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영·박상배·엄낙용, 산업은행맨에서 이제는 나란히 로펌 고문으로…

대북송금 3인방 "인연일까? 악연일까?"
이근영·박상배·엄낙용, 산업은행맨에서 이제는 나란히 로펌 고문으로…

2002년 9월26일 국회 정무위 금융감독위원회 국정감사장. “현대상선 김충식 사장으로부터 ‘이 돈은 우리가 쓴 것이 아니라 갚을 수 없다’는 말을 들었습니까?” 한나라당 엄호성 의원의 질문에 장내는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모든 시선은 증인을 향했다. 엄낙용 전 산업은행 총재는 수초간 뜸을 들이다 말문을 열었다. “산은 총재 부임(2000년 8월17일) 직후 김충식 사장으로부터 정부가 갚아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 문제로 2000년 8월 하순 청와대 별관 회의실에서 당시 이기호 청와대 경제수석, 진 념 재경부장관, 이근영 금감위원장 등을 만나 협의한 일이 있습니다.” 그가 엄 의원측 증인으로 출석했다는 것에서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는 있었지만, 발언의 내용은 예상을 뛰어 넘는 것이었다. 4억달러 대북 불법 송금 사건의 의혹이 증폭되는 순간이었다. 그의 증언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이후 그의 전임이었던 이근영 전 금감위원장은 물론, 자신을 바로 밑에서 보좌했던 박상배 전 산은 부총재까지 사법 처리를 받아야 했다.

그로부터 1년2개월여. 무슨 약속이라도 한 것일까. 대북 송금 사건과 관련된 이들 산업은행 3인방은 정들었던 금융권을 떠나 ‘로펌 고문’의 직함으로 제2의 인생을 맞이하고 있다.

2002년 9월 26일. 국회 정무위의 금감위 국감에서 이근영 당시 금감위원장이 대북 송금의혹 등이 제기되자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그들의 인연 그리고 악연

1968년 행정고시(6회)에 합격해 이듬해 일선 세무서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이근영(66)씨는 94년 3월 재경부 세제실장을 끝으로 뒷전으로 밀려나는 듯했다. 하지만 한국투신 사장, 신용보증기금 이사장 등을 전전하다 98년4월 국책은행인 산업은행 총재직에 오르면서 화려한 부활을 예고했다. “또 낙하산 인사” “대전고 마피아 부활” 등 비판도 있었지만, ‘외곬 세제통’이라는 한계를 넘어 국책은행장 자리를 꿰찬 것 자체가 이례적이었다.

그가 총재직에 취임할 무렵 산업은행의 최대 난제는 법정관리에 들어간 기아자동차 처리 문제. 당시 법정관리ㆍ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기업을 처리하는 특수관리부장 직을 맡고 있던 박상배(58) 전 부총재와 끈끈한 연을 맺게 된 것도 이 때문이었다. 2개월 뒤 박 전 부총재는 이사로 승진했고, 그해 8월 우여곡절 끝에 기아차는 현대차에 매각됐다. 이후 이근영 총재- 박상배 이사 라인은 비록 실패로 끝나고 말았지만 대우차를 미 포드사에 매각하는 협상을 성공 직전까지 끌고 가는 탄탄한 팀워크를 과시하기도 했다.

“2000년 6월 현대상선에 대한 4,000억원의 당좌대월은 담당 이사였던 저의 전결로 이뤄졌습니다.” 국감장에서 계속되는 의원들의 호통에 박 전 부총재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었지만, 모든 책임을 혼자 떠안기로 작정한 뒤였다. 이후 법원에서 밝혀진 박 전 부총재의 진술 조서는 이렇게 적고 있다. ‘4,000억원 대출이 문제된 2002년9월 이 전 위원장이 저를 불러 여신 지원은 실무자 선에서 처리한 것으로 증언해 파장을 최소화하는 것이 바람직하겠다고 주문했습니다. 저도 그에 동의해 당시 전결권자인 제가 모든 것을 처리한 것으로 하겠다고 협의했습니다.’ 당시 이 전 위원장은 사건 발생 당시에는 최고 책임자인 산업은행 총재로, 또 이후는 최고 감독자인 금감위원장으로 있었으면서도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는 여론의 강한 비판에 시달려야 했다.

대북 송금 의혹 사건과 관련해 특검에 출두하고 있는 엄낙용 전 산업은행 총재(왼쪽)와 박상배 전 부총재. 각각 증인과 피의자 신분으로 엇갈렸지만 모두 얼굴 표정이 굳어 있다.

이근영ㆍ박상배 vs 엄낙용

현대상선 대출이 이뤄진 2개월 뒤인 2000년 8월. 이근영 총재가 금감위원장으로 영전하고, 엄낙용(55) 당시 재경부 차관이 산업은행 총재직을 물려 받았다. 대우, 현대 등 굵직굵직한 기업들의 구조조정 현안을 앞에 두고 ‘이 금감위원장 - 엄 총재 - 박 이사’의 새로운 라인이 구축된 것이었다.

하지만 엄 전 총재는 위, 아래 어느 쪽과도 융화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엄 전 총재는 부실기업 회생 방안으로 정부가 마련한 회사채 신속인수제도와 관련해 재경부에 근거 서류를 요청하는 등 정부와 갈등을 빚었다. 엄 전 총재는 특히 연배가 세 살 위인 박 전 부총재와 날카로운 대립각을 유지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박 전 부총재가 이사 시절 사표를 던지고 보름 가량 잠적했다 이 전 위원장 등의 만류로 다시 복귀한 것도 두 사람 간의 불화 때문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관측이다. 훗날 알려진 사실이지만, 현대 지원 및 금강산 사업과 관련한 정부와 현대측과의 갈등도 골이 깊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엄 전 총재는 취임 8개월만인 2001년 4월초 전격 경질됐고, 박 전 부총재는 이사에서 부총재로 승진했다. 총재직이 사실상 재경부 등 경제 관료들의 몫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산업은행 출신으로는 최고봉에 오른 셈이었다.

엄 전 총재는 금감위 국감 며칠 뒤 열린 산은 국감에서 자신이 증인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이렇게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서해 교전 때) 우리가 지원한 자금에 의해 우리의 장병들이 공격당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고민을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날이 대부분이었다.” 이를 두고 혹자는 믿음이 깊은 신앙인인 그가 정말 솔직한 심정을 토로한 것이었을 거라고 얘기했고, 혹자는 DJ 정부에서 푸대접을 받아온 것에 대한 도발이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로펌에서 재기를 꿈꾸다

2003년 3월 금감위원장 직에서 물러난 뒤 대북 송금 사건으로 사법 처리(집행유예)를 받은 이 전 위원장이 9개월 가량의 공백을 접고 12월 말 법무법인 세종의 고문으로 영입되면서 이들 3인방은 ‘산업은행맨’에서 나란히 ‘로펌 고문’으로 변신했다. 엄 전 총재가 1년여전 법무법인 화우의 고문직을 맡아 가장 먼저 ‘로펌’에 자리를 잡았고, 박 전 부총재는 3개월 전 법무법인 서정의 고문으로 취임했다.

이들이 맡은 역할은 대체로 비슷하다. 기업들의 인수ㆍ합병(M&A) 업무나 구조조정, 금융 관련 분쟁 등에 대해 전문가로서 자문을 해주는 일이다. 이들 로펌을 비롯해 김&장, 태평양, 광장 등 대형 로펌들은 대부분 전직 관료 등을 고문으로 대거 영입하는 추세. 자문 수요가 갈수록 늘어나는 데다 대(對) 정부 로비스트로서 전직 고위 인사들의 역할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에는 기업 고객의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경제, 금융 분야 전직 고위층의 수요가 확대되고 있다. 법무법인 세종의 박교선 변호사는 “로펌의 역할을 크게 둘로 나눌 경우 전통적인 쟁송 대리 업무와 함께 고객 기업의 자문 업무로 볼 수 있다”며 “경제계, 특히 금융계에 경륜이 있는 분들이 고문으로 오면 기업들이 정부나 금융기관을 상대로 한 일처리를 한결 수월하게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국내 로펌 2~3위를 다투는 세종에는 이 전 위원장 외에도 유시열 전 은행연합회장, 백원구 전 증권감독원장, 김영태 전 재무부 차관 등이 고문으로 포진해 있다. 최대 로펌인 김&장 역시 이헌재 전 재경부장관, 구본영 전 과기부장관, 서영택 전 건설부장관 등이, 태평양에는 이건춘 전 건교부장관, 홍세표 전 외환은행장, 김영철 전 금통위원, 정재룡 전 KEMCO 사장 등이 활동하고 있다. 화우, 서정 등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로펌의 경우 엄 전 총재나 박 전 부총재를 포함해 2~3명 정도의 고문을 두고 있다.

깊은 앙금 해소될까

대북 송금 사건에 불을 당긴 엄 전 총재와, 이 사건으로 사법처리를 받은 이 전 위원장 및 박 전 부총재 간의 앙금은 여전히 깊고 깊다. 이 전 위원장과 박 전 부총재는 사석에서 엄 전 총재의 이야기만 나오면 “그 사람에 대해서는 언급도 하기 싫다”며 손사래를 치고 있고, 엄 전 총재는 벌써 1년이 넘도록 과거 정ㆍ관계 및 금융계 인사들과 담을 쌓고 언론과의 접촉도 극구 사양하고 있다.

한 때 한솥밥을 먹다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는 점에서 이들의 깊은 앙금의 골은 앞으로도 치유하기는 힘들다고 보는 편이 맞을지도 모른다. 어찌 보면 이들 3인방 모두 분단 현실로 인해 가슴 속 깊은 상처를 입은 피해자들일 텐데 말이다.

이영태 기자


입력시간 : 2004-01-09 14:34


이영태 기자 yt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