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삶터에서 맞이하는 일출은 감회가 깊다. 서울 선유도는 한강과 도심 마천루를 바라보며 해돋이를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다. 보행자 전용 다리인 선유교에 서면 오랜 삶터인 서울은 풍경이 되고, 한국 정치의 심장부인 여의도의 마천루 너머 해가 솟는다. 아침이면 유독 고즈넉한 섬은 현실과 멀지 않다. 한강 다리를 건너며 마주했던 섬은 찻길 하나 건너면 분주한 삶의 공간으로 이어진다. 노약자나, 유모차를 끌고 온 아이 엄마도 선유도에서는 해맞이에 동참할 수 있다. 한겨울 태양은 LG 쌍둥이 빌딩 사이로 떠오르고, 국회의사당과 63빌딩이 병풍처럼 드리워진다. 붉은 기운은 한강에 잔 비늘처럼 투영되며 긴 여운을 남긴다.
한강의 세월을 담아낸 섬
섬 주변으로는 서울의 경관이 한눈에 펼쳐진다. 북한산 줄기와 절두산, N서울타워까지 윤곽을 드러낸다. 섬 안에는 산책로가 이어지고, 겨울 철새가 날아들어 일출 분위기를 돋운다. 친숙한 선유도공원이지만 사연을 되짚어보면 의미가 색다르다. 일출의 감정 곡선은 선유도의 역사와 맞물려 더욱 가파르게 치솟는다. 조선 시대까지만 해도 선유도는 육지에 이어진 해발 40m가량의 언덕이었다. ‘신선이 노닐던 언덕’이라는 의미로 선유봉이라 불렸고, 수려한 경관 때문에 강 건너 잠두봉(지금의 절두산)과 더불어 뱃놀이하기 좋은 곳이었다. 겸재 정선이 그린 진경산수화에도 선유봉 일대의 아름다운 모습이 담겨 있다. 선유봉은 일제강점기 이후 한강 정비와 도로 건설을 위해 채석장으로 이용되어, 봉우리가 깎여 나가며 한강 위에 떠 있는 섬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1970년대 정수 공장으로 쓰이기 전에도 질곡의 세월을 겪은 셈이다.
정수장에서 생태 공원으로
2000년 정수장이 폐쇄된 후 선유도는 ‘물’을 주제로 한 국내 최초의 재활용 생태 공원으로 다시 태어났다. 옛 정수 공장의 흔적은 고스란히 유지한 채 우리나라의 산이나 들에 자라는 자생식물 200여 종이 둥지를 틀었다. 일출 감상을 끝낸 뒤 시간의 정원 등에서 옛 정수장의 흔적을 고스란히 음미할 수 있다. 선유도공원은 전문가들이 뽑은 ‘한국의 대표 건축’ 1위에 선정된 바 있다. 섬에는 구경거리가 곳곳에 담겨 있다. 섬 북쪽 정자인 선유정과 전망대에서는 옛 선현들이 흠모했다던 서울과 산자락의 풍경의 실루엣처럼 펼쳐진다. 미루나무와 자작나무 숲길을 거니는 것도 운치 있다. 선유도는 드라마의 단골 촬영지로도 사랑받았다. ‘꽃 보다 남자’, ‘아이리스’, ‘궁’ 등 화제작들의 배경이 됐다. 양화대교 연결 초입에는 섬의 과거와 건축에 관련된 전시물이 간직된 ‘선유도 이야기’가 문을 열었다. 온실 식물원에는 선유도에서 자생하는 식물들이 한데 모여 있다. 세계적인 여행매거진 론리플래닛은 한국의 아름다운 정원을 소개하며 제주도, 창덕궁과 함께 한강 선유도공원을 꼭 둘러봐야 할 명소로 추천하고 있다.
글^사진=서 진(여행칼럼니스트)
<여행 메모>
▲가는 길=선유도는 버스나 9호선 선유도역에서 쉽게 접근이 가능하며, 버스 정류장에서 엘리베이터로 선유교까지 이동할 수 있다. 장애인 차량은 선유도 내 주차장에 주차가 가능하다. 섬 운영 시간은 오전 6시부터 자정까지다. ▲음식^카페=선유도역에서 선유도로 이어지는 길목은 최근 카페, 레스토랑들이 들어서며 아늑한 공간으로 변했다. 2,3번 출구로 나서면 커피 한잔에 아침 토스트를 즐길 수 있다. 선유도 내에도 전망 좋은 카페가 있다. ▲기타 정보=선유도공원에서 차량으로 10여 분 이동하면 서울의 또 다른 일출 명소로 잘 알려진 상암동 하늘공원에 닿는다. 생태 공원으로 조성된 하늘공원 정상에 오르면 억새 숲과 풍력발전기가 펼쳐진 모습을 배경으로 한강의 자태를 조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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