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농장 청보리밭.

전북 고창은 연두빛 5월의 봄 길목이 예쁘다. 학원농장 일대의 청보리밭에는 이삭이 패고, 선운사의 동백꽃들은 ‘후두둑’ 몸을 던진다. 고창의 5월은 청보리의 물결과 사각거리는 소리로 단장된다. 무장면 학원농장에 들어서면 청보리의 풋풋한 내음이 봄바람에 실려 다닌다. 아득하게 뻗은 보리밭에서는 굽이치는 사잇길을 따라 하염없이 걷게 된다. 보리는 4월 중순이면 이삭이 나오기 시작해 5월 중순이면 누렇게 물든다. 청보리는 품종이 아니라 보리가 가장 예쁜 이 시기의 보리를 일컫는 말이다.

고인돌.

사색을 부추기는 보리밭 산책

고창은 예전부터 보리가 성하고 잘 자라는 땅이었다. 고창의 옛 이름인 모양현의 ‘모’는 보리를 뜻하고, ‘양’은 태양을 의미한다. 봄날의 푸른 보리밭은 초가을이면 하얀 꽃으로 단장된다. 보리가 익어갈 무렵이면 마음도 차분해진다. 가족끼리 삼삼오오 손을 잡고 콧노래로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을 흥얼거리거나 보리피리를 불며 옛 추억에 잠긴다. 보리밭 사이로 바람이 지나가면 보리는 땅에서 솟아나는 작은 소리들과 함께 리듬을 맞추며 몸을 눕힌다. 보리밭길은 이른 아침이나 해질녘이 더욱 운치 있다. 사람들이 하나둘 빠져나가면 더욱 호젓하게 보리밭 길을 걸으며 사색에 잠길 수 있다. 곳곳에는 오두막도 설치돼 있어 지친 다리를 쉴 수 있다. 농장 인근 식당에서 내놓는 보리 비빔밥을 곁들이면 향긋한 보리향과 함께 배도 넉넉해진다.

선운사동백.

동백 흩날리는 선운사&도솔암

고창 선운산의 선운사로 향하는 길에는 봄기운이 넘친다. 선다원 앞으로 흐르는 냇물에는 초록이 담기고 대웅전 앞 경내에는 연등이 주렁주렁 매달린다. 선운사를 감싼 동백은 붉은 자태를 뽐낸 뒤 꽃잎을 바닥에 떨구며 천년 사찰의 배경이 된다. 이곳 동백은 대웅전, 금동보살좌상 등 보물을 품은 선운사의 또 다른 보물이다. 선운사까지 왔으면 내친김에 도솔암까지 길을 잡아 본다. 선운사 경내가 상춘객들로 북적인다면 도솔암으로 향하는 길은 완만하고 인적이 드물어 가족들의 봄 산책에 알맞다. 산행 길에는 가녀린 계곡이 벗이 된다. 도솔암 절벽 뒤편의 작은 암자에 오르면 선운산의 기암절벽이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다. 그 광경 하나만으로도 도솔암까지 걸어 온 피로가 말끔히 가신다. 선운사에서 차량으로 10여분 이동하면 미당 서정주선생의 시문학관이다. 시문학관에는 미당의 작품들이 전시돼 있고 마당에는 커다란 자전거 조형물이 들어서 있는 한가로운 풍경이다. 시문학관에서 시선을 돌리면 멀리 서해바다가 펼쳐진다. 시문학관 인근 하전 갯벌체험장에서는 봄날 바지락 캐는 체험이 가능하다.

<여행메모>

▲교통=서해안고속도로 고창IC에서 빠져나온다. 선운사 방향으로 향하다 무장면을 경유한뒤 남쪽 선동리 방향으로 이동하면 학원농장이 나온다. 서울센트럴터미널에서 고창까지 40~50분 단위로 고속버스가 다닌다 ▲음식=고창은 장어와 복분자로 유명한 고장이다. 선운사 입구에 장어식당들이 다수 있다. 5월 고창에는 주꾸미도 명함을 내미는데 인근 구시포 등에서 맛볼 수 있다. ▲기타정보=고창은 세계유산의 고장이다. 매산리 고인돌 군락에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고인돌 수백기가 흩어져 있다. 고인돌군락에서는 동학혁명의 주역이었던 전봉준의 생가터가 가깝다.

글ㆍ사진=서 진(여행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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