 개최를 기념해 기념우표, 기념주화를 발행하고 김정은 일행의 체류비까지 부담했을 정도로 적극적이었는데 이후 제법 홍보 효과가 있었다. 일본 여행이 위축된 지금 베트남, 러시아와 더불어 싱가포르로 떠나는 이들이 부쩍 많아진 것. 싱가포르는 여러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동남아시아 국가로 우리나라에서 비행기로 6시간 정도 거리에 있다. 1819년 영국이 무역 거점으로 활용하고자 만든 지역으로 지금의 말레이시아에 포함되었다가 탈퇴했으며 여전히 해상 교통의 요지에서 자유로운 무역이 이루어지고 있다. 중국인, 말레이인, 인도인의 전통이 모두 남아 있는 다문화도시국가로 무용, 음악, 음식 등 문화적으로 전통과 현대, 서양과 동양의 것들이 공존하며 섞여 있는 것이 특징. 지난 해 3주 연속 전미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흥행했던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Crazy Rich Asians)>를 떠올려보라. 싱가포르의 부유한 가문과 그들의 호화스러운 삶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에는 가족들이 모이면 만두를 빚는 전통적인 모습부터 미국식 브라이덜 샤워까지 등장한다.

나라의 크기는 작아서 홍콩이나 마카오를 여행하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홍콩은 낡은 건물과 오래된 시가지로 향수를 자극한다면 싱가포르는 현대적인 도시의 모습을 하고 있다. 특히 건물 하나하나를 관광 자원으로 여겨 자세히 보면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건물이 없는 것도 볼거리다. 법적으로 기존과 같은 디자인의 건물은 건축 허가를 내주지 않는다고. 다채로운 건물 디자인에 빛나는 야경, 길에서 음식을 먹거나 버리면 곧장 벌금을 내야 할 정도로 엄격한 동시에 하루 몇 번씩 쏟아지는 비에 모든 먼지가 씻겨나가는 깨끗한 나라 싱가포르에 가면 무엇이 좋은가? 무엇보다 홍콩과 상하이에 버금가는 미식이 앞선다.

싱가포르는 풍성한 해산물과 여러 동남아 지역의 소스를 활용한 요리가 많다.

프랑스에서 시작된 여행 정보 안내서이자 세계적인 레스토랑 평가서로 알려진 미쉐린 가이드는 동남아의 첫 번째 미식 도시로 싱가포르를 선택했다. 2016년 동남아 국가들 중 가장 처음으로 미쉐린 가이드가 발행된 싱가포르는 2019년에도 2곳의 레스토랑이 최고 등급인 별 3 개를 받으며 미식 도시의 위상을 이어가고 있고 말이다. 사실 더 놀라운 건 싱가포르 서민 음식을 맛볼 수 있다는 저렴한 푸드 코트인 호커 센터, 길거리 노점들도 별을 받아왔다는 점이다. 이런 곳에서 파는 치킨 누들 앤 라이스 같은 음식은 우리 돈으로 2000원이 채 안 되는데 별을 받았으니 그야말로 가성이 좋은 별들로 가득한 것. 대신 미쉐린 가이드에 오른 레스토랑과 식당은 언제나 줄이 길게 늘어서 최소 30분 이상 기다릴 각오를 해야 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싱가포르 음식으로는 카야 토스트, 락사, 칠리크랩 등이 먼저 떠오른다. 서울에서 쉽게 맛볼 수 있게 된 음식이기 때문이다. 걸쭉한 코코넛 밀크에 생선, 새우살과 쌀국수를 함께 넣고 끓인 락사는 동남아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레스토랑에서, 허브인 판단 시럽을 넣은 빵에 코코넛 밀크, 달걀로 만든 카야잼을 바른 달콤한 카야 토스트는 싱가포르 현지 브랜드인 ‘야쿤 카야 토스트’까지 서울에 문을 연지 제법 되었다.

마침내 얼마 전에는 싱가포르의 3대 칠리크랩 식당으로 손꼽히는 ‘점보씨푸드’가 도곡동에 생겼다. 1987년 싱가포르 이스트 코스트 씨푸드 센터에서 시작한 가게로 지금은 중국, 대만, 베트남, 태국 등 한국까지 아시아 10개국에 18개의 매장을 두었을 정도로 인기가 좋은 칠리크랩 전문점이다. 도곡점은 무려 300평에 달하는 넓은 규모로 싱가포르 현지의 느낌과 비슷하게 공간을 꾸몄다. 입구에는 싱가포르를 상징하는 사자 모양의 머라이언상이 세워져 있고 가게에 들어서면 곧장 한쪽 벽 전체를 차지한 수족관이 눈에 들어온다. 그날 그날 공수한 여러 종류의 크랩이 집게발을 움직이고 있다. 인테리어 콘셉트는 단정하고 고급스러운 편. 룸에는 넓고 둥근 테이블이 있어 프라이빗한 시간을 보내기 좋고, 테이블이 적당한 간격으로 떼어진 홀 자리도 소란스럽지 않은 분위기라 좋다. 무작정 시그너처 메뉴인 칠리크랩만 생각하고 왔다면 복잡한 메뉴판에 당황할 수도 있다. 함께한 인원에 따라 알맞은 게의 무게나 종류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우선 크랩은 세 종류가 있다. 맛이 좋고 가격이 높은 순서대로, 깨끗한 물에서 서식하며 특유의 단맛과 부드러운 식감을 가진 킹크랩, 스리랑카, 인도, 필리핀, 호주 등지에 분포하며 속살이 희고 풍부한 육즙에서 단맛이 나는 머드 크랩, 북아메리카 태평양 연안에 분포하고 몸통 살은 부드러운데 고소한 맛에서 풍미를 느낄 수 있는 던저니스 크랩이다. 보통 시가로 가격이 책정되어 메뉴판에 금액이 적혀 있지 않고 크랩에 따라 100g당 1만3000원~2만원 사이를 오간다. 보통 2~3인은 600~800g, 4인은 1.5~2kg 정도를 주문하고 볶음밥과 사이드메뉴 두 세 개를 곁들이면 배불리 먹을 수 있을 양이다.

시가와 인원에 맞게 크랩을 고르고 양을 맞췄다면 요리법을 고를 차례다. 보통은 시그너처 메뉴인 ‘칠리 크랩’을 주문하지만 버터와 페퍼 소스에 볶아 내는 ‘블랙 페퍼 크랩’도 인기 있는 선택지. 맛술과 페퍼 소스로 구운 ‘양념 크랩’, 크랩을 찌고 크림 소스를 곁들이는 ‘크림 스팀 크랩’, 달콤한 소스에 당면까지 볶아 나오는 ‘크랩 당면 볶음’도 주문 가능하다. ‘칠리크랩’이 처음이라면 독특한 소스부터 맛볼 것.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섞인 싱가포르를 표현하는 음식답게 동남아의 다양한 향신료를 조합해 만드는데 말레이와 인도의 칠리, 강황, 레몬그라스, 캔들넛 등에 중국식 된장, 토마토 소스가 들어간다. 마냥 맵거나 달거나 짜지 않고 새콤달콤한 맛이 부드럽고 중독성 있다. 갖은 향신료와 식재료가 맛깔스럽게 버무려진 소스 특유의 깊은 풍미가 게살을 다 발라 먹고 볶음밥까지 한 그릇 비우게 만드니 그야말로 싱가포르식 밥도둑이다.

올데이 다이닝 레스토랑에 빠질 수 없는 것은 달콤한 프렌치 토스트.

메뉴판에는 ‘칠리크랩’ 외에도 100여가지의 싱가포르 요리가 준비되어 있다. ‘캐비어랍스타용과샐러드’, ‘구운 오리 냉채’ 같은 중화풍 요리부터 참광어를 간장소스, 마늘찜, 무찜, 굴소스튀김 등의 요리로 골라 먹거나, 랍스터를 시가에 따라 고르고 치즈 구이, 생강 볶음 등의 10여가지 조리법 중에 골라 먹을 수 있는 식이다. 공심채, 시금치, 아스파라거스 등 채소는 볶음 소스만도 네 종류에 소고기, 닭고기 요리도 볶음, 조림, 구이 등으로 요리되어 육해공이 다 차려질 수 있는 것. 메뉴판을 찬찬히 읽어볼수록 입맛을 다시게 된다. 메뉴 고르기가 어렵다면 우선 ‘시리얼 새우’와 ‘해산물 볶음밥’을 같이 주문하자. ‘해산물 볶음밥’은 칠리크랩 소스에 비벼 먹으면 그만이고 ‘시리얼 새우’는 달콤하지만 입에서 금방 녹아버리는 튀김 옷을 입어 자꾸만 손이 간다. 귀여운 집게발 장갑과 칠리크랩 캐릭터가 그려진 일회용 앞치마는 이곳에서의 인증샷을 부르는 소품들이다. 싱가포르 현지 식당의 오션뷰는 없지만 그 맛 그대로, 우아하게 게살을 발라내기에 이보다 좋은 곳은 없을 듯하다.

싱가포르는 동남아시아 나라답게 날씨가 덥고 습하다. 1년 내내 비가 많이 오는 열대우림기후라 밤에도 후덥지근한 것이 특징. 그래서인지 언제나 에어컨을 세게 틀어놓은 시원한 실내에서 쇼핑과 식사, 각종 문화 생활까지 해결할 수 있는 ‘몰링’의 도시다. 바깥에 비바람이 몰아치든 해가 기울어 한밤중이 되었든 날씨와 시간을 잊어버릴 수 있는 것이 몰링의 매력. 이런 곳에서는 식당도 브레이크 타임이 없다. 싱가포르의 올데이 다이닝 레스토랑 ‘PS.Cafe’ 역시 언제 가도 먹음직스러운 음식과 술, 차와 커피를 즐길 수 있는 곳. ‘PS.Cafe’는 20년 전, 싱가포르 시내의 한 쇼핑몰 안에 프로젝트샵이라는 의류 매장 한 구석에 작고 아늑한 카페로 처음 문을 열었다. 비밀스럽게 자리한 카페에서는 푸짐한 사이즈의 케이크와 푸딩, 타르트 같은 디저트와 이제는 시그너처 메뉴가 된 ‘트러플 슈스트링 프렌치프라이’같이 심플하지만 풍성한 식사를 할 수 있는 음식들이 차려졌다. 패셔너블한 이들의 취향을 만족시키면서 입소문이 났고 독립된 카페로 다시 자리를 잡아 지금까지 싱가포르의 트랜디한 지역에 7개의 매장을 두고 있다. 지난해에는 상하이에, 마침내 이번 9월 말에는 서울 청담동에 9번째 가게를 열었다. 감각적인 이들의 취향을 만족시켜줄 상점들과 갤러리가 모여 있는 도산공원 인근에 제법 넓게 자리를 잡았는데 약 100여명이 함께 식사할 수 있는 규모다.

주변 환경과 잘 어우러지는 공간으로 들어서자마자 화려한 식물과 꽃 장식이 눈을 즐겁게 한다. 주문 제작되어 보기에도 앉기에도 편안한 디자인 가구가 곳곳에 자리하고, 주변의 소음만 지워내는 배경 음악이 들려온다. 오전 10시반부터 밤 10시까지 주문하지 못할 메뉴가 없으니 찬찬히 둘러본다. 훈제 바비큐 요리인 ‘BBQ립’, 와규목심패티로 만든 ‘PS버거’에 시그니처 프라이즈인 슈스트링 트러플 프렌치 프라이가 같이 나오는 메인 메뉴들부터 샌드위치, 파스타, 피자 등의 클래식한 캐주얼 다이닝 요리가 이어진다. 포르토벨로, 새송이, 양송이 버섯 등에 트러플 향이 감도는 피자를 비롯해 ‘그린 페스토 펜네’, ‘스파이시 알리오 올리오’ 등의 파스타 메뉴는 이탈리안 풍이고, 로스트치킨, 스테이크 등이 들어간 푸짐한 샌드위치, 신선한 샐러드까지 여러 종류가 준비되어 있어 여러 번 방문해도 질리지 않을 테다.

싱가포르에서의 몰링을 즐기듯 현지 느낌을 불러일으킬 메뉴들도 있다. ‘말레이시아 락사’, ‘싱가포르 치킨 라이스’, ‘싱가포르 칠리 소프트 쉘 크랩’ 등이다. 게살, 대하를 스파이시한 토마토 소스에 볶은 ‘수지의 스파게티 미고랭’이나 ‘스모키 마르게리타’ 피자 등 비건 옵션으로 변경 가능한 음식들도 따로 표시되어 있어 누구나 편안한 식사를 즐길 수 있겠다. 무엇보다 ‘밀가루 없는 오렌지 케이크’, ‘플로리다 키라임 파이’ 등 한 조각이 무척 커다랗고 푸짐한 케이크, 푸딩 종류가 유명하니 디저트를 즐길 여유를 남겨둘 것. 공간이 보다 캐주얼하고 즐거운 분위기로 변신하는 오후에는 다양한 주류가 준비되어 있다는 게 장점이다. 와인, 맥주, 아페롤 스프리츠와 여러 종류의 칵테일이 기다린다. 싱가포르의 붉은 석양을 모티프로 만들어졌다는 싱가포르 슬링도 주문 가능! 바깥 풍경은 잠시 잊은 채 술 잔의 빛깔로 맞이하는 하루의 끝이다.

김주혜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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