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바다 '녹색가게', 환경보존 실천의 장

지구사랑을 파는 녹색세상
아나바다 '녹색가게', 환경보존 실천의 장

종로 YMCA 건물 2층 로비. 5평 남짓한 공간엔 옷과 가방, 신발, 그릇, 책, 비디오테이프 등이 빼곡하게 들어 차 있다. 점심 시간이 가까워오자 멀리서 찾아 온 주부들부터 인근 사무실의 여직원까지 하나 둘씩 발길이 잦아진다.

“인형 두개, 가방 하나, 청바지 한 벌, 원피스 두 벌, 스커트 한 벌. 모두 합해서 2400원 입니다.”한아름 골라 온 물건을 계산대 위에 올려 놓고 기다리다 자원봉사를 하는 직원이 셈해주는 값에 놀란다.

껌 한 통도 살 수 없는 돈 100원이 제대로 돈 구실을 하는 곳이 바로 이 곳 녹색가게다. 인형은 100원, 청바지나 원피스 등의 옷은 보통 300~500원이다. 아무리 비싸야 2,000~3000원 선이다. 물론 새 제품은 아니다. 각 가정에서 쓸모가 없어지거나 싫증난 물건들을 필요한 사람과 교환해 쓰는 아나바다(아껴쓰고, 나눠쓰고,바꿔쓰고, 다시쓰는) 장터이기 때문이다.

상계동에서 찾아 왔다는 주부 박미경씨(48). 행거에 빽빽히 걸린 물건들 중에서 알짜만 골라 내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4년 전 한 여성지 가사를 보고 우연히 녹색가게를 알게 되었어요. 그 후론 거의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이곳을 찾고 있어요.” 처음엔 “남이 입던 옷을 왜 사 들고 오냐”며 언성을 높이던 남편도 이제는 가는 길에 자신의 것도 좀 골라 오라고 부탁을 할 정도로 중고용품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고 한다.


작년 한해 약 200억원 아껴

같은 중고품이라 하더라도 녹색가게의 물건들은 상태가 상당히 좋은 편이다. 녹색가게를 이용하는 회원들이 쓰던 물건을 직접 가져 오기 때문이다. 즉 물건을 사가는 사람들이 동시에 물건을 내 놓는 사람이므로 자기가 보아서 남들에게 쓸만하겠다 싶은 물건들만 가져오게 된다.

그렇게 가져온 물건도 한번 더 검증의 단계를 거친다. 너무 낡았거나 세탁 상태가 나쁘면 매장의 자원 봉사자들이 정중히 거절한다. 이렇게 수집된 물품들은 전국 각지의 녹색가게를 통해 필요한 사람의 손으로 들어간다. 작년 한해 동안 거래되었던 물품은 약 90만점으로 시장가치로 환산했을 때 대략 200억원 정도가 절약 된 셈이라고 한다.

녹색가게는 1991년 서울YMCA 생활협동운동이 모체가 되어 97년 과천에 첫 가게 문을 열었다. 묘하게 IMF외환위기와 시기가 맞물려 과천의 녹색가게는 하루 1,000여명이 찾아 올 정도로 문전성시를 이뤘고 매장에 들어가기 위해 늘어선 사람들은 근처 지하도까지 길게 줄을 만들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현재 서울에만 21개, 전국적으로 55개의 녹색가게가 운영 중이다.

일반 매장뿐 아니라 구로와 영등포에는 어린이용품만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어린이 녹색가게가 있으며, 김포중학교와 홍성중학교에는 교내에 상설 녹색가게를 두어 어릴 때부터 아나바다를 몸소 실천하는 기회를 톡톡히 제공하고 있다. 숙명여대와 카톨릭대학교 그리고 서울대학교 내에도 ‘살림어울림’ ‘안물바’라는 이름으로 녹색가게가 활발히 운영중이다.


환경보존 운동이며 경제 살리기 운동

“녹색가게를 단순히 값싼 물건을 사고 파는 곳이라 여기지는 말아 주세요. 녹색가게는 쓰레기 감량을 통한 환경보존운동이며 아나바다를 통한 경제 살리기 실천 운동이죠.” 그래서 회원들은 녹색가게 사업이라 하지 않고 녹색가게 운동이라 부른다.

YMCA녹색가게 운동 사무국의 김지영 간사는 “재사용에 대한 시민들의 의식이 10년 전에 비해 상당히 긍정적으로 바뀌었으며 특히 외국 거주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아주 적극적으로 참여 한다”고 전한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정착 단계인 5R운동, 즉 고쳐서 쓴다는 Repair 다시 쓴다는 Reuse 재활용한다는 Recycle 감량한다는 Reduce 재주입 한다는 Refill 운동이 국내에서도 차츰 확산되어 가고 있다는 이야기다.

동경YMCA에서 1년 전 한국으로 교환 근무를 오게 된 일본인 지하루씨(29)는 일본에 돌아 가면 반드시 녹색가게 운동을 펼쳐야겠다고 각오가 대단하다. “일본에도 물론 리사이클숍은 있습니다. 하지만 녹색가게처럼 시민이 직접 참여해 교환해 가는 방식은 아닙니다.”

녹색가게는 물품의 교환뿐 아니라 가게 운영에 있어서도 시민들의 직접 참여 방식으로 이뤄진다. 전원 자원봉사자인 매장 직원들은 “쓰던 물건을 말끔히 손질해 내놓고, 다시 필요한 물건으로 찾아 오는 과정에서 녹색가게 운동의 운?취지가 이용자들에게 전해지고 그것이 차츰 사회 전체로 확대되어 가는 것이 우리들의 바람” 이라고 입을 모은다.

황순혜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 2003-10-01 16:52


황순혜 자유기고가 sos6703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