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파 도시 풍경 .

이스라엘에 들어서는 것 자체가 일종의 의식행위다. 텔아비브행 기내 풍경은 모든 걸 소소하게 받아들이게 만든다. 검은색 펠트 모자와 롱코트에 귀밑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몸을 앞뒤로 흔드는 청년들. 정통파 유대인들이 통로에서 읊조리는 기도문은 비행기를 성전 분위기로 이끌며 벤구리온 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된다.

이스라엘은 전 세계 유대인을 받아들이는 정책을 펼쳐왔고 러시아, 모로크, 독일, 스페인, 에디오피아, 인도 등에서 이주민이 스며들었다. 텔아비브 공항 이름인 벤구리온 역시 러시아 유대인 출신 초대 총리의 이름을 빌렸다. 모스크바행 왕복 비행기의 유대인 무리에서 제3세계 언어가 흔하게 들리며, 식당 한 곳에서 각국의 다채로운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것은 이쯤 되면 의문이 풀린다.

카이샤라 유적.

십자군의 지하도시 간직한 ‘아코’

지중해의 도시에 접어들면 이스라엘은 변신 모드다. 유대교 랍비들은 어느새 종적을 감추고 없다. 술과 음악이 흐르고 지중해의 훈풍이 코끝을 간지럽힌다. 세월과 예술이 뒤엉킨 앙상블은 레바논과 맞닿은 북쪽 아코에서 강렬하다. ‘십자군의 도시’ 아코는 12세기 십자군이 쌓았던 요새와 지하도시가 고스란히 남았다. 기사들의 말발굽 소리 가득했던 성곽 안뜰에서는 오페라 콘서트가 열린다. 사방이 빛바랜 돌로 채워진 중세 공간에서 마주하는 바로크 오페라는 거룩하다. 돌기둥과 허물어진 담벽은 무대가 되고, 청아한 선율은 성곽을 휘감고 지하도시까지 감동으로 내려 앉는다. 올드 아코 지역은 아랍인들의 터다. 물담배 물고 차를 홀짝거리는 콧수염 사내들의 손동작이 익숙하다. 바다로 나서면 아코는 십자군의 성곽과 교회와 모스크가 파도 너머 넘실거린다. 사람냄새 가득한 시장 통에는 생선 가게앞, 병아리콩과 올리브오일이 곁들여진 40여 년 전통을 간직한 전국적인 명성의 ‘후무스’ 맛집이 있다.

텔아비브 골목.

‘봄의 언덕’처럼 화려한 텔아비브

로마 유적과 해변이 어우러진 카이샤라, 언덕위 매혹의 도시 하이파를 경유해 남쪽으로 내려서면 궁극의 텔아비브다. 이스라엘의 수도 텔아비브는 히브리어로 ‘봄의 언덕’이라는 뜻이다. 해변도 거리도 부겐빌레아 꽃처럼 화사하다. 텔아비브는 유럽 지중해의 여느 해변 도시 같은 화려한 풍경이다. 예루살렘 등에서 조우했던 엄숙함과는 완연히 다른 분위기다. 롱비치를 조깅족들이 핫팬츠 차림으로 뛰어다니고, 기도소리 대신 요가선생들이 매트를 들고 활보한다. 게이와 레즈비언들이 동경하는 도시, 안식일 전날도 번화가 디젠고프의 술집들이 들썩거리는 도시가 바로 텔아비브다. 옛 항구를 개조한 보드워크 공원의 창고들은 뉴욕 브루클린의 한 구역을 연상시키며 밤이면 나이트클럽으로 변신한다. 여군들은 총 대신, 허리를 잘록하게 조인 군복으로 한껏 패션 감각을 뽐낸다. 이스라엘에 대한 선입견은 텔아비브와 맞닿으면 봄눈 녹듯 자연스럽게 소멸된다.

<여행 메모>

▲가는 길= 텔아비브 벤구리온 공항이 이스라엘의 관문이다. 이스라엘 입국 당시 제공받는 종이 비자는 호텔 등의 투숙 때 필요하다. 입국과 반대로 출국심사가 까다로운 편이다. 텔아비브에서 하이파, 아코까지는 해변과 연결된 도로를 따라 차량 이동이 가능하다. ▲음식= 전통음식 후무스는 대부분의 식당에서 에피타이저로 흔하게 맛볼 수 있다. 병아리콩을 얹은 후무스에 올리브오일을 뿌린 뒤 피타 브레드, 피클 샐러드와 곁들여 먹는 맛이 일품이다. ▲숙소= 하이파의 단 카멜 호텔은 지중해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위치한 전망 빼어난 숙소다. 호텔을 거점으로 인근 아코까지 차량으로 1시간 정도면 이동이 가능하다. 텔아비브에는 롱비치 해변에 체인 호텔이 다수 있다.

글ㆍ사진=서 진(여행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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