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자 욜·강형진·이상은, 그늘 속의 삶과 애환·바람동성애를 죄악시하는 흑백논리는 잘못, 삶의 다양성 차원에서 이해해야

동성애자 "보이지 않는 억압에 숨이 막혀요"
동성애자 욜·강형진·이상은, 그늘 속의 삶과 애환·바람
동성애를 죄악시하는 흑백논리는 잘못, 삶의 다양성 차원에서 이해해야


“동성애는 유전이 되나요?”, “손가락 길이로 동성애자를 판별할 수 있나요?”, “동성애자를 만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요?”

인터넷 포털 ‘엠파스’(www.empas.com)의 지식 검색창에서 ‘동성애’를 치면, 무려 848개의 질문이 뜬다. 나와 다른, 신기한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 어린 물음이다. 동성애자들은 분명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지만, ‘허깨비’ 같은 존재다. 그들의 존재와 삶은 철저한 베일에 가려져 있다. 커밍아웃(coming out of the closet-벽장 속에서 나오기)을 통해 “세상 밖으로 나오라”는 목소리도 있지만, 동성애자들은 쉽게 모습을 드러낼 수 없다. 용기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헌법 제 1조에 불구하고, 동성애자들의 ‘커밍아웃’은 곧 가정과 사회에서의 추방을 의미한다.

그러나 최근 인터넷 실명제 불복종 운동에서 보듯, 성적 소수자란 더 이상 응달의 인간이 아니다. 내로라 하는 63개 시민단체, 10개 인터넷 언론 등과 목소리를 함께 하는 당당한 시민 세력인 것이다. 이번에 참여연대, 환경운동연합 등 기성 단체들과 한목소리를 낸 그들은 한국동성애자연합,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동성애자인권연대 등이었다. 그들은 어떤 자들일까?

2월 24일 서울시 용산구 동자동의 동성애자인권연대(outpridekorea.com)에서 욜(27), 강형진(27), 이상은(24ㆍ여) 씨 등 동성애자 3명을 만났다. ‘혐오스럽다’는 일반의 표현과 달리 평범하기 그지 없는 우리 이웃의 젊은이들이었다. ‘청소년 유해 대상’, ‘에이즈의 주범’ 등의 오명을 뒤집어 쓰고, 죄인 아닌 죄인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애환과 바람을 들어봤다.

■ 성 정체성 드러낼 수 없는 사회

-동성애로 인한 심각한 차별은 무엇인가.

형진= 우리는 평소 동성애자라는 것을 밝히고 다니지 않는다. 그것을 말하는 순간, 사회로부터 추방돼 단절된다. 따라서 언제 억압 받느냐고 물어보면 답할 말이 없다. 막연하다.

욜= 그 얘기를 거꾸로 뒤집어 봐라. “동성애라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밝힐 수 없다”는 것 자체가 가장 원초적인 차별이다. 단지 성 정체성을 밝혔다는 이유 만으로, 회사에서 해고되고, 가정에서 쫓겨난다.

상은= 지난해 5월 미국에서 10대 소녀가 치근덕대는 남자에게 “레즈비언이라 남자에게 관심 없다”고 말했다가 난도질 당해 죽음을 맞았다. 이것이 성적 취향에 관해 상대적으로 관대하다는 서구 사회의 실상이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에선 이런 일이 없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우린 존재조차 얘기 못하니까. 억압이 일상 속에 빈틈 없이 스며들어 목을 조른다.

-동성애자들의 교류는 어떻게 이뤄지나.

욜= 이성애자들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흔히 친구에게 소개 받거나, 동아리 등의 모임을 통해 만난다. 동성애 커뮤니티 등에서 채팅을 통해 알게 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런 교제는 비밀일 수 밖에 없다. 가족이나 (이성애자) 친구들 사이에 커플 동반 모임이 있을 때는 난감하다. “언제까지 애인이 없다고 해야 하나” 싶고, 그렇다고 동성과의 교제를 털어 놓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상은= 이성애자와의 차이점은 교제 방식이 아니라, 고백 단계의 위험(?)에 있다. 누군가에게 호감이 가서 고백을 하고 싶어도 대개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잘못하면 영영 틀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1회성 만남보다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관계를 원하지만 쉽지 않다. 동성애 커뮤니티를 떠나서는 정서적 친밀감을 털어놓기 어렵다. 따라서 그 커뮤니티 안에서 색(色)만 밝힌다는 얘기는 억울하다. 여기서 밖에 풀 수 없는 상황이 잔인한 것이다.

- 동성애자는 어떻게 알아볼 수 있는가.

상은= 기자와 내가 거리에서 스쳐 지나쳤다고 하자. 알아볼 수 있겠는가? 모를 것이다. 일부 남성 동성애자 가운데는 여성적인 말투와 옷차림으로 눈에 띄기도 한다. 반면 나처럼 여자이庸?치마 입기를 꺼리는 경우도 있다. 약간의 특징은 있지만, 단정하기엔 무리다. 평소 목욕을 같이 다닐 정도로 절친한 친구 사이라고 해도 본인이 스스로 동성애자임을 밝히지 않는다면 알기 어렵다.

욜= 동성애자를 구별해내려는 시도 자체가 무의미한 것이다. 과거 히틀러 시절에 동성애자들을 따로 모아 뇌 구조와 손가락 길이 등으?신체 구조를 분석한 적이 있다고 한다. 생물학적으로 식별하는 방법을 찾았던 것인데 실패했다. 유전적 원인으로 규명해보려는 시도도 있지만 역시 성공하기 어렵다고 본다. 개인적으론 동성애를 ‘양심 또는 사상’과 같은 범주로 생각한다. 어느 시기에 돌연 나타날 수도 있고, 또 변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 “결혼은 제도일 뿐, 동성결혼 허용해야”

- 동성 결혼에 대한 생각은.

상은= 동성 결혼을 지지한다. 아기를 입양하는 것도 찬성이다. 그러나 단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으로 엮이지 못해 안달하는 건 아니다. 결혼은 한 제도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그럼에도 상속이나 입양 등 결혼을 해야만 인정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찾고 싶기에 동성 결혼의 허용을 원한다. 물론 가만히 있는데 그런 권리가 그냥 우리 손에 쥐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미국에서는 이미 60~70년대부터 권리 투쟁을 해왔지만, 한국은 아직 불모지다. 동성애자들의 사이트 하나 인정하는 데도 도덕이나 윤리가 붕괴라도 된 것처럼 난리인데 하물며 동성 결혼이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형진= 동성이건 이성이건 현 결혼 제도엔 문제점이 많다. 아이 양육 등 일정부분 사회의 몫을 부모에게 온전히 떠넘기는 면이 크다고 본다. 따라서 이에 연연하지 않는다.

욜= 동성 결혼을 동성애 권리의 최고점인 양 보는 시각엔 나 역시 반대다. 그게 전부는 아니다. 그러나 누군가 동성 결혼을 하겠다고 나선다면 당연히 도와주려 노력할 것이다.

-요즈음 청소년유해매체 심의기준 중 ‘동성애’ 조항 삭제를 둘러싼 논란이 큰데.

욜= ‘동성애’와 ‘동성애를 다룬 음란물’을 구별 못하는 것이다. 동성애 자체가 100% 음란물은 아니다. 남녀간의 사랑을 다룬 내용이 모두 음란물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성애든, 동성애든 이를 성적으로 왜곡되게 표현한 음란물은 제재를 받아 마땅하다. 따라서 4월 동성애 조항을 삭제한 ‘청소년 유해매체물 심의기준’ 개정령이 확정되더라도 ‘동성애 음란물’이 여과 없이 유출될 수는 없다. 동성애 음란물은 ‘동성애’ 이전에, ‘음란물’로 심의의 대상이 된다.

강형진= 이번 개정령은 늦은 감이 있지만, 일단 환영할 만하다. 그래도 마음에 걸리는 점은 청소년보호위원회가 그들의 의지를 갖고 일을 추진하지 못하고, 여론의 눈치를 보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동성애에 대한 보다 정확한 이해가 아쉽다.

상은= 지난해 8~10월 중앙대ㆍ성공회대 등 대학가와 혜화동 대학로 등지의 거리에서 서명 운동을 펼쳤다. “동성애자면 다 변태 아니냐”고 대놓고 면박 주는 경우도 있었지만, 우리의 얘기에 귀 기울여 주는 학생과 시민들도 적지 않았다. 하루 200~300명이 동참해줬을 정도다. ‘동성애’ 얘기만 나오면 무조건 발끈하지 말고, 주장의 정당한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조목조목 짚어봤으면 한다.

■ 동성애에 귀 기울여 봤어요?

-청소년들의 성 정체성에 악영향을 준다는 비난이 높은데.

상은= 우리 청소년을 ‘백치 아다다’ 수준으로 보지 말라.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성 정체성에 관해 고민하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때 다양한 경험을 하고 탐구하면서 자라나야 어른이 되었을 때 보다 열린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동성애에 관심을 가져보는 게 뭐가 대수인가. 호기심을 가진다고 해서, 성 정체성이 어느날 신발 바꿔 신 듯 확 바뀌지는 않는다.

욜= 동성애를 죄악과 동일시 하는 흑백 논리에 다름 아니다. 동성애에 대한 접근 자체를 막아놓아서 10년 20년 돌고 돌다가, 결혼해서 애까지 낳고 살다가, 뒤늦게 자신의 동성애를 깨닫고 힘들어 하면 그건 잘 된 삶일까.

형진= 동성애로 고민하는 청소년을 ‘치료’와 ‘구원’의 대상으로 몰아가는 것이 문제다. 아일랜드의 통계를 보면, 청소년 동성애자 3명 중 1명이 자살 충동을 느낀다. 동성애자에 대한 인식이 비교적 높은 이 곳에서 그 정도면, 그들의 존재조차 부정 당하는 우리 나라에서는 어떠할 지 짐작이 갈 것이다. 이런 청소년들을 동성애 정보로부터 단절시키는 것은 구하는 게 아니라, 벼랑으로 모는 것이다.

-동성애자들은 에이즈에 감염되기 쉽다고 하는데.

욜= 동성애에 대한 무지와 그릇된 성 윤리관에서 비롯된 사고다. 2001년까지 윤리 교과서 등에 “동성간의 사랑이나 성행위는 에이즈 등 각종 부작용을 일으킨다”는 내용이 있었다. 교과서에서 그렇게 가르치는 수준이니 일반 사람들을 탓할 바는 못 된다. 명확한 원인을 규명하지 못한 채, 이를 동성애자에게 국한된 문제로 돌려 ‘나와는 상관 없는 일’로 치부하고자 하는 심리였을 것이다.

형진= 에이즈는 누구의 책임을 따지기에 앞서, 관리(치료)와 예방?주력해야 할 질환이다. 동성애자만의 문제로 떠넘기면, 이성애자는 안전한가. 대다수 이성애자들을 에이즈에 무방비하게 내던지는 꼴이다. 요즘 이성애자들의 감염 비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통계는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

상은= 에이즈 예방에 가장 효과적이라는 콘돔 사용은 동성애자들에겐 이미 보편화돼 있다. 그런데 이성애자들은 어떠한가. 항문 성교를 안 하는가. 최초의 에이즈 환자가 동성애자 가운데 발견됐던 건, (동성애자들만을 대상으로 한) 색출의 문제에 있을 것이다. 사실 에이즈에 대한 경각심은 이성애자보다 동성애자들이 훨씬 더 높다.

- 사회에 전하고 싶은 말은.

형진= 동성애자들의 상징이 6가지 색깔의 ‘무지개’다. 만약 무지개가 한 가지 색으로만 이뤄져 있다면 얼마나 단조롭고 밋밋했을까. 나와는 다른, 다양한 색깔의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어찌 보면 축복이다.

욜= 동성애자 중 상당수가 사회로부터 존재를 부정 당하고 자살을 택하고 있다. “성 정체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죽어야 하는 게 윤리(도덕)라면 그것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가 아니라 폭력일 뿐이다. 그리고 사회를 향해 절박하게 외치고 싶다. 동성애자들을 배척하여 득이 될 것이 무엇인가?

배현정 기자


입력시간 : 2004-02-25 14:45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