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수레에 담기는 것은 쓰레기와 함께 꿈도 있지요"쓰레기더미에서 읽어내는 삶의 편린들, 취미생활 꿈도 못 꾸지만 건강 위해 "달린다"

환경미화원 정진석씨의 '새벽을 여는 삶'
"손수레에 담기는 것은 쓰레기와 함께 꿈도 있지요"
쓰레기더미에서 읽어내는 삶의 편린들, 취미생활 꿈도 못 꾸지만 건강 위해 "달린다"


쉬지 않고 손수레를 따라 걷다 보니 어느덧 두시간 30분 여. 기자는 지쳐 어느 대문 앞에 텁석 앉아버렸다. “무슨 일이든 그 분야서 최고가 되어야 설 자리가 있는 것 아니겠어요?” 뜬금없이 ‘최고’얘기를 꺼내는 정진석씨(35ㆍ구로구 청소과 재활용팀) “하는 일이 청소인 만큼 체력 하나는 다른 어떤 사람 보다도 강해야 되요. 체력이 안되면 이 일도 계속 할 수 없죠.” 괜히 발이 저려 온다.

골목길 외등 아래로 불안한 걸음의 취객들만 오갈 뿐, 온 세상이 잠든 시간. 환경미화원 정씨의 하루가 시작된다. 새벽 1시 40분에 집을 나선 그가 향하는 곳은 구로본동 사무소 옥상. 환경미화원들의 근무 대기실이 있는 곳이다. 허름한 조립식 건물이지만 벽에는 작업복과 발광 안전띠, 안전모가 빼곡히 걸렸고 샤워장, 개인 옷장, 텔레비전과 냉장고 등으로 제법 구색도 갖췄다.

“일 시작한 지 두 달이 지났지만, 아직 작은 딸(9)한테는 청소부라고 얘기도 못했어요.” 새벽 2시. 작업복에다 발광 안전띠, 안전모로 무장한 그는 등산화의 들메끈을 마무리 하는 것으로 쓰레기와의 전쟁 채비를 마친다. 쓰레기더미에서 건진 신발이다.

- 밤새 골목길 50여개 청소

정씨에게 주어진 일은 가가호호 다니며 재활용 쓰레기를 수거하는 일. 차량의 출입이 불가능한 좁은 골목의 쓰레기들을 수거해 큰 길가로 내놓고, 그 일을 마치면 때맞춰 등장하는 트럭에 실어 올린다. 2.5t 트럭으로 보통 세 번, 많은 날은 다섯 번을 실어 날라야 하는 분량의 쓰레기다. 맡은 구역에 골목이 50 여 개에 이르니, 줄잡아도 100번 이상이다. “월, 화요일이 제일 많은 날인데, 새벽 2시에 나와서는 일을 다 못 끝냅니다. 12시 전에 나와 쉬지 않고 뛰어 다녀야 간신히 쓰레기차 시간에 댈 수 있습니다.”

“이 집은 식구 중에 오늘 생일인 사람이 있고, 아까 그 집은 카드 빚에 시달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 집은 오늘 부부싸움을 한바탕 한 모양인데요. 또 아이 하나가 이번에 중학교로 올라가는군요.” 정진석씨는 빈 케이크 상자, 갈기갈기 찢겨진 카드 사용료 청구서 뭉치, 깨진 도자기, 헌책 등등 배출되는 쓰레기로 그 집안의 ‘속사정’을 읽어 낸다. “뒤에 소문을 들어보면 방금 얘기한 것들의 십중 팔구는 맞습니다.”인쇄업, 주방장, 목욕보조사를 전전하다 마침내는 빚 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쓴맛을 본 그는 쓰레기 더미에서 삶을 읽어 내는 눈도 생겼다.

자가용 한대가 골목 입구를 떡 하니 막아 섰다. 손수레가 통과하지 못할 정도다. “얼마 전 환경미화원이 골목길에 주차해 놓은 자동차 타이어에 펑크를 내서 물의를 일으킨 일이 있었잖아요. 같은 환경미화원 입장에서 그 사람 심정 백번 이해합니다.” 그는 40여 미터나 되는 골목을 예닐곱 번 뛰다시피 들락거리며 쓰레기들을 손수레에 날라 담았다. 손수레를 쓰레기 앞에 대놓고 주워 담아도 시간이 모자랄 판에 하지 않아도 될 고생을 한 것이다.

“밤낮을 바꿔 생활하다 보니, 일반인처럼 원만한 인간 관계를 유지하는 데도 힘듭니다. 우선 술자리부터 부담스러우니 그럴 수 밖에요. 잠시 후 일터로 나서야 하는데 술자리가 뭡니까.” 생활 패턴이 비슷한 미화원들끼리라도 함께 할 수 있는 마라톤 동호회 같은 모임을 시(市)나 구(區)에서 앞장서 조직해 줬으면 하는 그의 바람 역시 비슷한 심산이다. 동료들과 함께 어울리면서 건강은 건강대로 챙기자는 것이다. 애주가(愛酒家)가 또 다른 애주가(愛走家)로 변신한 이유다.

- 아파도 쉬는 것은 거의 불가능

호원웰옳讀ㅐ?술뿐만 아니다. 설사라도 만나면 이보다 더 한 낭패가 없다. 화장지를 휴대하면서까지 자기 구역은 ‘사수’해야 할 정도인 터에, 다른 직장처럼 아프다고 해서 하루 쉰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한 근무자가 빠지게 되면 그 부분도 고스란히 옆 구역 동료가 해야 하는 까닭이다.

최고의 미화원이 되기 위해서는 웃음도 ‘팔아야’ 한다고 정씨는 덧붙인다. 으슥한 밤에 시커먼 사내가 집집마다 들르면서 쓰레기를 수거해 가는데 그러다가 사람들과 마주치기라도 한다면 그들이 얼마나 놀라겠느냐는 것이다. 이슥해진 밤에도 주민들과 맞닥뜨리면 잊지 않고 웃는 모습으로 먼저 인사를 건네는 것도 그의 몫이다. “주민들이 청소부를 혐오한다면, 그 청소부 계속 일할 수 있겠어요?”

새벽 4시 50분. 쓰레기와의 전쟁도 종반부로 치달을 시간. 지원군이 나타난 것일까? 한 할머니가 앞쪽 쓰레기 더미에서 빈병만 따로 분리하고 있다. “하하, 지원군이라고 할 수도 있죠. 이 동네 사는 독거 할머닌데, 재활용 쓰레기 중 빈병만 모아다 팔아서 생활하는 분입니다. 덕분에 빈병은 수거를 하지 않아도 되니, 아군이 맞네요.”환경미화원들은 쓰레기를 수거하면서도 빈병이나 박스지는 그들을 위해서 남겨 놓거나, 따로 한 곳에 모아 놓는다고 했다. “그런데, 이걸 모르시는 분들은 종종 쌓아 놓은 쓰레기더미에서 빈병 찾느라 봉투를 찢거나 쓰레기더미를 발칵 뒤집어놔요.” 힘들게 사시는 분들인데, 뭐라고 할 수도 없다. 그저 웃음 지을 수밖에.

‘적’은 또 있다.“세탁소에 드라이 크리닝을 맡기면 먼지 덮개로 씌워 주는 얇은 투명 비닐이 있는데, 거기다 빈 병, 빈 캔, PET병을 담아 내는 분들이 있어요. 집어 들면 금방 터져 버립니다. 설사 안 터지더라도 나중에 트럭에 실어 올릴 때는 백이면 백 쏟아져 버리죠.” 새벽 5시 30분. 골목 쓰레기를 대로변에 내 놓는 일을 마친 정씨는 서둘러 동사무소 옥상, 근무자 대기실로 다시 향한다. 준비해 온 도시락으로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서다. 밤새도록 골목 골목을 누비고 다녔으니 시장기가 찾아오는 것은 당연한 일. 그나마 일이 바빠 못 먹는 날이 더 많다고 했다.

하나 둘 꺼지기 시작하는 가로등과 함께 밝아오는 서울. 활기를 띠기 시작하는 아침과 함께 그는 더욱 더 분주해진다. 수거 차량에 위태롭게 매달려서, 가끔은 뒤따라 뛰어 다니면서 밤새 모아 놓은 쓰레기들과 차가 드나들 수 없는 골목길의 쓰레기들을 실어 올린다.“차량 이동간에 조수석에 타서 이동을 하라고 하는데, 그건 사실상 이 일을 잘 모르고 하는 얘깁니다.” 가다 멈추기를 수없이 반복하는데 그렇게 하면 일의 능률이 현저히 떨어지는 탓이다. 쓰레기를 가득 실은 수거차는 재활용 쓰레기 집하장을 오전에 네 번을 들락거렸다. 이 즈음에서 그의 하루는 마무리 되어도 좋을 것 같지만, 밤새 누볐던 골목길을 다시 돌면서 비질을 하는 일이 남았다. 그의 일과는 점심 식사로 다들 노곤해져 있을 즈음 끝이 났다.

- “환경미화원 중 ‘최고’가 돼야죠”

그러나 동시에 또 다른 시작이다. “환경미화원 중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서 동네 헬스장에 등록했어요.”없는 시간을 쪼개 하루 최소 한 시간 이상씩 러닝 머신 위에서 달리기 위해서라고 했다.“밤낮을 바꿔 생활하는 데다, 휴일도 한 달에 이틀 뿐이니 취미 생활 같은 건 꿈도 못 꾸는 게 많은 환경미화원들의 현실입니다.” 중국 가방을 수입해 살림에 보태는 부인과 함께 꾸려 나가는 그의 가정은 오늘도 그렇게 꿈을 안고 달려 간다.

"깔끔한 구로구, 주민들이 일등공신" - 양대웅 구로구청장

“‘구로구’하면, 아직도 연기 내뿜는 구로공단, 여기저기 쓰레기 널브러진 구로로 생각하는 분들 많습니다. 그 분들 한번 초대해서 구로구 관광 한번 시켜 드리고 싶습니다.” 공해와 오염의 대명사였던 구로구를 서울에서 가장 깨끗한 구(區)로 만들었다는 양대웅 구로구청장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깔끔이 봉사단’은 주민 스스로 내 집앞, 골목길을 청소하는 단체로 구로구에서만도 8,000여명에 이르는 거대한 봉사활동 단체. 이들의 활동이 본격화된 이래 주택가 쓰레기 무단투기 감소, 쓰레기 종량봉투 사용으로 골목이 몰라보게 깨끗해졌다. 동네 청소용역 업체들이 앞다퉈 간판을 ‘깔끔이 청소대행’으로 내거는 것만 봐도 주민들 사이에서 그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다. 뿐만 아니다. 서울시 25개 구에서 이 시스템을 ‘수입’해 사용하고 있을 정도라고 하니 ‘깔끔이 봉사단’의 명성은 그야말로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격이다.

서울시 환경국장 등 환경관련 분야의 요직을 거치면서 환경분야의 베테랑이 된 구청장답게 환경에 대한 그의 시각은 날카롭다. “주변 환경을 깨끗이 하는 것이 환경문제로만 끝날 것 같습니까? 아닙니다. 환경과 연관 안된 것들이 없습니다. 부차적인 것들이 줄줄이 따라 오게 돼 있습니다.” 실제로 작년 3월 ‘깔끔이 봉사단’이 발족된 뒤 주민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집 값 상승, 범죄 발생률 감소, 구정에 대한 주민들의 참여도가 월등히 높아졌다고 구청장은 말한다. 때문에 더 높은 주민들의 관심과 참여 속에서 다른 구정도 원활히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해의 구로구라는 오명을 벗어 던지고, ‘서울 가꾸기 평가’에서 최우수구로 선정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주민들이 나서면 안 되는 일이 없습니다. ‘깔끔이 봉사단’을 통해서 그것을 증명한 것이고, 이 보다 더한 일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 뿐입니다.” ‘깔끔이 봉사단’에 대한 그의 평가는 의외로 간단했다.

정민승 인턴 기자


입력시간 : 2004-03-03 21:16


정민승 인턴 기자 prufrock@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