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디가드로 살기. 투철한 사명감과 고도의 테크닉 지닌 전문 직업인납치·유괴 등 강력범죄 증가로 경호 필요성 갈수록 높아져

경호의 세계… 현장에 서는 순간, 나는 없다
보디가드로 살기. 투철한 사명감과 고도의 테크닉 지닌 전문 직업인
납치·유괴 등 강력범죄 증가로 경호 필요성 갈수록 높아져


영화 ‘살인의 추억’은 막을 내렸지만, 그와 유사한 공포ㆍ엽기의 기억들은 현실에서 계속되고 있다. 납치 유괴 실종 사건이 잇따르고 강력 범죄가 끊이지 않으면서 우리사회는 여전히 불안과 두려움의 ‘패닉’상태에 빠져 있다. TV 홈쇼핑에선 125만원짜리 ‘보디가드’상품이 등장해 히트를 치고, 호신용품 판매도 예전보다 20% 이상 증가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공포 신드롬’이 확산되면서 과거 정부나 대기업 고위 인사, 연예인들을 대상으로 이뤄지던 경호가 가까이 다가왔다. 치안불안시대에 경호업이 특수를 맞은 것이다.

지난 10여년간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 팝 스타 마이클 잭슨, 골프스타 닉 팔도, 영화배우 성룡ㆍ장국영 등 국내외 유명 인사들의 수행경호를 맡았던 ‘충용 시큐리티’. 윤문기(38) 대표이사와 전문 경호원 유지훈(27) 원종민(27) 배연규(27) 안선미(여ㆍ22)씨와 함께 경호의 세계와 우리 사회의 자화상을 들어봤다. 윤 대표는 12년 경호 경력을 지닌 베테랑이고, 원종민ㆍ배연규씨는 경호학과를, 유지훈ㆍ안선미씨는 체육학과를 나왔다.

-경호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졌는데.

윤문기 = 과거에는 주로 정치ㆍ경제계 고위 인사들이 고객이었다. 이제는 일반인들의 의뢰가 많다. 우리 회사의 경우 일반인의 의뢰가 60%나 된다. 최근에 유괴 실종사건 등 강력범죄가 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과거에는 특별한 사람이 받는 게 경호라는 인식이었지만 우리 사회 전반에 알게 모르게 위해요소가 많이 증가하면서 경호란 필요한 것이라는 인식이 보편화된 것 같다.

유지훈 = 이혼이 증가한 탓인지 여자측에서 의뢰를 해오는 경우도 많다.

원종민 = 불황이 지속되면서 ‘IMF가 다시 왔다’는 말이 있는데, 부도난 회사 오너들이 채권자나 폭력배들로부터 보호를 의뢰해 오는 경우도 많다.

- 힘든 점도 많을텐데...

원종민 = 경호하는 과정에 일어나는 어려움보다는 ‘돈을 주고 고용했으니 내 하인이다’는 식으로 우리를 대할 때가 더 힘들다. 또 경호원은 사실 전문 직업인인데 아무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심지어는 건달로 보는 경우도 없지 않다.

안선미 = 개인적으로는 행사 경호를 나갈 경우 행사 몇 시간 전부터 배치돼 행사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켜야 한다. 끼니를 못 챙기는 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생리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때 가장 난감하다. 그래서 그런 행사를 앞두고는 아예 목이 탈 망정 물이나 음료수를 마시지 않는다.

- 경호할 때 특별히 신경을 쓰는 부분이 있다면.

원종민 = 의뢰인의 그날의 기분이라든가 사생활, 몸 상태 같은 것을 가장 신경 쓴다. 4년 전쯤 우리나라에서 꽤 이름있는 디자이너 한 분을 모신 적이 있다. 집안 문제가 복잡해 그 분의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처음엔 기분을 맞추느라 고생을 했는데, 나중엔 그 집에서 숙식을 하면서 경호를 했다. 일이 잘 마무리돼 그 분이 너무 고마워했다. 아직도 서로 연락을 하고 지낸다.

배연규 = 의뢰인이 어떤 성격의 소유자인가를 먼저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또 의뢰인의 심리적인 안정이 중요하기 때문에 첫인상에서 믿음을 주도록 노력한다.

안선미 = 여자이기 때문에 복장ㆍ외모 등에 신경이 쓰이고, 여자라고 해서 약하게 보이지 않도록 신경을 쓴다.

유지훈 = 3년 전에 형제들끼리 재산 문제로 소송이 있었을 때 다른 친척이 재산을 가로채려는 것을 막아준 일이 있다. 재산을 대신 파악해 주고 서류를 작성해 줬다. 그래서 수천만원을 찾아준 일이 있는데, 단순히 의뢰인의 몸을 위해하는 일만 막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다. 상대에 따라 신경 써야 할 부분이 각기 다르다. 동료 요원 중에는 사채업자에게 납치, 강금당한 딸 어머니의 부탁을 받고 친오빠 행세를 해 딸을 구하기도 했다. 그럴 때 뭐를 가장 신경써야 하겠는가(웃음)

- 경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원종민 = 기초 체력이나 구체적인 지식도 필요하지만 ‘인성(人性)’이 중요하다고 본다. 경호 업무는 힘든 일도 많고, 참아야 할 것도 많은데 이것을 견뎌내지 못하면 경호에 대한 기본자세가 안되어 있는 것이다.

배연규 = 기본적인 에티켓이 필요하고, 흔히 ‘(경호원으로서) 냄새가 난다’는 말이 있듯 경호원 다운 분위기가 중요하다. 또 의뢰인이 위해를 당할 ?같다는 것을 미리 알아채는 순간 판단력을 길러야 한다

안선미 = 경호인과 의뢰인과의 ‘믿음’이라고 생각한다. 경호인으로서는 의뢰인에게 그런 믿음을 줄 수 있는 무도와 에티켓을 갖춰야 한다.

윤문기 =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자기 성격을 컨트롤 하지 못하면 그 화가 바로 의뢰인에게 가기 때문에 자기 통제력이 중요하다. 두번째는 직업 의식이다. 호기심이나 동경심으로 경호원이 될려고 하면 안 된다. 철저하게 의뢰인을 보호한다는 의식이 투철해야 한다. 94년에 의뢰인을 경호하다 조직폭력배들과 맞부딪친 적이 있는데 목숨을 걸고 폭력배 두목과 담판을 지을 수 있었던 것도 직업의식 때문이다. 나중에 의뢰인이 고마워하기보다는 “한 패가 아니냐”고 의심해 웃고 넘어갔었는데 그 때만해도 경호원에 대한 사회 일반의 인식이 그러했다.

- 경호원이 되기 위해서는 특별 과정이 있는가.

윤문기 = 입사 연차와 간부ㆍ일반 경호원에 따라 차이가 있다. 크게 이론ㆍ실무 교육과 무도ㆍ체력 단련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론교육 때는 인성ㆍ에티켓 교육에 중점을 두고 실무교육 때는 실제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을 ‘WAR GAME’을 통해 이미지 트레이닝을 반복해 대처 능력을 연마한다.

안선미 = 여성 요원은 ‘블랙로즈’라는 팀에 속해 있는데, 일반 교육 외에 여성 요원에게 특히 필요한 사례 교육과 에티켓 교육을 중시한다. 무도와 체력 단련의 비중도 높다.

- 경호원이란 전문 직업이 갖는 어려움이 있다면

유지훈 = 개인 사생활을 버려야 하는 것이 가장 아쉽다.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 방한과 같은 대형 프로젝트가 주어질 땐 합숙 훈련과 실전 투입 등 한달 가까이 개인 생활은 접어둬야 한다.

안선미 = 연예인 행사장에서 세트장이 무너져 다치는 등 예측불허 상황에서 생활해 항상 긴장해야 하지만 경호라는 직업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단 결혼한 선배들이 일을 그만 둘 때는 내 일 같아 솔직히 고민을 한다.

윤문기 = 경호를 젊거나 체력 좋은 사람들만의 직업으로 오판해 수명이 짧다는 이유로 기피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영화 <사선에서>의 클린트 이스트우드처럼 노경호원의 노하우는 젊은 경호원이 따라올 수 없고, 경호업이 대형화ㆍ다양화 될수록 노련한 경호원이 필요하다. 당면한 경호업의 어려움이라면 비전문가들이 난립해 경호에 대한 인식을 흐려놓고,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 의뢰인들에게 바라는 바가 있다면.

유지훈 = 경호원을 전문 직업인으로 봐달라. 경호원은 신변 보호 뿐만 아니라 비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도 갖추고 있다.

원종민 = 자기가 처한 상황에 대해서 솔직하게 모두 얘기를 해주었으면 한다. 가족간의 문제나 여자 문제에 있어 사실을 제대로 얘기해 주지 않아 낭패를 본 경우가 있는데 ‘비밀’은 철저하게 보장되니 숨기지 말고 사실을 말해줘야 정확한 경호를 받을 수 있다.

배연규 = 지위가 있고 배운 분들은 대게 경호원의 존재를 인정하고 이에 상응한 대우를 해주는데 그렇지 못한 분들이 간혹 돈으로 마음대로 하려고 한다. 이런 것은 본인에게도 도움이 안된다는 점을 알았으면 한다.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4-03-10 22:15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